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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피아니시모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크로노미터
작품등록일 :
2020.05.11 10:36
최근연재일 :
2020.05.22 18:4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3,393
추천수 :
171
글자수 :
108,781

작성
20.05.21 16:52
조회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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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0쪽

제20장.

DUMMY

이후 계속된 요청에도 레이먼드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이버트로닉스라는 거대한 기관에 맞서 싸우겠다는 뜻은 아니다.

정이 든 가족이 실험체가 된다는데 누구라도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비록 그녀가 사람은 아닐지라도 자아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된 지금 더더욱 그녀를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연구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녀를 해하려는 목적은 없습니다. 잘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게 정말 그녀를 위하는 일인지."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소. 나는 절대 보낼 생각이 없으니까."


그러자 박사는 선택을 제이앤에게 넘긴다.


"그럼 그녀에게 직접 들어보도록 하죠."

"무슨 소리. 주인은 난데 안드로이드의 생각 따위.."


순간 레이먼드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이제 그녀는 평범한 안드로이드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내가 실수했군. 이제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게 맞을텐데 말이지."


왠지 아쉬운 표정의 레이먼드.

더 이상 그녀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한 걸까. 아니면 혹시 모를 반대 의견이 걱정이라도 된 것일까.

이제 그녀는 날개를 찾은 나비다. 언제든 자신의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레이먼드는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제가 결정을 해야 하는 건가요?"

"이제 스스로 사고가 가능할 테니 그게 맞지 않을까 싶군."


하지만 제이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남겠습니다."


레이먼드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는 내심 불안했다. 마리안느때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슬픔은 다신 겪고 싶지 않았으니까.


"의외로군.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왜 힘든 길을 택하려는 건지."


박사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제이앤이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안드로이드 생산의 피해자가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미 타겟이 되어버린 이상 언제까지고 피해다닐수는 없을 테죠."

"나도 그들의 강압적 인권 유린에 반대하는 입장이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그러자 빙긋 미소 지은 그녀는 레이먼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엇보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그렇죠 레이먼드님?"


하지만 그녀가 의도하는 뜻을 이해하지 못한 레이먼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고 제이앤은 이내 마지막 이유를 밝혔다.


"피아노 레슨은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까요."


무모하다고 해야 할까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생사를 오가는 위험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피아노 레슨이라니.

피식 입 꼬리가 올라간 레이먼드는 그녀의 말을 위트 있게 받아쳤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어이가 없구나. 수업료도 안 낸 주제에."


결국 확고한 둘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 박사는 교섭을 포기하고 물러서기로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대신 절대로 붙잡히지는 마십시요. 이제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들이닥칠 테니 미리 대비하시는게 좋을겁니다."


박사가 보내는 경고에 레이먼드와 제이앤의 눈빛이 달라졌다. 마치 앞으로 벌어질 험난한 여정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의지를 다지는 얼굴이었다.

이어 박사는 둘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몰랐던 사실 하나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에이커가 도움이 될 겁니다. 녀석은 제이앤의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제가 보낸 특별한 안드로이드니까요."


처음 제이앤의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했던 박사는 마침 레이먼드의 저택에서 또 다른 가사도우미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입수. 자신이 직접 안드로이드를 선택 파견했다. 본래 배송될 안드로이드는 따로 있었지만 몰래 바꿔치기를 시도한 것이다.


"에이커가 특별한 안드로이드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지."

"녀석의 본래 명칭은 WAP. 특수 임무를 담당하는 전투용 안드로이드입니다."


북부 최남단에 위치한 세부르크에는 국가 재난 사태를 대비해 세워진 전투기지가 있다.

그곳에는 갖가지 다양한 신무기들의 즐비했으며 대체로 무인 병기 위주로 구성된 특수임무부대가 상주하고 있던 곳이었다.

사이버트로닉스는 특별히 군과 협약하여 전투용 로봇 병기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고 그 첫 결과물이 바로 WAP이라 불리는 전투 안드로이드였다.

이후 사이버트로닉스는 제품에 대한 보존용 샘플이 필요했고 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모습의 안드로이드를 하나 더 생산하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여기 있는 에이커였던 것이다.

저택에 보내지기 위해 특수 옵션에 하우스키핑 기능을 추가시키긴 했지만 본래 그는 AK모델이 아닌 군의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전투 안드로이드가 맞았다.


"특수 임무용 전투 안드로이드라고?"


그러고 보니 레이먼드는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왠지 낯이 익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봤다 싶었더니 한동안 언론에서 떠들썩했던 그 로봇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사의 계략은 결국 에이커를 통해 그들의 안전을 확보함과 동시에 가장 근접한 곳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연구를 지속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연락해주시길."


지이잉 뚝. 그렇게 박사와의 연결이 해제되자 정지되어 있던 에이커의 시스템은 다시 원래 상태로 정상 복구되었다.


#


똑딱 똑딱.

엔틱한 괘종시계의 시침 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크게 들리는 듯하다.

거실 중앙에 모여 앉아있는 세 명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흠. 에이커 자네 괜찮은가?"


