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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릎

노예검투사는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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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릎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4
최근연재일 :
2022.06.08 20: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6,174
추천수 :
461
글자수 :
138,314

작성
22.05.25 20:20
조회
193
추천
13
글자
12쪽

4편 희생양(2)

DUMMY

4편 희생양(2)




[승부가 끝이 났습니다!]


““와―――!!””


관중석의 함성소리가 여기, 대기실까지 닿았다.


나는 머리를 숙인 채로 떨리는 손을 쥐었다.


옆에서는 제타나 알브레이가 뭐라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았다.


차분하게 눈을 감고 숨을 고르자, 떨림이 잦아들기 시작한다.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

.

.


붉은 모래로 뒤덮인 투기장의 중앙. 곳곳에 남은 전투의 흔적들. 깨어진, 치아, 손톱, 핏자국 따위가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선 게라드.

놈의 손에는 망치가, 다른 한쪽 팔에는 두꺼운 천 갑옷이 둘러져있었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피 냄새가 습한 바람을 타고 흘렀다.

수천 명의 이목이 날아와 꽂힌다.


[오늘의 메인 경기. 블레인 양성소의 게라드, 그리고 카일록 양성소의 900번의 시합이 지금 시작됩니다!]


뿌우우――


개막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방금 전까지의 소음 때문일까, 뿔피리 소리가 사라진 투기장은 숨이 막힐 듯이 조용했다.

침묵 속에서 천천히 검과 망치, 두 무기가 서로에게 겨누어졌다.

지켜보는 관객들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 듯 했다.

동시에, 게라드의 망치가 코앞으로 날아들었다.


“큭!”


콰아앙!!

놈의 망치가 바닥을 찍었다.

어떻게든 피해냈지만, 놈의 힘이 예사롭지 않았다. 망치에 찍힌 땅이 움푹 팰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만약 맞았다면···.’


어떤 꼴을 당했을지 눈에 선했다. 긴장감으로 뒤통수가 저릿거렸다.

놈이 씩 웃으며 재차 달려들었다.

본능적으로 물러나려는 발을 붙들었다. 물러나면 그대로 기세를 빼앗긴다.

나는 이를 악물고 놈을 향해 부딪쳐갔다.

분명 무거운 망치를 들고 있음에도 놈의 움직임은 민첩했다. 반격할 틈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놈의 왼팔에 붙어있는 천 갑옷이 거슬렸다. 기름 먹인 천을 몇 장이나 덧댄 갑옷은 칼날을 막기에 충분히 튼튼했다.


철검이 놈의 천 갑옷에 부딪히며 튕겨나갔다. 모처럼 잡은 기회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에 연연할 여유는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골통을 으깨버리겠다는 듯, 게라드의 망치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망치와 닿은 검이 깨질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깡!!

싸구려 철검에서 나는 소리가 불안했다. 정면으로 충돌했다간 검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둔탁한 통증이 얼굴을 때렸다.


‘크윽···!’


검에 신경이 분산된 사이, 놈의 왼팔이 얼굴을 가격한 것이다.

생각할 틈도 없이 망치가 떨어졌다. 검으로 받아내기 부담스러운 공격이었다. 빠르게 두 걸음을 물러났다.

쾅! 또다시 바닥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렇게, 우리는 십여 합을 주고받았다.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투기장의 외벽 근처까지 다다랐다. 바닥에는 놈의 망치가 만들어낸 구덩이가 몇 개씩이나 새겨져있었다.

뜨뜻한 핏물이 인중을 타고 흘렀다. 콧잔등이 부어올라 숨을 쉬기 어려웠다.

황급히 검을 휘둘러 거리를 벌렸다. 자세를 정비하기 위함이었다. 놈은 쫓아오지 않고 숨을 골랐다. 놈이 추격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기 때문.

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막힌 코를 풀었다. 콧바람 소리와 함께 코를 막고 있던 핏덩이가 튀어나왔다.

한방 얻어맞은 탓에 머리에 피가 쏠리고 있었다. 그래선 안 된다. 냉정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한순간에 당하고 말 것이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초회복’을 발동하자 피가 멎으며 얼굴의 불편감이 사라져갔다.

지금껏 밀리긴 했지만, 나 역시 전력을 다한 게 아니다.


< 스킬 [근력폭발 lv.2]을 발동합니다. >


두 팔과 다리에 뜨거운 기운이 깃든다. 핏줄이 불거지고 근육이 부풀며 힘이 끓어올랐다. 레벨이 오르면서 증가한 효율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방금 전처럼 당하지 않으려면 주도권을 잡아야한다.

