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수련 or 고문??? 1
스기짱이 역사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을 무렵, 찬희는 테레토리에서 초조하게 사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 근데, 이 영감탱이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
“ 여기가 무슨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삼류 여인숙이야? “
찬희는 아침부터 무얼 잘못 먹었는지 괜한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퍽.
그때, 익숙한 통증이 뒤통수를 지나 대뇌 전두엽을 강타했다.
머릿속에 별이 번쩍였지만, 찬희는 찰진 타격 음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알기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사부를 맞이했다.
“ 그 영감탱이가 날 지칭한 건 아니겠지? “
“ 하하, 그럴 리가요~
제가 사부를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아시면서~! “
“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보올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
갑자기 뜬금없이 스승에 은혜 노래를 부르는 찬희.
그런 찬희를 보며 어리둥절해 하는 척준경.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 지금 뭐 하는 거냐? "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척준경이었다.
털썩.
그러자 찬희는 척준경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렸다.
“ 사부님... 크흑.. “
“ 이 불민한 제자가 높고 높으신 사부님께
아침 문안 인사드립니다. 흑흑.. "
" 사부님의
높고 높으신 존안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존경의 마음이 치솟아 올라
저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
“ 그동안 이 불민한 제자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셨습니까?
이번에 큰일을 겪고 나서
사부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
“ 해서 오늘부터 제가 사부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실 생각입니다. “
아침부터 얘가 뭘 잘못 먹었나?
하는 표정으로 찬희가 하는 양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척준경은 점점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자(자신이 느끼기에) 슬슬 불안감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사이코는 사이코를 알아보는 법.
원조 사이코인 척준경은 신진 사이코인 찬희를 향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 이러다가 칼빵 놓으려고 그러는 것이냐?“
“ 하하~
무슨 농담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시나요? “
“ 불민한 제자가 어서 아침상을 차릴 테니
저기 소파에 앉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
척준경의 톡 쏘는 말투에도 낭창낭창, 사근사근하게 대꾸하는 찬희였다.
그런 모습에 더욱 불안감을 느낀 척준경의 경계심은 지붕을 뚫고 하늘로 승천했고, 찬희는 그런 사부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둘러 아침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상 거나하게 차려진 밥상에 앉은 척준경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 독살? ‘
척준경은 절대 밥을 먼저 먹지 않았다.
“ 먼저 들거라. “
“ 어찌 사부께서 수저를 들지 않으셨는데,
제자가 먼저 밥을 뜨겠습니까? “
저 새끼 점점 더 무서워진다.
“ 먼저 먹으라고, 이 새끼야..! “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척준경이 찬희에게 쌍욕으로 응수했다.
그러자 마지못해 수저를 들고 밥을 먹는 찬희.
그리고 찬희가 먹은 수저와 밥공기, 국그릇을 빼앗아 먹는 척준경.
두 사람의 묘한 기세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식사를 다 한 척준경이 소파에 가서 앉자, 쪼르르 달려와서 성인 남성 손가락 정도 크기의 척준경의 다리를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 나이가 들면 다리가 아프다던데,
이제부터 불민한 제자가
매일 정성껏 안마를 해 드리겠습니다. “
불쑥 치고 들어온 찬희의 손길을 막지 못한 척준경은 자신의 다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 이런 실수를..! ‘
척준경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살짝살짝 사혈(死血)을 건드는 손길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까딱 잘못하면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척준경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버렸다.
“ 되~ 되었다! 그만해라.. “
찬희의 손길을 거부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더욱더 달라붙는 찬희.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살얼음판 같은 안마가 끝이 나고, 잠시 숨을 돌리려 여느 때처럼 TV를 보려고 하는데,
깔짝 깔짝
속내를 알 수 없는 음흉한 제자 놈은 옆에서 계속해서 알짱거리고 있었다.
“ 뭐, 필요한 것 없어요?
안마해 드릴까요?
과일 깎아드릴까요? “
미치겠다. 진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니 당하는 입장에선 오금이 저려온다.
