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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피아니시모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크로노미터
작품등록일 :
2020.05.11 10:36
최근연재일 :
2020.05.22 18:4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3,386
추천수 :
171
글자수 :
108,781

작성
20.05.12 07:57
조회
187
추천
9
글자
10쪽

제5장

DUMMY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혹시나 잘못 들은 건 아닐지 레이먼드는 재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피아노를 가르쳐 주십시요. 레이먼드님."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레이먼드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분명 안드로이드의 모든 의사를 결정짓는 건 감성 지능 알고리즘.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전에 입력된 코딩값 내에서 선택 사용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방금 전 그녀가 보여준 말과 행동은 자아가 있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지시한 사항을 어기고 독단적으로 행동했으며 이제는 내게 피아노를 배우려 하고 있다.


"이런 경우가 있나. 허허."


놀랍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두렵기도 했지만 레이먼드는 웃음부터 나왔다. 보통 이런 경우 오류 신고를 하게 되면 본사로부터 새로운 안드로이드와 보상금까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레이먼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사에 넘길 경우 정밀 검사를 통해 결함을 수리하여 재출고 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녀는 폐기될지도 모른다. 비록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녀 덕분에 마리안느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물론 로봇이 인간을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닫혀 있던 자신의 마음속으로 날아든 나비였고 수십 년간 잊고 지낸 웃음을 돌려준 장본인이다. 마리안느를 떠나보내고 40년. 아무와도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레이먼드는 누군가의 손길을 바라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왜 그러십니까. 레이먼드님."


생기 있는 피부 크고 반짝이는 눈망울 손을 대보면 체온까지 느껴진다.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분해되어 기계 부품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차마 눈을 마주할 수가 없다.


"피아노는 가르쳐줄 수 없으니 가서 식사나 준비하게."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유를 말씀해주십시요."

"몰라서 묻고 있는 건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거야?"


그러자 그녀는 여느 때처럼 자신의 프로필을 브리핑했다.


"모델명 JN-7, 베른가 17번지에 배정된 가사도우미 안드로이드. 저는 이 저택의 유지와 관리 및 레이먼드님의 케어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걸 보니 방금 전 오류는 일시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는 건 꾸준한 자가 복구로 관리하면 치료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때 불현듯 그녀는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뭐..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일어나지 못해?"

"피아노.."


또 다시 오류가 발생했는지 말끝을 흐리던 그녀는 양손을 건반위에 올렸다. 그리곤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피아노를 대하듯 뚜당거리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가르쳐 달라곤 했지만 그녀는 지금 배우고 싶은 게 아니라 치고 싶었던 것이다. 누가 대신 말해주는 게 아닌 그녀 자신이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만! 그만두지 못해?"


휙 레이먼드는 그녀의 팔목을 낚아채며 저지했다. 하지만 그는 잡고 있던 팔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가에 촉촉한 무언가가 맺혀 있던 것이다.


#


"후우.."


파이프 사이로 거친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상황 정리가 필요했던 레이먼드는 JN-7과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았다. 순간 그녀가 진짜 인간이 된 것은 아닐까 우려했지만 방금 전 보였던 눈물은 기기 내부의 튜브를 연결시키는 엔트리플러그 액체가 잠시 스며 나온 것 뿐이었다. 스윽 돌아보니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표정했다.


"이걸 어쩐다.."


지금 그녀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한건 분명하다. 하지만 폐기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본사에 연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두자니 집안 꼴이 개판이 되는건 둘째치고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될지 모른다. 과거 마리안느를 살해했던 안드로이드처럼 폭주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아직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는가?"

"그렇습니다 레이먼드님."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레슨 상대가 로봇이라니. 레이먼드는 좀처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나만 묻지. 갑자기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뭐지? 왜 내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것인지 묻고 있는 거라네."


그러자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가 답했다.


"제 안의 또 다른 데이터가 행동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데이터라고?"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마다 접하게 되는 이상한 광경. 마치 환영처럼 보이는 의문의 영상은 그녀의 기억 회로에 오류를 일으켰고 이내 데이터베이스에 침입하여 명령을 강요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럼 삭제하면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지?"

