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메이슨 가문 2
두 사람은 고대 궁궐의 지하 시설을 확인한 후 헨리 개인 소유의 비행기를 이용해 런던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개인 소유 비행기(Boeing 747-8VIP)의 내부 인테리어는 휘황찬란(輝煌燦爛)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개조된 인테리어는 하늘 위에 떠 있는 궁전을 연상시켰고, 한 대 가격이 1,500억 원에 달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 하~ 완전 궁전이네. “
“ 어떤 면에서는 부럽기도 하다. “
가진 것 없이 맨주먹으로 일어선 찬희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있습니다. “
“ 제가 아끼는 술입니다. “
헨리는 테이블 위에 한눈에 보아도 있어 보이는 위스키를 내놓았다.
“ 맥캘란이란 사람이 만든 술인데, 1926년에 생산해 60년을 숙성한 뒤 병에 담았죠. 그리고 병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아일랜드 화가인 마이클 딜런의 그림입니다. “
“ 5년 전 경매에서 120만 파운드에 낙찰받았습니다. “
“ 그동안 소장만 하고 개봉하지 않았었는데 이제 주인을 만난 것 같습니다. “
꼴꼴꼴.
헨리는 맥캘란 위스키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며 고급 크리스털 잔에 각 얼음을 넣고 술을 따랐다. 그리고 찬희 앞에 공손히 밀어 놓았다.
“ 한번 드셔 보십시오. “
“ 취향에 맞았으면 합니다. “
잔을 들어 살짝 입술을 축이자 입안에 은은한 과일 향과 스모키한 향내가 가득 퍼졌다.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 찬희지만 입안에서 퍼지는 풍부한 향만으로도 이것이 최고의 위스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 음~ 좋네. “
“ 입에 맞았다니 즐겁습니다. “
찬희의 반응을 살피던 헨리가 그제야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 마셨다.
“ 헨리! 너는 이런 삶이 익숙하겠지. “
“ 가진 것도 많을 테지만, 그걸 지키기는 것도 힘든 일이었겠지. 하지만 이제부턴 달라질 거야. 너는 지금까지 누려왔던 것보다 더 큰 힘을 얻게 될 테니까. “
“ 나를 배신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
“ 명심해.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너의 그 알량한 가문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이라도 너의 가문을 쓸어버릴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
“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한 존재다. 그리고 너의 가문 뒤에 어떤 존재들이 숨어있는지도 알고 있다. “
은은하게 풍기는 술 향기와 허공에서 뒤섞이는 두 사람의 시선으로 비행기 안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끼이이익.
비행기가 12시간을 날아 드디어 영국 런던의 히드로 국제공항(Heathrow Airport)에 착륙했다. 찬희와 헨리는 전용 통로를 이용하여 간단하게 수속을 마친 후, 미리 대기 중이던 리무진 차량에 몸을 실었다.
런던.
잉글랜드 남동부 템스 강 하구에서 약 60Km 떨어진 곳에 있는 영국의 수도이자 영연방의 중심도시.
찬희와 헨리를 태운 고급 리무진은 런던 중심가 트래펄가 광장과 빅토리아 기념비를 지나 버킹엄 궁전 영내로 들어갔다.
빅토리아 기념비 꼭대기에 있는 황금 천사 조각 브리타니아 여신이 버킹엄 궁전의 수호천사처럼 당당하게 서 있었고, 궁전 중앙의 게양대에는 왕의 깃발(Royal Standard)이 바람에 힘차게 나부끼고 있었다. 그것들은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대영제국의 성세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근위대들의 검문을 통과한 차량은 궁전 본관 건물 앞에 정차했다.
두 사람은 천천히 리무진에서 내려 본관 내부로 들어갔다.
화려한 실내 장식과 아름다운 미술품으로 인테리어되어 있는 중앙 로비를 지나 두 사람은 궁전의 3층 접견실로 이동했다. 로비의 화려한 실내 장식과 대조적인 우아한 실내 분위기를 자아내는 3층 접견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사람 앞에 집사 복장을 한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 여왕님께서 두 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
집사로 보이는 중년 남자를 뒤따라 가는 복도에는 중세 낭만주의 양식의 미술품들과 조각상들이 찬희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 엄청나네. ‘
‘ 미술에는 까막눈이지만 진짜 비싸 보인다. ‘
미술에 대해선 일자무식인 찬희의 눈에도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예술 작품들을 곁눈질로 살펴보며 3층 복도의 끝에 도착했다. 복도 끝에는 큰 목조 문이 있었고 문에는 대영제국의 상징인 궁정 기마대의 행렬이 양각되어 있었다.
남자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남자가 나왔고, 두 사람은 그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두사람이 들어간 곳은 여왕의 집무실이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시절 군주인 빅토리아 여왕의 대관식 초상화였다.
초상화 속의 인물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황금 옥좌에 앉아 왕관을 쓰고 황금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룬 드레스를 입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밝았으며 콧날은 에베레스트 산처럼 날카로워 보였다.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두 눈에는 세계를 제패한 제왕의 권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의 대관식 초상화 양옆으로 전 세계에서 수집한 (또는 약탈한) 보물급 예술품들이 일정 간격을 두고 전시되어 있었다. 마치 당시 대영제국의 힘에 굴복한 나라들을 상징하는 것만 같아 마음 한 쪽에 씁쓸한 감정이 올라왔다.
