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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피아니시모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크로노미터
작품등록일 :
2020.05.11 10:36
최근연재일 :
2020.05.22 18:4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3,390
추천수 :
171
글자수 :
108,781

작성
20.05.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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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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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제9장.

DUMMY

[스캐닝 입력값. 프레임 데이터 임포트.]

[사이즈 34-25-36 오차범위 ±10프로 이내.]


갑자기 튀어나온 중후한 시스템 음성.

흠칫한 레이먼드가 소리친다.


"자네 지금 뭐하는 짓인가?"


그러자 남성 안드로이드는 태연하게 답했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입니다."

"데이터를 수집한다고?"

"그렇습니다. AK모델은 자체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데이터화 시킬 수가 있습니다."


신규 안드로이드 모델명 AK가 가지는 차별점 중 하나. 그건 기존 JN시리즈와 달리 스스로 데이터를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전문성이 필요하거나 숙련도를 요하는 내용은 본사를 통해서만 입력이 가능했고 위치나 프로필 그밖에 기본적인 정보에 대해선 수집을 허용하고 있었다.


"흠 그랬군. 내가 잠시 오해를 했네."


아무래도 그에게 제이앤과 관련된 데이터는 없었던 모양이다.

스스로 알아서 입력할 테니 번거롭게 소개할 필요가 없어 좋긴 하다만 쓰리 사이즈까지 분석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4월 27일 18시 20분. 현시간 부로 이 저택의 관리와 유지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듬직하구만. 잘 부탁하네 헌데 이름이 뭐라고 했던가."

"모델명 넘버 AK-5 입니다."


제이앤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모델명을 이름으로 대신했다.

특별히 부를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따로 이름은 있어야 할 것이다.

애완동물도 애칭이 있기 마련인데 사람 모습을 하고 번호로 불려지게 된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내가 하나 지어주도록 하지."

"저는 괜찮습니다."

"사양하지 말게. 그냥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니까."


그토록 안드로이드를 증오했건만.

이제는 둘씩이나 함께 살게 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나마 사람다운 이름이라도 갖추면 그러한 생각들도 조금은 가시지 않을까.


"자네 이름은 에이커라고 하는 게 좋겠군."


JN은 제이엔 AK는 에이커.

대충 되는대로 지은 느낌이 물씬 나는 작명 센스였지만 의외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들어도 남녀 구분은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인다. 기쁘다고 호들갑 떨었던 제이앤과는 달리 에이커는 감정이 없는 완전한 안드로이드였다.


"앞으로 제 호칭은 에이커로 수정하겠습니다."

"마음에는 드는가?"

"감사합니다. 레이먼드님."


역시나 무던한 말투와 표정.

그래 이게 정상이거늘 제이앤이 유별났을 뿐이다.


"이제 곧 저녁 시간이군. 가서 식사를 준비해주지 않겠나 에이커군."

"알겠습니다 레이먼드님."


다행이었다.

새로운 가사도우미가 왔으니 이제 다시 모든 게 이전처럼 돌아갈 것이다.

그래 그렇게 돼야만 했다.

하지만 에이커의 등장은 전에 없던 또 다른 일상을 가져왔다.


#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레이먼드님."

"오 그래 알겠네 에이커군. 곧 가도록 하지."


요 며칠 직접 만든 허접한 요리들로 배를 채우던 레이먼드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솔직히 새로운 가사도우미를 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식단에 있었다.

본래 식도락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제이앤을 통해 최고급 요리들을 맛보고 난 뒤 평범한 음식들은 영 입맛에 맞지 않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식탐이 많아진다고 하더니 괜히 입만 고급이 된 건 아닐까 싶다.

최고 셰프들의 요리 레시피가 데이터로 저장되어 있다고 하니 에이커 역시 훌륭한 식사를 준비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니 이게 뭐야!"


하지만 식당에 들어온 레이먼드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준비한 첫 메뉴가 하필이면 오믈렛이었던 것이다.


"저녁 메뉴는 질리언 달러 오믈렛. 일명 '랍스타 프리타타'라고 합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도 자신이 만든 오믈렛과는 차원이 다른 요리라는 걸 알겠지만 질리도록 먹었던 음식을 또 보게되니 실망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레이먼드님."

"그 많은 요리 중에 하필 오믈렛이라니.."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지금 즉시 새로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새로 준비하면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나?"

"와규 립아이 스테이크의 경우 대략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한 시간이나 더 기다린다면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지도 모른다. 레이먼드는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그냥 먹겠네. 앞으로 당분간 식탁에 오믈렛은 올리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레이먼드님."


랍스타 프리타타. 직역하자면 랍스타 오믈렛이다.

최상급 세부르 캐비어가 듬뿍 올려져 있었지만 모습만 봤을 땐 그다지 비주얼이 좋아 보이진 않는다. 더군다나 랍스타도 얼마 들어가지 않았으며 향신료를 사용한 것도 레이먼드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최상급 재료를 사용했다고 해도 오믈렛은 오믈렛일 뿐 크게 다를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입 맛을 보게 된 레이먼드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뱉어냈다.


"아.. 뭐지 이 맛은."


