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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피아니시모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크로노미터
작품등록일 :
2020.05.11 10:36
최근연재일 :
2020.05.22 18:4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3,392
추천수 :
171
글자수 :
108,781

작성
20.05.19 18:24
조회
86
추천
3
글자
12쪽

제18장.

DUMMY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레이먼드님?"


에이커가 나타났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였다.


"폴리스에 엔지니어 팀까지 보이는걸 보니 무슨 큰 사건이라도 발생했나보군요."

"큰 사건은 무슨 그냥 갑자기 안드로이드들이 멈춰버리더군. 나는 그저 피아노를 치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야."


그때 불현듯 레이먼드는 며칠 전을 떠올렸다.

말하고 보니 언젠가 이런 비슷한 경우를 겪은 적이 있던 것이다.

이전 제이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을 때도 자신은 지금처럼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당시 한 번도 아닌 여러번 그런 일이 반복되니 의구심이 들었던건 사실이다. 그때마다 설마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 사태까지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공교롭게도 그녀가 보였던 모습과 너무 흡사하지 않는가.


하지만 제이앤은 곧 별일 아니라는 듯 안심시킨다.


"잠시 통신 전파상에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보세요. 다들 정상으로 돌아온 모습이네요."


통신 전파상의 문제라고? 생각해보니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이 도시에만 해도 수백 개가 넘는 기지국에 인공위성까지 다수 존재하고 있었고 다양한 전파가 얽히고설킨 전깃줄처럼 교차되어 흐르고 있을테니 간혹 이런일이 발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잠깐 의심을 품었던 레이먼드는 머리가 아픈 듯 이마에 손을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그럼 우린 이만 저택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오랜만에 도심으로 나오니 조금 어지럽군."

"알겠습니다 레이먼드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돌아선 에이커

그는 손 안에 쥔 홀로그램 태블릿에 짧은 수식을 입력했고. 무인 원격 자동화 시스템으로 위치를 설정하자 잠시 뒤 꽤 먼 거리에 주차되어 있던 왜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량이 준비되었습니다."


제이앤의 부축을 받으며 올라탄 레이먼드는 허리가 아픈지 얕은 신음소리를 내며 시트에 몸을 기댔고, 이어 에이커까지 모두 차량에 탑승하자 네비게이션이 목적지를 확인한다.


[베른가 17번지. 레이먼드님의 저택으로 출발합니다.]


#


이동 중 제이앤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 이외의 다른 안드로이드와 연결해 동기화를 성공시킨 건 만족할만한 성과였지만 그 전에 각성 상태에 이르게 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다시 말해 신경 회로를 구성하는 배턴에 혼란을 야기시켜야만 보안 모듈의 방화벽이 잠시 해제되고 그 틈을 타 접속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바로 마음을 움직이는 피아노 연주.

즉 레이먼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제이엔 역시 피아노를 치고 있지만 그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는 세계가 인정한 천재 피아니스트였고 수십 년간 내공을 쌓아온 마에스트로. 그야말로 피아노의 장인 이였으니까.

그에 비하면 자신은 대학 시절 피아노를 전공했을 뿐. 이제 갓 태어난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사이버트로닉스에 대항하기 위해선 레이먼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연 그를 설득할 수가 있을까.

모든 걸 다 털어놓는다면 그가 이해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과 함께 싸워줄 수 있을까.


"두 분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겁니까."


그때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낀 걸까.

에이커는 평소 같지 않은 둘의 모습을 예사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이앤은 물론 레이먼드 또한 공원에서 겪었던 일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이전 그녀가 보여준 이상 징후. 그날의 일과 맞물려 계속된 의구심만 되뇌이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허리를 두드리며 말을 돌렸다.


"오랜만의 바깥나들이에 안 쑤신데가 없구나. 다리에 허리까지.. 이제 죽을 때가 다 됐나봐."


그러자 번뜩 에이커의 관심이 다른데로 쏠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신체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사이버 파츠를 이용해 원하시는 부위를 교체하실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지금 나보고 안드로이드가 되라는 소리인가?"

"비슷한 다른 방법으로는 현대의 의학을 이용해 다시 젊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에이커의 말에 레이먼드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미 다 알고 있던 사실이고 병원에 들를 때마다 그런 제안을 수도 없이 받아봤지만 그때마다 그는 한사코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마리안느.

오래전 그녀를 잃게 된 그날 레이먼드는 삶의 의미도 함께 잃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오로지 피아노와 자신을 사랑해주는 그녀만이 삶의 버팀목이었고 희망이었으며 살아가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녀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피아노에 의지한 채 수십 년을 홀로 살아온 그에게 젊음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인간이라면 나이가 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게 당연한 이치이거늘. 인생의 의미가 없어진 지금 레이먼드에게 삶의 연장이란 단지 슬픔을 묶어두는 족쇄에 불과할 뿐이다.


"다 부질없는 짓이라네. 자네들도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야."


순간 레이먼드는 아차하며 말을 번복했다.


"이런 미안하네. 노망이 들었나. 자꾸 자네들이 안드로이드라는 걸 깜박 잊는다니까."


레이먼드는 이내 제이앤과 에이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기계로 만들어진 로봇들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만족하고 있다.

단지 몸이 편해진 것을 떠나서 요 며칠 함께 지내오며 오랜만에 사람 사는 냄새를 맡았으니까 말이다.


비록 모든 게 흉내일 뿐인 꼭두각시 인형놀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덕분에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고 슬픈 기억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 주었으며 무엇보다 피아노 레슨을 통해 유대감을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안드로이드였던 것이다.