"저장 데이터 1번 섹터에 포함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안드로이드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중요도에 따라 섹터를 구분한다. 대체로 인간을 존중하고 폭력을 금지하는 내용과 더불어 일상에 필요한 기본적인 데이터는 모두 1번 섹터에 저장되어 있었고 그밖에 부수적인 데이터는 각각 2번과 3번 섹터에 따로 구분해 놓았다. 삭제가 가능한건 1번을 제외한 2번과 3번 섹터의 데이터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오류로 발생한 베드 섹터의 메모리가 1번 섹터로 통합 지정된 것이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삭제가 안 된다는 소리군."


곰곰이 생각하던 레이먼드는 못내 그녀의 요구를 받아 들였다.


"그래 알겠다 피아노를 가르쳐 주도록 하지."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레이먼드님."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치곤 너무 영혼 없는 반응에 조금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안드로이드였으니까.


"대신 나도 한 가지 제안을 하지."

"말씀하십시요 레이먼드님."

"레슨은 하루 한 시간. 그밖의 시간은 저택 관리에 전념하는 거다. 본분을 잊지 말라 이거야. 자네는 내 저택의 가사도우미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레이먼드님."


또 영혼없은 대사. 정말 믿어도 되는 것인지 그다지 신뢰가 가진 않는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계속 그녀가 이 저택에 머물게 하기 위해선 말이다.


"그럼 레슨은 내일부터.."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피아노 앞으로 다가간 그녀는 어서 오라는 듯 손을 뻗어 자리를 지정했다.


"저는 준비되었습니다. 먼저 앉으시죠 레이먼드님."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는 레이먼드.

그는 짧게 숨을 뱉고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오랫동안 디지털 문명을 배척하고 안드로이드를 증오했던 그가 이렇게 레슨까지 결심한 이유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로봇이 마리안느를 대신할 수는 없었으니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낄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닫혀있던 자신의 마음을 누그러뜨렸기 때문도 아니다. 그럼에도 레이먼드가 레슨을 결정한 이유는 오직 그녀가 보여준 에티튜드에 한했다.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 그건 피아노를 대하는 태도와 열정, 배우고자 하는 의지 등이 우선적으로 필요했고 재능은 이후의 문제였다.


그녀는 마치 갓난아기를 다루듯 섬세하고 소중하게 건반을 두드렸다. 그리고 자신이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는 사람 못지않을 정도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이런 점들만 놓고 보면 최소 아날로그 피아노를 무시하는 사람들보다 수백 배 기특해 보이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게 아닐까.


"우선 레슨을 시작하기에 앞서 분명하게 해둘 것이 있네. 앞으로 이 시간만큼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게나."

"입력시켜 두겠습니다. 레이먼드님."

"아니 내 이름말고 선생님이라고 하라니까."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너는.. 부르기 쉽게 이름을 하나 지어야겠구나."

"제 이름은 모델명 JN-7입니다."


그동안 그녀가 로봇이라곤 생각하기 힘든 감정을 표현할 때가 종종 있긴 했지만 100% 사람처럼 행동하지는 못했다. 어느 순간은 꽃을 보며 해맑은 기쁨을 표현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슬픔을 표현하더니 지금은 전과 다름없는 전형적인 안드로이드다. 어떠한 경우에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무슨 스위치라도 있는 것일까?


"흐음 뭐라고 하는 게 좋으려나."


곰곰이 생각하던 레이먼드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JN이니까 이니셜을 따서 '제이앤'이라고 하지. 어떤가."


레이먼드가 지어준 그녀의 이름 제이앤. 처음 이름을 갖게 된 그녀는 모델명이 아닌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나직이 불러보았다.


"제이앤."

"그래 네 이름은 이제부터 제이앤이다."


자신이 지어준 이름이지만 레이먼드는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드로이드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또 이름까지 지어주다니 누가 믿기라도 하겠는가.


하지만 레이먼드는 알지 못했다. 그저 신기하게만 보이는 이 모든 상황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말이다. 안드로이드가 원하는 대로 감정을 표현하고 학습 의지를 보인다는 건 과거 문제가 되었던 초기 모델명 TN을 폐기시키게 된 이유와 일맥상통 하는 내용이었다.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싸움 이런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건 레이먼드 만이 아니었다. 지금 이순간 제이앤은 이름이 생겼다는 사실에 레이먼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쁩니다 레이먼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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