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내 동생을 구해줘 2
복면인이 전원주택으로 접근하는 순간, 김예지는 상관인 김기찬 과장에게 올릴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오전 9시에 일어나 모유를 먹었음.
오전 11시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맘마라고 말을 했음.
아이의 가족들은
감동의 도가니탕에서 허우적거리다
질식사할뻔함······
뭐, 이렇게 시간 순으로 어제 아이에게 일어난 일을 정리하고 있던 김예지의 귀에 불길한 기척이 느껴졌다.
평소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던 김예지는 서둘러 아이의 가족들을 깨워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와 함께 가족들을 1층 창고에 숨겼다.
그리고 자신은 인형을 싼 이불보를 들고, 일부러 기척을 내며 집 안에 침입한 복면인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요란하게 창을 깨고 밖으로 향했다.
수상한 복면인들이 김예지를 따라가자 이승일의 가족들은 조용히 집을 나와 도망쳤다.
“ 차고에 차가 없습니다. “
“ 차량을 이용해 도주한 것 같습니다. “
“ 서둘러! 놓치면 안 돼··· “
전원주택으로 돌아온 복면인들은 차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도로를 따라 아이의 가족을 추적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부아앙~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한적한 시골길을 고급 SUV 차량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자욱한 밤안개가 시야를 가리지만 차량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보조석에 앉아 있는 중년 여인은 핸드폰을 든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여보세요, 김기찬 과장님?? “
“ 도와주세요,
수상한 사람들이 집에 침입해서,
예지 양이 그들을 유인했는데···. “
울먹이며 이야기하는 여인의 이야기는 두서가 없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사태의 심각함을 알려주고 있는듯했다.
차량의 속도계는 이미 오른쪽 끝을 가리키고 있었고, 엔진은 한계에 이르렀는지 굉음과 함께 타는 듯한 냄새가 차 안에 가득했다.
그 시각, 전화를 받은 김기찬 과장은 야간근무를 하고 있던 협회 소속 각성자들을 서둘러 이승일의 집으로 급파했다.
텔레포트 같은 순간 이동 기술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들은 따로 이승일의 집으로 향했고, 이동기가 없는 각성자들은 협회에서 보유하고 있는 UH-60 블랙호크 헬기를 타고 갔다.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김기찬 과장도 서둘러 자신의 차량을 타고 이승일의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김기찬 과장의 본가와 이승일의 집은 거리상으로 별로 멀지가 않았다.
“ 이런 제길, 방심했어. “
“ 정보가 새어나갈 줄이야..! “
김기찬이 자책을 하며 제발 모두 무사하길 빌고 또 빌었다.
어두운 밤하늘에 복면을 쓴 괴한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날 때마다 복면인은 족히 100m는 이동하고 있었다.
복면을 쓴 괴인은 자신의 특기 기술인 텔레포트를 끊임없이 사용하며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부아앙~~
복면인의 귓전에 들려오는 희미한 자동차 배기음을 따라 그 뒤를 쫓고 있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들리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고, 자동차와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 칙쇼(ちくしょう)!!
개 같은 년에게 속아서.. “
복면을 쓴 괴인의 입에서 일본 욕이 흘러나왔다.
눈앞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질주하는 SUV 차량이 보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차량의 실루엣이 전원주택 차고에서 보았던 것과 같았다.
차량은 전원주택이 위치한 낮은 언덕과 연결된 비교적 좁은 콘크리트길을 막 빠져나와 큰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이의 가족들이 타고 있는 차량이라는 것을 확신한 괴인은 다시 한번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시간이 없었다.
언제 한국 각성자 협회 소속 각성자들이 모여들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쾅···
도로를 질주하고 있던 SUV 차량의 보닛에 갑자기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아아악~~
SUV 안에 타고 있던 중년부부가 충격에 놀라 비명을 질렀고, 보닛에 충격을 받은 SUV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보닛도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움푹 들어갔다.
검은 연기를 내며 차량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위태롭게 서 있었다.
콰직···
복면을 쓴 괴인이 찌그러진 차량 문을 통째로 뜯어내었다.
그리고 반파되어 버린 SUV 자동차의 내부를 살펴보았다.
차 안에는 피 흘리고 정신을 잃어버린 중년 부부 한 쌍이 타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 칙쇼(ちくしょう)... “
“ 이런 개 같은 조센징들··· “
또다시 속았다는 사실에 화가 난 괴인은 정신을 잃은 중년부부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너무나 화가 나서 이들이라도 죽여버려야만 화가 풀릴 것 같았다.
