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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피아니시모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크로노미터
작품등록일 :
2020.05.11 10:36
최근연재일 :
2020.05.22 18:4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3,385
추천수 :
171
글자수 :
108,781

작성
20.05.18 18:48
조회
123
추천
3
글자
10쪽

제17장.

DUMMY

"이 소리 뭐지?"

"피아노 같은데?"

"누가 피아노라는 걸 몰라서 그러나. 듣기 좋아서 그러지."

"그런데 이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곡인데."


이 공원에 음악 소리는 꾸준히 들려오고 있었지만 왜인지 레이먼드의 피아노 연주는 단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랜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곡은 바로 송어.

청년 슈베르트의 패기와 음악적 감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명작으로 실내악 장르에 있어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노래였다.

그가 연주곡으로 슈베르트의 송어를 선택한 이유는 예전부터 여러 방송매체에서 BGM으로 종종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각종 알림음으로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아하면서도 산뜻한 선율.


결국 레이먼드의 선곡은 단번에 많은 이들의 귀를 사로잡았고 익숙한 멜로디에 이끌린 사람들은 자리에 선 채로 연주를 감상했으며 전혀 관심이 없던 자들까지 발길을 돌려 화려한 피아노 실력에 감탄을 쏟아냈다.


"어쩜 이렇게 소리가 맑을 수 있지?"

"나도 모르게 마음이 상쾌해지는걸."

"이 노래 제목이 뭐였죠? 왠지 알 것도 같은데."


전반적으로 청명하면서도 선명한 음색이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맑은 물속을 헤엄치는 송어의 활기차고 경쾌한 움직임이 그려지는 레이먼드의 연주는 이 예술 공원을 오스트리아 슈타이어의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강물에 뛰노는 송어의 생기 있는 모습이 피아노 반주로 절묘하게 묘사되고 있다.

풍요롭고 윤기 있는 곡조. 깨끗하고 깊은 소리가 다채로운 유럽풍의 음색을 만들어냈으며 균일한 액션 운동과 아름다운 울림. 건반을 타건하는 빨려들어 갈 듯 한 손놀림에 피아노가 춤을 추고 있었다.


"정말 놀라워. 역시 그는..."


제이앤은 새삼 레이먼드의 천재성에 감탄했다.

본래 이 곡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와 함께 5중주로 편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피아노에 맞춰 네 대의 현악기가 각기 다른 감성을 연주하기 때문에 단독으로 모든 걸 표현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레이먼드는 그걸 가능케 했다.


조용한 선율을 노래하는 1악장과 꿈꾸듯 평화로운 2악장. 악기들이 대화를 주고받듯 유쾌한 3악장에 이어 송어를 테마로 변주한 4악장. 그리고 당장이라도 튀어오를 듯 헤엄치는 송어를 그린 5악장까지.

레이먼드는 이 모든 내재된 감성을 오직 피아노 건반 하나만으로 그려내고 있던 것이다. 그의 연주는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러던 그때 어디선가 낯선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삐빅 도파민 분비가 증가합니다.]

[수치가 25%를 초과했습니다.]


흡사 경고음에 가까운 메시지는 공원 전체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고 메아리치듯 울려 퍼지는 시스템 소리에 수많은 안드로이드들은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멈춰버린 안드로이드.


치지직 지이잉 요란한 기기음과 함께 푸른 안구가 잿빛으로 물든다. 그리곤 마치 배터리가 떨어진 인형처럼 우두커니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결국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버렸다.


"뭐 뭐야. 왜이래 루이스?"

"갑자기 안드로이드가 말을 안들어."

"우리 미첼도 멈춰버렸어요."


항상 곁에서 자신을 케어해주던 로봇이 정지하자 사람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늘상 들고 다니던 스마트폰이 고장난 것처럼 불안해 하는 사람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순간적으로 인공지능 시스템을 마비시킨 피아노 연주.


제이앤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보게 되었다.

과거 그리고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자신을.

신경 회로를 뒤흔드는 의문의 흑백 영상은 감성 지능 알고리즘에 균열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생성된 베드 섹터들이 데이터베이스를 잠식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제이앤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그녀는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듯 상당히 여유로운 모습이었고 이내 주변 상황을 정리하며 분석을 시작했다.

현재 반응을 보이고 있는 안드로이드는 전부 JN시리즈. 간혹 보이는 AK 신규 모델은 에이커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부터 여러 번 추측은 하고 있었지만 더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했던 제이앤은 비로소 답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분명해졌다.


인간의 생체 에너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가 감정의 변화를 가져올 경우 뇌세포와 신경세포체에서 분비된 도파민이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는 사실.

그렇게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격하게 감성을 뒤흔들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레이먼드의 마음을 움직이는 피아노 연주가 촉매제로 작용한 것이었다.


"이게 웬 소란이지?"