두 다리가 땅을 박차며 신체가 폭발하듯 튀어나갔다.


콰아앙!

굉음이 투기장을 뒤흔들었다. 가로막힌 철검 너머로 게라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대로 밀어붙인다!’


나는 호흡마저 멈춘 채 검을 휘둘렀다. 검과 망치, 천 갑옷이 허공을 어지럽히며 쉴 새 없이 굉음이 터져 나왔다.

웅크린 놈의 위로 칼날의 상흔이 새겨져갔다.

칼날에 스친 팔뚝이 길게 찢어졌다. 허벅지에서 피가 터졌으며, 찢어진 천 갑옷에 붉은 물이 들어갔다.

하지만 놈이 입은 피해는 깊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질긴 피부가 비처럼 떨어지는 칼날을 막아내고 있었다.

버티고는 있지만 곧 한계가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공격에 집중하던 때였다.

더욱 몰아넣기 위해 한걸음을 내디딘 순간, 서늘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놈의 망치가 옆에서부터 날아들었다.


‘······!’


후우웅!

섬뜩한 바람소리가 눈앞을 스쳤다. 자칫하면 얼굴이 뭉개질 뻔했다.

본능적으로 몸을 젖혀 피했지만, 자세가 무너져버렸다.

그 틈을 노리고 놈의 망치가 왼쪽 아래에서부터 솟구쳤다. 검을 내리쳐서 막았으나 불안정한 무게중심 탓에 몇 걸음이나 밀려나고 말았다. 무지막지한 힘에 떠밀려 양팔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게라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죽어라!!”


따라붙는 놈의 팔이 크게 젖혀졌다.

엿 됐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저기에 맞았다간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다.

파괴적인 힘을 품은 망치가 쇄도하고 있었다. 절대 막을 수 없는 각도.

그렇다면 피해야한다.

깨질 듯이 꽉 문 어금니에서 쇠 냄새가 올라왔다.


< 스킬 [근력폭발 lv.2]을 발동합니다. >


최대한으로 강화된 근력이 어그러진 몸의 균형을 강제로 되잡기 시작한다. 삐걱거리는 관절이 비명을 지른다. 전신의 근육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놈의 스윙을 피하고, 역으로 반격을 먹인다.’


이건 먹힌다. 큰 공격에는 그만큼 방어의 공백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옆구리를 노린 공격이 허공을 갈랐다. 예상을 벗어난 반응에 놈의 두 눈에 경악한 기색이 떠올랐다.

뒤를 잡았다! 나는 전력을 다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내 공격은 놈의 옆구리를 스치는데 그쳤다. 바닥의 구덩이를 밟고 궤도가 어긋난 것이다.

구덩이! 이 염병할 구덩이가!


“이놈!”


놈은 내 자세가 비틀린 틈을 놓치지 않았다. 회전한 놈의 왼팔이 내 복부로 파고들었다.


“커헉···!”


충격으로 몸이 구겨지듯 접혔다.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올라왔다. 마치 돌덩어리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제기랄! 개 같은 구덩이!

고통스러워할 여유가 없다. 다시 거리를 벌리고 재정비해야···!

억지로 몸을 세우려는 순간이었다. 높게 들린 어깨. 햇빛을 가린 무언가가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이 벌레 새끼――!!”




―――어?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붉은 모래에 처박히듯 쓰러져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투기장의 바닥. 피 냄새.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이명소리.

세상이 제멋대로 빙글 돌고 있었다.

일어나려고 땅을 짚었으나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지쳐서 떨리는 것과 달랐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땅속에서 누군가가 내 발목을 붙잡는 것만 같았다. 몇 번이고 미끄러진 두 발이 붉은 모래 위에 긴 자국을 남겼다.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의식이 또다시 멀어지려 한다.


‘······정신을 집중···. 회복해야···.“


가물거리는 시야 끝에서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척까지 다다른 그림자가 두 팔을 치켜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는 오른팔을 휘둘렀다. 허공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림자의 일부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림자가 빠르게 멀어졌다.


그때, 물 먹은 듯 웅웅거리는 함성 소리가 투기장을 뒤흔들었다. 피부가 떨릴 정도로 거대한 진동이었으나 내게는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와아아―――!!!””

“이 개망나니 자식아!”

“기절한 놈 상대로 뭐하는 거야!!”


