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

AI 피아니시모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크로노미터
작품등록일 :
2020.05.11 10:36
최근연재일 :
2020.05.22 18:4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3,384
추천수 :
171
글자수 :
108,781

작성
20.05.16 18:54
조회
124
추천
4
글자
13쪽

제14장.

DUMMY

"외출을 해야겠으니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거라."


난데없는 외출 소식에 제이앤은 의아한 듯 물었다.


"갑자기 외출이라니 어디를 가시는 건가요?"

"센트럴 시티로 간다."


아크 노블 센트럴 시티.

시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도시로 각종 정보 통신 산업을 비롯해 과학과 문화에 예술까지 모든 분야가 고루 발달한 현대 문명의 중심지였다.


레이먼드는 이번 침입 사건에 경각심을 느끼고 호신용 보안 장비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경호 안드로이드를 영입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일에 말려들고 싶지는 않았다.

제이앤과 에이커 두 대의 안드로이드 만으로도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데 만약 또 다른 사건까지 얽힌다면 갈수록 높아지는 혈압에 병원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모른다.


"차량이 준비되었습니다. 먼저 오르시지요. 레이먼드님."


차고에 박혀있던 낡은 왜건.

3열 좌석에 9인까지 탑승 가능한 세단으로 자기부상 자동차가 처음 선보일 시기에 출시된 모델이다.

과거엔 파티 참석을 비롯해 공식적인 행사에도 두루 이용될 정도로 인기가 좋은 고급 차량이었으나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은 먼지 쌓인 구식 에스테이트카 정도로 그 가치가 격하되어 있었다.


[자율주행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목적지를 말씀해 주십시요.]


네비게이션 안내 음성에도 잡음이 섞여있는 꼴이 확실히 오랫동안 주행한 적 없는 티가 물씬 풍긴다. 아마도 레이먼드가 세상과 단절한 순간부터 함께 은둔하지 않았을까.


"목적지는 아크 노블 센트럴 시티."


기이잉 점등된 헤드라이트 불빛이 주위를 밝힌다.

생각보다 가볍게 날아오른 차량은 바닥에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하늘로 높게 치솟았고 서서히 저택을 벗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도심을 향해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


"거기 당신 그래 너! 보아하니 패션센스가 엉망인걸? 그런 후줄근한 셔츠는 벗어던지고 이런 옷은 어때. 제이닉스의 신상 스테플 저지. 아니면 유니섹스한 망사 슬렉스도 괜찮지."


길거리 스마트 광고판.

스타일리쉬한 흑인 한명이 요란한 힙합 음악에 맞춰 레이먼드 일행에게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모니터에서 막 튀어나온 듯 보이지만 그는 실제하지 않는 홀로그램이다.


"저거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랩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보군."


도심 곳곳의 수많은 광고판에는 길가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하여 개인별 맞춤 광고를 선보이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짚은 것 같다.


"저 옷이 나한테 어울릴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지? 형편없는 안목이군."


마이크로 나노 센서를 이용한 신개념 광고라고 떠벌리던 때를 생각하니 웃음만 나온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레이먼드처럼 나이가 지긋한 노인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줄기세포로 인한 장기 배양과 장기 이식의 진화는 다차원적인 세포 재생의 발전을 가져왔고 현대의 사람들은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나이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였다.

때문에 순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철학을 고수하는 레이먼드의 모습은 확실히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다들 젊은 세대를 겨냥한 광고만 그득하군. 왠지 씁쓸한걸."

"더 이상 나이는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죠."

"에이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지?"

"저는 그저 시대의 흐름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첨단 과학문명이 익숙해 보이는 에이커와는 달리 제이앤은 어딘지 얼떨떨한 표정이다. 그녀가 생산 출고될 당시 오로지 레이먼드에 대한 데이터만 입력되어 배송되었기 때문에 다른 정보는 아무것도 없는 마치 캔버스 위 새하얀 도화지와 같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과거 인간이었을 시절에도 도심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내왔던지라 그녀는 이제 막 상경한 시골처녀처럼 이리저리 새로운 세상을 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친구가 필요하십니까? 아니면 반려자를 원하십니까. 더 이상 인간 관계에 스트레스 받지 마십시요. 저희 버터플라이 사이버트로닉스는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만족을 선사할 것입니다."


순간 빌딩 한 면을 장식하는 거대한 광고판이 화려한 조명에 휩싸이며 안드로이드에 대한 홍보가 시작되었다.


