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플레이아데스 - 킬리어 마크칠러 2
잡고 있는 손아귀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
순간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충격이 킬리어의 온몸을 강타했다.
부르르···
손끝에서 시작된 괴력은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으로 퍼져 나가 그의 전신을 잘게 부숴버릴 것만 같았다.
킬리어의 온몸에 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밀물처럼 밀려들어 오는 괴력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어떻게든 맞서기 위해 온몸에 힘을 짜내었다. 숨을 쉴 수도 없고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직 밀려오는 거대한 해일을 힘겹게 막아내는 방파제처럼 말없이 버티고 또 버텼다.
“ 음~ 근력은 이 정도인가! “
“ 볼품없는 근력에도 버텨내는 것 보니 깡은 듣던 데로 좋군. “
간단한 찬희의 품평에 헨리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세상 누구보다 찬희의 덜떨어진 사회성을 잘 알고 있는 헨리는 그것이 찬희 나름의 칭찬임을 잘 알고 있었다.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니가 가장 자신 있는 방법으로 날 죽여봐~~ “
킬리어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미친놈 같았지만, 그렇기에 더 긴장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잃을 것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그냥 칼 든 미친놈이다. 칼 든 미친놈은 아무런 이유 없이 칼을 휘두른다.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다. 그냥 사람들을 죽인다. 그렇기에 당하는 사람들은 대비조차 할 수 없이 칼에 찔려 죽는다.
킬리어에게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놈이 그런 종류의 인간 같았다. 그냥 무작정 쳐들어와서 헨리를 반 죽여 놓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죽이라고 한다.
이 놈은 그냥 칼 든 미친놈이다.
먹이 사슬의 법칙을 흔들어 버리는 존재, 미친놈···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눈으로 들어왔지만 킬리어의 눈은 절대로 깜박이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의 의식은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몰입해 있었다.
“ 뭐해!! 언제까지 눈싸움만 할 건가? “
“ 그럼 이렇게 하지~ 내가 눈을 감을 테니 들어와 봐··· “
상대가 또다시 자신을 도발했다.
‘ 미친 새끼··· ‘
지금까지 미친 맹수의 기에 눌려 있던 킬리어의 눈이 날카롭게 번쩍였다.
킬리어가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순간에, 헨리는 의자를 자신에게로 가지고 와서 편한 자세로 두 사람을 지켜 보고 있었다.
“ 아~ 팝콘 각인데··· 없으니 아쉽네··· 쩝~ “
역시 남자들은 마주 보며 다정한 대화 속에서 우정이 꽃피는 법.
조금 전에 만나서 서로 다정한 악수를 하더니 이제 제법 친해졌는지 몸에 대화를 나누며 서로 간에 우애를 다지고 있는 상황이 여간 즐겁지 않았다.
‘ 진정한 우애는 몸의 대화를 통해 완성되는 법이지··· 암~ ‘
킬리어를 생사의 갈림길에 처박은 장본인인 헨리는 너무나 태평하게 상황을 관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의자에 파묻혀 편안하게 관람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헨리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두명의 킬리어가 서슬퍼런 살쾡이의 살기를 흩뿌리며 눈앞에 나타났다.
처음에 있던 자리에 그대로 킬리어는 서 있었지만, 또 하나의 킬리어가 찬희의 목젖을 노리고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잠시 후 석상처럼 굳게 서 있던 킬리어의 환영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찬희 품 안으로 파고든 킬리어만 남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움직임에 당황한 찬희는 급하게 손을 들어 쏟아져 오고 있는 단도를 막아 보지만 뱀처럼 허공을 유영하며 들어오는 단도를 막기에는 너무 늦은듯했다.
서극~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킬리어의 단도가 찬희의 목젖을 갈라 버렸다. 놀라 부릅뜬 눈을 하고 굳은 얼굴로 킬 리 어를 바라보던 찬희의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이 무슨~~“
태연하게 옆에서 지켜 보고 있던 헨리가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 중 가장 강한 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자연법칙에 역행하는 자, 그런 철옹성보다 더 단단한 남자가 쓰러지고 있었다.
고요한 적막이 방 안을 잠식했다.
“ 장난은 그만 치시죠···. “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은 적막이 감돌고 있는 공간에 킬리어의 자조 섞인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쓰러지고 있던 찬희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킬리어 옆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찬희가 다시 나타났다.
“ 어설프지만 분명 이형환위(移形換位)의 술법···..”
“ 근데 배웠다고 하기에는 너무 조잡한데··· 이걸 어떻게 익혔지? “
찬희는 킬리어에게 이형환위를 익힌 경위를 물어보았다.
