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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릎

노예검투사는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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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릎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4
최근연재일 :
2022.06.08 20: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6,183
추천수 :
461
글자수 :
138,314

작성
22.05.2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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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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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12쪽

4편 희생양(5)

DUMMY

4편 희생양(5)




푸욱-!

칼날의 끝이 누군가의 목을 꿰뚫었다. 피가 터져 나왔고. 육신이 무너져 땅바닥에 처박혔다. 치열한 검투를 목도한 관객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이로써, 마지막 경기가 끝을 맺었다.


[ 이것으로 오늘의 검투를 모두 마칩니다! ]


사회자의 목소리에, 관중석에서는 다시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검투는 언제나 흥미진진한 볼거리지만, 모든 경기가 최고유희인 것은 아니다. 관중들 또한 검투를 볼 만큼 지켜봐왔기에 무덤덤해진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검투는 달랐다.


“제기랄! 드디어 볼 만한 매칭을 성사했구만!”

“드레이크! 앞으로도 이렇게만 일 하라고!”

“와하하하하하! 피가 끓어오른다!”


쏟아지는 극찬 속에서 사회자는 흥을 한껏 끌어올리며 외쳤다.


[ 자아! 이어서 결산식이 있겠습니다! 오늘의 콜로세움을 피로 물들인 승리자들은 무대로 나와 주십시오! ]


결산식.

계위권 검투사들의 검투 끝에는 언제나 ‘결산식’이라는 것이 있다. 비유하자면 올림픽의 메달 수여식과 같은 것.

이 날의 승자 가운데 거동이 가능한 이들이, 한두 명씩 콜로세움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로마니오! 이 빌어먹을 치사한 놈아!”

“잔슨빌! 잔슨빌! 너는 오늘 최고였어! 다음에도 도끼로 대가리를 깨버리라고!”


흥분한 관객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검투사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러나 몇몇 관객들은 입을 닫고 등장하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직 ‘그’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크게 다쳐서 못나오기라도 하는 걸까?

우려하던 그때.

한 남자가 투기장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구백번―!!!!!”


가장 흥미진진한 검투를 보인 이의 모습은, 대체로 가장 시체와 가깝다.

900번의 모습이 그러했다.

상처투성이의 몸. 터져버려 붕대로 감싸인 눈. 절뚝거리는 다리. 하지만 움츠러든 기색 없는 걸음걸이.

한 전투에서 한 위계의 적과 싸우더라도 승리가 어려운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10위계였던 900번은 8위계의, 그것도 7위계 급이라 평가 받던 게라드를 상대로 싸워 이겼다.


[ 자! 이쪽은 블레인 양성소의 에이스, 게라드를 상대로 처절한 승리를 거둔 검투사! 900번! ]


그가 처음 들어섰을 땐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으나.

지금은 달랐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900번을 향해 쏟아졌다.


“900번! 900번!”

“으와아아아! 최고였어!”

“네 덕분에 베팅한 돈의 70배를 받아먹었어!”

“너는 빌어먹게 최고였다고!!!”


한편, 관객들의 눈에는 새로운 흥밋거리가 떠올랐다. 두 위계 위의 상대를 쓰러뜨리는 일은 여기 콜로세움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한 위계에 서너 경기를 승리해야 다음 위계로 오르는 법인데.

그런 만큼, ‘900번은 이번에 과연 한 번에 9위계까지 오를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다.


“당연히 9위계는 줘야지! 8위계를 잡았는데.”

“흠. 확실히. 10위계에 있는 것은 괜한 학살밖엔 되지 않겠어.”

“게라드가 7위계 급이라고 평가 받았으니까 말이지.


평소였으면 말싸움하기를 좋아하는 검투 관객들조차도, 이번만큼은 이견이 없었다.

900번은 희생양의 처지임에도 적을 무찔렀다. 절대로 10위계로 둬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랬는데.


[ 드레이크께 위계 승급표를 전달받았습니다! 900번의 위계가 상향조정됩니다. ]

[ 앞으로 카일록 양성소의 900번은 7위계! 7위계의 검투사로서 콜로세움의 전장을 밟습니다! ]


“뭐, 뭐야?”

“7위계라고?!”


사회자의 말에 관객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의 전투에서 하나의 위계가 승격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10위계의 검투사가 단번에 7위계까지 오르다니? 이례적인 것을 넘어 파격적인 인선이었다.

그럼에도 관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그럴 만한 경기였지!”

“저위계에서 썩기에는 아깝다고!”

“드레이크 자식, 화끈한데?”


검투 일정과 검투사의 위계관리는 온전히 드레이크의 몫. 다소 급진적인 승급일지라도 불만은 없었다. 그만큼 900번의 경기는 짜릿한 쾌감을 주었기에.