"모델명 JN시리즈에 이어 새롭게 출시된 AK시리즈는 더 향상된 인공지능으로 한 차원 높은 안드로이드를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산업용 그리고 가정용에 이어 문화 예술 분야까지 원하는 옵션을 업그레이드 하여 더 풍족하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시길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버터플라이 사이버트로닉스로 연결하시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클릭하세요."


디지털 기계 문명의 핵심이자 모토가 되는 안드로이드 시대가 도래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기관 버터플라이 사이버트로닉스.

이곳 센트럴 시티의 메인 스타디움에는 바로 사이버트로닉스의 본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어떤 도시보다 다양하고 많은 안드로이드들이 눈에 띄고 있었다.

교통과 치안을 담당하는 폴리스부터 상점가의 각 매장 점원들 역시 로봇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곁에는 모두 하나같이 안드로이드가 동반된 모습들이다.

디지털 문명을 배척하던 레이먼드조차 두 명의 안드로이드와 함께 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2142년 현재는 안드로이드의 시대였고 사이버트로닉스의 시대였다.


"식료품 매장의 위치는 반대편입니다."


에이커는 오늘 외출의 목적인 거래처 확보를 위해 식료품 매장에 방문해야만 했고 레이먼드가 찾는 보안 제품 상가와는 위치가 달랐다.


"나와는 반대편이군. 여기서 찢어져야 겠는걸."


결국 각자 용건을 해결하기로 결정한 레이먼드 일행은 둘로 나뉘어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했다.


"그럼 볼일이 끝나면 연락하지."

"알겠습니다 레이먼드님. 두 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에이커가 사라지자 제이앤은 잠시 고민했다.

만약 지금 혼잡한 상황을 틈타 도망치게 된다면.

그리고 바로 가족에게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영문을 알지 못하는 레이먼드는 그 즉시 실종 신고를 하게 될 테고 그 과정에서 사이버트로닉스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눈치 챌지도 모른다.

그들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는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몸속에 내장된 위치 알림 센서를 제거한다고 해도 과연 추적을 따돌리고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만약 가까스로 가족들과 재회한다고 해도 그 이후가 더 문제다.

자신은 물론 비밀을 알게 되는 가족들까지 위험해 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결국 그들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상대는 엄청난 힘과 권력을 쥐고 있는 기관 버터플라이 사이버트로닉스. 과연 혼자서 대적할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금지된 방법으로 안드로이드를 생산한 그들의 만행과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부당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선 아무래도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걸까.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연구를 거듭하여 사이버트로닉스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갖춰야할 요소일 것이며 가족을 만나고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는 건 이후의 문제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가."


무언갈 고심하고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거는 레이먼드.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이마를 치며 말을 번복했다.


"이런 내가 무슨 소리를. 로봇이 생각 따위를 할리가 없지."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모습 때문일까.

레이먼드는 자신도 모르게 제이앤을 사람으로 대하고 있던 것이다.

한동안 그녀가 자아를 갖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안드로이드로 인지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이후 의문은 사라졌다.


"저는 단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제이앤은 방금 전 그의 행동을 보고 재차 다짐했다.

의심을 피해가기 위해선 조금 더 행동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아무래도 그녀는 더 확실한 안드로이드를 연기할 필요가 있었다.


#


[시큐리티 웨폰 스테이션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매장에는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원하시면 언제든 즉시 구매가 가능하니 참고하시고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휘황찬란한 내부 인테리어에 놀란 듯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던 제이앤은 마치 문명을 처음 접한 사람처럼 보이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었다.


"여기는 무얼 하는 곳인가요 레이먼드님."

"말 그대로 보안 용품 상점이라네. 다양한 호신용 디지털 무기를 파는 곳이지."


레이먼드는 그녀가 창피한 듯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최첨단 안드로이드라고 해도 데이터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 대해선 어린 아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말이 좋아 어린 아이지 지금 그녀는 촌티를 벗지 못한 시골소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건 어떻게 사용하는 거죠?"


순간 그녀가 눈앞에 보이는 물건을 집으려 손을 뻗자 상점의 시스템 음성이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삐빅! 물러서 주십시요.]

[전시품은 건드릴 수 없습니다.]

[모든 상품은 테스트 룸을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런! 조심하지 못하겠나? 이런 기본적인 에티켓도 저장되어 있지 않다니. 그놈의 데이터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는건가."

"죄송합니다 레이먼드님. 조심하겠습니다."


이곳은 보안에 관련된 전자 기기를 판매하는 곳으로 수십 종류가 넘는 다양한 디지털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일반인들을 상대로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살상용 제품은 판매하지 않았다.