“ 내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여 스스로 깨달은 경지입니다. “
“ 음~ 그래도 대단한데··· 아무리 자신을 몰아붙여도 오성(悟性)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인데··· ”
찬희는 킬리어가 사용한 이형환위를 보며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물론, 킬리어의 이형환위는 그 형태만 갖추었을 뿐 기운의 움직임과 형태가 조잡하고 어설퍼서 원래의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반쪽짜리였다. 하지만 그런 이형환위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체계적인 가르침 없이 자신의 감각과 무에 대한 오성만으로 깨달은 것은 웬만한 무예의 대종사라 할지라도 쉽게 구현할 수 없는 경지였다.
이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무인으로서의 독기와 의지 그리고 천재적 재능이 만들어낸 기적 말이다.
분명 무예의 자질만 본다면 킬리어가 찬희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단지 두 사람 사이에 차이라면 자신은 최강의 사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과 때마침 터지는 기연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과 킬리어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뿐.
헨리의 말이 맞았다.
킬리어는 원석이었다.
찬란한 보석으로 다시 태어날 가공되지 않은 원석 그 자체였다. 찬희는 지체하지 않고 킬리어의 머리에 영고를 쑤셔 넣었다.
‘ 넌 내꼬야··· 크크크~ ’
찬희는 킬리어의 콧구멍을 통해 들어가는 자영고(子靈蠱)를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킬리어의 의식이 흐려지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킬리어를 향해 찬희는 영고를 통해 강한 암시를 걸기 시작했다.
‘ 넌 내꼬야~ 내꼬야~ 내꼬야~ 내꼬야♬♬♬~~~~ 크하하하하 ‘
무한 번복되는 암시에 괴로운 듯 킬리어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찬희의 인성이 그런 것까지 고려해 줄 정도로 무르지 않았다.
암시는 계속되었고, 그에 따라 고통은 점점 중첩되어 킬리어의 얼굴은 점점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영원한 것은 없는 법.
차츰 고통은 사라지고 킬리어의 얼굴이 편안함으로 물들어갔다.
크크크···
‘ 됐다. ‘
찬희의 사악한 암시가 성공한 것이었다.
이제 킬리어는 찬희의 수족으로 변했다. 1차적으로 영고를 통해 통제하고 2차적으로 강한 암시를 통해 킬리어의 의식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찬희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입꼬리가 귀에 붙어 찢어 질 것만 같았다.
‘ 가장 큰 보물은 사람이지··· ‘
‘ 이만한 보물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거라고···. ’
찬희는 킬리어에 대한 모든 조치를 한 후에 헨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무런 이유 없이 뒤통수를 갈겨 버렸다. 정말 또라이 중에 상 또라이였다.
‘ 뭐? 이런 보물을 제 수하로 삼겠다고? 이걸 확 그냥 죽여? 말어? ‘
자신과 일절 상의 없이 저런 보물을 낼름하겠다고 한 헨리가 얄미워 감정을 실어 뒤통수를 강타한 후에 킬리어의 코와 입을 통해 자신의 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 으음~~~ “
킬리어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 정신이 들어? 반가워. 난 찬희라고 해··· “
“ 자~ 이제 우리는 같이 여행을 떠나는 거야~ “
“ 흰 천과 바람만 있다면 우린 어디든지 갈 수 있어. “
찬희는 두 눈에 잔뜩 담겨있는 별들을 반짝이며, 우아한 손짓으로 뒷머리를 휘날리고는 닭발 같은 손을 내밀었다.
어서 이 손을 잡으라고~
나와 함께 저 넓은 대양을 향해 나아가자고, 킬리어를 향해 상큼한 미소 또한 잊지 않았다.
물론 찬희의 유치찬란한 대사에 내상을 입은 헨리는 구석진 곳에서 10년 전 먹었던 파전을 다시 게워내야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헨리의 몫일 뿐이었다.
이전에 술과 마약으로 찌들은 킬리어는 이제 이곳에 없다.
찬희의 따뜻한 손길로 다시 태어난 킬리어 1호만 있을 뿐, 그렇게 찬희의 환대를 받은 킬리어 1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 찬희를 향해 가벼운 목례를 했다.
