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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피아니시모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크로노미터
작품등록일 :
2020.05.11 10:36
최근연재일 :
2020.05.22 18:47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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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0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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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8,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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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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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16장.

DUMMY

"저건..?"

"홀로그램 피아노군요."


많은 것이 기계화된 디지털 사회에서 예술 활동은 뒤늦게 그 필요성이 부각되는 추세였고 감성이 메마른 도시를 촉촉히 적셔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사람들은 분수대 광장에 각종 악기들을 시스템화 시켜두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를 비롯해 각종 관악기까지. 비록 실재하지 않은 입체 화상 악기였지만 그 누구든 어느 때라도 연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둔 것이다.


"연주자가 안드로이드네요."


피아노 앞에 자리한 남성.

그는 이 예술 공원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 안드로이드였다.

클래식, 재즈, 뉴에이지를 비롯해 팝과 대중가요까지 그의 데이터에는 수많은 악보가 입력되어 있었고 대체적으로 명반이라고 알려진 유명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연주하곤 했는데 이는 마치 인간이 연주하는 음악보다 안드로이드가 더 완벽한 곡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처럼 느껴졌다.

이밖에도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기타리스트에 드러머까지 다양한 뮤지션 안드로이드가 매 타임마다 작은 연주회를 펼치며 예술 공원다운 분위기를 이끌고 있던 것이다.

지금은 피아노 솔로 타임.

이제 곧 그의 연주가 시작될 것이다.


순간 공원에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


연주가 시작되었지만 거리를 메운 사람들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저 매일을 살아가는 일상 중 너무도 당연한 부분처럼 무심한 표정의 얼굴들. 그들은 음악이 주는 진정한 가치를 망각한 듯 한 모습이었다.


"피아노 소리는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이 곡의 제목을 알고 있는가?"


레이먼드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던 제이앤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알지 못합니다."

"제대로 감상하려면 뮤지션과 제목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말씀해주시면 저장시켜 두겠습니다."

"피아노 콘체르트 1번의 2악장 쇼팽의 곡이다. 부드럽고 우아한 노래지."


사실 그녀는 이 곡을 알고 있었다.

아직 모든 기억을 되돌린 건 아니었지만 이 노래는 과거 피아노를 전공했던 그녀가 좋아했던 쇼팽의 작품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감정을 숨기고 비밀을 유지해야 했던 그녀는 모르는 척 내색하지 않았다.


연주는 조금의 호흡도 놓치지 않고 완벽했으며 정확했다.

마치 음반을 틀어놓은 것처럼 무결점의 연주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한참을 듣고 있던 제이앤이 말을 꺼냈다.


"레이먼드님의 연주와는 많이 다르군요."


그러자 레이먼드는 흥미롭다는 듯 묻는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무엇이 다른지 알고 있는가?"

"듣기 좋은 듯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느낌입니다. 감정을 북받쳐 오르게 하는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는군요."


순간 아차 싶던 제이앤은 자신의 입술을 물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지만 생각해보니 의심받을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그런걸 느낄 수 있다는 말인가. 안드로이드가.."


아니나 다를까. 레이먼드는 그동안 계속된 의구심이 위화감으로 다가오는걸 느꼈다.

과연 방금 전 그녀의 발언을 프로그램된 의사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사람조차 구분하기 힘든 내재된 음악적 요소를 안드로이드가 정확히 집어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조금 전 그 말은 데이터에 저장된 표현인가?"


하지만 그녀는 모른 척 되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연주를 듣고 느꼈다는 그 감정 말일세."

"저희 안드로이드는 프로그램된 대화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하지만 그녀에 대한 의문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동안 추측만으로 넘겨짚을 뿐이었지만 더 이상 궁금함을 참기 힘들었던 레이먼드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이전부터 나는 자네가 자의식을 가졌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네. 가끔씩 보여주는 감정 표현부터 상식을 깨는 습득 능력. 게다가 설명할 수 없는 피아노 실력까지."


제이앤은 살짝 당황했다.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 그는 자신을 의심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모든 걸 밝히기엔 이르다. 그가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섣부른 행동은 금물이었다.

결국 그녀는 레이먼드의 말을 부정했다.


"아시다시피. 안드로이드의 감정은 데이터에 기반한 결정론적이며 확률적인 표현만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학습 능력이 없다고는 하지만 피아노의 거장이신 레이먼드님의 레슨이라면 어린 아이들이라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름 설득력 있는 논리에 레이먼드는 고개를 끄덕인다.


"흐음 그럴수도 있겠군. 그렇다면 자네가 연주했던 장송곡은 어떻게 설명할 셈인가. 악보는 물론 들어본 적조차 없는 곡일텐데."


예리한 질문에 제이앤은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물음에 대한 마땅한 변명은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그녀 자신도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어떻게 그런 고난이도의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걸까.

억지 이유를 들먹이며 넘어가려 한다면 더 큰 의심으로 역효과만 초래할 것이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건.."


하지만 그때 광장 안을 가득 메우던 피아노 선율이 사그라들었고 이어 짤막한 박수 소리가 들려오자 둘의 대화는 잠시 멈추게 되었다.


짝짝짝짝-


"벌써 연주가 끝난 모양이군."


두 시간 혹은 세 시간마다 반복되는 공연은 이곳 예술 공원만이 가지는 특색이었다. 다음 순서는 이제 두 시간 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로 편성된 현악 4중주가 예정되어 있었다.


