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신 일본 황민회
띠리링~ 띠리링~
지구로 귀환한 찬희는 이승일에게 전화를 했다.
약 한 달 반 전..
마지막 보급기지 파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테리토리로 떠나기 전에 찬희는 이승일에게 한 가지 일을 제안했다.
그것은 바로 인터넷으로 더미 거래 사이트를 만들어 그 사이트를 관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여러 나라의 각성자 협회 사이트와 커뮤니티에 찬희가 새로 만든 사이트를 꾸준히 홍보하고, 연락한 판매가에게 대금을 지급하고 택배를 수령하면 되는 일이었다.
경제학과를 다니고 있지만, 평소 컴퓨터에 잘 다루고 결정적으로 용돈이 궁했던 이승일은 흔쾌히 승낙했다.
왜냐하면 찬희가 두둑한 알바비를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150만 원.
찬희가 약속한 급여는 월 150만 원이었다.
찬희에겐 푼돈에 불과하지만 일반 대학생에게는 꽤 큰 액수인 돈을 제시하자 이승일은 바로 '콜!' 했었다.
그래서 찬희는 지구로 귀환하자마자 이승일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 차~ 찬희야··· “
찬희의 전화를 받은 이승일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뭐야?? 왜 이래??
영문을 알길 없는 찬희도 놀라 물었다.
“ 갑자기 왜 이래?? 뭔 일 있어?? “
“ 엉~엉~ 찬희야.. 내 동생 좀 찾아줘~~ “
이건 또 뭔 소린가??
“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차근차근 이야기해봐.. “
울먹이던 이승일이 그간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국 각성자 협회 접견실.
찬희는 이승일과 통화한 후, 김기찬 과장을 만나기 위해 각성자 협회를 찾아왔다.
“ 범인이 누군지는 알아냈습니까? “
살짝 짜증 섞인 말투로 말하는 찬희에게 어두운 표정의 김기찬 과장이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네··· “
“ 이번 일은 벌인 단체는
신일본 재건회(新日本再建會) 산하
무력 단체의 소행으로 추정됩니다. “
말을 마친 김기찬 과장이 한 장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시꺼멓게 타버린 사람 손이 찍혀있는 사진에는 붉은 원이 표시되어 있었고 그 원 안에는 검지에 끼워져 있는 커다란 반지가 보였다.
“ 한 달 전, 도주한 범인이 남긴 팔입니다.
전투 중 화염 마법에 당하자
스스로 팔을 끊어 버리고 도주했습니다. “
“ 사진 속 반지에 새겨진 휘장은
일본 황민회(日本皇民會)라는
무장단체의 상징입니다.
일본 황민회는 일본의
극우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소속되어 있는
신일본 재건회의 산하 단체이기도 합니다."
김기찬 과장의 설명을 들으며 찬희는 사진 속 반지를 유심해 살펴보았다.
푸른색 바탕에 흰색 국화(菊花)와 그 가운데 일본도가 새겨져 있었다.
“ 국화와 칼이라? “
찬희는 자신도 모르게 반지의 휘장에 대해 입 밖으로 꺼냈다.
“ 국화는 옛날부터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꽃이었죠. “
“ 휘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황민회는
일본 왕실의 칼이 되고자 하는 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입니다. “
김기찬 과장이 일본 황민회라는 단체의 성격을 이야기했다.
“ 그럼. 범인도 알았으니,
이제 아이를 찾으면 되겠군요! “
“ 지금 아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
찬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의 눈빛은 단호했다.
범인도 알았으니 당연히 다시 찾아왔겠죠??
그래서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그렇게 묻고 있었다.
찬희의 단호한 물음에 김기찬 과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답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실망한 찬희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 다 망해버린 일본 놈들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이런 일을 꾸민 것도 화가 나는데,
뻔히 일본 놈들이 한 짓임을 알면서도
아직까지 아이를 찾지 못한 건가요? “
서슬 퍼런 찬희의 고함에 김기찬 과장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 14년 전.
지구에 대격변이라는 현상이 일어났을 때, 세상은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화산이 폭발하고 리히터 규모로 10이 넘는 강력한 지진이 일어났다.
땅이 뒤집어지며 하늘 높이 솟아있던 마천루가 무너지고, 쏟아지는 화산재에 도시가 매몰되었다.
거대한 산보다 높은 해일이 해변 도시를 쓸어버렸다.
이런 현상은 전 지구적으로 일어났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지진과 화산이 폭발해 많은 인명이 죽고 도시는 파괴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먼저 떠나보낸 가족과 친구를 그리워하며 슬퍼했지만, 하루 이틀 그리고 한해 두 해를 지나며 극복해 냈다.
그렇게 인간들은 다시 재기하기 위해 노력했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재기를 위한 몸부림도 뭐가 남아 있어야만 가능한 것.
대격변으로 인해 전국토가 완전히 초토화되어 버린 나라들이 있었으니, 소위 불의 고리라고 하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있는 나라와 도시들은 재기불능의 피해를 입었다.
불의 고리에 포함되어 있는 일본과 대만 그리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 지역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의 서해안 지역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특히 일본은 그 피해가 상상을 초월했다.
대격변 이전에도 대규모 지진과 화산 폭발로 유명했던 일본은 국토가 반 토막이 나 버렸다.
