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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릎

노예검투사는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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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릎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4
최근연재일 :
2022.06.08 20:2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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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8,314

작성
22.05.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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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편 희생양(1)

DUMMY

4편 희생양(1)




[단독. 8위계 검투사 게라드 “나는 사실상 6위계, 드레이크에 분노 느껴.”]

···콜로세움의 인기 검투사 게라드가 다가오는 경기에 대해 심경을 밝혔다. “내 실력은 6위계 이상이다. 이번 매치는 나를 무시하는 것.” “드레이크의 인선에 유감.”······상대에 대한 질문에는 “벌레 새끼에 관심 없다.” 등의 발언으로 자신감을 표했다.

블레인 양성소의 신예 검투사 게라드는 데뷔 세 달 만에 8위계에 오르는 등의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알브레이는 읽고 있던 신문을 책상 위로 툭 던졌다.

멧돼지 놈의 상대가 인터뷰를 했다더니, 온통 제 자랑 뿐이다. 내일 있을 경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태도.

게임 내의 배경인 ‘제국’에서는 제국일보라는 이름의 신문을 발행한다. 그 중에서도 검투사들의 관심거리는 콜로세움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이슈를 다루는 ‘검투면’이었다.

게라드의 오만한 발언이 카일록 양성소 검투사들의 입에 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 이놈, 자신감이 넘치는군.”

“10위계 정도는 벌레 취급할만하지. 7연승은 아무나하나.”

“제타의 개인 교습이 대단하다해도 일주일은 부족하지···.”


대기실에서 수군거리는 검투사들. 그들의 목소리에 알브레이는 짜증이 솟구쳤다.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검투사들은 신참이 질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알브레이의 손바닥이 그들의 뒤통수를 갈겼다.


“악! 어떤 새끼가···. 아, 알브레이?”

“어휴 이 한심한 새끼들.”

“뭐, 왜? 우리가 못할 말 했냐?”

“그 멧돼지 자식이 너희랑 같은 수준인 줄 알아? 제타 선배의 수업이 장난으로 보이냐고.”


신참이 마음에 안 드는 놈임에는 틀림없지만, 놈이 이겨낸 시련은 무시할 게 아니었다.

제타 마브라사의 [개인교습]을 받은 검투사는 손에 꼽을 지경이며, 그 악랄한 마지막 단계를 제대로 통과한 놈은 지금껏 존재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놈은 알브레이조차 한 번은 이기지 않았는가. 7위계인 그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알브레이는 인상을 찡그렸다. 간신히 한 번 이긴 걸로 놀려대는 900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튼, 게라드 전을 대비한 무기, ‘초회복’은 결코 만만한 능력이 아니었다.

접근전 위주의 검투사는 필연적으로 많은 부상을 입게 된다. 그런데 그 대미지를 실시간으로 해소하며 돌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니까.


‘회복력을 앞세운 인파이터? 뭐야, 그 말도 안 되는 조합은.’


그러한 이유로 알브레이는 굳게 믿은 것이다. 이번 검투는 신참이 이길 것이라고.

······한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뭐, 뭐야 이게···.’


그것은 제타가 들고 온 메모리얼 스톤 속, 게라드의 전투 영상이었다.

말로만 듣던 전투를 직접 보게 된 순간.


‘······이게 무슨 8위계야?’


알브레이의 믿음이 꺾이기 시작했다.


*


콜로세움에는 메모리얼 스톤이라는 것이 있다. 인기 검투사들의 경기나 단련 장면을 기록하는 영상물로, 일종의 마도구였다.


“게라드의 스파링 기록이다. 오늘 아침에 나온 것이지.”


그렇게 말하며, 제타는 900번과 제타 앞에서 메모리얼 스톤을 작동시켰다.

곧이어 테이블에 놓인 돌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허공에 쏘아진 빛이 홀로그램처럼 영상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알브레이는 충격에 빠진 채 중얼거렸다.


“뭐야 이 자식. 왜 이렇게 잘 싸워···?”


영상 속 게라드의 움직임은 인파이터의 정석에 가까웠다. 신참의 그것보다 뛰어난 수준의.

게라드의 상대는 알브레이 역시 안면이 있는, 8위계의 터줏대감.

제법 실력이 있다고 평가했던 검투사가, 게라드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고 있었다.

허나 그뿐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신참에게는 ‘초회복’이라는 비장의 수가 있었으니까.


‘···무기를 바꿨어.’


놈은 망치를 들고 있었다.

게라드가 원래 사용하던 무기는 검이었다. 수많은 검투에서도 오직 검으로 상대를 죽여 온 것인데.

