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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릎

노예검투사는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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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릎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4
최근연재일 :
2022.06.08 20: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6,186
추천수 :
461
글자수 :
138,314

작성
22.05.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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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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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편 개인교습(4)

DUMMY

3편 개인교습(4)




태양이 꼭대기에 걸린 시간.

구름 한 점 없는 오후의 하늘 아래로 강렬한 일광이 쏟아진다.

공터를 덮은 모래가 뜨겁게 달아오른 가운데,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제타와 함께 단련장을 찾았다.


[개인 교습]의 마지막 날.

평소와 달랐던 것은, 제타가 들고 있는 것이 무게 추나 목검 따위가 아니라 날카롭게 빛나는 단검이라는 점.

잠시 단검을 쓰다듬던 제타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너는 두 가지 단계를 거쳤다.”


하나는 검투의 시작. 부딪침.

또 하나는 검투의 본질. 전투와 승리.


첫 번째 단계에서 검투라는 것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살의에 맞서 몸을 내던져야함을 배웠고.

두 번째 단계에선 승리를 취하기 위하여, 전투 속에서 상대를 파훼할 기교를 배웠다.


“그렇다면 세 번째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흠···.”


시작과 본질, 그렇다면 그 다음에 올 것은 검투의 끝이라고 불러야하겠지?

검투의 끝이라.

문득, 지금까지 만났던 검투사들이 추구했던 가치들이 떠오른다.

쇼맨쉽을 추구하던 비요르, 명예를 쫒던 하쿤, 기술을 연마하던 알브레이. 낭만을 입에 담던 선임 검투사들.

모두 일리 있는 답이지만, 검투의 끝이라는 질문에 맞는 대답은 아니다. 어쩐지 알 것 같다.


“살아남는 것, 이라 생각한다.”


내 대답을 들은 제타가 흡족하게 웃었다.


“잘 말했다. 나는 모든 검투사가 자신만의 꿈과 희망을 가지기를 바라지만, 검투 그 자체에서만큼은 그러한 낭만을 버렸으면 한다. 검투의 끝은 그저 살아남는 것으로 충분하다.”


무엇을 목표로 하건, 결국 살아남아야만 의미를 가진다.

검투사는 살기 위해 싸우고, 싸운 끝에 살아남는 존재.


“재밌는 것은 승리했다고 해서 꼭 살아남는 것도 아니란 점이지.”

“승리했는데 죽는다고?”

“그래, 승리한 검투사의 3할은 검투가 끝난 후에 죽고 말아. 그건 모든 검투사들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였다.”

“3할···?”


어째서인지 한 치료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다행히 카일록 양성소는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지난 열흘 간 애송이, 네가 마신 약이 그것이다.”

“약이라면, 포션을 말하는 건가?”

“포션에 약간의 약을 더했었다. 우리는 그걸 초회복의 음료라고 부른다. 열흘간 순차적으로 마심으로써 회복의 힘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일종의 영약이지.”


제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초회복의 음료는 ‘찐빠이’들이 마시는 것과 같으나, 내게 주어진 것의 효능은 그 세 배라고.

아무래도 [고급]판정의 포션을 준 것 같았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몸이 금방 가벼워진다 싶었더니, 그런 효과가 있을 줄이야.


“초회복의 음료는 모두 투여되었다. 하지만 그걸 흡수하는 건 네 몫이야.”

“방법만 말해라. 무엇이든 바로 하겠다.”

“의욕이 좋구나! 하지만 조금 괴로울 수도 있다.”

“괴로워···?”


게임 속에서야 클릭하면 마시고 흡수되는 식이었는데.


“원리부터 설명하지. 우리의 피 속에는 ‘마나’라는 것이 들어있다. 이는 마법사들이 부리는 신비의 원천이며. 생명체의 숨이 이어지는 기원이다. 그리고 피가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일수록 마나를 강하게 쓰는 것이 가능하지. 너무 어려운 개념인가?”

“아니. 알 것 같다.”

“좋다. 피가 모이는 곳이라 함은 근육을 말하는 것. 즉, 근육이 큰 부위일수록 더 많은 피를 받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단련한다한들 팔로 세상을 밀어 3미터를 도약할 수 없지만, 다리로는 그것이 가능한 것과 동일한 이유지. 그래서 나는 이 「초회복」을 훈련할 당시, 허벅지에 상처를 내고 치유함을 반복하여 흡수력을 끌어올렸다.”

“······.”

“그런데 그 방식으로는 약물의 효능을 한계까지 뽑아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까진 과거의 내가 3위계 승급전을 준비할 때의 이야기야.”

“······.”