그때, 멀리서 여러 가지 기운들이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과 같은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자들과 헬기를 이용해 이곳으로 빠르게 접근하는 각성자들까지..
지금 이 시간에 이곳으로 오는 각성자들은 하나밖에 없었다.
한국 각성자 협회.
복면을 쓴 괴인은 중년부부를 죽여버리기 위해 올렸던 손을 거두어들이고 다급히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자리를 벗어났다.
학학학···
이승일은 지금 읍내에 있는 파출소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의 두 팔에는 지금 작은 인형처럼 어여쁜 여동생이 새근새근 웃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뛰고 있는 이승일의 품에서 분명 심한 요동을 느낄 텐데도 아이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그저 포근한 오빠의 품에 안겨 칭얼거리지도 않고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온통 논밭뿐,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대로 복면을 쓴 괴인들에게 붙잡히게 된다면 분명 끔찍한 일을 당할 것만 같은 생각에 이승일은 무조건 인적이 있는 읍내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읍내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 수도 인근에 있는 군인지라 군청 소재지에는 젊은 사람들이 밤에도 더러 돌아다녔다.
어떻게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야 실낱같은 도움이라도 바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마음먹은 이승일을 필사적으로 읍내를 향해 뛰었다.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 조금만 더 가면...! '
이대로 주저앉고 싶었지만, 이승일은 뛰고 또 뛰었다.
‘ 김기찬 과장님도 오시는 중이라고 했으니,
조금만 더 버티자.. '
여동생을 안고 뛰는 와중에도 이승일은 김기찬 과장과 통화를 했다.
자신이 동생을 데리고 있다고,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예지 씨는
모두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고···
멀게만 느껴졌던 불빛들이 점점 시야에 들어오고,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털썩.
이승일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 아~ 안돼. ‘
그는 자꾸만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으려 애를 썼지만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이승일 옆에 복면을 쓴 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 빌어먹을 조센징들..
감히 날 세 번씩이나 속여?? “
“ 죽여버리겠다.. “
살인예고를 한 괴인이 쓰러진 이승일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뒤쪽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쾅..
이승일을 향하던 팔을 뒤로 돌려 자신을 향해 접근하는 기운을 막았다.
뱀의 형상을 한 화염이 괴인의 팔을 칭칭 감으며 얼굴을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괴인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염의 뱀에 감겨버린 팔을 잘라내었다.
그리고 이승일이 안고 있는 아이를 한 팔로 들고는 자신의 특기인 텔레포트를 사용해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복면을 쓴 괴인이 아이를 들고 사라지고 난 후, 협회에서 급파된 각성자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조금 전까지 이곳에 있던 수상한 괴인을 찾으려 수색했지만, 그는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 도망쳤나? “
사태를 파악한 각성자는 논두렁에 쓰러져 있는 이승일의 상태를 확인한 후 서둘러 그를 데리고 사라졌다.
야심한 밤에 고요했던 시골마을에 때아닌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승일을 찾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던 복면인들과 상황을 전해 듣고 급파된 한국 각성자 협회의 각성자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 상황은 어때? “
“ 아이는? “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김기찬 과장은 사태를 수습하고 있던 각성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 코드 제로 상황입니다. “
각성자의 입에 들려온 코드 제로란 말에 김기찬 과장의 얼굴이 암울해졌다.
코드 제로란 협회에서 보호하고 있던 사람이 실종된 상태를 일컫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 다른 사람들은? “
“ 아이의 부모는 중상을 입은 상태로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오빠는 의식이 없는 상황이지만
심각한 상태는 아닙니다.
다만, 이번에 파견되어 있던
김예지 요원은 심각한 중상을 입어
치료 중에 있습니다. “
“ 제길··· “
김기찬 과장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모든 게 자신의 실수로 인해 빚어진 일인 것만 같아 심한 자책까지 들었다.
‘ 방심했어..
도대체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간 거지?? “
‘ 차라리 가족들 모두
협회에서 관리하는 안가에서
지내게 했어야 했다. “
김기찬 과장이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 범인들은 잡았나? “
“ 지금, 도합 4군데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그들은 미끼에 불과합니다.
이미 우두머리는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 것 같습니다. “
시간 벌이용 미끼라···
“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범인들을 생포해야 한다. “
시간 벌이용 미끼라도 잡아서 놈들의 배후를 알아내어야만 했다.
그래야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으니까.
명령을 내린 김기찬 과장은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네 군데 중 가장 가까운 곳을 향해 뛰어갔다.
온몸에 화염을 뒤집어쓴 사내가 거친 저항을 하고 있었다.
