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백귀야행
‘ 엄청난 위력이군. ‘
놀란 눈으로 미히로 사치코를 바라보던 찬희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반파되어 하늘의 별빛이 쏟아지는 정궁 안에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 ♬ 천년 묵은 ♬ 주름 자글자글 ♬
♪ 피부 거칠거칠 ♬ 탄력 제로 ♪
♬ 수분 제로 ♬ 쭈그렁 망태기야 ♬
♪ 늙은 괴물 변태 할매 ♪
♬ 인간의 탈 쓴 요괴 ♬
♪ 할할할할할마시야 ♪
♬ 쭈그렁 망태기야 ♬
♬ 천년 묵은~ ]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돌림노래가 정궁 내부에 아련하게 울려 퍼졌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폭발 직전의 긴장감을 사르르 녹여주었다.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멜로디와 가사에 찬희도 따라 부를 정도였다.
“ ♬ 천년 묵은 ♬ 주름 자글자글 ♬~ “
들려오는 노랫가락에 맞춰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한 찬희는 더욱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찬희를 지배하던 긴장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 네년이 진정 소멸되고 싶어
환장을 한 게로구나? “
노래 가사가 자신을 칭하는 것임을 알고 있는 미히로 사치코는 흉흉한 기운을 풍기며 말했다.
[ 흥~!
이미 죽어도 한참 전에 죽었어야 할 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
[ 천박하구나~ ]
미히로 사치코가 찬희에게 한 말을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따라 한 스기짱이 말을 이었다.
[ 천박은 개뿔! 네년이 천박이란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이나 있는 줄 알아? ]
[ 얼굴 좀 반반하다 싶으면,
잡아다 자신의 변태적 성욕을 채우고,
그러다가 싫증 나면 죽여버리고,
재능이 특출나다 싶으면 영혼을 베어버려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고.. ]
[ 지난 천 년 동안 네년이 저지른 악행은
다음 천 년 동안 얘기해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야.
이 망할 할마시야··· ]
미히로 사치코를 향해 스기짱의 악에 받친 말을 계속 이어졌다.
[ 넌, 네가 특별한 줄 착각하고 있나 본데?
착각하지 마. ]
[ 넌 그냥, 천 년 전에 죽어버렸어야 할
요괴일 뿐이야. 알아? ]
[ 못생기고 삐뚤어진 성격에
속은 좁고, 질투심 많았던 산골 처녀가
마물에 의해 영혼이 반으로 갈라졌을 때,
너와 나는 그때, 소멸이 되었어야 해. ]
[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너는
힘을 가지자마자 이 나라와 백성들에게
크나큰 해악을 끼쳐왔어. ]
[ 지금까지 말이야. 자그마치 천 년이야! ]
[ 뭐? 천박? 이게 어디서 위선 떨고 있어!?
못생기고, 성격 거지 같은
깡촌 무지렁이 주제에!!! ]
스기짱은 얼척없다는 말투로 미히로 사치코를 조롱하고는 속사포처럼 내뱉던 말을 멈추었다.
옆에서 스기짱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찬희는 그때 결심했다.
‘ 절대로... 절대로!!
얘를 화나게 해서는 안되겠구나···! ‘
진심으로 결심한 찬희였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스기짱의 이야기를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듣고 있던 미히로 사치코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간 감추어 왔던 자신의 본 모습을 들켜서 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분한 기색만 나타낼 뿐이었다.
“ 네년이 진정...! “
그녀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고작 이 정도뿐...
어떠한 변명이나 반박도 하지 못했다.
왜냐고?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열등감과 자격지심, 그리고 타인에 대한 질투심들이 똘똘 뭉쳐 태어난 것이 지금의 자신이니까...
그녀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빼앗고, 죽이고, 다른 나라들과 전쟁을 한 모든 것들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그로 인해 수천만, 아니 수십억의 인간들이 끔찍한 고통을 당했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전쟁에 지고, 나라의 지도자들이 전범이란 낙인을 받고 끌려갈 때에도 그녀는 궁궐 같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호호~
그렇게 웃으면서 말이다.
