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메이슨 가문 5
오래된 고성.
메이슨 가문의 본가.
가족회의에 참석했던 찬희는 헨리를 따라 메이슨 가의 본가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오늘따라 밤하늘에는 유난히 붉은 달이 떠올랐다.
기분 나쁜 달, 어색한 침실.
이곳에 있는 일분일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파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찬희는 무거운 마음을 털어버리고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겉옷을 벗고, 와이셔츠와 바지를 벗고, 속옷까지 벗으려는 찰나, 그의 미간에 굵은 도랑이 파였다.
더럽고, 추악한.
인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악한 기운이 이곳, 메이슨 가의 고성 안으로 잠입해 들어왔다.
좀 전부터 느껴지던 불길한 기분은 이것 때문이었던가?
사악한 기운을 느낀 찬희는 속옷만 입은 채로 어딘가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박혀있는 추악한 기억에서 깨어나 쓸쓸히 창밖을 바라보던 리처드 메이슨. 몸을 일으켜 침실로 걸어 들어가는 그의 눈에는 회한과 분노가 교차했다. 일 년에 한번, 사랑하는 그녀가 무참히 살해당하고, 저주스러운 릴리스가 태어난 날. 오늘 밤 그는 또다시 갈가리 찢겨 죽어간다.
연례행사처럼 그를 찾아오는 악몽.
나이트 크라울리는 메리의 모습으로 그를 찾아와 또다시 철저히 짓밟을 것이다.
스산한 바람이 열린 창문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시원한 실내 공기가 어느덧 음침하고 끈적끈적하게 변하고 리처드 앞에 한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제가 보고 싶지 않았나요. “
살아생전 아름다웠던 그녀의 모습.
탱탱한 피부, 반달처럼 휘어진 아미와 오뚝한 콧날, 그리고 붉은빛을 머금은 듯한 요염함 입술에 참을 수 없는 욕정이 치밀어 오른다. 거울 속에서 반사되어 보이는 늙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대비되어 안구에 박혀 들었다. 변한 것은 이 세상에 오직 리처드 본인만인 것 같은 불합리한 상황.
“ 자, 이리로 오세요. “
“ 상을 드릴게요. “
리처드의 의식과는 반대로 그의 몸은 저주받은 마력에 이끌려 그녀 품에 안겼다. 참을 수 없는 욕정이 파도처럼 들끓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그는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매년 한날한시,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린 벗어날 수 없는 저주의 덫. 리처드는 덫에 걸린 불쌍한 초식 동물이 되어 포식자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 주었다.
하악~학학.
아~아~하아~
거친 숨소리와 음탕한 교성이 침실을 뒤덮었다. 인간성을 저버린 욕망의 괴성이 저택에 울려 퍼졌다. 더 이상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음탕한 포식자의 덫에 걸려든 불쌍한 동물일 뿐이었다.
“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
“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니지. “
“ 사람이 사람하고 그 짓을 해야지, 동물도 아닌 마물하고 하면 뼈 삭아요. 아저씨. “
리처드와 나이트 크라울리의 교접이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왔다. 전라의 남녀가 뒤엉켜 있는 방안에 울트라맨이 그려져 있는 팬티만 입고 들어선 사내는 다름 아닌 찬희였다. 누가 봐도 변태로 오인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찬희의 얼굴은 뻔뻔 그 자체였다.
“ 너.. 너는? “
찬희를 알아본 리처드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이제껏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치부였다. 그런데 그 치부를 한낱 변태 새끼, 아니 헨리의 부관에게 들키자 걷잡을 수 없는 자괴감과 수치심이 물밀듯 밀려왔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찬희를 바라보던 리처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고개를 숙이고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저 죽고 싶을 뿐이었다.
“ 너는 누구길래, 나의 유희를 방해하는 거지? “
“ 어~ 그냥, 지나가던 변태. “
“ 하던 거나 마저 하셔. 구경 좀 하게. “
침대 위에서 갖은 교성을 질러대던 나이트 크라울리가 찬희를 신기한 듯 노려봤다.
이 방안은 자신의 마력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음심으로 가득 채워진 방, 더 쉽게 말하면, 돼지 발정제가 가득 찬 통 안에 들어와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그런 곳에서 저 근본도 없는 울트라맨은 멀쩡하게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뭐! 울트라맨 팬티만 입고 서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차오르는 음심에도 불구하고 울트라맨이 크게 화를 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정신력이 아닐 수 없었다.
