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메이슨 가문 6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에 지면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곳.
열사의 사막 한가운데.
상식적으로 인간들이 살 수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인기척이 시끄럽게 아우성치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을 막아줄 수십 개의 천막과 그 주변으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삽을 들고 땅을 파는 사람, 모래 포대를 지고 옮기는 사람, 무언가를 쉴 새 없이 지시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 도착했습니다. “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사막을 질주한 SUV 차량이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수상한 사내 둘이 차량에서 내렸다.
흡···
생각했던 것보다 더 뜨거운 열기에 숨이 턱 막히고, 사방에서 불러오는 모래바람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 이쪽으로 오십시오. “
혹독한 환경에 당황하는 찬희와는 달리 헨리는 이곳에 방문한 경험이 있는지, 매우 익숙한 모양새였다.
헨리의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곳은 주위보다 높은 고지의 모래 언덕 정상 부근이었다. 때마침 세차게 불어오던 모래바람이 잦아 들었다. 시야를 가리던 모래먼지가 가라앉고 주위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첫눈에 들어온 것은 수백개는 되어 보이는 기이한 모양이 돌기둥들이었다.
크기가 3m 정도 되는 돌기둥들이 원형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커다란 하나의 암석을 T자 형태의 기둥으로 조각한 것이었는데, 각각의 돌기둥에는 사자, 뱀, 독수리 등의 동물들과 전갈, 거미같은 곤충류들이 양각되어 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듯이 정교하게 양각된 동물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찬희는 시선을 좀 더 위로 가져갔다.
그곳에는 외곽에 있는 돌기둥보다 두 배 정도 더 큰 거대 T자형 돌기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돌기둥의 몸통에는 사람의 손과 다리가 양각되어 있었지만,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것도 자리하지 않았다. 중앙의 T자형 돌기둥 밑에는 높이 1M, 폭 2M, 넓이 4M에 이르는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고 정교하게 쌓은 돌담이 돌기둥 주위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찬희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래 언덕 곳곳에서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 대략 10,000년 전의 종교적 목적으로 세워진 신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 지금 보시는 건 유적의 10% 정도에 해당하며, 90%의 유적은 아직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
“ 레이저 측정기 등을 통해 지하에 매장된 유적의 연대를 측정해 본 결과 최소 15,000년이 넘는 건축물들이 지하에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호기심과 놀라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유적을 바라보던 헨리가 찬희를 향해 말을 걸었다.
“ 놀랍지 않습니까? “
“ 움막 짓고 돌멩이 갈아서 채집 생활하던 원시 인류들이 이런 고차원적인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것이 말입니다. ”
“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현재 지하에 묻혀있는 구조물들의 연대가 더 오래되었고 더 정교하다는 것입니다. “
무언가 엄청난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듯이 열변을 토하는 헨리를 보는 찬희의 얼굴은 시큰둥했다. 이미 신웅의 기억과 마파람의 천황궁까지 본 찬희에게 이것은 사실 애들 장난 같은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알 턱이 없는 헨리는 침까지 튀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 이 지하 유적들은 고대인들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매몰되었습니다. “
“ 고대인들은 왜 이 유적을 은폐하려 했을까요? “
설명을 이어가는 헨리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이 났다
“ 세상에는 현대 인류의 지식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고대 건축물이나 유물 오파츠같은 것들이 많이 있죠. “
“ 그리고 그런 오파츠들은 대개 현대의 기술력으로도 구현하기가 쉽지 않죠. “
“ 도대체 고대인들은 어디서 그런 기술을 습득했던 걸까요? “
찬희는 진실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헨리를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던가? “
“ 네? “
엉뚱한 찬희의 대답에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농담으로 받아들인 헨리는 어깨를 으쓱였고 두 사람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두 사람은 천천히 유적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유적 주위에는 아직 발굴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한 중년 여성이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 안녕하세요? 헨리 메이슨 씨죠..”
“ 저는 이곳 책임자 치뎀 쾩살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치뎀 쾩살.
키 170cm의 중년 터키 태생의 고고학자.