“ 그래서, 뭐! 어쩌라고? “
미히로 사치코의 얼굴은 어느새 냉소적으로 변해 있었다.
‘ 와~ 저 여자 얼굴..
표정이 저렇게 다양했었나? ‘
나른한 표정이 지배적이었던 미히로 사치코의 얼굴에 분노와 짜증, 그리고 냉소 같은 다양한 감정이 표출되자 찬희는 다시 한번 스기짱의 재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 어쩌긴, 뭘 어째?
그냥 네가 쌍년이라고..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고 싶어서··· ]
또다시 깔끔하게 쌍욕을 박은 스기짱에 의해 미히로 사치코의 얼굴에는 참을 수 없는 거대한 분노의 표정이 치밀어 오르듯 나타났다.
“ 네년의 영혼을 조각조각 내어버리겠다! “
스기짱을 향한 미히로 사치코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그리고 어그로 여신, 스기짱은 찬희에게 바통을 넘겼다.
[ 쟤, 완전히 눈깔 뒤집어졌으니까,
이제 처리하세요.. 오호호~ ]
[ 물, 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미친년 하나쯤은
간단히 처리할 수 있겠죠? 호호홋~ ]
이 여자의 어그로 능력은 진짜다..!
귀하게 쓸 인재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찬희는 곧 닥칠 위협에 차분히 대비하기 시작했다.
짙은 요기가 정궁 내부에 들끓기 시작했다.
미히로 사치코의 눈에서, 입에서, 귀에서, 온몸에서 흘러나온 요기는 삽시간에 정궁을 넘어 내궁 정원까지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팟팟팟···
화륵~
허공에 무수히 많은 요기의 등불이 불을 밝히고,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미히로 사치코의 요기로 만들어진 등불들은 주인을 호위하듯 그녀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하나에서 두 개로, 그리고 수십 개에서 수백 개로 등불은 끊임없이 증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새빨간 입술에서..
“ 백귀야행(百鬼夜行) “
이라는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캬캬캬~
키키키~~
꺄륵꺄륵~~
미히로 사치코의 주변을 돌고 있던 등불들이 제각각 흉흉한 요기를 뿜어내는 요괴들로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기괴하고 소름 돋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무언가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고, 부수고, 파괴하기 위해 태어난 요괴들은 소름 끼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상을 찾고 있었다.
온몸을 다 가리는 검은색 망토를 입은 인간형 요괴, 소의 얼굴에 거미의 몸통을 가진 요괴, 도깨비의 얼굴에 짚으로 만든 도롱이(짚단으로 만든 재래식 우의)를 입고 손에 식칼을 든 요괴, 이마와 등줄기에 일렬로 뿔이 돋아나 있는 뱀의 형상을 한 요괴, 원숭이의 머리에 호랑이의 몸통과 다리, 그리고 뱀의 꼬리를 가진 요괴 등..
온갖 형상을 가진..
인식의 범주를 넘어 다양한 형태를 가진 요괴들이 미히로 사치코를 보호하듯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콰가가강···.
덩치가 작은 동산만 한 개의 형상을 한 요괴가 모습을 드러내자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정궁 내부가 무너져내렸다.
그 후로도 내궁 전체를 뒤덮을 만한 수의 요괴들이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히로 사치코를 호위하듯이 에워싸면서 찬희 일행을 향해서는 더러운 숨결을 토해내며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 백귀야행(百鬼夜行).
예전부터 온갖 잡신과 요괴들이 들끓던
일본은 달의 음기가 가장 충만한
보름달이 뜨는 날 밤,
가장 힘이 강한 대요(大妖)를 중심으로
무리를 지은 요괴들이
인간들의 마을을 습격하곤 했죠. ]
[ 저 요괴들은
저년 휘하에 있는 요괴들이에요..
근데, 아무리 천년을 넘게 살았다고 해도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규모네요. ]
특별히 요청하지 않았지만, 일본 여행 가이드를 자청한 스기짱의 찰진 설명이 들려왔다.
