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플레이아데스 - 각자의 길 6
[ 침착하세요. 헨리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입니다. ]
[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따라 하세요. ]
가면을 쓴 남자의 손에 굴복당해 바닥에 쓰러져 있는 헨리에게 메리의 영체는 담담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두려운 감정도, 당황한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릴 적 언제나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메리였다.
그런 메리의 태연한 모습은 두려움에 떨고 있던 헨리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그래.
내 곁에는 나의 백마 탄 여기사 메리가 있다.
두려워하지 말자.
헨리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고개를 들고 가면 쓴 남자를 바라보았다.
[ 저 남자의 몸 주변에 검은 영체들이 보일 거예요. ]
메리의 말 그대로였다.
정신을 집중하자 가면 쓴 남자의 주변에 끈적끈적한 느낌의 검은 영체들이 몰려 있었다.
저주와 원한으로 가득한 검은 영체들은 남자의 주변을 벗어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남자에게 부정한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헨리는 고개를 돌려 수십 명의 무장한 병사들도 살펴보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역시 그들에게도 부정한 검은 영체가 그들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 저 영혼들은 척령(隻靈)이라고 하는데, 가면 쓴 남자와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한 불쌍한 영혼들이에요. ]
[ 보통 척령들은 자신에게 해코지한 사람에게 들러붙는데, 원한을 갚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영혼들이죠. ]
[ 저 척령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
[ 분명 헨리님에게 큰 힘이 될 거예요. ]
메리의 말을 들은 헨리는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두 팔을 활짝 펼쳐 척령들을 향해 외쳤다.
“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시여. “
“ 당신들의 원한을 갚아 줄 테니, 저에게 힘을 빌려주십시요 “
그러자 헨리의 몸에서 성스러운 푸른빛이 흘러나와 척령들을 향해 쏟아졌다.
끈적끈적한 끈끈이처럼 가면 쓴 남자와 병사들의 몸에 착 달라붙어 있던 척령들이 푸른빛의 인도를 받아 헨리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부들부들.
헨리의 몸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경기 들린 사람처럼 눈을 뒤집고 거칠게 몸을 떨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모습이 무당이 접신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잠시 후, 거칠게 떨리던 몸이 점점 안정을 되찾았지만...
얼굴은 백지장보다 더 창백해졌고, 입술은 피를 빨아들인 듯 섬뜩하게 붉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검은 눈동자와 흰자위가 있어야 할 두 눈은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헨리는 인간 이외의 존재가 되어 있는 듯했다.
고오오오···
헨리의 몸에서 불길한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원한, 저주, 고통···
척령들이 느끼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헨리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주변의 공기를 무겁게 잠식해 갔다.
“ 무슨 짓이냐?? 빨리 막아.. “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가면 쓴 남자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고, 병사들은 헨리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헨리의 창백한 얼굴이 꿈틀거렸다. 심연의 어둠보다 더 깊은 검은 두 눈에서 귀기가 폭사했다.
창백한 손을 들어 앞으로 가볍게 내저었다.
휘이잉···
갑자기 불어온 검은 회오리바람이 병사들을 덮쳤다.
으으으···
끄윽~컥···
검은 바람이 병사들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가자, 하나같이 한기(寒氣)를 느낀 병사들의 그 자리에 멈춰 섰다.
“ 으아~ 갑자기 왜 이러지? “
“ 너무 추워. “
“ 소름이 돋고, 뼈까지 시린 것 같아. “
창백하게 변해버린 헨리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 키키킥··· “
“ 귀살(鬼煞)이라는 거야. “
“ 원한을 품은 귀신들이 내리는 벌이지. “
“ 아~ 그렇게 떨건 없어. 귀살로 죽진 않으니까. 심하게 맞으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긴 하는데··· 그것도 한참이나 뒤에 일이니까 신경 안 써도 돼. 킥킥킥. “
사람의 음역대 보다 높은···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 옛날 사람들이 왜 나쁜 짓 하지 말라고 하는 줄 알아? “
“ 그건 말이야. 자신이 쌓은 업보는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이야. “
“ 하긴··· 그걸 알면 살업을 저지르지도 않았겠지? “
헨리의 칠흑 같은 검은 두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게 휘어졌고, 피처럼 붉은 입술은 사이한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귀기가 가득한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까지···
영락없는 귀신들린 사람의 모습이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귀살이란 것에 당한 병사들은 헨리를 향해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그저 두려운 눈으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
“ 뭐하는 거야? 빨리 잡지 않고··· “
가면 쓴 남자의 호통이 있었지만, 병사들의 발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 이 새끼 뭐야. 사람 맞아??? ‘
‘ 진짜 귀신들린 거야? 뭐야? ‘
‘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더러워. ‘
병사들의 생각은 모두 동일했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눈앞에 있는 존재는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헨리는 병사들을 지나쳐 가면 쓴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고 두려운 눈빛으로 길을 열어 주었다.
“ 사람을 죽이거나 나쁜 짓을 하면 그 원한들은 사기가 되어 원한을 산 자 주위를 맴돌게 되지. “
“ 그걸 척령이라고 하는 건데, 이 척령(隻靈)이 참 고약하단 말이야. “
“ 원한 맺은 사람을 해코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하던지 상관하지 않아. “
헨리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 근데 너의 주위에는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나. “
“ 사기가 뭉치고 뭉쳐서 만들어진 거대한 원념이 가득하단 말이지. 킥킥킥. “
“ 척령들이 말하는데 너 참 악랄하게도 살았구나. “
“ 인신매매, 납치, 감금, 살인, 강간 등 악업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어. “
“ 진짜 개 같은 새끼라고 척령들이 친절하...게···. “
그그그그그···
소름 끼치는 음성으로 말하다 말고, 갑자기 헨리의 몸이 기이하게 꺾이기 시작했다.