발굴 책임자였던 남편 클라우드 슈미트 교수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뒤를 이어 유적의 발굴과 관리를 맡은 책임자가 되었다.
“ 네. 헨리 메이슨입니다. “
“ 이쪽은 저의 부관 미스터 고입니다. “
찬희와 헨리는 쾩살 박사와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게이트를 향해 이동했다.
“ 6개월 전 언덕 정상에 있는 가장 큰 원형 신전에 게이트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
“ 그때 제가 그곳에서 발굴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쾩살은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온몸을 떨었다.
“ 갑자기 허공에서 스파크가 치지직하고 일어나고··· “
“ 공간이 막 이렇게 뒤엉키고··· “
그녀는 두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그때의 두려움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어두운 얼굴로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 아시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 이전에도 많은 각성자들이 게이트를 넘어갔지만, 아직 살아서 귀환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 모두 S급 이상의 각성자로 이루어진 팀이었다고 들었는데··· “
“ 도대체 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
근심어린 얼굴로 이야기를 하던 퀵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그나저나 이번에는 저 빌어먹을 게이트가 없어졌으면 좋겠네요 . “
“ 무서워서 발굴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
고고학이 인생의 전부인 그녀의 관심은 온통 유적의 발굴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 앞에 게이트가 나타나 방해 아닌 방해를 하고 있으니 여간 저 게이트가 미운 것이 아니었다.
“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엔 반드시 처리해 드릴게요..”
“ 예. 부탁하겠습니다. “
퀵살과의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은 게이트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말대로 유적 내에서 가장 큰 T자형 돌기둥에 게이트가 생성되어 있었다.
높이 6m 너비 2m에 이르는 거대한 돌기둥에 생성된 게이트는 장정 두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 저 돌기둥은 이곳에서 가장 크고 다른 기둥에는 볼 수 없는 기호들이 음각되어 있었죠..”
쾩살 박사는 게이트를 원망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 인류에 중요한 유산입니다. “
“ 부디 저 돌기둥을 살려 주십시요.. “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듯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사정했다. 마치 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부모의 얼굴로 말이다.
두 사람은 쾩살을 뒤로 하고 게이트에 몸을 던지려고 할 때, 불청객이 찾아왔다.
“ 동작 그만. “
언덕 밑에서 일단의 무리가 두 사람을 향해 몰려 오고 있었다.
모래 먼지를 뚫고 황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무법자처럼 비장하게 등장한 이는 다름 아닌 헨리의 형인 윌리엄과 그의 책사인 뱅상 블뢰였다. 그리고 그 뒤로 100명의 각성자 군단이 윌리엄의 뒤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 쥐새끼처럼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지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 “
“ 그렇죠..”
배상 블뢰는 어깨를 으쓱하며 윌리엄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 사랑하는 동생아··· “
“ 이 형이 얼마나 찾은 줄 아니..? 말도 없이 어디 갔나 했더니 “
“ 물가에 내어놓은 아기처럼 이 형이 도저히 맘이 놓이질 않으니 원···”
윌리엄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헨리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 뭐 어쩔 수 없지. “
“ 모자란 동생을 둔 형의 책무랄까~~~ “
“ 특별히 이 형님께서 모자란 동생을 지켜주기 위해 손수 행차하셨으니 감사의 인사 정도는 해야지. 안 그래? “
“ 뭐~ 그렇죠.. “
배상 블뢰는 또다시 마지못해 윌리엄의 말에 동의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윌리엄은 헨리를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며 그를 압박했다.
“ 고맙습니다. 마이티 마우스님. “
“ 불민한 동생을 위해 어려운 걸음을 해 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
헨리는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윌리엄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 왠 마이티 마우스?? “
“ 동생이 쥐새끼면 형님도 쥐새끼··· “
“ 그리고 형님은 그 쥐새끼 중에 가장 듬직하고 힘도 좋으니 마이티 마우스 정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
헨리는 뱅상 블뢰를 보며 윌리엄이 하던 것처럼 능글맞은 어조로 동의를 구했다.