“ 근데, 백귀야행이라면서
뭔 놈의 요괴 숫자가 저렇게 많아? “
“ 한자로 일백 백(百) 자 아니야? “
찬희가 일차원적인 질문을 하자,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 스기짱이 다시 말을 이었다.
[ 일백(白)은 숫자로 해석하지 말고,
‘많다’라는 은유적 의미로 해석해야 해요.]
[ 백 마리에 훨씬 못 미치는 요괴들을
데리고 다녀도,
백 마리보다 훨씬 많은 수의 요괴들을
데리고 다녀도,
다 같은 백귀야행으로 부르거든요. ]
잘났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건데,
그렇게 한숨을 내쉴 필요까지는 없잖아..
손에 든 곡옥을 새초롬한 표정으로 슬쩍 노려본 찬희는 다시 개미 떼처럼 내궁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요괴 군단을 바라보았다.
일본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요괴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마치 꽃가마를 탄 것 같은...
십여 마리의 요괴들이 서로의 몸을 엉겨 붙으며 가마를 만들어 그녀를 태우고 있었다.
편안하고 여유롭게 요괴로 만들어진 가마에 타서 찬희 일행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또다시 나른함이 붙어 있었다.
그 꼴을 보자, 약이 오른 찬희는 스기짱을 불렀다.
“ 약 좀 올려··· “
찬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기짱이 다다다다 미히로 사치코를 향해 쏘아붙였다.
[ 야... 이~ 씹다 뱉은 음식 쓰레기같이 생긴
삐리~~~리~야. ]
[ 요괴들이 오냐오냐 떠받들어주니까,
좋냐? 좋아??
나 같으면 안 산다.
야, 이, 씨~ 삐이~~리리~ 아주 살판났지?
못생긴 할마시 썅 삐이~~리~리리~ ]
입에 착착 감기는 찰진 욕설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속사포 랩 같은 스기짱의 어그로를 옆에서 듣고 있는 찬희의 얼굴에 사악함이 묻어 있었다.
‘ 후후~ 효과 지대로네.. ‘
역시 저 요괴 대마녀에게는 스기짱이 답인 듯, 평온하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그녀가 더 이상은 무리라는 듯 미간을 한번 찌푸린 뒤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내궁 정원의 반을 뒤덮고 있던 요괴 군단이 일제히 찬희와 라이 그리고 김예지를 향해 몰아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내궁 전체의 땅이 흔들리고, 요괴들이 내뿜는 뜨거운 숨결에 차가운 밤공기마저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하지만 1차 각성으로 고대 마수 라이 칸 슬로프의 일부 능력을 개화한 라이와, 엄청난 위력의 광역기를 가진 김예지, 그리고 얍삽함이 신의 경지에 이른 찬희의 조합은 해일처럼 밀려오는 요괴들을 역으로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파지직~
꽈강..
라이가 소환한 황금빛 번개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고 일대의 요괴들을 모조리 튀겨 버렸다.
그리고 찬희에게 배운 뇌영보를 이용하여 자리를 옮긴 라이는 또다시 번개를 소환하여 일대를 황금빛으로 수놓았다.
휘이이잉~~
내궁 한가운데에 요괴들의 피로 붉게 물든 회오리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엄청난 인력으로 주변의 요괴들을 빨아들인 회오리는 점점 더 그 크기를 키워가며 적진을 유린했다.
파지직..
찬희의 주변에 황금빛 스파크가 튀고, 그의 신형이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타난 곳은 요괴들의 무리 한 중간, 그곳에서 피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찬희의 몸이 빠르게 회전했다.
콰가가가가..
주변의 모든 요괴들을 갈아버리고는 또다시 다음 타깃들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여지없이 피바람이 몰아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장소를 이동하며 요괴들을 갈아버리는 찬희의 공격에 요괴들의 수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번개가 비처럼 쏟아지고,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전장을 뒤엎고, 황금빛이 번쩍일 때마다 주변에 있던 요괴들은 한 줌의 핏물로 흘러내렸다.