연습 삼아 들고 있는 것이 아닌, 숙련자의 움직임이 분명했다.

제타가 낭패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놈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만, 무기를 바꾼 것은 예상 밖이었다. 초회복의 특성상 둔기에는 회복이 느려질 수밖에 없어.”


신참의 검투가 다소 미숙할지라도 초회복의 힘이라면 그 격차를 충분히 극복하리라 여겼건만, 그마저도 무기를 바꿈으로써 효과가 반감되고 만 것이다.

영상을 구경 온 검투사들의 목소리가 알브레이의 심정을 대신했다.


“···이건.”


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건 힘들겠는데.”

“보아하니 싸우는 스타일이 비슷한데, 인파이터끼리는 그냥 센 놈이 이기는 법이니.”

“어휴···.”


알브레이는 조심스레 신참의 표정을 살폈다. 굳은 얼굴로 스파링을 지켜보는 신참은 감정을 읽기 어려웠다.

보다 못한 검투사 한 명이 걱정 어린 조언을 던졌다.


“이봐 신참, 어떻게든 비기는데 집중하라고. 그러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지도 몰라.”

“그래, 일단 살고 봐야할 것 아니야. 시간을 끌다보면 무승부로 끝날 수도 있어.”


그러한 조언에, 일부 검투사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개소리, 연승을 달리는 스타 검투사에게 무승부라니. 운영진 놈들이 그대로 내버려둘 것 같으냐?”

“몇 년을 콜로세움에서 굴러먹고도 순진하기는, 쯧.”


그들의 말대로였다. 900번은 처음부터 스타 검투사를 위한 희생양으로 골라진 것. 무승부를 노린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이 자식들이 말을 왜 그따위로 해? 그럼 가만히 목 내놓고 죽어주라는 말이냐?”

“괜히 신참에게 헛바람 불어넣지 말라는 소리다. 무슨 조언을 해도 헛수고라고.”


두 무리의 언성이 높아져 갔다.

대기실에 자리한 모두가 절망적인 전망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때, 신참의 시선은 영상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경기장의 모습, 상대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관찰하듯이.



* * *



그토록 준비했음에도 불리함을 뒤집지는 못했다.

게라드의 영상을 끝없이 반복해서 본 후에 내린 결론이었다. [개인교습]의 죽을 고비를 이겨냈음에도, 격차는 여전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이 무의미한 것이었나?

절대 그렇지 않았다.

가망 없는 싸움일수록 더욱 집중해야한다. 악착같이 버티며 빈틈을 찾아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알브레이와의 대련에서 진작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한번 죽음을 겪으면서까지 얻은 깨달음은 가볍지 않았다. 생존을 앞에 두고 어중간한 도전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동안, 어느새 시간은 흘러 검투경기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정규 경기는 데뷔전과 달리, 본격적인 검투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의 과정이 있다. 양측의 검투사를 소개하는 무대가 그것이다.

하나의 경기가 끝나면, 다음 경기의 검투사들은 무대에 올라 처음으로 상대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지금 그 무대 뒤에 서있었다.

무대의 틈새 너머로, 은은한 피 냄새와 함께 방금 경기가 끝나 피투성이가 된 검투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곧 내가 싸울 상대를 만나게 된다. 두 손이 긴장감으로 떨렸다.

무대 뒤편의 노예들, 병사들로부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친구 참 재수도 없지. 다른 검투사도 많은데 하필이면 신입이 끌려와서는···.”

“하필은 무슨, 신입이니까 끌려온 거지. 경력 있는 놈을 데려왔다가 이변이라도 생기면 그만한 손해가 어디 있어?”


어딜 가도 똑같은 소리. 내가 죽을 것이라고 상정하는 개소리뿐이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 말들이 너무도 거슬렸다.

곧이어, 입장을 알리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뷔 이후 7연승!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사나이!]

[1년차에 8위계를 달성! 그 기간은 불과 3달!]


명백히 게라드를 가리키는 멘트.

그 목소리를 따라 무대 위에 오르자 자리를 가득 채운 관중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입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와――!!””

““게라드! 게라드! 게라드!””


대적자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들. 저릿한 함성 소리와 함께, 달아오르는 공기가 놈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콜로세움에서 인기는 가장 큰 자산. 놈은 그걸 얻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무대 건너편에서 올라온 남자의 모습이 점점 다가온다. 영상에서 봤던, 8위계의 검투사 게라드였다.

사회자의 멘트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벌써 13명의 후원자를 확보한 신예 검투사. 그 이름은 게라드!!]


