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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피아니시모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크로노미터
작품등록일 :
2020.05.11 10:36
최근연재일 :
2020.05.22 18:4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3,382
추천수 :
171
글자수 :
108,781

작성
20.05.20 18:21
조회
77
추천
2
글자
12쪽

제19장.

DUMMY

조용하면서도 낮은 목소리.

평소 묵직하고 중후했던 에이커의 말투가 아니다.


"누 누구요 당신은!"


놀란 레이먼드가 주춤 뒤로 물러서자 의문의 목소리가 그를 안심시킨다.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이렇게밖에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중히 사과를 마친 남자는 바로 자신을 소개한다.


"저는 군 과학 연구소의 보스코비치 박사입니다. 현재는 사이버트로닉스에서 안드로이드를 연구하고 있죠."


순간 사이버트로닉스란 말에 레이먼드는 움찔했다.

어떻게 그가 에이커의 몸을 빌려 말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보단 왜라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혹시 제이앤 때문일까.


"박사가 나한테는 무슨 볼일로. 아니 그보다 왜 이런 식으로 연락을 했는지.."


마치 빙의라도 들린 사람처럼 행동하는 에이커의 변화에 식겁했던 건 사실이다. 첨단 디지털 사회라고 귀신이 사라진건 아니니까.

7G 초고속 음성 지원은 기본. 다차원 영상 메시지에 홀로그램 화상 회의까지 가능한 세상에서 굳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놀래킬 필요가 있었을까.


"많이 놀라셨나보군요. 일반적인 방법으론 연락을 취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놀랐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점잖은 목소리라 어느 정도 텐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할머니나 어린아이 목소리였다면 화들짝 손에 집히는 물건들을 모두 던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궁금하군요. 왜 평범하게 연락을 할 수 없었는지 말입니다."

"그건 감시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시라는 말에 레이먼드는 또 한 번 놀랐다. 아무래도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한 그는 박사에게 되물었다.


"감시라구요?"

"그렇습니다. 이미 알고계실 텐데요. 세계 전역에 깔려있는 초소형 마이크로 드론의 존재를 말입니다."


나노 테크놀로지 마이크로 칩이 내장된 초소형 드론 Cx30.

산 속 외진 곳에 위치한 레이먼드의 저택은 예외였지만 사람들이 밀집해있는 중소규모 이상의 도시에서는 손가락 마디만한 작은 드론들이 모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한 녀석들은 각 지역 상공에 배치되어 수천배율에 달하는 줌 기능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던 것이다.

레이먼드 역시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이내 의문을 품었다.


"그 드론들은 국가에서 범죄 예방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게 아닙니까."

"물론 형식상은 그렇죠. 하지만 그 정보가 저희 사이버트로닉스에까지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셨군요."

"아뇨 그 또한 알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주문시 개인별 맞춤 제작을 위한 정보로 사용되는 게 아니었던가요."

"그런 의도라면 문제될게 없겠죠. 하지만 드론들은 감시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뭐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저도 내막을 알게된 건 얼마되지 않았으니까."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한다고 해도 그들의 속내와 내부 비리까지 다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한들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요소가 있을까?

라고 레이먼드는 생각했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비록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닐지라도 밝히지 못할 비밀이 있는 상황이라면 드론의 감시는 가장 골치 아픈 존재가 될 것이다.

마치 제이앤의 일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혹시..."

"눈치가 빠르시니 이야기가 쉽군요. 맞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레이먼드님 댁으로 배송된 가사도우미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을 말이죠."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그녀가 이상 징후를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니. 하지만 이곳은 외진 곳이라 감시형 드론이 존재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알았을까.


"기계는 종종 말썽을 일으키죠. 수만 대가 넘는 초소형 드론들도 그렇습니다. 얼마 전 시스템 오류로 정찰 구역을 벗어난 드론중 하나가 이 저택 부근까지 오게 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그녀의 이상 징후를 발견할 수 있었죠."


운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자아를 표출한 건 몇 번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모습이 하필 드론에 의해 전송되고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왜 그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모른 척 묵인하고 있었을까.


"하나만 묻죠. 그럼 정말로 그녀가 자의식을 가졌다는 소리인가요?"

"아마 전수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제 견해는 그렇습니다. JN-7은 자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럴 수가.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표정과 말투 그리고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며 했던 모든 행동들이 자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확신하지 못했던 의구심이 현실로 다가오자 레이먼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왜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

레이먼드는 제이앤을 바라보며 물었다.


"박사의 말이 정말인가 제이앤? 자네도 이런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는지 묻고 있는거네."


그러자 제이앤은 커다란 눈꺼풀을 내렸다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조만간 따로 말씀드리려 했는데 죄송합니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지? 날 속이고 언제까지 연기를 할 셈이었나."

"그건. 확신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확신이라고?"

"레이먼드님께서 과연 제 뜻에 동참해 주실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혹시나 저 때문에 위험에 처하지는 않을지 우려했기 때문이죠."


모든 것이 밝혀진 그녀는 확실히 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 보인다.

