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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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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취룡
작품등록일 :
2012.08.20 01:36
최근연재일 :
2012.08.20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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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2.07.0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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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Chapter 6. #4

DUMMY

“안녕하세요, 칼리번 씨.”

롤랑드가 머물던 방과 거의 똑같이 생긴 격리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칼리번은 미호가 들어오자 생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레이디 윤, 반갑습니다.”

살갑게 웃는 얼굴이 정말로 잘생겼다. 더욱이 저 예의바른 태도라니. 누구누구씨랑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주 자연스럽게 마주 웃게 된 미호는 시온 알테미스가 만든 롤케이크와 직원 휴게실에서 가져온 음료를 칼리번에게 대접했다. 가고일에 아주 오랜 시간 잠만 잔 칼리번이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시온 알테미스의 요리는 통한 모양인지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다.

하하호호 웃으며 담소 섞인 전반적인 대화를 이어나간지 얼마나 지났을까. 수속절차와 앞으로의 일정등 대강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자 미호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최대한 빨리 모든 절차를 마칠 테니까요.”

칼리번이 가고일이 맞는지, 실제로 천 년 이상을 살았는지, 그의 일족은 어디인지, 어째서 오랜 잠을 자다가 한국에서 깨어났는지, 위험한 존재는 아닌지… 조사하고 확인해야 할 것들이 그야말로 태산이었다. 못해도 한 달은 걸리려나.

칼리번은 그런 미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올렸다. 녹아들 것만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해합니다. 사실 조금은 부당한 처우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하지만.”

칼리번은 그대로 미호의 손등에 입 맞추었다. 부끄러워진 탓에 얼굴을 살짝 붉히는 미호의 얼굴을, 보랏빛 눈동자를 푸른 눈동자로 마주하며 말했다.

“레이디 윤 같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가 소속된 조직이니까요. 믿겠습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였지만 이미 콩깍지 아닌 콩깍지가 씌인 덕일까? 미호는 저도 모르게 흐물흐물한 얼굴로 마주 웃을 뿐이었다.

“그럼 전 이만 나가볼게요. 내일 다시 올 테니 그때 뵐게요.”

“그 순간을 기대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혀에 버터 칠 한 멘트였지만 미호는 까르르 웃으며 격리실을 나섰다. 실로 오래간만에 마음 깊은 곳이 충족되는 포만감을 느끼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탁하고 부딪혔다.

깜짝 놀란 미호가 고개를 드니 무뚝뚝한 롤랑드의 얼굴이 보였다. 롤랑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미호와, 칼리번이 머물고 있는 격리실을 번갈아 보더니 불퉁한 목소리를 토했다.

“다 큰 처녀가 앞도 제대로 확인 못하고 걸어 다닐 정도로 놈이 혼을 쏙 빼놓았소?”

말투가 공격적이다. 미호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페이스를 되찾았다. 슬쩍 롤랑드를 곁눈질로 올려다보더니 과장스런 어조로 말했다.

“너무너무 신사적이라서요. 주먹부터 날리던 누구누구랑은 다르게.”

롤랑드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미호는 손을 살짝 들어 입가를 가리더니 연극하듯 오호호 웃었다.

“어머나~ 설마 질투하는 거예요, 지금?”

롤랑드의 눈썹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무어라 할 말을 찾듯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슬쩍 돌리며 답했다.

“애당초 레이디 윤과 나는 질투하고 말고 할 사이가 아니지 않소.”

최대한 무뚝뚝하게 말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너무 티가 난다. 미호는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그래! 이런 걸 기다렸어! 만날 놀려먹더니! 네놈도 놀려먹을 구석이 생겼구나!

미호는 까르르 웃으며 롤랑드의 볼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벽창호인줄 알았더니 귀여운 구석도 있네요?”

롤랑드는 무어라 항의하려 했지만 미호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대로 빙글빙글 돌아서 롤랑드 앞을 벗어나더니 손을 사르르 흔들며 발걸음을 떼었다.

“아무튼 전 바빠서 이만~♡”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가는데 나와있지도 않은 꼬리가 보이는 기분이었다.

롤랑드는 입을 꽉 다물고 그런 미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이내 돌아섰다. 빠른 걸음으로 직원 기숙사로 향하였다.



“오래된 요괴?”

“그렇소.”

직원 기숙사 로비, 휴게실이라 할 만한 장소에 앉아 비디오 게임에 몰두하던 록허트는 다짜고짜 내지른 롤랑드의 요구에 고개를 기울였다. 이 자식이 데이트 잘 하러 다녀와 놓고 갑자기 왜 이래?

롤랑드가 오늘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하자 록허트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잠시 롤랑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진짜 질투 하냐?”

“아니오, 절대 아니오. 다만 느낌이 좋지 않아 그렇소.”

아니면 아닌 거지 절대 아닐 건 뭐람. 피식 웃은 록허트는 롤랑드를 데리고 자료 열람실로 향했다.