“가장 큰 근육이 허벅지인데. 그것으로는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없다. 그리고 초회복을 완성하지 못하면 죽는다. 자아, 그때 내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나는 잠시, 제타의 설명을 되새겨보았다. 피가 가장 몰리는 곳에 상처내고 회복하길 반복함으로써 초회복을 달성한다.

인체에서 가장 큰 근육이 자리 잡은 다리, 그보다 더 큰 효율을 낼 수 있는 부위가 있을까?

순간, 소름 돋는 생각이 스쳤다.

피가 가장 많이 몰리는 곳. 그것은 팔이나 허벅지 따위가 아니라···.


“나는 심장을 찔렀다.”


미쳤군.

감히 제정신으로 할 행동이 아니다.

스스로 심장을 찌른다니. 그런 걸 수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자살이 아니라?

그러나 제타는 죽지 않았고, 내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가 거짓말을 할 리도 없었다.


“······.”

“내가 너를 가르치는 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겠군. 마지막 단계를 허가받기 위해 카일록과 사흘 내내 설전을 벌였다. 나는 이곳 콜로세움의 스타며, 카일록 양성소의 최고 위계 검투사. 그만큼 많은 일정이 있음에도 모두 취소했다. 네 녀석의 ‘꿈’을 위해서.”

“”

“그러다 어제, 딱 하나의 일정에 나갔지. 네 상대인 게라드라는 놈을 보러 말이다. 그놈, 생각보다 훨씬 강하더군. 이대로라면 네 ‘꿈’은 좌절될 것이 분명하다. 놈의 수준은 8위계 정도가 아니었다. 아마 노예가 되기 전에도 사람 여럿 죽여 본 개망나니였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내가 겪었던 수련을 네게 권할 참이다. 그 정도 각오가 아니면 네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해. 그렇기에 ‘심장을 찌르고 회복시킨다.’ 그것으로 나는 개인 교습을 마칠 생각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제야 나는 제타가 들고 있던 단검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다. 이건 정신 나간 짓이다. 심장에 구멍이 나고도 살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제타도 그걸 모르지 않았기에 망설였겠지.


“어려운 선택임은 안다. 거부하더라도 누구도 널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제타는 입을 다물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실패하면 당연히 죽을 것이다. 아니, 성공이란 게 가능한 지도 의문스럽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제안이다.

그러나,


“하겠다.”


나는 이미 깨닫지 않았나. 이곳은 미친놈들의 세상. 여기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상식 따위는 버려야한다는 것을.

살고 싶다면 이겨야하고, 이기려면 목숨을 내던져야한다.


*


“손을 줘봐라. 초회복의 사용법을 알려주지.”


내가 손을 내밀자, 제타는 들고 있던 단검으로 내 손바닥을 그어보였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얕게 갈라진 손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눈을 감아라. 초회복의 원리는 간단하다. 상처에 정신을 집중하며 그곳에 ‘회복’의 의지를 부여하는 것이지.”


그의 말대로 눈을 감고 집중하자, 빠른 속도로 피가 멎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눈앞에 벌어진 이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군.”

“중요한 것은 집중을 유지하는 요령이지. 초회복의 힘은 마나의 작용. [개인 교습]의 마지막 단계는 마나를 움직이는 의지를 단련하는 것과 같다.”


모르는 사이에 이런 능력이 생겼을 줄이야. 상태창에도 표시되지 않은 부분이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태창에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마도 [개인 교습] 도중에 받은 모든 보상의 표기가 교습의 끝에서 한 번에 떠오르기 때문이리라.

상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졌다. 흉터 하나 없는 모습에 놀라던 중, 제타가 목검을 하나 건넸다.


“···뭐가 이렇게 무거워? 겉보기엔 평범한데.”

“훈련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부터 너는 이 목검으로 내려베기를 시작한다.”

“내려베기를?”

“그래, 심장을 찔린 상태에서 10번의 베기를 연속으로 해내면 이 훈련은 끝이다.”


제타의 설명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내려베기가 초회복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애송이. 내 설명을 뭘로 들은 거냐? 초회복의 힘을 끌어내려면 몸속을 순환하는 피의 양이 늘어야만 해. 이건 시련이면서 동시에 네가 죽지 않게 도와주는 안전장치라고.”

“그게 아니라···. 고작 열 번을 해내는 걸로 성공이라면, 그냥 빠르게 끝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해서.”


제타는 씩 웃으며 말했다.


“해 보면 알 거다.”


*


조금 미심쩍지만, 이내 수긍한다.

어차피 [개인 교습]은 주어진 퀘스트를 얼마나 완벽하게 달성했느냐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 제타의 설명대로 10번의 베기를 성공한다면 회복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최대한 빠르게 끝낸다.


“더 설명할 게 없다면 바로 시작하지.”

“시원시원해서 좋군. 셋에 찌르겠다. 하나.”