이럴 수가.

극상의 음식을 먹게 되었을 경우 혀에 닿는 순간부터 그 대단함이 느껴진다고 하더니 이게 딱 그런 경우가 아닌가.

탱글탱글한 캐비어와 랍스타가 조화된 이 오묘한 맛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며 적절하게 간을 맞춘 밥알이 혀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어찌 이걸 오믈렛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건 요리가 아닌 예술의 경지였다.


"이게 정말 오믈렛이 맞는가?"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니네. 이 요리 이름이 뭐라고 했지?"

"랍스타 프리타타 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오믈렛으로 저녁을 맞이한 레이먼드는 체면도 차리지 않고 허겁지겁 음식을 흡입했다. 본래 한 수저씩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미식가 다운 모습을 보여주던 그였지만 입안 가득 느껴지는 행복감은 단숨에 그를 푸드파이터로 만들었다.


"후우.."


말 그대로 정신없이 식사를 마친 그는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건 단지 배가 불러서가 아니다. 마치 한편의 뛰어난 연주를 듣고 밀려드는 감동에 객석을 떠날 수 없는 경우와 흡사했다.


"식사는 만족하십니까. 레이먼드님."

"아아 그래. 훌륭한 요리였네."


식사 후 늘상 하던 대로의 수순. 간단한 소감과 피드백을 통해 더 나은 식사를 제공하고자 하는 인사치레 같은 대화였다. 하지만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식사는 만족하셨나요. 레이먼드님."


갑자기 끼어든 제이앤의 발언에 레이먼드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분명 그녀를 피아니스트 안드로이드라고 소개했거늘. 에이커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앞선다. 그저 평범한 인사라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그 그래 제이앤. 맛있게 먹었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내일 아침 메뉴는 크림치즈와 리즐링 젤리가 들어간 베이글입니다."


이런 젠장. 저놈의 메뉴 브리핑은 어떻게 없앨 방법이 없는 것일까. 이건 누가 봐도 식사를 담당하는 가사 도우미처럼 보이는 행동이잖아.

흘끗 에이커의 눈치를 살피던 레이먼드는 변명이라도 하듯 큰 소리로 말했다.


"하 하하! 이제 에이커가 왔으니 더 이상 식사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제이앤 자네는 앞으로 본분에 맞게 피아노에만 전념하게나."


피아니스트 안드로이드가 식사 준비까지.

옵션의 추가를 통해 몇 가지 설정을 바꾸는건 가능했지만 문화 예술 활동을 하는 안드로이드가 요리까지 겸하는 경우는 없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에이커는 곧바로 레이져 스캐닝을 가동시켜 제이앤의 정보를 추가적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모델명 JN-7. 추가옵션 검색.]

[내용 확인불가. 시스템 분석 요망.]

[사이버트로닉스에 연결합니다.]


결국 제이앤의 개념 없는 행동은 에이커의 의심을 사게 되었고 본사를 통해 그녀의 정보 분석을 요청하려는 순간이었다.


"안 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레이먼드는 있는 힘껏 팔을 휘둘러 에이커의 뒤통수를 갈겼다.

콰앙 둔탁한 쇳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 퍼졌고 저릿한 충격이 전해오자 레이먼드는 정전기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움츠렸다.


[삐리릭! 연결이 취소되었습니다.]


기계는 쳐야 말을 듣는다는 레이먼드의 구시대적인 사고방식 덕분에 다행히 본사와의 연결을 막을 수 있었다. 정보를 전송하는 도중 외부 충격에 의해 요청이 취소된 것이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에이커는 고개를 돌려 레이먼드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레이먼드님."

"크윽 아무것도 아니네. 벌써 모기가 있는 모양이군."


이제 막 꽃샘추위를 끝낸 초봄에 모기가 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마땅한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던 레이먼드는 딴청을 피우며 모기 쫓는 시늉을 했다.


"금일부터 탄소 섬유 방충망을 가동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공기 흡수율 85% 빛 투과율 78%로 설정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레트로 감성을 표방한 자연 친화적 저택이라고 해도 편의성을 위한 디지털 문명의 흔적까지 모두 지울 수는 없었다.

적절한 온도를 유지시켜주는 원자로 냉난방 시스템이라던지 정원의 병충해 피해를 방지하는 디텍트 하우징 시스템. 그리고 투명한 탄소 입자로 구성된 방충망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방충망을 벌써?"

"모기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랬지. 알겠네 설치하도록 하게나."


어느새 에이커는 저택 곳곳을 돌며 스크린 도어 설정을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제야 레이먼드는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몸을 날려 신경을 분산시킨 덕분에 어찌저찌 위기는 넘겼다지만 제이앤의 데이터를 수정하지 않는 이상 언제고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고."


의심하는 자와 숨기려 하는 자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

자의도 타의도 아니게 벌어진 이상야릇한 삼각 관계.

새로운 가사 도우미를 들인다는 게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적과의 동침 속에서 아슬아슬한 신경전을 통해 정체를 숨겨야하는 스릴러 영화를 찍게 된 레이먼드는 복잡한 심경에 크게 몰아쉰 숨을 뱉어냈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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