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프롤로그 3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눈에 띄게 성장해 어느덧 어엿한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직 얼굴은 소년 티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오랜 수련으로 다져진 신체는 웬만한 성인 못지않았다.
엄마의 가슴께에 겨우 닿던 키도 어느새 엄마를 살짝 내려다볼 만큼 커졌고, 몸에는 크고 작은 근육들이 보기 좋게 자리 잡고 있었다.
훤칠한 모습의 청년으로 자라난 아이는 창고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그동안 생각해왔던 일을 하려고 한다.
창고를 벗어난 청년은 관리가 되지 않은 허름한 건물로 들어갔다.
싸늘하게 식은 화로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깡~ 깡~ 깡...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뜨거운 화로 앞에서 굵은 땀을 흘리며 쉴 새 없이 망치질하던 아빠의 뒷모습이 차갑게 식은 화로에 오버랩되었다.
아빠는 나름 이름있는 대장장이였다.
이름뿐인 무가의 가주가 되었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스스로 대장장이의 길을 걸은 아빠를 따라 그도 이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싶었다.
아빠의 마지막 당부.
이제는 네가 가장이다,
네가 엄마를 지켜야 한다.
는 그 당부가 그의 머릿속에서 끝없이 맴돌았다.
아빠라는 존재는 이미 그의 머릿속에 낙인처럼 박혀있었다.
화로에 풀무질하는 모습,
망치로 내려치는 모습,
강약을 조절하며 모양을 잡아가던 모습,
등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청년은 무쇠 모루 위에 올려져 있는 망치를 들어 올렸다.
무언가 포근한 감촉이 차가운 망치 자루를 통해 전달되었다.
한동안 전해오는 감촉을 느끼던 청년은 차갑게 식은 화로로 다가가 불을 지폈다.
얼마간 매캐한 연기가 나고, 잠시 후 불이 붙었다.
화로를 통해 붉은 화염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는 화염이 청년의 손을 휘감으려는 듯 다가왔다.
화염은 마치 품에 안긴 강아지처럼 청년의 품 속을 사정없이 파고들며 부비적거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씨익.
청년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6년 전 사건 이후로 한 번도 웃지 않던 그에게 찾아온 또 다른 변화였다.
차가운 금속 덩어리를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로에 던져 넣고,
푸악 푸악···
청년은 열심히 풀무질했다.
깡 깡 깡~
그리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금속을 화로에서 빼내어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청년은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첫 번째 걸음을 내디뎠다.
또다시 3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청년의 키는 다시금 훌쩍 자라나, 이제 185cm에 이르는 장정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 사이 몸의 근육은 더욱 조밀하게 붙었고 풍기는 기운이 주위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대장간 일은 입소문을 타며 이제는 충분히 집안에 보탬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고, 홀로 독학하고 있는 무예도 나날이 그 격을 높여가고 있었다.
장정으로 성장한 청년은 이제 세 번째 변화를 맞이하고자 했다.
그는 굳게 잠겨있던 대문을 시원하게 열어젖히고 집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상은 대격변 이후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사방에서 갑작스럽게 괴물이 출현하고 사람들이 떼몰살을 당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자 정부는 괴물이 출현하는 지역을 민간인이 출입하지 못하게 봉쇄했다.
그리고 4~5년 전 무렵부터 각성자라는 새로운 인류도 출현했다.
각성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도, 그렇다고 고난의 세상을 극복하기 위해 보내진 신의 사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같은 인간이었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발현되는 신인류였다.
정부는 이런 각성자들에게 라이선스를 부여했고 이들에게 괴물을 퇴치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것에는 봉쇄된 지역을 출입할 수 있는 권한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온 청년은 으슥한 산길을 걷고 있었다.
세 시간 넘게 험한 산길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깎아지른 절벽 위였다.
휘이잉~
시원한 바람이 청년의 뜨거운 이마를 식혀주었다.
절벽 아래에 사방이 높은 콘크리트 담장으로 막혀있는 봉쇄 지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담장의 두께는 2m에 이르고, 높이는 5m가 넘어 보였다.
그리고 담장 위에는 1km 정도 거리를 두고 감시 초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 콘크리트 담장이 반경 수 킬로미터에 이르고, 직사각형 형태로 외부 세계를 차단하던 담장은 마지막에는 청년이 서 있는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과 이어지고 있었다.
2년 전, 체력훈련을 위해 산을 찾은 청년은 우연히 봉쇄 지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 절벽을 발견했고 그는 다짐했다.
열아홉이 되는 날,
다시 찾아오기로···
청년은 조심스럽게 절벽을 기어 내려갔다.
사뿐···
가뿐하게 땅에 발을 딛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곳의 풍경은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온통 검은색 돌과 암석이 봉쇄 지역 전역에 걸쳐 펼쳐져 있었고, 그 중간중간에 무수히 많은 바위산들이 솟아나 있었다.
그리고 그 바위산에는 예외 없이 하나의 동굴이 들어서 있었다.