저녁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이 밝아왔다.
어제 하루는 무사히 지나갔지만, 아침 댓바람부터 자신의 신경을 건드는 제자 놈이 신경 쓰여 미칠 지경이었다.
여전히 옆에 딱 붙어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찬희를 보고,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 원하는 게 뭐야? 너 왜 이래??
설마, 날 말려 죽일 심산인 거냐? “
척준경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살기마저 감돌았다.
척..
그런 척준경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조근 조근 말하는 우리의 찬희.
“ 어찌 사부에게
제자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
목적이 있다 하겠습니까?
전, 다만 도리를~ “
“ 그만하라고, 이 새끼야!!
너, 원래 이런 놈, 아니잖아! 그지? “
“ 그러니까,
나한테 원하는 게 있을 것 아냐?? “
“ 내 다 들어줄게.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자.. 응? “
크크크
승리의 미소가 찬희의 얼굴에 스치고 지나갔다.
“ 굳이 말하자면.. “
“ 말하자면? “
“ 말하자면,
사부님의 높디높은 무예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
“ 하늘에 떠있는 태양조차 찬란하게 빛나는
사부님의 웅혼한 기상 앞에서는
한낱 반딧불에 불과하며,
태산처럼 굳건히 서있는 사부님의 웅지는
대자연의 기상을
아득히 초월한다 여기고 있습니다.
불민한 제자는
언제나 그런 사부님을 닮고 싶었습니다. “
찬희는 입에 발린 찬사를 퍼부으며 잠시 존경심이 가득한 눈길로 사부를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윽~ 소오름!
찬희의 그윽한 눈길을 받자, 척준경의 온몸에서 닭살 같은 소름이 솟아났다.
그리고 저런 닭살 멘트를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는 저놈은 정말 보통 놈이 아니다 싶었다.
“ 불민한 제자,
사부님의 모든 것을 배우고 또 배워
세상을 어지럽히는 무리들을
징벌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그러니,
빨리 당신의 비전 절예, 내놓으라고..
알았지?
그 말이었다.
쥑일 놈..!
척준경은 이를 갈았지만, 이 지옥 같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눈물을 머금고 찬희가 원하는 것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 그래, 가르쳐주마.
이 거지발싸개 같은 놈아! “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자 찬희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감돌았다.
하지만 천하의 얍삽한 찬희도 알지 못한 것이 있으니..
사실 척준경은 처음부터 찬희에게 자신의 비기를 전수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찬희를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 허접한 상태라 그의 비기를 전수해 줄 여건이 되지 못했을 뿐이었다.
힘을 바탕으로 하는 척준경의 무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패도(覇道)의 길이였고, 배우는 과정도 몸을 혹사시키는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는 죽음의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 그때는 절대로 배울 수 없었지.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올라온 것 같으니.. ‘
‘ 이 새끼, 한 번 죽어봐라..
아주 입에서 곡소리 나오게 해 줄게. ‘
척준경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찬희보다 더욱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 아, 어쩔 수 없지.
말 나온 김에 오늘부터 수련 시작하자. “
찬희는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 자를 만들고 헤실헤실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사악하게 웃고 있는 척준경이 따라나섰다.
“ 먼저 공헌도로 수련장 하나 만들어.
맨바닥에서 할 수는 없잖아. “
척준경의 요청에 찬희는 공헌도를 소모하여 수련장을 만들었다.
수련장의 모양은 간단했다.
내부와 외부를 구분해 주는 원형의 벽으로 구분할 뿐, 특색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련장 내부 바닥은 흙으로 되어 있었고, 다만 가장자리에는 수련용 무기들이 진열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한마디로, 벽만 없으면 그냥 야외의 흙바닥이었다.
하지만 척준경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수련만 할 수 있으면 만사 오케이, 그것은 찬희도 마찬가지였다.
수련장 내부로 이동한 두 사람은 가장자리에 진열되어 있는 수련용 창을 집어 들었다.