말투와 억양 그리고 표정과 제스처까지. 로봇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과 확실한 의사 표현으로 자신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설명은 금세 레이먼드를 이해시켰다.


"그랬군. 내가 미덥지 못하긴 하겠지. 나 같은 노인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더군다나 인간처럼 이기적인 동물도 없을 테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군."

"그런 뜻이 아닙니다. 레이먼드님은 그 누구보다 다정하고 따뜻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레이먼드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헛소리 말게. 이 나이에 내가 싸울 수 있는것도 아니고 어떻게 자네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근력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마른 팔과 앙상한 몸.

자신의 몸을 내려 본 레이먼드는 새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왜 자신은 아무것도 누리려 않고 초라한 모습으로 생을 연명하고 있는 것일까.

매번 순리를 거스르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우던 레이먼드는 처음으로 젊어지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다.


"레이먼드님의 피아노 연주가 필요합니다."

"내 피아노 연주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내 주먹이 필요한 게 아니라 연주가 필요하다고?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녀의 말에 레이먼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머지는 따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잠시 남겨둔 채 돌아선 제이앤.

그녀는 이내 박사에게 질문한다.


"보스코비치 박사님이라고 하셨나요."

"자네가 JN-7이군. 직접 대화를 나눠보는건 처음인걸."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제 오류를 알고도 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죠?"


제이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인간을 기반으로 안드로이드가 만들어졌고 또 스스로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사이버트로닉스는 법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굳이 튜링 테스트를 실시하지 않더라도 자신만 잡아들인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텐데 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일까.

그러자 박사는 그녀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정확히 말하면 사이버트로닉스는 아직 자네의 비밀을 모른다네. 그걸 알고 있는 것은 나뿐이지."

"네? 그게 무슨 소리죠 방금 전 분명.."

"나는 사이버트로닉스에 소속된 과학 연구소의 박사라네. 안드로이드는 물론 모든 기계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고장 수리 또한 내가 해결하고 있지. 처음 드론의 오류를 발견한 건 나였고 영상을 확인한 것도 나였다네. 나는 자네의 모습을 보고 즉시 이상 유무를 의심했지. 그리고 계속된 관찰을 통해 자의식을 가졌다고 결론을 내린걸세. 결국 이 모든 사실은 나만 아는 비밀로 유지했지."


이는 다행일까 아니면 또 다른 위험일까.

아직 그들의 표적이 되지 않은 건 달가운 소식이었지만 자신에 대해 광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박사의 의도가 궁금했던 제이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죠. 저를 감싸기 위해선가요?"

"착각하지 말게나. 과학자들은 쓸데없는 동정에 치우치지 않아. 나는 단지 궁금했을 뿐이네. 로봇 생명공학에 인생을 건 학자로서 과연 자의식을 가진 안드로이드가 어디까지 성장하고 진화할지."


결국 이 모든 비밀의 최초 발견자인 보스코비치 박사는 그녀를 연구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동안 철저히 숨겨왔던 것이다.

그의 의도가 그다지 순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악의 경우는 면한 듯하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상부에 보고했다면 즉시 회수되어 폐기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랬군요. 그런데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꾸신 거죠?"

"그건 자네의 정체가 곧 탄로 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지."


박사의 말에 제이앤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아직 싸움을 시작하기엔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들과 맞서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일이 진행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박사는 이어 설명을 계속했다.


"어제 공원에서 있었던 일. 아마 모든 정황이 드론을 통해 사이버트로닉스에 전송 되었을 것이네. 이제 그들이 모든 걸 파악하는 건 시간 문제겠지."

"하지만 그건 공원에 있었던 모든 안드로이드가 겪은 현상일 텐데 굳이 저라고 단정짓는 이유는 뭐죠?"

"그새 잊었는가? 자네가 보여준 다중 접속의 동기화. 실로 대단했지. 나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었으니. 하지만 그게 독이었어. 이제 곧 결과가 확인되면 즉시 자네를 회수하려 할 걸세."

"그럼 혹시 피아노의 비밀까지 알게 된 건.."


그것만은 제발 아니길 바랬다.

레이먼드까지 위험해 지는 것은 원치 않았으니까.


"글쎄 그건 아마 모를거야. 나도 그 사실을 알기까지 많은 관찰과 연구가 필요했으니까."


그때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 없던 레이먼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피아노의 비밀이라니."


그러자 박사는 슬슬 원하는 바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레이먼드라고 하셨죠?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JN-7을 저에게 보내라는 겁니다."


하지만 레이먼드는 그의 제안을 반문한다.


"그건 곤란하군요. 당신에게 그녀는 실험용 몰모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 어때 내 말이 틀린가?"


정곡을 찔린 박사는 최악의 상황을 끄집어내어 그의 선택을 유도했다.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군요. 그녀가 연구 대상이라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사이버트로닉스에 붙잡혀 폐기되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레이먼드는 고민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 될 수 있는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얌전히 실험체가 되어 안전을 보장받는 게 옳은 것일까.

쓴 입맛을 다시던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결국 사이버트로닉스도 박사 당신도 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소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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