해발 3,700미터가 넘는 후지산이 300년 만에 대규모 분화를 일으켰고, 수도 도쿄도를 포함하여 일본의 중심부인 나가노 현, 니가타 현, 아이치 현, 시즈오카 현 그리고 야마나시 현에 진도 10이 넘는 지진들이 일제히 일어나 모든 도시가 파괴되었다.
지진과 화산 폭발은 일본의 중심부에 집중되었다.
이곳에 있던 모든 도시들은 땅속으로 매몰되었고, 일본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거나 행방불명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진과 화산 폭발 그리고 해일로 인해 이 지역에 있던 원자력발전소들이 폭발했고, 이 충격으로 인해 발전소에 있던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대규모 방사능이 누출되었다.
모든 것이 파괴된 땅에 방사능까지 누출되자 이곳은 죽음의 땅으로 변모했다.
어떤 생물체도 살 수 없는 땅이 되어 그렇게 버려졌다.
대격변 이전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찬희는 더욱 짜증이 났다.
도대체 이 나라는 옛날부터 국민들을 속 시원하게 해 주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주변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었다.
뭐 주변 강대국들보다 군사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뒤처져 있던 나라이니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근데...
다 이해한다 쳐도···
다 허물어져 버린 저 일본 놈들에게 아직까지 큰소리 못치고 있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찬희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기찬 과장은 기어들어가는 모습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 일본 정부에서는
자기들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딱 잡아떼고 있습니다. “
“ 자기들은 이 사진에 나오는 반지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설령 그런
일본 황민회라는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민간단체일 뿐이라는 입장입니다. “
“ 이번 일에 일본 정부가 연관이 되어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더는 그들을 추궁하기에 힘이 드는 것이
현실입니다. “
휴~
찬희가 단전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쉬었다.
“ 일본 정부가 그렇게 나오면
최소한 일본 황민회의 본거지라도
특작부대를 투입해서
털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찬희의 말은 타당했다.
모든 일은 일본 정부의 사주를 받은 일본 황민회의 소행이었다.
그 말인즉슨 이번 일은 일본이 먼저 도발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발뺌을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 땅에 기어들어와 국민을 납치한 테러단체에는 물리적 제재를 가했어야 한다고 찬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것이 좀 현재 상태론 쉽지 않습니다. “
“ 왜냐하면 이들의 본거지가
대격변 이전 일본의 수도였던 도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
“ 이 지역의 방사선 양은
평균 80시버트가 넘는 것으로
일반인이 들어가면
즉사할 수 있는 위험지역입니다.
이는 각성자라고 해도
절대 안전할 수 없는 양입니다. “
김기찬 과장이 말하는 중간에 찬희가 끼어들었다.
“ 아니, 어떻게 그런 곳에
이들이 본거지가 있다는 말입니까? “
찬희의 질문이 당연하다는 듯 김기찬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 일본 황민회는
일본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단체로,
이 단체에 소속된 각성자들은
한 가지 특이점이 있습니다. “
“ 이들은 모두
방사능 오염지역 인근에서 살던 사람들로
방사선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
미친..
괴물 같은 놈들이 꼭 지들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방사능 오염지역에 숨어 있는 이상 한국 각성자 협회에서 아니 한국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김기찬 과장과 헤어진 후 찬희는 이승일을 만나러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그의 부모님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근 한 달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찬희는 이승일과 병문안 차 병실로 찾아갔다.
각성자 협회에서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는 조건으로 그들은 비교적 시설이 좋은 2인실을 쓰고 있었다.
“ 제발 우리 딸을 찾아주세요.. “
그들은 찬희가 병실로 들어오는 순간, 찬희를 붙잡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마음이 아파왔다.
자신의 손을 붙잡고 흐느끼는 이승일의 부모를 보자 찬희를 위해 희생한 엄마의 얼굴이, 아버지의 넓은 뒷모습이 떠올라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라왔다.
소리 죽여 흐느끼는 이승일의 엄마가 조금 진정되자, 찬희는 아무런 말 없이 병실에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카미짱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테리토리로 귀환했다.
테리토리로 귀환한 찬희는 페리온의 상점을 찾아갔다.
“ 오늘을 무슨 일로 왔소? “
찬희에게 내기를 진 이후 페리온의 부쩍 늙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반 위에 가득 들어차 있던 상품들도 듬성듬성 빈자리가 보였다.
페리온과의 내기 이후, 찬희는 한 번도 페리온의 상점에서 물품을 구입하지 않았다.
던전 임무를 위한 식료품이나 기타 필요한 것들은 일부러 지구에서 구입했다.
이 상점의 유일한 고객에게 외면당한 페리온의 상점은 이제 망하기 일보 직전처럼 보였다.
찬희는 상점 내부를 한번 쓱 훑어보고는 페리온에게 간단한 눈인사를 한 후 집으로 들어갔다.
그가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을 페리온은 더 이상 구해주지 못할 것 같았다.
[ 테이아. 방사선을 막아주는
금속이나 재료를 구할 수 있을까? ]
집으로 돌아온 찬희는 테이아와의 통신을 시도했다.
[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
테이아가 이유를 묻자 찬희는 지구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 그 나쁜 놈들이 숨어있는 곳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방사선을 막아주는
방어구가 필요할 것 같아서
이참에 하나 만들어 볼까 하는데··· “
맨몸으로 방사능 오염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찬희에게도 위험한 일이었기에 그는 이참에 방어구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시가 급한 일이었기에 테이아의 대답을 기다리는 찬희의 속이 바싹 타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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