[ 그럼, 콜로세움의 위대한 검투사. 제타 마브라사가 ‘이름’을 수여하겠습니다! ]


10위계의 검투사는 아직 진정한 검투사가 아니다. 콜로세움에서 죽는 대부분의 노예는 10위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햇병아리에게 이름은 사치였다.

따라서 10위계에게 ‘승급’이란 이제 한 명의 검투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가치를 증명해낸 노예는 이제 숫자가 아닌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콜로세움의 전통에 따라, 양성소의 가장 뛰어난 검투사인 제타 마브라사가 900번의 앞에 섰다. 그의 손에는 검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잘 해냈다. 애송이.”

“힘들어 죽겠군.”

“후, 농담할 기운이 있는 걸 보니 아직 멀쩡해 보이는데.”

“···농담이 아니다만.”


제타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개인교습]을 완벽히 이수한 것도 모자라 2위계를 극복하는 저력을 보여준 신참이다. 여지껏 ‘꿈’을 논한 녀석들 중에서 이런 기량을 보여준 검투사는 없었다.


‘어쩌면 제대로 된 동료를 얻은 걸지도 모르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제타는 가지고 있던 검을 내밀었다.


“내가 쓰던 검이다. 명검은 아니지만 보급품보다는 훨씬 쓸만할 거야.”

“감사히 받지.”

“너는 데뷔전에 이어 지금까지 너보다 강한 적을 상대로 살아남았다. 마치 콜로세움의 옛 전승에 나오는 인물처럼. 네 이름은 그 전승을 따온 것이다.”


900번은 정말로 체력이 다한 것인지 붕대로 가리지 않은 멀쩡한 눈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억지로 정신을 다잡으려는 그에게 제타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했다.


“살아남아라. 다우드 이샤이.”


나와 함께 바다를 볼 때까지.


[ 콜로세움의 새로운 검투사. 다우드 이샤이에게 무운을! ]


““다우드! 다우드! 다우드!””



* *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침상 위에 누워있었다.


“···다 끝났나.”


아무래도 드디어 쉴 수 있는 모양이다. 드레이크며 명명식이며 전투 이후에 행사가 너무 많았다.

상처도 상처지만 체력이 떨어져서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었다. 침상에 누운 채로, 나는 지난 전투를 복기했다. 운이 좋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전력차이는 확연했고, 전투 내내 단 한 번도 게라드를 압도하지 못했다.


‘검술 실력이 가장 문제로군.


제타에게 검투의 기본을 배웠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챔피언이 되려면 역전을 노리는 것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실력까지 최고여야만 하니까.

단기간에 그만한 검술을 쌓기는 어렵다. 제타로부터 수련을 받는다 해도 시간이 제법 걸리겠지.

경기에 대한 회고는 점점 승리 이후로 이어졌다.

승리한 뒤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았다. 드문드문 새겨진 기억 속에서 이름을 받았던 것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다우드 이샤이라···.”


새로운 이름. 이제부턴 900번이 아니라 이 이름으로 살아가야겠지. 내 기억이 맞다면 다윗을 모티브로 한 전설적인 검투사의 이름이었다.

거인을 쓰러뜨리고 마침내 자유를 얻은 검투사.

제타는 그처럼 나도 자유의 몸이 되기를 바랬던 거겠지.


‘이제 좀 편히 쉬자.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하고.’


침상에 누운 채로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호오! 깨어났는가? 여길 또 온 거 보면 자네도 여기가 마음에 들었던 거지? 그렇지?”


꿈에 나올까 두려운,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


“이런 제기랄, 딕슨!”


치료사의 상징인 흰 가운을 입은 늙은 노인. 딕슨이었다.

커튼을 걷고 나타난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등골에 소름이 좍 돋았다.

씨부럴! 여기, 치료소였구나!

몰려오던 수마가 순식간에 날아가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카일록 이 망할 놈의 새끼. 기껏 승리했더니 여길 또 집어넣어?’


내 덕에 돈 깨나 벌었을 거 아니야! 감히 은혜를 원수로 갚아?

언젠가 그 개자식의 모가지를 따버리고 말테다.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딕슨의 얼굴은 싱글벙글한 상태였다.


“여태까지 여길 재방문해주는 친구가 없어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아나? 오늘 그 한을 풀겠군!”

“그 한을 왜 나한테 푼단 말이야! 대체 왜!”

“그야···. 재밌으니까지?”

“닥치시오! 나는 여길 나가야겠소. 돈을 더 내고서라도 다른 치료사를 만나야···!”


윽, 소리를 질렀더니 머리가. 몸이 휘청거린다.

당장 여길 빠져나가야한다. 딕슨 저 노친네의 치료를 또 받았다간 투기장이 아니라 병실에서 죽고 말 거다.

황급히 일어나려는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이, 이게 뭐요.”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길래 미리 묶어놨지! 잘했지 딕슨?”


자기 이름은 대체 왜 부르는 건데?