가슴 위에 단검이 겨눠진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가슴에 닿았다. 긴장된다. 그러나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 않나.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오더라도 포션이 있다면 죽지는 않겠지.


“참고로 저번에 준 포션이 마지막이다.”

“뭐, 뭐라고?”

“둘.”


엿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며칠 동안 죽을 것처럼 얻어맞아도 나를 살려준 것은 포션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믿고 있었는데?

마음 속 굳게 닫혀 있던 마지막 방벽이 무너진 순간, 나는 이때 평소에는 보지 않던 상태 로그까지 띄웠다. 내가 언제 죽을지 파악해야했기 때문이다.

그 직후,


“셋!”


차가운 날붙이가 피부를 가르고, 근육 새를 파고 들기 시작했다.


푸 우 우 우 욱 ――


단검이 피륙을 찢고, 가슴뼈 사이를 긁어들어간다.

근막이 터지며 마침내, 심장을 꿰뚫렸다.


“크으흐······!”


뜨겁다! 가슴이 불타는 것 같다!

심장에 박힌 단검이 맥박을 따라 요동치며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불러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발광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쥐어 짜일 때마다, 상처 틈새로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이 어지럽다. 구역질이 올라오며 눈앞이 핑 돌았다.

공간이, 아득히 멀어지기 시작한다.


“애송이, 정신 차리고 숨 쉬어라!”

“의식을 잃으면 그대로 죽는 거야! 숨 쉬라고!”


제타가 무어라 소리쳤으나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공간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며, 고함소리 또한 저 멀리서 외치는 것처럼 흐려진다.

까마득한 시야가 피처럼 새빨간 경고창으로 가득 메워진다.


< 경고! 극단적인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


< 캐릭터가 상태이상 [출혈×10]에 빠집니다! >


< HP:84%···76%······ >


< HP:55%··· >


어두워지는 세상 속에서 무섭게 떨어지는 숫자.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흐려서 보이지 않게 된다.

눈앞은 캄캄하고. 귀는 물먹은 듯 먹먹해진다. 세상을 인지하던 창구들이 하나둘씩 닫히기 시작하자, 다른 감각들이 유난히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헐떡이는 목구멍에서 피가래가 올라왔다. 그 짠 맛이, 비릿한 냄새가. 혓바닥과 이를 윤활 하는 감촉이 기괴했다.

가슴 속은 숫제 쥐어뜯기는 것 같았다. 검투사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나, 미치광이 의사에게 잘못 걸렸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 감각의 끝에 이어진 것은 분명 ‘죽음’일 터였다.

이제는 촉각마저도 조금씩 잦아든다. 이리 긴박한 상황임에도 어째서일까. 나는 내 처지가 서서히 조여 드는 감옥에 갇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둘씩 흐려지는 감각의 끝에서, 이제는 심장을 찌른 칼의 격통마저도 사라지고.


머릿속으로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서서히 물결처럼 펴져 나가는 듯하다······

···싶던 때에,


제타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서 폭탄처럼 터졌다.


“ 숨 쉬어어어어어어어어어――!!”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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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5편 후원자(4) +4 22.06.04 168 16 11쪽
21 5편 후원자(3) +2 22.06.02 164 14 10쪽
20 5편 후원자(2) +2 22.06.01 167 13 13쪽
19 5편 후원자(1) +2 22.05.31 189 15 15쪽
18 4편 희생양(6) +3 22.05.30 220 18 12쪽
17 4편 희생양(5) +2 22.05.29 220 18 12쪽
16 4편 희생양(4) 22.05.27 190 16 14쪽
15 4편 희생양(3) +1 22.05.26 198 12 15쪽
14 4편 희생양(2) 22.05.25 194 13 12쪽
13 4편 희생양(1) +2 22.05.24 206 15 12쪽
12 3편 개인교습(5) +2 22.05.23 205 16 13쪽
» 3편 개인교습(4) 22.05.22 211 15 12쪽
10 3편 개인교습(3) +2 22.05.21 222 19 13쪽
9 3편 개인교습(2) +2 22.05.20 224 18 14쪽
8 3편 개인교습(1) 22.05.19 259 20 15쪽
7 2편 검투사의 삶(3) +4 22.05.18 275 27 16쪽
6 2편 검투사의 삶(2) +1 22.05.17 323 23 12쪽
5 2편 검투사의 삶(1) +2 22.05.16 313 25 17쪽
4 1편 노예 검투사(3) +1 22.05.13 343 25 13쪽
3 1편 노예 검투사(2) 22.05.12 405 25 14쪽
2 1편 노예 검투사(1) +1 22.05.11 527 37 12쪽
1 프롤로그 22.05.11 605 39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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