시간은 흐르고···
내궁 정원을 가득 메웠던 요괴 군단들은 모두 갈가리 찢기거나 쏟아지는 번개를 맞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피비린내가 내궁을 가득 메웠다.
군데군데 핏물이 고여 웅덩이를 만들고, 갈려버린 살점과 뼛조각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분 나쁜 비명을 질러댔다.
‘ 그러니 살아있을 때 좀 착하게 살지··· ‘
찬희는 밟히는 뼛조각들을 보며 의미 없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수정했다.
‘ 착하게 살면, 요괴가 아닌가? ‘
시선이 다시 요괴 가마 위에 올라탄 미히로 사치코를 향했다.
다시, 혼자가 된 그녀.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후회? 두려움? 아니면 복수??
미히로 사치코를 보며 한 의미 없는 생각은 또다시 금방 수정되었다.
그녀가 짓고 있는 나른한 표정.
그녀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곧, 그녀에겐
아직 사용하지 않은 수단이 있다는 말···
찬희는 곧바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찬희의 짐작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른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미히로 사치코의 눈빛에 요요한 요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그녀에게만 중력이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허공으로 몸이 떠올랐다.
“ #$@$%^&^@$^&*(%$@~@#$%& “
허공에 떠 오른 여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아마도 세상의 언어가 아닌 것 같은 괴상한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미히로 사치코의 몸에서 붉은 요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내궁을 가득 메웠던 요기가 정원 가장자리에 놓였던 석등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팟~
동서남북 네 방위의 석등에서 요사스러운 불이 밝혀졌다.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석등의 불빛은 요사스러운 기운을 뿜어내다 어느 순간 멈추었다.
그리고 붉은 불꽃이 가만히 떨리더니, 점점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화르륵···
검고 탁한 불꽃이 추악한 혀를 날름거리며 검은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저건 또 뭐야?
빨간색을 처먹었으면,
빨간 걸 뱉어내야지
왜 검은 걸 뱉어 내는 거야?! ‘
또다시 살짝 핀트가 나간 생각을 하던 찬희의 얼굴이 삽시간에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석상이 뱉어내고 있는 기운.
요기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탁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악한 기운이었다.
순수한 악, 그 자체인 기운이 온 정원을 가득 메우고, 찬희 일행이 서 있던 정원은 익숙한 세상과 유리된, 이질적인 세상으로 바뀌어 갔다.
이제껏 보아왔던 세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공간.
음습한 기운을 내뿜는 붉은 달이 떠 있는 하늘은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저것이 달인지 태양인지조차 구별할 수가 없었다.
내궁의 정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검붉은 어둠이 내려앉은 삭막한 황무지만이 끝없이 이어지는 세상이었다.
안개처럼 공기 중에 만연해 있는 탁한 기운이 계속해서 찬희를 잠식하기 위해 침투해 들어왔지만, 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신성력이 힘겹게 막아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후우~ 후우~
숨을 쉬기도 힘들고, 알 수 없는 압박감이 찬희의 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쿵쿵쿵..
그때, 거대한 발소리가 지면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찬희 앞에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집채만 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락한 기운 속에서 눈앞에 모습을 보인 괴물은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분명 생물이 맞는데, 죽어 있는 것 같은..
아니, 놈의 몸에서
죽음의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고나 할까?
보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솟구쳐 올랐다.
크르르···
전신에 검은 갑주를 입고 있는 괴물의 머리에는 산양의 뿔처럼 안으로 구부러진 두 쌍의 뿔이 돋아나 있고, 미라처럼 말라버린 검은 얼굴에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두 눈이 박혀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죽음의 기운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그것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대지는 타락해 버렸다.
크으~~
붉은 화염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괴물의 손에는 검신과 손잡이가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검과 원형의 청동 거울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마물 앞에는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 미히로 사치코가 무릎을 꿇은 채로 경배를 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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