“뭐… 일단.”

조직의 요원들은 본인의 랭크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정보량에 차이가 있었다. 록허트와 롤랑드는 나란히 B랭크 요원. 이 정도면 여간한 대략적인 정보는 모두 다 볼 수 있는 등급이었다.

록허트는 열람실 모니터에 몇 개인가 되는 파일을 실행시켰다.

“일본의 대요괴 칸젠 야마토. 구미호야. 미호에게는 친척뻘이지. 같은 천호 이랑의 자손이니까.”

모니터에 나타난 것은 요사스럽게 생긴 꼬리 아홉 달린 여우였다. 붉은 털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유혹하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사진 옆에는 무언가 자세한 설명들이 달려 있었지만 록허트는 그것들을 읽는 대신 다음 파일을 열었다.

“아시아 최강이라 불리는 대호 동방불패다.”

화면에 출력된 것은 거대한 호랑이였다. 하얀 털에 세 개의 꼬리를 가진 대호는 황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사진에 같이 찍혀 있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어깨높이만 대충 5미터 이상 되는 괴물이었다.

“다음은 우리 세상 최초의 흡혈귀, 퍼스트 블러드 동방 삭.”

구속복 차림의 남자가 고개를 숙인 상태로 하얀 방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얼마 전에 포획했는데… 자세한 사항은 우리 랭크로는 알 수가 없네.”

록허트는 파일을 닫았다. 그리고 롤랑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당장 내가 알고 있는 요괴들 가운데 가장 오래 산 요괴는 저 셋이다. 요괴들의 경우 이론상 수명이 거의 무한에 가깝지만… 실제로 500년을 넘기는 녀석은 무척이나 드물거든. 아무튼 천천히 살펴봐. 난 그럼 이만.”

롤랑드의 어깨를 탁탁 두드린 록허트는 그대로 열람실을 나섰다. 혼자 남은 롤랑드는 마우스에 손을 올렸다. 하나하나 파일들을 열어보았다.



&



“가고일이 뭐 별거 있나. 천 년 살아봐야 거기서 거기지. 놈들은 결국 움직이는 석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시온 알테미스가 대수롭지 않다는 어투로 그리 말했다. 본디 유럽 출신인 그녀는 수많은 가고일들을 보아왔고, 가고일이란 ‘종’이 가진 한계를 명확히 인지했다.

가고일은 애당초 자연에서 태어난 요괴가 아니었다.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수문장 역할의 괴이가 그 시초였다. 그것들 가운데 몇이 전화轉化하여 지금의 가고일 ‘가문’을 형성했지만 그래봐야 본바탕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본디 석상형 괴물인 것이 인간형을 취할 정도면 꽤 수준이 높지 않을까요? 살아온 세월이 자그마치 천 년인데.”

데이비드 킴이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시했다. 통상의 요괴들은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강해졌으니까. 칼리번 본인의 주장대로 잠만 퍼질러 잤다고 해도 자그마치 천 년, 10세기였다. 데이비드 킴이 아는 한 그보다 오래 산 요괴는 기껏해야 다섯을 헤아릴까 말까였다.

“나름 잔재주도 익혔을 테니 인간형으로 변신도 하고, 마법도 잔재간 수준으로 부리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래봐야 가고일이다. 백 년 산 요호보다도 요력이나 기술이 약할 수밖에 없어. 육체능력은 십년 된 가고일이나 백년 된 가고일이나 천년 된 가고일이나 거기서 거기다.”

시온 알테미스는 제법 상냥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냄비 안에 든 국자를 휘휘 휘저었다.

그런 시온 알테미스의 곁에서 - 본래는 보고 목적으로 방문했지만 - 각종 채소를 썰던 데이비드 킴은 잠시 칼질을 멈췄다.

“그럼 말씀하신대로 간단한 수속이 끝나면 영국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래, 아기 고양이 눈앞에서 빨리 치워버려라.”

목적은 결국 그거였나.

데이비드 킴은 미간을 좁혔다. 미호 그 계집애는 인간 남자들한테는 별반 인기를 못 끌더니 롤랑드부터 시작해서 시온에 칼리번까지 무슨 괴이한테 사랑받는 체질이었나.

“손이 논다.”

시온 알테미스가 짧게 말하자 데이비드 킴은 얼른 다시 칼질을 시작했다. 하지만 세 번째 칼질을 했을 때일까, 갑자기 든 생각에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검이군요.”

“검이라니?”

시온 알테미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 심드렁한 표정에 데이비드 킴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이름이요. 칼리번이라면 분명 아더왕 이야기에 나오는 전설의 검 아닌가요? 엑스칼리버의 형제 검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엑스칼리버랑 이름만 다르지 같은 검이라 할 수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시온 알테미스는 고개뿐만 아니라 몸까지 완전히 데이비드 킴 쪽으로 돌렸다.

“이번에도-라니. 그건 무슨 의미지?”