"어떠십니까. 방금 전 피아노를 평가하신다면."

"뭐 특별함도 군더더기도 없는 무난한 연주였다고 본다."


제이앤은 곤란했던 상황을 피해가려는 듯 계속해서 질문을 이었다.


"무난하다는 건 칭찬인가요?"

"글쎄 칭찬이라기 보단 로봇다운 연주였다고 해야 할까."

"로봇답다는 건 좋지 않다라는 뜻이죠?"

"꼭 그렇지만은 않아.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고 각자가 모두 다르듯 피아노도 마찬가지니까. 요컨대 정답은 없다는 소리야. 예술이란 그런거란다."


뭔가 애매모호한 답변에 제이앤은 재차 물었다.


"저는 추상적 방식에 의한 결과보다는 문제의 학술적 답을 원합니다."

"그럼 기술적으로 접근해서 평가해보도록 할까. 전반적으로 연주 자체가 반항적이다 보니 섬세한 터치가 전혀 없더군. 쓸데없이 큰 음량만 강조하고 피아니시모를 연주하려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지."


그러자 제이앤은 난감하다는 투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더 이해할 수가 없군요."

"무턱대고 악보만 읊는다고 되는 게 아니야. 소리에 신경을 써야한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피아노 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


하지만 더 모르겠다는 표정의 제이앤.

결국 레이먼드는 말을 끊었다.


"그만하지. 아무래도 디테일한 음악적 견해를 다루는 건 아직 이른 듯 하구나."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직접 보여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생각지 못한 제안에 레이먼드는 놀란 듯 되물었다.


"이 자리에서? 어떻게 말이냐."

"아직 피아노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


잠시 뒤.


피아노를 쳐달라는 그녀의 부탁에 레이먼드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완강히 거부했지만 곧 생각을 바꿔 스테이지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마음을 돌린 건 다름 아닌 제이앤의 한마디였다.


"이 자리에서 아날로그 피아노의 우수성을 증명해 주십시요."


특별히 실력을 뽐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기회를 빌어 전달하고 싶은 게 있었다.

진정한 음악이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완벽한 연주보다 더 가치 있는 무언가를 추구해야 된다는 것을.

레이먼드는 결국 안드로이드가 표현해내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몸소 가르쳐주고자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레슨이라 생각하고 듣거라. 나다운 연주가 과연 어떤 것일지 고민하면서 듣는 게 좋을 것이야."

"알겠습니다. 레이먼드님."


자리에 앉은 레이먼드는 잠시 턱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비록 큰 연주회는 아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친다는 게 얼마만인지 감회가 새로웠다.


"정말 신기하군. 홀로그램이지만 피아노의 질감이 느껴져."


더듬거리며 피아노를 만져보던 레이먼드는 신기한 듯 미소 지었다.

재질이 느껴지도록 만든 페이크 오브젝트였지만 실제와 다름없는 촉감을 구현한 것이다. 그저 그런 디지털 피아노일거라 생각했지만 독일의 유서 깊은 메이커가 연상될 정도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디 한번.."


디리리링 파도처럼 밀려 올라가는 음계 소리.

레이먼드는 소리의 깊이를 테스트하기 위해 양 손바닥으로 건반 전체를 물결치듯 훑어 내렸고 이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흐음 전체적으로 뵈젠도르퍼와 비슷하지만 벡슈타인이나 파찌올리의 느낌까지 고루 갖추고 있군. 이런 피아노는 처음인걸."

"뵈젠도르퍼 벡슈타인 파찌올리.. 그건 무엇을 뜻하는 단어인가요."

"별거 아니야. 그냥 피아노 브랜드지. 세상 참 좋아졌군 이런 가짜 피아노가 명품 피아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니 말이야."


하지만 레이먼드는 좀처럼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피아노는 음정 음색이 망가지기 쉽고 갖가지 상황에 영향을 받는 악기다. 좋은 음을 결정하는 건 기술보다 재질. 피아노의 재질에 따라 소리의 울림이 다르고 연주자의 잠재력이 결정되는 법이거늘.

이 홀로그램 피아노는 얼핏 명품 피아노들을 흉내 내고 있지만 커다란 결점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재질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악기라는 점이다.


피아노는 현을 해머로 쳐 소리를 울리는 타현악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케이스부터 음향판에 액션까지 모든 것이 허상으로 만들어진 이 장난감으로는 표현력에 한계가 있다.

결국 홀로그램 피아노로 연주를 한다는 건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새를 새장 속에 가둔 것과 다름 없는 일이었다.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런 피아노로는.."


표현의 한계가 정해진 피아노.

과연 어떤 곡을 연주해야 하는 걸까.


한참동안 선곡을 망설이던 그는 잠시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첨단 과학 문명의 중심에서 바삐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감정이 메말라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상 공연.

과연 미소가 사라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연주를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억지스러운 발랄함은 버리고 우아한 곡을 선택하는 게 좋을까.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건 이런 피아노로 곡을 제대로 해석해 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평범한 연주에 그친다면 굳이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치는 이유가 없다. 수백 수천 곡을 연주해도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완벽함을 선보이는 안드로이드가 훨씬 어울리는 자리일테니까.


"이것 참 쉽지가 않군."


하지만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 공연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해서 말이다.


한동안 고민에 빠져있던 레이먼드는 생각을 정리한 듯 건반위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이어 공원 전체를 뒤흔들 연주의 서막.

그 첫 번째 터치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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