“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세요? 음탕한 아줌마. “
정말 생 양아치에 가정 파괴범 같은 멘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날리고 있지만, 찬희 또한 속으로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 장난이 아닌데? ‘
‘ 저번에 일본에서 만났던 마물과 거의 동급이거나 그 이상. ‘
‘ 조심 좀 해야겠어. ‘
찬희의 머릿속으로 일전에 상대했던 전대 마왕 에스카르네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 마왕에게 패해 존재의 격마저 떨어진 채 유폐되어 있던 전대 마왕과 눈앞에 보이는 마물은 최소 동급이거나 그 이상으로 보였다. 다행히 초마의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한 듯 보였지만, 이제껏 만난 적 중에서는 가장 강한 자였다.
따끔따끔.
공기 중에 녹아있는 짙은 마기는 송곳처럼 찬희의 피부를 찔러댔다.
허리까지 오는 백금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보석처럼 반짝였다. 완벽한 나신, 유려한 몸의 곡선, 군살 없는 매끈한 몸매.
원초적인 모습의 미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찬희를 향해 다가왔다.
살아생전 메리의 젊음을 간직한 여인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음탕한 눈으로 찬희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마치 품평을 하는 듯한 시선에 기분 나쁠 법도 하지만, 어쩐지 찬희는 그녀의 시선을 즐기는 듯했다.
“ 어때, 이 정도면 봐줄 만하지? “
“ 적어도 1++ 등급 정도는 되지 않아? “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스스로에게 등급까지 매기는 찬희는 제정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그 모습조차 여인에겐 흥미롭게 느껴졌다. 여인의 얼굴에 음탕한 미소가 어리고, 새빨간 혀가 윗입술을 핥고 지나갔다.
“ 호호. 괜찮네. “
“ 즐길만하겠어. “
“ 아무렴 저 늙은이보단 나을 거야. “
음탕한 미소를 머금은 여인의 몸에서 짙은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퍼져 나와 울트라맨 팬티를 입은 사내를 포위하듯 에워쌌다.
“ 이 누나가 좋은 걸 알려줄게. “
순간 여인의 붉은 눈동자가 번쩍이고, 악의가 가득 담긴 검은 연기가 찬희를 중심에 두고 소용돌이치며 그를 더욱 짙게 에워싸기 시작했다.
리처드의 전처, 메리로 변신한 나이트 크라울리는 자신의 권능 중에 하나인 세뇌와 복종을 통해 찬희를 자신의 노예로 삼을 생각이었다. 인간치고는 보기 힘든 탄탄한 육체,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강인한 정력 그리고 잘생긴 얼굴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콰가가.
악의와 음욕으로 가득한 검은 연기가 칠공을 통해 찬희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상이 맺히지 않아 흐릿해진 눈동자, 넋이 나간 얼굴. 순식간에 혼이 없는 로봇처럼 변해버린 찬희는 가만히 다음 명령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이리로 오너라. “
명령어가 입력되자, 로봇처럼 뻣뻣해진 몸뚱이가 뒤뚱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흡족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나이트 크라울리의 눈동자에는 음탕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 가까이서 보니 더욱 좋구나. “
“ 오늘부터 넌 나의 귀여운 인형이다. “
“ 하하.. 봐도 봐도 싫증이 나질 않는구나. 좋아, 아주 좋아.. 하하하. “
창백한 피부색의 손이 찬희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목덜미를 지나 가슴 주변을 마음껏 희롱한 손은 어느덧 배꼽을 지나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나이트 크라울리의 얼굴이 희열로 가득 찼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진수성찬에 음탕한 마물의 심장도 거칠게 요동쳤다.
“ 대단해. “
“ 정녕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
터질듯한 젊은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흡수할 생각을 하자 저절로 아랫도리가 뜨거워졌다. 귀하고 맛있는 사탕일수록 소중히 녹여 먹어야 하는 법. 인형이 되어 버린 찬희를 희롱하는 손길은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 스톱!! 그만. “
영혼 없는 로봇처럼 가만히 서 있던 찬희의 눈동자에 상이 맺히고, 얼굴에 불쾌한 감정이 활화산처럼 번져나갔다. 잘 생긴 얼굴이 일그러지고, 혐오에 가득 찬 눈동자로 자신을 더듬고 있는 더러운 마물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소중이를 탐닉하기 위해 뻗어오던 손을 잡고 그대로 꺾어버렸다.
“ 내가 아무리 잡식성이라고 해도, 이건 도저히 못 참겠다. “
“ 진짜 미안한데, “
“ 웬만하면 참아 보려고 했는데, 너무 역겨워서 말이지. “
“ 어.. 어떻..게?? “
“ 어떻게는 뭘 어떻게야? “
“ 네놈은 분명 세뇌에 빠졌을 텐데. “
일그러져 있는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흘러나오고, 대상을 찾은 혐오는 조롱으로 이어졌다.