절그럭.

아무리 힘을 줘봐도 삐걱거리는 소음만이 날 뿐, 풀려날 수가 없었다.


“우리 친구를 위해 만든 특별한! 쇠사슬이라고. 내가 봐도 딕슨의 준비성은 일류라니까.”


그러면서 양손에 실과 바늘을 꺼내들었다.


“자, 일단 꿰매야겠지?”

“잠깐만 기다리시오. 하다못해 마취는 하고···.”

“따끔~”


딕슨은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다짜고짜 바늘을 찔러왔다.

제기랄, 또 그 고통을 견딜 수는 없다.

시퍼런 빛을 뿜는 바늘이 피부를 찌르려던 순간, 새로 얻은 스킬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 방어스킬이 있었지!


< 스킬 [스톤스킨 lv.1]를 발동합니다. >


심장으로부터 무형의 기운이 뻗어나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스킬에 의해 강화된 피부가 마치 악어의 등껍질처럼 질기고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왜 안 들어가지? 끙···.”


핑―!

힘을 주어 누르던 바늘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이, 이럴 수가. 3일 동안 갈아놓은 내 바늘이···.”


바닥을 구르는 바늘을 보며 딕슨의 얼굴에 허망함이 떠올랐다.

그래, 이거지!


“하, 하하! 이제 알겠지? 네놈 실력으로는 나를 치료할 수 없다!”


그러니까 보내줘.


“···캬하핫, 이거 재밌구만. 가끔 이런 친구들이 있더라고. 내 그럴 줄 알고 해결법을 알아냈지!”


아냐 알아내지마. 나한테 하지 마.

딕슨은 수술도구를 뒤적거리더니 송곳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다른 손에 쥔 것은···.


“마, 망치? 그걸로 뭘 하려고?

“자, 바늘 들어갑니다. 따끔~”


깡!


“끄아악!”


딕슨은 송곳을 마치 정처럼 사용했다.

송곳을 피부에 대고 망치를 때려 넣었단 소리다.

깡!


“뼈, 뼈 맞았어! 뚫린다아악!!”

“뼈, 뼈가 뚫려?”


내 비명소리를 듣고 딕슨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안 되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치료사의 숙명이니까!”

“처, 처음으로 제대로 된 말을 뱉는군. 젠장!”

“모든 외상을 치료하는 남자. 그것이 나, 딕슨!”

“···그 말은?”


보내준단 소리지? 그렇지?


“새롭게 다치면 내가 전부 치료해주겠네! 걱정 말라고 친구!”

“이 미친 영감탱이가···!”


깡!


“끄아아악!! 그, 그만!”

“쓰읍, 환자가 고통스러워한다. 딕슨, 속도를 올리게!”


스스로를 재촉하는 딕슨을 보며 나는 맹세했다.

두 번 다시, 두 번 다시 여기 올 일은 없을 거라고!


또각!

“끄에에엑―!!”


지, 진짜, 진짜 부러졌어···!

멀쩡했던 오른팔이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비틀렸다.

그것을 보고 딕슨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 이런. 실수!”


실수 같은 소리하네, 이 미친 자식아!

어디 사람 뼈가 실수로 부러질만한 것인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딕슨은 허둥거리며 부목과 붕대를 챙겼다. 얼핏, 예기치 못한 사태를 수습하려는 듯한 움직임.

하지만 나는 분명히 들었다. 뒤로 돌아선 딕슨이 무어라 중얼거리는지.






“훗, 고칠게 늘었군. 예상대로야!”


이, 이 망할 노친네가···!


작가의말

쩝.. 나름 큰 포부를 안고 공모전에 도전한건데 다음편 쓸 엄두가 잘 안 나네요

월요일이 오기 전에 혼술하며 영화나 한편 봐야겠습니다


++++

그래도 오늘은 뭔가 되는 날인가 싶습니다

제 소설을 봐주는 분이 갑자기 네 분이나 늘다니.. 하루에 한 분 늘면 다행이었는데

기분이 좋네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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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4편 희생양(4) 22.05.27 190 16 14쪽
15 4편 희생양(3) +1 22.05.26 198 12 15쪽
14 4편 희생양(2) 22.05.25 194 13 12쪽
13 4편 희생양(1) +2 22.05.24 206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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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편 개인교습(4) 22.05.22 211 15 12쪽
10 3편 개인교습(3) +2 22.05.21 221 19 13쪽
9 3편 개인교습(2) +2 22.05.20 224 18 14쪽
8 3편 개인교습(1) 22.05.19 259 20 15쪽
7 2편 검투사의 삶(3) +4 22.05.18 275 2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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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편 검투사의 삶(1) +2 22.05.16 313 2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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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편 노예 검투사(2) 22.05.12 405 25 14쪽
2 1편 노예 검투사(1) +1 22.05.11 527 3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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