절대 인간의 관절 구조로는 나올 수 없는 각도로 꺾이던 육체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 킥킥킥. “
“ 척령들이 널 빨리 죽이라고 아우성이야. “
“ 키키··· 빨리 안 죽이면 날 죽인 데나? “
“ 좀 더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었는데··· “
“ 우선 죽고 나서 다시 대화하자. “
“ 척령변환, 마수소환 “
헨리의 몸 안에서 불길하고 사이한 기운이 안개처럼 퍼져 나와 사위를 잠식했다. 그리고 헨리 머리 위로 검은 기운으로 만들어진 마법진(마수소환진,魔獸召喚陳)¹이 생성되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마법진에서 불길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마법진에서 생성된 검은 번개가 땅에 꽂히고 땅에서는 검은 불꽃이 장막처럼 펼쳐졌다.
잠시후, 허공에 떠 있는 마법진이 갈라지고 한 마리 사나운 짐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환된 마수는 공포 그 자체였다.
사자의 머리에 주둥이는 악어처럼 앞으로 길게 뻗어 있었고, 입안에서는 연신 강력한 스파크와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몸통은 물소의 형상을, 마수의 네 다리는 코끼리의 다리처럼 굵고 탄탄했으며 꼬리는 악어와 같은 대형 파충류의 것과 유사했다. 마지막으로 몸 전체에 비늘이 갑옷처럼 촘촘히 덮여 있었다.
쿵~
마침내 마법진에서 마수가 소환되어 땅으로 내려왔다.
크르르~
땅에 내 딛은 마수는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 근데 제 뭔지 알아? 센 놈이야? ‘
마수 소환으로 척령들을 모두 소모한 헨리는 어느새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창백했던 얼굴색은 붉은 홍조를 띠고 있었고, 온통 검은색 일색이었던 두 눈도 인간의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 저도 잘 몰라요. 오늘 처음 봐요. ]
‘ 진짜 삭막하게도 생겼네. ‘
헨리는 허공에 떠있는 메리를 보며 소환되어 온 마수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메리도 처음 보는 마수였다. 메리로부터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헨리였지만 아무런 내색 없이 남자를 향해 위협했다.
“ 항복해. “
“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 드릴께. ”
조폭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를 똑같이 흉내 낸 헨리를 향해, 가면 쓴 남자는 정중하게 가운뎃손가락을 앞으로 펼쳐 보여 주었다.
“ X까~ “
가면 쓴 남자는 지금 이 분위기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는 반전에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남자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 저 새끼 잡아서 다시 내 앞에 꿇려. “
남자는 속이 탔다.
자신 앞에서 건방지게 굴고 있는 지구에서 온 놈을 지금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지만 절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 다리 한 짝 정도는 부러져도 상관없어..”
남자는 또다시 험악하게 자신의 부하들을 몰아세웠다.
하지만 부하 중 단 한 명도 그의 말을 실행하는 사람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인간 같지 않은 놈에게 귀살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술에 얻어맞았고, 또 지금 눈앞에는 꿈속에서도 보기 싫은 괴물이 자신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푹~
가면을 쓴 남자가 가장 가까이 있던 병사 하나의 심장을 찔렀다.
병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 이 버러지 새끼들. “
“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모두 죽여버린다. “
“ 빨리 저놈 잡아와··· “
남자는 살기 어린 눈으로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병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등 뒤에는 칼을 든 미친 새끼와 앞에는 집채만 한 괴물이···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병사들은 빠르게 자신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눈앞의 괴물을 피해 이름 모를 지구인을 사로잡는 것이 유리할까? 아니면 저 칼을 든 미친놈을 죽여버리는 것이 유리할까?
꿀꺽···
병사들은 모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답을 내리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름 모를 지구인을 사로잡는 것에 배팅하기로 했다.
결정을 내린 병사들의 두 눈에 독기가 어렸다.
어차피 이판사판, 괴물을 피해, 저 인간만 사로잡을 수 있다면, 개중에 운 나쁘게 몇 명 죽는다고 해도 칼 든 미친놈을 상대하는 것보다 이 길이 훨씬 자신들이 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아는 한, 칼 든 미친놈은 그 정도로 강자였다
‘ 씨발. 진짜 좆같네. ‘
속에선 쌍욕이 터져 나왔지만, 그들은 헨리를 향해 달려나갔다.
사기가 꺾여 초라해 보이던 병사들이었지만, 덤벼들기로 작정을 하자 순식간에 거리를 단축해서 헨리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흐려졌던 눈에 살기가 돌아오고 날카로운 검기가 허공에서 춤사위를 추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합을 맞추어 온 듯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병사들의 움직임에는 일체의 군더더기도 보이지 않았다.
휘익~
초승달 모양의 검기가 허공을 수놓았다.
허공을 향해 뿌려진 날카로운 검기가 헨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고 그를 이용하여 병사들은 헨리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갔다. 헨리를 향해 질주해 오던 병사 중 일단의 무리가 마수와 헨리를 우회하여 헨리의 뒤를 선점했다.
전후좌우 모든 방위를 선점한 병사들의 눈은 점점 더 독기로 물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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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소환진,魔獸召喚陳¹ : 척령을 흡수함으로써 모인 사기를 이용하여 지옥에 있는 마수를 소환하는 마법진으로, 모인 사기의 양에 따라 다양한 등급의 마수를 소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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