거기까지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는데···
찬희를 향해 고개를 까딱인 킬리어의 얼굴에 많이 보아왔던 비열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 반갑습니다. 크크크.. 킬리어라 합니다. “
킬리어를 향해 다가가던 찬희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행동거지부터 말투까지···
좀전까지 진중한 인상의 킬리어는 사라지고 조금은 어둡고 비열해 보이기까지 하는 킬리어가 자신 앞에 서 있었다.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는 그의 눈과 연신 웃고 있는 입꼬리 그러면서 항상 주위를 경계하듯 분주히 움직이는 눈동자··· 킬리어는 무도회장의 어릿광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지? ‘
찬희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옆에서 지켜보던 헨리가 앞으로 나왔다.
“ 사람 하나 망쳤네··· “
“ 상향 패치해 달라고 불렀더니 속성 자체를 바꾸어 버렸네. 그것도 가장 최악인 비열 모드의 찬희 속성으로··· ”
“ 암시 걸 때 좀 불안하더라니··· 사악 대마왕 찬희님의 영향으로 성향이 얍삽, 무식, 욕망 기타 등등 인간 말종 캐릭터로 변경되었잖아요··· 어쩔 거예요??? “
헨리의 돌직구가 찬희의 명치를 강타하고, 그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져버린 찬희는 한동안 말없이 비열 속성 찬희 모드의 킬리어 1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하~ 내가 그런 캐릭터인가?? ‘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바뀔 것까지는 없잖아··· 젠장!!! ‘
아무리 얍삽하고 자기밖에는 모르는 찬희지만 킬리어에게 살짝 미안한 감정이 일었다.
인내심이 강하고 진중한 성격의 킬리어는 이제 사라져 버렸다.
안 그래도 요즘 헨리 이 새끼가 왠지 자신을 닮아 가고 있는 것 같아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킬리어 1호마저 자신의 가장 안 좋은 성격을 닮았다는 말에 뒷골이 시큰시큰 아려왔다.
이대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 찬희는 킬리어를 향하던 발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그리고 천천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위에 올렸다.
어떻게든 성격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만 했다.
눈을 감은 체로 온 정신을 집중하여 중단전에 잠들어 있는 혼돈령의 기운을 서서히 끌어 올렸다. 순식간에 찬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청색 광채가 온 방을 환하게 밝혔다. 마치 순백의 눈이 휘날리는 듯이 온 세상이 은색으로 물들어버린 광경은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 하~ 이건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네. 진짜··· “
“ 진짜 성격 거지 같은 것만 빼면 완벽한데.. 쯥~ “
찬란하게 빛나는 은청색의 광채에 헨리는 연신 감탄을 쏟아 냈다.
“ 자.체.발.광. 고.찬.희. “
“ 우.주.최.강. 고.찬.희~~~ 야~~~~ “
어느새 고찬희 팬클럽 회원 모드로 전향한 헨리가 풍선 막대기를 부딪치며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온 방 안을 은청색으로 물들인 광채가 찬희의 오른손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찬희의 오른손에 모여들었던 은청색 광채는 서서히 킬리어의 눈과 코, 입으로 흘러들어 갔다.
영험한 기운을 흩뿌리는 은청색 광채는 신성력, 마력, 정령력 그리고 자연기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혼돈령의 기운과 찬희의 순수한 기가 합쳐져 만들어진 신묘한 힘의 결정체였다.
킬리어의 몸에 들어간 혼돈진기(混沌眞氣)는 천천히 그의 혈맥을 타고 흘러들어 가 막혀있는 혈맥을 조금씩 뚫기 시작했다. 찬희 또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혼돈진기의 길을 인도했다.
막혀있는 길을 새로 뚫는 작업은 두 시간이 넘게 계속 이어졌다.
그동안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살았던 그 기간만큼이나 막혀있는 혈맥들은 완고하게 저항하며 혼돈 진기를 밀쳐냈다. 밀쳐내면 물러섰다가 다시 조금씩 뚫는 매우 지난한 작업에 찬희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각성을 하며 벽을 넘은 순간부터 웬만해서는 땀을 흘리지 않았던 찬희이기에 이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단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킬리어···.
각종 기연과 시스템의 보호를 받고 있는 찬희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킬리어에게 지금 이 시간은 너무나 힘이 들었다.
‘ 정신 차려. ‘
‘ 조금만 잘못되면 넌 평생 불구로 살 수밖에 없어··· ‘
찬희는 전음을 통해 무너지는 킬리어의 의식을 일으키고 또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내심 찬희는 킬리어의 의지력에 감탄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을 킬리어는 자신의 의지력과 독기로 이겨내고 있었다.
‘ 조금만 더··· 이제 조금만 더하면 끝나··· 그러니 버텨··· ’
킬리어의 머릿속에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찬희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지만, 그는 한마디도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저 버티고 버텨낼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온몸이 은청색 광채로 휩싸인 킬리어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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