“ 뭔가 착각을 한 것 같은데, 단 일 초도 세뇌에 빠진 적이 없어. “
“ 뭘 하려는지 궁금해서 장단 좀 맞추어 준 것뿐이야. “
“ 근데, 누가 근본 없는 마물 아니랄까 봐, 하는 짓도 추잡하기 그지없네. “
검은 연기가 자신의 몸을 감싸 안았을 때, 그의 귀에는 익숙한 경고음이 들려왔다.
[ 정신 계열 공격에 노출되었습니다. ]
[ 세뇌와 복종의 권능입니다. ]
[ 당신은 상태 이상 면역으로 인해 정신 계열 공격에 오염되지 않습니다. ]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고, 오직 찬희에게만 들리는 경고음은 찬희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모든 상태 이상 면역 효과가 있는 [뢰벤무트의 미래지향적인 수호]를 착용하고 있는 그는 나이트 크라울리의 공격에 오염되지 않았지만, 뻣뻣한 로봇 연기를 하며 그의 방심을 유도했다.
찬희는 전략과 전술의 승리라고 외치고 싶겠지만, 어느 누가 봐도 꼼수가 먹혔을 뿐이었다.
“ 이놈~!! 크으으.. “
팔이 꺾인 채, 분노로 얼룩진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상상을 초월한 완력 때문에 벗어날 수조차 없었다. 그저 이를 갈며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울트라맨 팬티를 바라볼 뿐이었다.
고오오.
붉은 기운이 감도는 [뢰벤무트의 분노]를 소환하고, 찬희는 그대로 나이트 크라울리의 심장을 꿰뚫어 버렸다.
“ 어차피 해야 할 일, 시간 끌어서 뭐해? “
찬희가 가장 싫어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시간 끌다 뒤통수 맞는 것이었다.
“ 내가 신병 일 때, 분대장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 “
“ 전쟁 중에는 적과 아군만 있을 뿐, 포로 따윈 없다. “
“ 포로 끌고 가다가 뒤통수 맞고 뒤지기 싫으면 그냥 죽여라. “
찬희는 나이트 크라울리의 심장을 꿰뚫은 상태에서 천변만화의 능력을 이용하여 창날에 혼돈강기를 덧씌웠다.
크하아아악!
덧씌워진 강기의 두께만큼 상처는 벌어졌고, 마물의 검은 피는 폭포수처럼 흘러넘쳤다.
“ 처음에는 분대장의 그 말이 너무 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
“ 나중에 내가 분대장을 달고 보니, 신병들에게 똑같이 교육하고 있더라고. “
“ 왜! 전쟁 영화 보면 나오잖아? “
“ 포로 끌고 가다가 복귀 속도는 늦춰지고, 그러다 적에게 따라 잡혀서 골로가거나 아니면 기껏 살려줬더니 포로 새끼가 뒤에서 총질하는 거. “
푸악···
찬희는 나이트 크라울리의 심장을 꿰뚫었던 창을 여러 번 비틀어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 후, 거칠게 빼냈다.
크아아..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나이트 크라울리의 입안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입안에서 역류하는 죽은 피로 인해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상처가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고위 마족들은 한 가지씩은 회복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고, 나이트 크라울리 역시 든든한 회복 마법을 익히고 있었지만, 회복은커녕 상처는 더욱 벌어지기만 했다.
“ 크윽.. 도, 도대체! 무, 무슨 짓을 한 거지? “
“ 왜! 회복이.. 되, 되질 않는.. 거지? 크륵.. 그르륵.. “
“ 아~! 미안, 내가 가지고 있는 기운이 좀 독한 놈이라.. “
“ 이놈이 마기뿐만 아니라 신성력까지 가지고 있어서 말이야. 많이 아파?? “
콰가강.
엄청난 폭발음이 일어났다.
창을 거두어들인 찬희는 천변만화의 능력을 운용하여 허공에 강기로 이루어진 바주카포를 만들어 나이트 크라울리를 향해 쏘아버렸다.
크아아아.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심장은 걸레짝이 되었고, 온몸은 갈기갈기 찢겨 버렸다. 나이트 크라울리는 지금 이 순간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색욕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 중의 하나.
그 색욕을 자극하여 자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몽마의 권능을 이겨내는 인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껏 살아오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는 방심했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는 법.
저주와 세뇌 같은 정신 계열 마법에 모든 상태 이상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있는 찬희는 상극 중의 상극이었다. 이것을 알 리가 없는 나이트 크라울리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것이 다가올 인류의 재앙에 한 줄기 빛으로 작용하리라곤 죽음을 맞이한 나이트 크라울리도, 찬희도, 리처드도 이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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