[ 아니, 마무리를 지으려던 게라드가 급히 물러섭니다. 지금 손가락을 잃은 건가요? ]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눈앞이 흐릿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남자의 형상이 관중석을 향해 뭐라 역정을 부리고 있었다.

조금씩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움직여야한다. 나는 아직 결투 중이었다.

다행히 검을 놓치지는 않았다. 손에 잡힌 검을 의지하며 일으키던 순간이었다. 얼굴을 타고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붉은 모래 위로 떨어지는 피, 그리고 투명한 액체.


‘투명한 액체?’


그제야 나는 시야가 반 토막이 나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심코 왼손을 들어 올린 그때, 깨질 듯한 두통이 뇌를 찔러댔다.


“끄으윽···!”


머릿속이 진탕이 난 것만 같았다.

구역감을 참으며 철검에 얼굴을 비추었다. 망치에 맞은 머리가 처참하게 뭉개져있었다. 깨져서 피칠갑을 한 이마에 모래와 머리카락이 지저분하게 엉겨 붙었다. 왼쪽 눈은 피에 젖은 것인지, 아예 터져버린 것인지 붉게 물들었다. 일그러진 눈두덩에 덮인 좌안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단 한 방에 벌어진 참사였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출혈이 멎어간다. 멋대로 흔들리던 시야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뭉개진 좌안은 회복되지 않았다.


‘망치에 맞아서일까, 아니면 이대로 눈 병신이 되는 건가?’


떠오르는 잡생각을 억지로 우겨넣었다. 부상 따위에 정신 팔릴 때가 아니었다. 놈을 쓰러뜨리는 것이 우선이다.

게라드는 관객과 욕설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그에 정신이 팔린 덕에 어느 정도 회복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후들대는 몸을 추스르며 상황을 점검한다.

지금껏 주고받은 공방으로 두 손이 떨어질 것 같이 쓰라렸다. 망치의 위력이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한방이라도 허용했다간 맞은 부위가 박살이 날 것이다. 지금 겪었던 것처럼.

무작정 버티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노예에게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싸구려 철검은 그리 튼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이 깨져버리면 방어구도 없는 나는 대책 없이 공격에 노출된다.

게다가 유기적으로 공격에 활용되는 왼팔까지 신경 써야만 했다. 단단한 갑옷으로 감싸인 왼팔은 마치 둔기와 같았다.

쉽지 않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놈과의 격차는 그 이상으로 컸다.

다시 일어선 내 모습을 보고, 게라드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개버러지 새끼, 이름도 없는 천한 새끼가 내 발목을 잡는구나.”


그렇게 말하며 놈은 허리끈을 풀어 자신의 손과 망치를 묶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놈의 손가락이 두 개나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언제? 분명 전투가 시작할 때는 모두 붙어있었는데.

신체 일부가 날아갔음에도 놈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분노에 사로잡힌 듯했다.

놈이 괴성을 지르며 전차처럼 돌격해왔다.

콰앙!

아찔한 충격이 검을 타고 전해졌다. 견제 따위는 잊은 듯이 크게 휘두르는 공격이었다.


“곤죽을 내버리겠다!”


쾅! 쾅! 쾅!

망치를 따라 몸이 이리저리 떠밀렸다. 검이 부딪칠 때마다 의식이 함께 날아가려 했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

흐트러지려는 의식을 붙잡으며 버티려 했으나 조금씩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턱.

등 뒤에 단단한 철창살이 닿았다. 경기장의 외벽까지 내몰린 것이다.

제기랄, 이젠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


“헉, 허억······.”


창살에 몸을 기대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었다.

놈이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는 것이 보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문득, 익숙함을 느꼈다. 쉴 새 없이 휘둘리는 양상. 감히 감당하기 어려운 적의 존재.

알브레이와의 대련 당시.

나는 분명 똑같은 구도를 겪었다.


작가의말

끄으윾...!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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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5편 후원자(1) +2 22.05.31 189 1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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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4편 희생양(4) 22.05.27 190 16 14쪽
15 4편 희생양(3) +1 22.05.26 198 12 15쪽
» 4편 희생양(2) 22.05.25 194 13 12쪽
13 4편 희생양(1) +2 22.05.24 205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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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편 개인교습(3) +2 22.05.21 221 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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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편 검투사의 삶(2) +1 22.05.17 323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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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편 노예 검투사(2) 22.05.12 404 25 14쪽
2 1편 노예 검투사(1) +1 22.05.11 527 3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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