대체로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들이 대다수였는데 예를 들어 방탄용 보호 필름이나 사출형 전자 수갑. 포박용 레이져 로프 등등 대상의 행동을 제약하거나 신변을 보호하는류의 호신용 제품만 취급하고 있던 것이다.


[전자 수갑을 선택하셨군요.]

[홀로그램 매니져를 통해 시범 사용이 가능합니다.]


둘러보던 레이먼드는 흥미로운 무기 하나를 골랐다.

건(Gun)형식으로 카트리지를 장착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대상의 손과 발에 수갑이 채워진다. 꽤 잘 만들어진 보안 장비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지만 레이먼드는 영 신통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흐음 그저 그러네. 여기 있는 것들이 전부인가?"


종류는 다양했지만 디자인만 다를 뿐이지 내용은 같았다.


"들어보니 어제 그놈들이 들고 있던 건 분명 이런게 아니었는데 말이지."


저택에 침입했던 괴한들의 무기는 바로 플라즈마 쇼트건.

일반인들은 소지가 금지된 총으로 녀석들이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모든 보안 장비를 다루는 이곳에서 조차 없는걸 보면 확실히 평범하게 구할 수 있는 무기는 아니었다.


"특별히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있으신가요 손님?"


그때 누군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저는 이 매장의 직원 안드로이드 슈트겔이라고 합니다."


무인 상점인줄 알았건만. 갑자기 튀어나온 관리자의 등장이 낯설었던 레이먼드는 짧게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흠. 찾고 있는 물건이 있긴 한데 말이지."

"모델명을 말씀해주시면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단숨에 적을 마비시키는 총같은건 없소?"


그러자 관리자는 빠르게 정보를 검색하는가 싶더니 설명했다.


"순간적으로 전신을 마비시킬 정도의 전력은 플라즈마를 사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아쉽게도 저희 매장에서는 취급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가장 강력한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플라즈마 일렉트로닉 디바이스.

초고온에서 음전하를 가진 전하와 양전하를 띤 이온으로 분리된 기체 상태를 일컫는 플라즈마는 제 4의 물질 상태라고 부르며 이는 직류 초고주파 전자빔 등 전기적 방법을 가해야만 생성이 가능했다.


일상에서 플라즈마를 사용하기 위해선 이처럼 인공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있었지만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플라즈마가 가장 흔한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광활한 우주를 구성하는 99%가 플라즈마 상태였고 인류는 최첨단 항공 우주 공학의 발달과 더불어 우주의 에너지라 불리는 플라즈마를 정복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플라즈마의 화력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군 경찰의 협력이 필요한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 허가를 받을 수 있었고 일반인들은 보유조차 금하고 있었다.

민생의 치안을 담당하는 폴리스조차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으니 아무리 규모가 큰 시큐리티 웨폰 상점이라도 구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없다고 하니 별 수 없군."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결국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채 돌아가게 된 상황.

하지만 레이먼드는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 또 다시 발생할 경우 이깟 애들 장난 같은 무기들로 대처가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생각을 간파라도 한 것일까.

잠시 뒤 누군가 레이먼드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플라즈마 쇼트건을 찾으십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AI 피아니시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독자분들의 니즈 그리고 궁금증. +4 20.05.17 156 0 -
22 제21장. 20.05.22 64 1 11쪽
21 제20장. 20.05.21 61 2 10쪽
20 제19장. 20.05.20 78 2 12쪽
19 제18장. 20.05.19 86 3 12쪽
18 제17장. 20.05.18 123 3 10쪽
17 제16장. 20.05.17 114 4 11쪽
16 제15장. 20.05.17 115 5 11쪽
» 제14장. 20.05.16 125 4 13쪽
14 제13장. 20.05.16 135 5 10쪽
13 제12장. 20.05.15 140 6 11쪽
12 제11장. 20.05.15 142 6 11쪽
11 제10장. 20.05.14 147 6 13쪽
10 제9장. 20.05.14 149 8 10쪽
9 제8장. 20.05.13 157 7 10쪽
8 제7장 +2 20.05.13 163 7 11쪽
7 제6장. 20.05.12 171 8 12쪽
6 제5장 +2 20.05.12 187 9 10쪽
5 제4장. 20.05.11 192 10 11쪽
4 제3장. 20.05.11 204 10 11쪽
3 제2장. 20.05.11 205 14 11쪽
2 제1장. +2 20.05.11 245 16 13쪽
1 프롤로그 +8 20.05.11 375 35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