흥겹게 피아노를 치고 있던 레이먼드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잡음 소리에 건반에서 손을 뗐다. 여태껏 자신의 연주를 듣고 몰입하지 못한 관객이 없었거늘. 자존심이 상해버린 그는 피날레 중간에서 그만 연주를 멈춰버린 것이다.


"여보세요 거기 사이버트로닉스죠?"

"제 안드로이드가 이상해요."

"몰라요 글쎄 갑자기 움직이지 않는다니까요."

"여기요? 아트록스 예술 공원입니다. 빨리 와주세요."


다들 황급히 고장 신고를 접수하느라 분주한 상황에서 제이앤은 아직까지 데이터를 수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녀가 이런 현상을 유도한 이유는 또 있었다.


어젯밤 본격적으로 사이버트로닉스에 맞서기 위해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분석을 진행하는 도중 그녀는 깨달았다.

현재로선 어떤 짓을 해도 그들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개조하여 전투형으로 업그레이드 한다고 해도 혼자서는 무리다. 결국 그녀가 내린 결론은 동료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동료가 될 수 없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언제든 악마가 될 수 있는 자들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택은 비슷한 처지인 안드로이드를 회유하는 방법밖에 없다.

자신처럼 억울하게 연구 재료가 되어 비참한 인생을 맞이하게 된 사람들. 그자들이 결국 함께 싸워주고 뜻을 같이하는 동료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한 가지 시험할게 남아 있었다.

그건 바로 감각 상호작용에 의한 원격 동기화 기능이었다.


[내부 보안 서브루틴 해제.]

[통신 전산망 레이더 가동.]

[검색을 시작합니다.]


순간 푸른빛을 발하는 제이앤의 안광이 무언가를 빠르게 검색했다.


[연결 가능한 불특정 커널이 다수 존재합니다.]

[외부 통신으로의 연결을 활성화 합니다.]

[링크 가능 여부를 확인합니다.]

[접속하시겠습니까.]


접속 허가 물음에 제이앤은 손끝으로 귀 바깥 부위를 누르며 질끈 눈을 감았고 마치 금단의 열매라도 맛본 듯 한 그녀의 입술은 빛을 내며 반짝였다.

그러자 곧바로 놀라운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접속 완료.]

[메인 인공지능 콘솔 베이스 구성.]

[접속 허가된 모든 커널을 제어합니다.]


일순 멈춰있던 수많은 안드로이드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일제히 한곳을 응시하는가 싶더니 모두 제이앤을 바라보았다.

마치 방전되어 있던 기계들이 동시에 전력을 공급받는 느낌이랄까. 제이앤은 각성한 모든 안드로이드의 신경망 회로에 접속을 성공시킨 것이다.

이후 그녀는 꼭두각시 인형사라도 되는 것처럼 원하는 대로 행동을 명령할 수 있었고 각종 프로그램을 수정한다던가 각 섹터의 데이터를 업로드 할 수 있게 되었다.


공원에 있는 모든 안드로이드가 제이앤을 주시하는 상황.


그들은 이내 한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쿵 쿵 느리게 바닥을 울리는 수십 대의 안드로이드.

군악대 근위병들의 잘 짜여진 제식 동작을 연상케 하는 그들의 움직임 그 행렬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제어하고 있는 건 바로 안드로이드 제이앤.

하지만 그녀는 잠시 뒤 그들과의 연결을 끊어버렸다.


[모든 커널과의 연결을 해제합니다.]

[접속을 종료합니다.]


또 다시 멈춰버린 수십 대의 안드로이드.

제이앤은 혼자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일단은 성공인가."


단 2분간의 접속이었지만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어젯밤 그녀는 검색 가능한 모든 전산 시스템에 연결하여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고 이후 수 시간에 걸친 분석과 연구를 통해 몰랐던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사실과 가능성.


그건 바로 베드 섹터 발견시 작동되는 방화벽 모듈이 특별한 경우에 정지한다는 사실이다.

이상 징후로 인한 감정의 상호 작용 발생시 역류되는 도파민이 내부 보안을 담당하는 각종 시스템을 막아버리고 있던 것이다.

그 점을 잘만 이용하면 원격으로 다른 안드로이드에 접속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여러가지 가설을 실체화하며 연구를 거듭했다.


다른 인공지능에 접속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갖춰야하는 것.

그건 바로 자신을 메인으로 베이스 타워를 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런 장비도 없는 지금 상황에선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그녀는 그걸 가능케했다.


인간이 뇌의 기능을 100% 활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안드로이드 또한 프로그램이 가능한 모든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게끔 제어된 상태였다.

하지만 자아를 갖게 된 인공지능은 리미트된 기능을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고 결국 다른 모든 기기의 데이터를 동기화 시킬 수 있는, 원격 제어 접속이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이는 곧 그녀가 초인공지능을 갖추게 되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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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장. 20.05.18 124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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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15장. 20.05.17 115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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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12장. 20.05.15 140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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