청년은 이곳을 다시 찾아오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인터넷을 통해 이곳에서 출현하는 몬스터의 종류와 개체 수, 그리고 서식 환경 등 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곳은 고블린으로 불리는 하급 몬스터들이 출현하고, 눈앞에 있는 수많은 동굴들에서 적게는 십여 마리, 많게는 수십 마리씩 무리 지어 생활한다고 했다.
그리고 고블린은 조그만 난쟁이 녹색 괴물로, 번식력이 왕성하고 조잡한 몽둥이와 날붙이를 가지고 사람을 공격하며, 개체로서의 공격력은 그리 뛰어나지는 않지만 무리 지어 적을 공격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낡은 필름이 돌아가듯이 아버지의 최후가 그의 머릿속에서 무성영화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청년은 이를 악물었다.
언젠가는 도마뱀 괴물도 자신의 손으로 모조리 죽여버리겠다는 다짐을 하며 청년은 눈앞에 있는 동굴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똑 똑 똑~
어둡고 눅눅한 동굴 안, 동굴 내에서 배어 나온 물방울이 주기적으로 바닥으로 떨어지며 묘한 긴장감을 주고 있었다.
이날을 위해 쉬지 않고 수련했지만, 실전은 이제부터였다.
청년은 생각했다.
이곳에서 내가 죽느냐?
아님,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
그리고 이를 꽉 깨물었다.
눅눅한 동굴의 습기 때문인지, 아니면 과도한 긴장감 때문인지, 그의 이마와 손은 끈적한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동굴의 공명으로 인해 유달리 크게 귓전에 들려왔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좁은 동굴 환경에 맞게 직접 제작한, 날의 길이가 그다지 길지 않은 대검 하나와 동굴의 어둠을 밝혀줄 랜턴 하나가 전부였다.
긴장한 상태로 동굴의 깊은 곳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한참을 동굴 안으로 걸어들어가자 갈림길이 나왔고, 갈림길 앞에는 흉측한 모습으로 창에 찔려 죽어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얗게 풍화되어버린 십여 개의 인골(人骨)들이 청년의 눈에 들어왔다.
꿀꺽..
청년은 인골 주위를 랜턴으로 살펴본 후, 오른쪽 길을 따라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쉬익~
무언가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청년이 동물적 감각으로 고개를 숙이자 목표를 잃은 화살은 동굴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한 발의 화살을 시작으로 고블린의 공격이 동굴 안쪽에서부터 이어지기 시작했다.
살기등등한 화살이 연속적으로 청년을 노리고 날아왔다.
하지만 청년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빠르게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랜턴의 불빛에 화살을 쏘고 있는 녹색의 못생긴 난쟁이 괴물이 보였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괴물과의 거리를 좁히며 들고 있는 대검으로 고블린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끈적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고 고블린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칵칵칵···.
그때, 동굴의 안쪽에서 고블린 십여 마리가 조악하게 만들어진 검과 쇠몽둥이를 들고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좁은 동굴 안에서 일대 다수의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청년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좁은 동굴의 특성상, 자신은 모든 고블린을 한꺼번에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순차적으로 앞에 있는 고블린을 처리한 뒤에 뒤따르는 고블린을 상대하면 될 일이었다.
이곳은 홈 어드밴티지가 아니라 소수의 침입자에게 어웨이 어드밴티지가 적용되는, 집주인에게는 불리한 공간이었다.
‘ 세 마리까지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겠어.. ‘
청년의 짧은 대검이 고블린의 배를 가르고 지나갔다.
그리고 빠르게 몸을 회전하며 돌려차기로 옆에 있는 고블린의 관자놀이를 직격했다.
우아한 몸짓으로 두 마리의 고블린의 배와 머리를 터뜨린 청년은 빠르게 대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끈적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청년의 얼굴에 조금씩 자신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수련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감이 생긴 청년의 움직임은 더욱 기민해졌다.
전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고블린 무리들이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청년의 빠르고 효율적인 움직임, 연계 동작 간의 완벽한 밸런스는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첫 번째 괴물 사냥은 성공적으로 끝날 것만 같았다.
쉬익~
그 때 청년의 등 뒤에서 화살 한 대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기척을 느낀 청년이 다급하게 몸을 피했지만 몸의 균형은 삽시간에 무너졌다.
스텝이 꼬이며 쓰러지는 몸은 바닥에 손을 짚으며 간신히 바로 세웠지만, 기회를 놓칠세라 몰려드는 고블린들의 공격에 흉한 모습으로 바닥을 구르며 쏟아지는 날붙이 세례를 피해야 했다.
가까스로 몸을 바로 세운 청년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등 뒤에는 열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이 조악한 대검과 횃불을 들고 서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청년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분명 내가 지나온 길인데..
어떻게???
순식간에 청년은 수십 마리의 고블린에게 앞뒤로 포위된 형상이 되어버렸다.
잠시 시간을 뒤로 돌려,
흉흉한 모습으로 창에 꿰뚫린 채로 세워져 있던, 십여 개의 인골 맞은편에는 작은 구멍이 있었고 그 안에 십여 마리의 고블린이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동굴의 어둠과 인골에 시선을 빼앗긴 청년은 작은 구멍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고, 이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어쩌면 죽음이란 결과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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