시온 알테미스의 표정이 방금과 달리 심상치가 않았다. 데이비드 킴은 칼질을 멈췄다.

“그… SG-012 다인슬레프 역시 검 이름이잖습니까. 북유럽 전승에 나오는 마검.”

덴마크 왕 희그니의 마검. 한 번 뽑히면 반드시 누군가의 피를 보아야만 한다는 으스스한 전승을 가진 전설의 무기.

“…그렇군.”

시온 알테미스는 다시 돌아섰다. SG-012가 언급된 탓에 기분이 나빠진 모양이었다.

“뭐, 그냥 우연이겠죠.”

데이비드 킴은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듯 그리 말했지만 시온 알테미스는 대답하거나 돌아서지 않았다. SG-012가 언급 되서 기분이 상한 걸까?

데이비드 킴은 무어라 더 말을 해보려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 칼질을 개시하였다.



&



가고일 칼리번은 지하 10층 격리실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지하 10층에 있지 않았다.

복도마다 설치된 감시 카메라는 칼리번의 모습을 찾지 못했다.

벽과 바닥, 기둥마다 갱신되는 수많은 마법과 주술 장치들은 칼리번의 기척을 읽어내지 못했다.

칼리번은 걸었다.

승강기에 올랐다.

승강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칼리번을 인지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모두 내렸다.

승강기가 조용해졌다.

칼리번은 지하 20층으로 향했다. 20층에서 내려 특별 승인된 인원만이 탑승할 수 있는 승강기에 올랐다. 지하 25층으로 향했다.

지하 25층. 승강기 문이 열렸다. 하지만 칼리번은 내리지 않았다. 열린 문 너머로 보았다.

하얗고 긴 통로와 거대한 원형의 문. 숨 막힐 정도로 복도를 가득 메운 방어 마법들.

“다인슬레프, 나의 형제여.

칼리번이 불렀다.

들릴 리가 없었다. 너무 멀었고, 원형 문은 두터웠다.

승강기 문이 닫혔다.

칼리번은 미련 없이 위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승강기가 25층을 떠났다.

지하 25층, 하얗고 긴 복도 너머, 거대하고 두터운 원형의 문 너머, 세차게 흐르는 영맥의 한가운데.

검붉은 상자가 꿈틀거렸다.


작가의말

현재 블로그에서 연재중인 챕터 9에서는 시현과 미호와 롤랑스와 시온과 클레어가 대면한 상태로 아헤이호우

SG는 노닥물입니다.

블로그에서는 언급했던 이야기인데 미호 괴롭히는 재미(...)로 씁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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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Chapter 14. +15 12.07.09 5,662 99 8쪽
39 용어 해설 #4 +31 12.07.09 5,436 82 15쪽
38 Chapter 13. #3 +18 12.07.08 5,603 95 9쪽
37 Chapter 13. #2 +38 12.07.08 5,626 94 13쪽
36 Chapter 13. +12 12.07.07 5,254 83 10쪽
35 Chapter 12. #4 +23 12.07.07 5,498 104 11쪽
34 Chapter 12. #3 +21 12.07.07 5,461 99 8쪽
33 Chapter 12. #2 +16 12.07.06 5,736 100 7쪽
32 Chapter 12. +31 12.07.05 5,810 105 10쪽
31 용어 해설 #3 +21 12.07.05 5,719 63 9쪽
30 Chapter 11. #3 +13 12.07.05 5,714 95 8쪽
29 Chapter 11. #2 +29 12.07.04 6,054 111 13쪽
28 Chapter 11. +45 12.07.03 6,242 120 18쪽
27 Chapter 10. #2 +19 12.07.03 6,483 99 17쪽
26 용어 해설 #2 +9 12.07.03 6,710 80 20쪽
25 Chapter 10. +30 12.07.02 6,546 121 9쪽
24 Chapter 9. #3 +7 12.07.02 6,253 99 3쪽
23 Chapter 9. #2 +18 12.07.02 6,550 99 22쪽
22 Chapter 9. +8 12.07.02 6,480 102 16쪽
21 Chapter 8. #3 +14 12.07.02 6,787 101 17쪽
20 Chapter 8. #2 +3 12.07.02 6,396 102 15쪽
19 Chapter 8. +4 12.07.02 6,513 106 12쪽
18 Chapter 7. #2 +16 12.07.01 6,832 100 14쪽
17 Chapter 7. +7 12.07.01 6,882 94 11쪽
» Chapter 6. #4 +11 12.07.01 7,183 107 11쪽
15 Chapter 6. #3 +4 12.07.01 7,119 98 16쪽
14 Chapter 6. #2 +13 12.07.01 7,409 96 21쪽
13 Chapter 6. +5 12.07.01 7,348 93 14쪽
12 Chapter 5. #4 +34 12.06.30 7,577 120 16쪽
11 Chapter 5. #3 +7 12.06.30 7,760 97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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