“ 이제부터 정식으로 수련에 들어가겠다. “
“ 힘들다고, 조금만 쉬자고,
울며불며 매달려도 봐주지 않는다.
각오는 되었겠지? “
척준경이 사뭇 진중한 얼굴로 찬희에게 말했다.
“ 하하! 그럼요!!
제가 누구 제자인데,
그런 약한 모습을 보이겠어요~ “
“ 걱정 붙들어 매세요~ 하하핫! “
애초에 스킬이 등록될 정도로만 수련을 할 생각인 찬희에게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찬희는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부가 가르쳐주는 몇 가지 동작만 따라 하다 보면 [띠링, XX 창술을 습득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뜨고 그 순간부터 그 동작만 사용하면 주야장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여긴, 게임 시스템이 적용되는 곳이니까. ‘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대망의 첫 수련이 시작되었다.
수련장이 완성되자 척준경의 몸에서 형용할 수 없는 거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거력의 아지랑이는 소용돌이처럼 척준경의 몸을 휘감았고, 손바닥만 했던 몸이 점점 커져 본신(本身)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스르르.
패도의 기세를 내뿜는 척준경이 홀홀히 대지로 내려앉았다.
단지, 발산되고 있는 기세만으로도 대지가 숨을 죽이고, 공포에 물든 하늘이 파랗게 질려 버린 듯했다.
주요 급소를 방어하기 위해 달려 있는 쇠미늘(가로세로 사방 6cm 정도의 크기)과 쇠고리를 연결한 은색 경번갑이 한낮의 태양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어깨 아래와 허리 밑 그리고 목 위까지 촘촘하게 몸을 보호해 주는 경번 갑을 입고, 머리에는 승천하는 용이 양각되어 있는 고려 시대 특유의 창이 있는 둥근 투구를 쓰고, 경번갑의 속에 입은 붉은색 비단옷의 양 팔에는 금색으로 봉황이 수놓아져 있는, 사부의 본신의 모습에 찬희는 넋을 놓은 채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 우와~! 딱 봐도,
엄청 비싸 보이는 아이템들이네..!
저것들, 최소 전설급이다!! ‘
‘ 진짜... 좋아 보인다..... ‘
찬희는 사부의 방어구들을 물욕 가득한 눈빛으로 살펴보곤 손에 들려있는 무기에 시선을 돌렸다.
도신의 양면에 불을 뿜는 용이 음각되어 있는 반월형의 거대한 도가 은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창대와 연결되어 있는, 보는 것만으로도 그 기세에 오금이 지려버릴 정도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무기였다.
‘ 우와! 저건, 설마?
전설상의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는 아니겠지?? ‘
‘ 아니라고 해줘!! 제발.......
부러워 돌아가시겠다고..! '
사위를 압도하는 기세와 더불어 온통 전설급 이상의 아이템으로 도배한 사부의 진면목(眞面目)을 대면한 찬희는 살살 아파오는 아랫배를 마사지하며 침음을 삼켰다.
“ 그럼, 먼저 창술의 가장 기본인
자세부터 설명하겠다. “
본신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척준경은 열의에 찬 눈빛으로 창술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부가 알려주는 몇 가지 동작을 따라 하다 보면 스킬이 생길 거라 여겼던 찬희의 생각이 초장부터 어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 모습, 저 기세..
아무리 봐도 대충 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X발, 누가 봐도 그냥 때려죽일 기세잖아. ‘
‘ 아무래도 나 망한 것 같다. 아오! ‘
‘ 왜 저렇게 쓸데없이 진지한데? ‘
찬희가 헛생각을 하며 수련에 집중하지 않는 것 같자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던 청룡언월도가 허공을 갈랐다.
딱 찬희의 코끝을 가르고 지나간 청룡언월도에 한 방울 붉은 피가 몽실몽실 맺혔다.
‘ 허걱! ‘
‘ 나 살아있는 것 맞냐?? ‘
찬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곤 아무런 이상이 없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다음엔 팔을 자르겠다. “
다른 말도 없었다.
그냥 자른단다.. 젠장할..!
진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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