“ 뭐~ 그것도 말은 되네요.. “
윌리엄이 뱅상 블뢰를 노려보자 헛기침을 하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 이 새끼가? “
윌리엄이 헨리를 노려보며 달려들려고 하자 옆에 있던 뱅상 블뢰가 그를 제지하며 성급히 앞으로 나왔다.
“ 게이트로 들어가기 전에 서로 간에 마찰은 좋지 않습니다. “
“ 이렇게 된 이상 우린 한배를 탄 운명이니 이쯤에서 문제를 덮고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뱅상 블뢰는 우애 좋은 두 형제 사이를 가로막으며 사태를 빠르게 수습했다. 윌리엄과 헨리는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기만 할 뿐 더이상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 자 그럼 게이트로 이동하시지요.. “
뱅상 블뢰는 빠르게 윌리엄을 데리고 게이트를 넘어갔다. 그리고 윌리엄의 각성자 병력도 게이트 너머로 자취를 감추고 헨리와 찬희만이 게이트 앞에 남겨졌다.
“ 이거 한 방 먹었는데··· “
두 사람은 게이트 너머를 노려보며 잠깐 말없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 중 헨리를 보호하기 위해 동행한다는 윌리엄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윌리엄이 그의 병력을 이끌고 게이트로 먼저 들어갔다. 이 시점에서 이번 원정의 주체는 헨리 단독이 아니라 윌리엄과의 공동으로 진행하는 원정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윌리엄이 살아서 귀환한다면···
이번 원정의 공을 윌리엄이 독차지하려 할 것이 자명해 보였다.
백두산 포털의 비밀을 밝혀낸(?) 공이 인정되어 이번 원정을 따냈지만, 아직 가문에서 헨리의 입지는 윌리엄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헨리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찬희의 입장에서도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헨리의 부관이란 신분 때문에 언행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고, 한주먹 거리도 되지 않는 윌리엄이 자신을 무시할 때는 마파람의 부탁만 아니라면 그냥 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 아나~ 좀 짜증 나네. “
“ 진짜 그냥 다 죽여 버릴까?.. “
“ 참자 아직까진 몸 사려야지~~ “
“ 아직 마족 놈들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겠지. “
“ 나이트 머시기 하는 놈도 내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 놓았고, 어젯밤 흔적도 불 질러 버렸으니 남은 게 없을테고··· “
“ 아무튼 좀만 더 성질 죽이자. 그래. 넌 할 수 있어. “
혼잣말로 분을 삭이고 있는 찬희를 보고 헨리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나저나 나이트 머시기는 뭐고, 불???
설마 어제 본가에 대형 화재가 나 홀딱 타버렸던 게 혹시 저 새끼 짓인가????
헨리는 찬희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조용히 묻어 두기로 했다. 괜히 말 꺼냈다간 제명에 못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그나저나 저놈들을 어떻게 하지?? “
“ 사고사(事故死)? 아니면 장렬한 전사(戰死)? “
“ 음~~ 역시 사고사가 좋겠지.. “
자신에게 해코지하면 미친개가 되는 찬희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헨리로서는 그의 재수 없는 형의 장래가 암담해 지는 것이 못내 마음이 아팠지만···
희죽희죽
마음과는 달리 몸은 정직한 법, 헨리의 입가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소가 흘러나왔다.
“ 제 생각에는 전사가 좀 더 좋을 것 같은데요. “
“ 괴물과의 전투 끝에 장렬히 전사. 원래 게이트 안은 너~~~무 위험한 곳이니까요. “
“ 말이 나온 김에 제가 한번 설계해 볼까요??? “
자신의 형을 죽이는 일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인성을 보여주는 헨리를 향해 찬희는 흐뭇한 미소로 화답하며 말을 이었다.
“ 오~~ 알았어. “
“ 그럼 윌리엄 건은 네가 한번 제대로 설계해봐. “
“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고. “
사악하게 웃고 있는 찬희를 따라 헨리도 비열한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닮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상쾌한 마음으로 게이트를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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