정적을 깬 건 레이먼드의 한마디였다.

에이커의 상태가 걱정됐던 그는 예정에도 없던 안부를 물었다. 사람으로 치면 혼백이 나갔다 들어온 상황이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저희 안드로이드는 충전 전력이 모두 소모되지 않는 이상 특별히 문제될 건 없습니다."

"그렇군. 그럼 혹시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는가?"


괜한 질문을 한 걸까. 아차 싶던 레이먼드는 뱉은 말을 후회했다.

생각해보니 녀석은 특수 전투 로봇이라고 했다. 만약 보스코비치 박사가 자신의 신경망에 접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갑자기 돌변하여 신경질적인 행동을 하거나 폭력적으로 변하게 되는 건 아닐지 조금 걱정이 된다.


"시스템 기록을 확인하니 박사님과 대화를 하신 모양이군요."


다행히 에이커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비록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대충 어떠한 말이 오갔는지 정도는 감이 온다는 말투였다.


"알고 있었군 그래. 종종 그런 식으로 접신 아니 교신하나보지?"

"아닙니다. 보통 시스템 전송 방식을 통해 소통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언젠가 이런 날이 올거라고 미리 말씀해주셨죠."


아마도 이 모든 상황은 그가 이 저택에 배정받을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 그렇다면 앞으로 그는 어떤 식으로 행동하게 될까.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하나만 묻지.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가. 더 이상 가사도우미는 하지 않는 것인가?"

"프로젝트G가 발동 되었으니 저는 이제 두 분 신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저택에 있는 동안 가사일은 그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다행이었다. 만약 앞으로 가사일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무척 곤란했을 것이다. 또 새로운 가사도우미를 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강제로 시키자니 저 두꺼운 팔뚝과 주먹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어찌저찌 해도 그의 진짜 정체는 전투 안드로이드 WAP이었으니까.


"그렇군. 경호와 집안일을 병행하면 힘들진 않겠는가?"

"큰 문제는 없겠지만 원치 않으시면 가사일을 그만 두겠습니다."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그때 제이앤은 짤막한 말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그럼 저는 잠시."


또각또각 계단을 오르는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던 레이먼드는 잠시 흐려진 초점을 맞추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놈이나 저놈이나 가사를 돌보라고 비싼 돈 주고 사들였건만 갑자기 자의식이 생기질 않나 또 한 놈은 알고보니 특수 전투 로봇이라고 하질 않나."


레이먼드는 주객이 전도된 듯 한 상황에 깊은 상실감을 느끼며 나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내 팔자야.."


그 사이 2층 자신의 방에 들어온 제이앤은 조용한 걸음으로 벽에 기대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촉촉한 그녀의 눈가엔 근심과 걱정이 묻어나는 듯 했고 스며든 봄바람에 잠시 취해있던 두 눈은 어느새 감겨 있었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는 이내 상황을 정리하며 가능한 모든 것들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

적이 몇 명인지 어떤 무기를 사용할지 정확한 자료를 수집해 분석하고 예측해야 한다.

현대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건 정보력이다. 이제 곧 다가올 싸움을 준비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 그건 바로 다양한 정보의 수집이었다.

적들의 접근 경로와 진압 시기를 예측하기 위해선 사이버트로닉스가 보유한 무력 대응 도구와 방법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에이커가 전투 로봇으로써 얼마나 큰 활약을 해줄지는 모르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최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 정도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가 필요하다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대상이 안드로이드라는 상황에 국한된 이야기 일뿐. 만약 적들이 자신을 향해 총구를 들이댈 때 아코디언을 꺼낼수는 없지 않는가. 슬프지만 현재 레이먼드의 전력은 거의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짧은 시간 적들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선 한시라도 빨리 무언가를 해야만 했던 제이앤은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시스템 디퓨즈. 접속 신호를 검색합니다.]


그녀는 곧 눈앞에 홀로그램 단말기를 객체화시켜 자신의 신경회로와 연결시켰다. 그리곤 나노 테크놀러지와 양자 역학 원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특수 기관에 접속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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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21장. 20.05.22 64 1 11쪽
» 제20장. 20.05.21 62 2 10쪽
20 제19장. 20.05.20 78 2 12쪽
19 제18장. 20.05.19 87 3 12쪽
18 제17장. 20.05.18 124 3 10쪽
17 제16장. 20.05.17 114 4 11쪽
16 제15장. 20.05.17 115 5 11쪽
15 제14장. 20.05.16 125 4 13쪽
14 제13장. 20.05.16 136 5 10쪽
13 제12장. 20.05.15 140 6 11쪽
12 제11장. 20.05.15 142 6 11쪽
11 제10장. 20.05.14 148 6 13쪽
10 제9장. 20.05.14 150 8 10쪽
9 제8장. 20.05.13 157 7 10쪽
8 제7장 +2 20.05.13 163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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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3장. 20.05.11 204 10 11쪽
3 제2장. 20.05.11 206 14 11쪽
2 제1장. +2 20.05.11 245 1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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