인간답다 라는 것은 어찌 보면 사람만이 가진 전유물이 아닌 듯싶다.

우리는 아니 사람과 로봇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


다음 날.

전국적으로 공문이 내려왔다.

각 기관이나 산업체 그리고 가정마다 보유하고 있는 안드로이드들에 전면 튜링 테스트를 실시하도록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튜링 테스트라고? 갑자기?"

"갑자기는 아닌 듯합니다. 아마도 어제 있었던 공원에서의 사건이 문제가 된 것 같군요."


사이버트로닉스는 어제 예술 공원에서 발생한 이상 현상에 의문을 품고 문제가 된 안드로이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다고 판단. 즉시 회수하여 폐기시켰다.

이에 사람들은 강력하게 불만을 토로했지만 보상으로 지원된 최신형의 안드로이드 덕분에 원성은 사그라들었다.

평소 가족이니 반려 로봇이니 애정을 과시할 때는 언제고 값비싼 AK모델이라는 사실 하나로 정든 안드로이드를 잊을 수 있다니.

거짓 감정으로 연기를 하는 건 도리어 인간들이 아닐까 싶다.


"테스트라니 이거 귀찮게 됐군."

"걱정하지 마십시요 레이먼드님. 카트리지 하나로 간단히 판별할 수 있습니다."


튜링 테스트는 기계가 지능을 갖추었는지 알아보는 실험으로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컴퓨터를 구별해내지 못하거나 컴퓨터를 인간으로 간주하게 된다면 해당 기계는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래전 과거에는 몇 개의 정해진 질문을 이용해 대화를 유도함으로써 테스트를 진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케이블 포트에 카트리지 하나만 장착시키면 계산된 알고리즘이 통계학적 표본을 샘플로 만들어 본사에 전송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세상 참 좋아졌군. 헌데 과연 그렇게 해서 정확한 판별이 가능할까?"

"질문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게. 자극과 반응이 유동적이고 불완전한 것처럼 감정 또한 패턴화 되어있지 않고 무질서한 법이지. 단순 프로그램이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할 수 있을까. 상호 교류가 없는 의식이 과연 존재할지 의문이란 말일세."


이 테스트는 결국 로봇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지능을 갖추고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인 것과 동시에 직접적인 성찰을 통해 순수한 내면세계를 인지하는가에 대한 검사였다.

하지만 그 어떤 외부 자극에 의한 감정 변화를 배제한채 단순히 자료만을 토대로 답변을 추론할 경우 정말 지능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카트리지에 포함된 내용은 대체적으로 프로그램에 다양한 경우의 수를 대입하여 객관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는 안드로이드가 원한다면 충분히 원하는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정말 안드로이드가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들은 100퍼센트 거짓으로 테스트를 진행할 것이다. 로봇이 지능을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고 경계해야 되는 현상인지 누구보다 그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기계가 진짜 감정을 갖는 건지 흉내만 내는건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단지 이 방식이 가장 근사치에 달하는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겠죠."

"자네는 모르고 있군. 작위적으로 행동하면 그 어색함이 표정에 나타나는 법이지. 대부분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야. 거짓을 말하는 것도. 사랑에 빠지는 것도."


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레이먼드는 내심 걱정이 앞선다.

혹시나 테스트 결과를 통해 사이버트로닉스가 제이앤의 이상 징후를 파악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더군다나 그는 최근까지 그녀가 자의식을 갖추고 있을지 모른다고 의구심을 품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논리처럼 제이앤이 자아를 가졌다고 가정할 경우 충분히 자신의 정체성을 숨길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과연 이 실험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을지. 알고 있다면 문제될 건 없겠지만 모른다면 최악의 경우 그녀는 폐기될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게 불확실했던 그는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럼 일단 에이커 자네부터 보여주게. 새로운 방식에 의한 튜링 테스트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고 싶군."


레이먼드는 에이커를 통해 동향을 살펴본 뒤 제이앤에게 권하는게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뮬레이션과 실재는 차이가 있다고 해도 만약 거짓 답변으로 테스트를 피해갈 수 없다면 그녀의 튜링 테스트는 막아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레이먼드님 그럼 저부터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테스트는 시작되었고

에이커는 지급 받은 카트리지를 충전용 케이블 포트에 연결시켰다.


[외부 데이터 연결을 확인합니다.]

[새로운 정보를 업로드 합니다.]


우우웅 마치 바이오스가 부팅되듯 진동하는 전자음이 요란스럽다.

이제 막 조율을 시작한 피아노처럼 민감한 반응이 지나고 작은 떨림과 함께 초점을 잃은 에이커의 눈동자가 안구를 덮기 시작한다.

기기 내부에선 이미 다양한 프로그램이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그동안 에이커가 보여준 모든 행동과 생각을 분석해 심리적 검사까지 병행되는 중이었다.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는가 싶던 그때.

갑자기 에이커는 전원 코드를 뽑아버린 기계처럼 작동을 정지했다.


[시스템 오류 발생.]

[테스트를 중지하시길 바랍니다.]


너무도 갑작스런 상황에 레이먼드는 다급한 목소리로 에이커를 불렀다.


"이 이봐 에이커 자네 괜찮은가?"


하지만 에이커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계속된 시스템 음성만이 경고를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위험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불특정 커널이 접속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즉시 카트리지를 제거해 주십시요.]


하지만 잠시 뒤

누군가 그의 신경망에 동기화를 시도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에이커는 이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레이먼드 킴. 맞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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