“ 오랜만이구나.. “
“ 네 아버지.. “
바로크 양식의 소파에 앉아 헨리를 향해 차가운 인사를 나눈 노인은 현 메이슨 가문의 수장인 그의 아버지 리처드였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넘기고, 둥글게 말려 올라간 콧수염을 가진 남자는 지친 눈으로 가문의 차남을 맞이했다. 세월에 지친 듯 움푹 들어간 눈두덩과 그 안에 담겨있는 눈동자에는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 여왕 폐하께서는 몸이 좋지 않아 오늘도 참관하시지 못할 것 같구나. “
그의 아버지에 짧은 설명에도 헨리의 얼굴을 너무나 태연했다.
버킹엄 궁전의 실주인은 여왕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로 여왕을 살려 두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면에 드러나기를 꺼리는 가문의 특성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헨리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자신의 형과 여동생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인사를 건넸다.
“ 형님, 다녀왔습니다. “
“ 그래. 왔으면 그냥 조용히 지낼 것이지 무슨 일로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대느냐? “
“ 만약 하찮은 일에 아버지를 포함해 나를 불러 낸 것이라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거다. ”
부리부리한 눈매, 짙은 눈썹이 강인한 인상을 주는 헨리의 형 윌리엄의 얼굴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한지 짙은 눈썹 사이에는 굵은 도랑이 선명하게 파여있었다.
헨리는 짜증 섞인 윌리엄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후, 자신의 여동생 릴리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 잘 지냈니? “
“ 네.. 오라버니도 좋아 보이시네요. 오늘 좋은 소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궁금해서 들렸어요..”
고혹적인 미소를 가진 릴리스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려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허리춤에서 찰랑거리며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칼과 오뚝한 콧망울, 적당히 두툼한 붉은 입술에 창백해 보일 만큼 하얗고 투명한 피부. 은빛의 풍성하고 길게 굽어진 속눈썹, 그 속에 자리한 피처럼 붉은 눈동자는 신비롭다는 표현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 둘째 오빠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
릴리스는 자신만만한 둘째 오빠의 모습에 살짝 놀라고 있었다.
언제나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긴장하고 실수를 연발하는 오빠였지만 오늘의 모습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그런 모습이 그녀의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 응~ 기대해도 좋아··· 하하 “
헨리는 여동생에게 짧게 대답하고 빠르게 고개를 들어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는 그의 습관이었다.
헨리는 본능적으로 여동생인 릴리스의 시선을 외면해 왔었다.
끝이 살짝 올라간 눈썹과 입꼬리, 어딘가 몽환적인, 살짝 풀려있는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여동생에게 빠져드는 느낌에 사로잡혔고, 순간적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끈적끈적한 기분에 자아마저 삼켜질 것 같아 두려워했다.
“ 근데 네 뒤에 있는 놈은 누구야? “
“ 누군데 여길 들어와? “
오늘따라 유난히 여유로운 헨리가 못마땅했던 윌리엄이 찬희를 구실로 동생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
“ 저의 새로운 부관입니다. “
윌리엄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평소엔 자신의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하던 덜떨어진 동생이 오늘은 당당하게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윌리엄을 더욱 자극했다.
“ 뭐? 부관?? “
헨리의 말에 윌리엄의 얼굴에는 분노로 얼룩졌다.
꽝~
화가 난 윌리엄의 주먹질에 최고급 소파 테이블이 산산조각 났다.
“ 이제 드디어 미쳤구나. “
“ 어디 하나 쓸 만한 구석이 없어도 내 동생이란 허울로 참고 또 참아 왔건만 이제는 그 경계마저 무너뜨리는구나.. “
그는 더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헨리를 노려보며 몸을 일으켰다.
“ 그만. “
두 형제의 아버지, 메이슨 가문의 수장 리처드가 분노한 윌리엄을 제지했다. 그러고는 헨리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 외부인과 동행한 이유는 무엇이냐? “
“ 아무리 내 아들이지만 명확한 이유가 없다면 이 또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 “
“ 설명해 보아라··· “
지친 듯··· 귀찮은 듯···
하지만 가문의 수장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자의 체념 같은 것들이 뒤섞인, 낮게 깔린 목소리가 설명을 요구했다.
“ 이 자는 이번 미스테리 포털 탐사에 지대한 공을 세운 자입니다. 이 자의 힘으로 봉인되어 있던 지하시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 그래, 훌륭한 일을 했군.. 하지만 그것이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을 만큼 큰 공은 아닐 텐데.. “
헨리의 대답을 들은 윌리엄의 얼굴이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가문의 수장인 리처드와 그의 여동생 릴리스는 헨리를 바라보며 추가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 이번 미스테리 포털을 탐사 과정에서 고대 인류의 핵심 연구 시설을 발견했습니다. “
쿠궁···
리처드, 윌리엄 그리고 릴리스···
집무실에 앉아 설명을 요구하던 세 남녀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일제히 전율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고대 인류라는 단어는 메이슨 가문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애증(愛憎)
사랑과 증오를 함께 가지고 있는 단어.
한마디로 메이슨 가문에게 고대 인류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너무나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찾고 싶지만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는··· 가문의 뒷배를 봐주고 있는 존재들의 유일한 관심사.
그것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호호호~ “
“ 오라버니가 정말 큰일을 했군요. “
“ 이 소식이 전해진다면 그분들께서도 정말 기뻐할 거예요. “
“ 축하해요. 오라버니. “
헨리를 향한 릴리스의 호칭이 둘째 오빠에서 오라버니로 바뀌었다. 메이슨 가문 내에서 그것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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