후원자가 13명이라고?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놈의 입지는 대단했다. 가장 많이 죽어나가는 1년차 검투사의 후원자가 13명. 일반적인 성장세라면 7위계는 되어야 귀족 하나의 눈에 들까말까 했으니.


““오늘도 기대한다, 이 인간백정놈아!!””

““너한테 전재산 다 걸었다!””


관중의 함성이 잦아들고, 내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게라드를 상대할 검투사!]

[카일록 양성소의 신인···!]

[900번입니다!]


“······.”


공기가 가라앉는다.

방금 전까지의 소음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조용해진다. 드문드문 웅성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900번? 그게 누구야?”

“이름이 없는 걸 보면 10위계 나부랭이잖아.”

“에이, 오늘 경기는 재미없겠구만.”

“아, 데뷔전의 그놈인가!”


개중에는 나를 알아보는 자도 있었으나, 한손에 꼽힐 정도.

그럴 만도 했다. 놈들이 아는 900번은 이제 겨우 데뷔전을 치른 신인. 인기는커녕 인지도조차 없는 몸이었으니.


쥐 죽은 듯한 침묵을 뚫고 어느새 무대 중앙에 섰다. 코앞에서 마주하는 게라드의 형상은 위협적이기 그지없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 광기가 흐르는 핏발 선 두 눈, 얼굴 한쪽에 길게 그어진 흉터. 과시하듯 드러낸 상반신에는 근육이 꽉 차있었다.

놈의 모습을 관찰하던 나는 허리춤에 걸린 장식에 시선을 빼앗겼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찌그러진 방울 같은 무언가. 시커멓게 물든 그것은 돌이나 보석 같은 것이 아니었다.


‘···눈알?’


덜렁거리는 장식품의 정체를 깨닫자, 누군가가 말했던 머릿속에 놈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그놈, 싸움이 끝나면 패자의 눈을 뽑아서 저글링을 돌린다더군.’


이 소름 돋는 놈은 자기가 죽인 사람의 눈알을 장식처럼 달고 있었다.

이곳이 미친놈들의 세상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눈앞에 있는 놈은 그중에서도 돌아버린 놈이었다.

시선을 알아차린 놈이 손가락을 들어 내 두 눈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씩 웃는다.


“역겨운 새끼···.”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올라왔다. 그러나 관객들은 놈의 정신 나간 짓거리에 열광했다.


“와하하핫! 저래야 콜로세움의 개망나니지!”

“이 눈깔애호가 자식아! 질리지도 않느냐!”


엿 같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놈이 그동안 쌓아온 자산이었다. 어찌됐든, 대중이 바라는 쇼와 인기를 추구했다는 소리니까. 그리고 나 역시, 앞으로 살아남고자 한다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게라드가 한 것처럼.

승리, 그리고 스타성. 개 같아도 그것이 콜로세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니까.

그리고 이 무대는 검투사의 스타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소였다.

그때, 사회자의 목소리가 무대 위로 울려 퍼졌다.


[자, 이제 두 검투사의 포부를 한번 들어볼까요?]


사회자의 목소리에 게라드는 익숙한 듯 앞으로 나섰다.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들며, 모두의 시선이 게라드를 향했다.

놈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눈알들을 치켜들며 외쳤다.


“이 병신 같은 놈들, 내게 돈을 갖다 바쳐라!”


마치 광인 같은 놈의 고함에, 웃음소리와 연호가 터져 나왔다.


““게라드! 게라드! 게라드!””


무대를 뒤흔드는 아우성. 게라드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맞춰 양손을 들어 올려보였다. 놈의 손 아래로 끈에 꿰인 눈깔들이 흔들렸다.

이윽고, 무대를 뒤흔들던 소리가 잦아 들어갔다. 그 빈자리에 숨 막힐 듯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 자리에서 내뱉는 말이, 내 가치를 정한다.

내게 꽂히는 수백의 시선을 노려보며 부르짖었다.


“네놈들에게 돈을 벌게 해주마. 나에게 걸어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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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4편 희생양(3) +1 22.05.26 198 12 15쪽
14 4편 희생양(2) 22.05.25 194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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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편 검투사의 삶(1) +2 22.05.16 313 25 17쪽
4 1편 노예 검투사(3) +1 22.05.13 342 25 13쪽
3 1편 노예 검투사(2) 22.05.12 405 25 14쪽
2 1편 노예 검투사(1) +1 22.05.11 527 37 12쪽
1 프롤로그 22.05.11 605 39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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