화염 계열 마법사로 보이는 사내는 자신의 생명조차 도외시한 채 처절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가 받은 마지막으로 받은 명령은 우두머리가 이곳을 이탈할 시간을 버는 것.
‘ 칙쇼(ちくしょう)··· ‘
생각해보니 열이 받았다.
‘ 신성한 임무라고? 제길··· ‘
[ 너희들은 이제 천황폐하와 대일본제국의 재건이라는 신성한 임무를 부여받은 영광스런 병사들이다. ]
화염의 휩싸여 있는 사내의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흘러나왔다.
본토를 지켜주었다는 신의 바람 카미카제 (신풍, かみかぜ)···
‘ 아니 카미카지 (신의 불꽃, かみかじ) 인가?? ‘
사내는 자신의 생명을 살라 먹으면서 덩치를 키우고 있는 붉은 화염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크크크..
쓰디쓴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의 눈동자는 점점 더 식어가고 있었다.
사내는 알고 있었다.
이제 곧 자신은 죽는다는 것을···
‘ 국가와 민족, 제국의 부활?? 좆까라고··· ‘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고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저 자신의 가족들이 조직에 의해 인질로 구속되어 있었고, 이대로 살아서 돌아가더라도 조직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가지고 있는 선택지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여기서 시간 끌다 죽는 것..
개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가족이 입에 풀칠이라도 하며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이 복면인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나라의 진짜 얼굴이었다.
화르륵~~
복면인은 남아있던 자신의 생명을 모조리 불태우며 거센 화염을 피워 올렸다.
시전자의 생명력을 연료로 태어난 지옥의 불꽃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아홉 마리 뱀의 형상을 한 붉은 화염은 흉측한 아가리를 벌리고는 주위에 있는 생명체를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 모두 피해! “
괴인을 압박하고 있던 각성자들은 맹렬한 기세로 접근하는 화염을 피해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생명력을 태워 일어난 화염의 힘은 너무나 막강했다.
붉은 화염은 폭발하듯 크기를 키워 공간을 잠식했고 근처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태워버렸다.
푸른 논밭이 순식간에 회색빛 재가 되어 흩날렸다.
자신의 생명을 태운 복면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홀로 남은 화염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점점 더 거대해졌다.
그리고
콰강···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붉은 화염이 폭발하면서 주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태워버렸다.
논밭은 시꺼먼 재로 변했고, 나무에 옮겨붙은 불꽃은 꺼질 생각이 없이 활활 타올랐다.
“ 독한 새끼.. “
“ 뒤지려면, 곱게 뒤질 것이지 “
회색빛 재밖에 남지 않은 현장에 김기찬 과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 어떻게 됐나? “
“ 보시다시피,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
급하게 뛰어온다고 붉게 상기되었던 얼굴이 흑색으로 변해버렸다.
김기찬 과장은 다른 곳에도 무전을 날렸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다르지 않았다.
협회에서 급파된 각성자들과 싸움을 하던 범인들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김기찬 과장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이를 데려간 조직에 대한 단서가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입이 바짝 타 들어갔다.
물 없이 고구마 100개를 삼킨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왔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미칠 것 같았다.
그때..
“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
썩은 얼굴을 하고 있는 김기찬 과장을 향해 협회의 각성자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리고 그를 끌고 어딘가로 이동했다.
끌려오다시피 한 김기찬 과장의 눈앞에 반쯤 타다 남은 팔이 보였다.
“ 범인 중 한 명의 팔입니다. “
“ 화염 마법에 팔이 침식되자,
스스로 끊어 버리고
아이를 데리고 도망쳤습니다. “
시꺼멓게 타 버린 팔 한쪽..
뜨거운 화염에 먹혀버린 팔은 입고 있던 옷이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군데군데 녹아내린 피부는 벌건 속살을 드러내며 진물이 흘러나고 있었다.
김기찬 과장의 날카로운 눈이 한곳을 바라보았다.
녹아버린 가죽 장갑 사이로 언뜻 보이는 금속 물체···
그는 조심스럽게 가죽 장갑을 벗겼다.
가죽이 녹아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완전히 벗겨내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반지였다..
그리고 일반 커플 반지도 아니었다.
하단은 좁고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넓은, 그리고 넓어진 상단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무늬가 새겨져 있는, 흔히 볼 수 없는 디자인의 반지였다.
찾았다!
김기찬 과장은 직감했다.
이것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을···
“ 빨리 국과수(국립 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이게 뭔지 긴급으로 확인해.. “
확신한 김기찬 과장은 서둘러 반쯤 타버린 팔을 국과수에 감식 의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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