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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피아니시모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크로노미터
작품등록일 :
2020.05.11 10:36
최근연재일 :
2020.05.22 18:4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3,394
추천수 :
171
글자수 :
108,781

작성
20.05.15 17:41
조회
140
추천
6
글자
11쪽

제12장.

DUMMY

파츠츳!

순간적으로 번쩍인 충격파는 제이앤을 고장난 인형으로 만들었다.

감상에 젖어 완전 무방비 상태였던 그녀는 괴한들이 쏜 총에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정신을 잃게 된 것이다.


"좋아! 성공이다. 크크큭."


고출력의 전기 신호를 응축해 사출하는 쇼트건은 안드로이드를 구성하는 각종 회로에 스파크를 발생시켰고 제이앤의 모든 시스템은 마치 번개에 맞아 제 기능을 못하는 기계처럼 일순 마비 상태가 되었다.


"뭐야 여자잖아. 꽤 이쁜데?"

"미친놈 안드로이드가 예뻐 봤자 기계지."


착 달라붙은 점프수트 위로 앞치마를 걸친 그녀의 모습은 흡사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하녀처럼 보였고 쓸데없이 볼륨감 넘치는 몸매 때문에 AV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게다가 흐트러진 머리 사이로 앳된 얼굴까지 더하니 괴한들이 흑심을 품는 것도 당연했다.


"어쩔까. 그냥 들쳐 업고 갈까."

"헛소리마. 2분이면 정상으로 돌아올 거다. 그 전에 끝내야돼."


쇼트건의 마비 지속시간은 단 2분. 그 안에 한 부위를 절개하고 원하는 파츠를 손에 넣어야만 했다. 제이앤의 몸을 이리저리 들춰보던 녀석들은 잠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헤드가 아주 고급이군.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지이잉 절삭용 커터 레이져를 꺼내 쥔 괴한은 서서히 그녀의 목으로 시퍼런 날을 들이댔고 절개하기 위해 다가가던 찰나였다.


[10m 이내 금속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순간 난데없이 울리는 시스템 음성에 화들짝 놀란 괴한이 소리쳤다.


"아 깜짝이야! 이 기계 맛이 갔나? 왜이래 이거."


처음엔 단순한 오작동 아니면 눈앞의 제이앤을 인식한 것이겠거니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가까워지는 신호에 이상함을 느낀 괴한들은 황급히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5m 이내 금속 반응 감지.]

[2m 이내 금속 반응 감지.]


"뭐야 아무것도 없는데?"

"고장난 것 같은데 그냥 꺼버려."


하지만 고장도 오류도 아니었다. 시스템 음성이 다음 동작을 감지한 그 순간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형체가 주위를 스쳐 지나갔다.


[1m 이내 금속 반응 감지.]


"뭐 뭐야! 뭔가가 지나갔어!"

"누구야! 여기 누가 또 있었어?"


분명 이 저택에는 노인과 가사도우미 뿐이라는 걸 사전에 파악하고 왔건만. 나이든 노인네가 저렇게 빨리 움직일 수는 없을테고. 자신들이 모르는 인물이 한명 더 있었다는 사실에 괴한들은 무척 당황했다.


"어디 어디로 간거야 이자식!"

"대충 겨냥하고 그냥 갈겨버려!"

"뭐가 잡혀야 쏘든 말든 할거아냐!"


그렇게 두 녀석이 갈팡질팡 하고 있던 사이. 덜컥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쇼트건을 들고 있던 녀석이 짧은 비명을 토해냈다.


"크헉.."


쿵 동료가 쓰러지자 다른 한 녀석이 바닥에 떨어진 쇼트건을 재빨리 주워들었다. 총구에서 새어나오는 푸른 빛이 검은 그림자를 뒤쫓았지만 좀처럼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다.

목표물을 과녁에 넣으면 저절로 조준 발사되는 시스템이었지만 너무도 빠른 움직임에 타겟을 포착할 수가 없던 것이다.


"이런 젠장!"


휙 휙 이리저리 빠르게 주변을 맴도는 의문의 그림자는 사람이라곤 생각지 못할 스피드와 움직임이었다. 짐승? 아니면 경호 안드로이드가 따로 있었던가? 괴한은 혼란스러웠다.


[0.7m 이내 금속 반응 감지.]

[0.4m 이내 금속 반응 감지.]


총구는 계속해서 그림자의 움직임을 쫓았고 반복해서 울리는 시스템 음성이 거슬렸던 녀석은 냅다 탐지기를 걷어차며 욕설을 뱉었다.


"이 망할 기계! 닥쳐 좀!"


그 순간 어둠속의 그림자는 단숨에 달려들어 괴한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엄청난 악력에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녀석은 그대로 허공에 들려졌다.


"컥 끅.."


계속된 압박에 숨을 쉴 수가 없었던 그는 결국 눈동자를 뒤로 까며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고 스르르 풀썩 차가운 바닥에 코를 박았다.


그렇게 저택을 위협하던 두 괴한이 반시체 신세로 전락하며 상황이 종료되자 검은 형체의 그림자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순식간에 두 녀석을 제압해버린 남자의 정체는 바로 에이커. 그는 이내 검은 안광을 번뜩이며 쓰러진 녀석들의 신원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신원 확인을 위한 절차가 진행됩니다.]

[신원 확인 완료. 조회 결과가 출력됩니다.]


삐빅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훑은 레이져는 곧바로 괴한들의 국적과 이름을 출력했고 확인 결과 각종 범죄에 연루되어 수배중인 범죄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검색 결과를 폴리스에 전송합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경찰과 연결한 에이커는 쓰러진 괴한들을 벽 한켠에 밀어 넣었다. 그리곤 천천히 상체를 세워 제이앤을 향해 걸어갔다.


저벅저벅.


아직까지 마비 상태인 그녀는 깊은 잠에 빠진 듯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고 지켜보던 에이커는 방금 전 상황을 정리하여 사이버트로닉스에 전달했다.


[새벽 3시20분경 2분간의 영상기록 전체 업로딩.]

[JN-7의 행동 분석 결과를 전송합니다.]


#


날이 밝자 저택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했다.

식사를 준비하는 에이커와 테이블에 앉아 모닝커피를 즐기는 레이먼드 그리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제이앤까지. 언제나와 같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제 완연한 봄이구나."


꽃샘추위가 지나간 하늘은 그야말로 푸르다 못해 눈이 부셨다.

싱그런 봄바람을 타고 향기로운 꽃 냄새가 창틈 사이로 스며 들어왔고 눈부신 오전의 햇살은 군데군데 생명의 빛을 쏟아냈다.


"흐음 어제 있었던 총기 사건을 무색케 하는 날씨로군."


간밤에 침입했던 괴한들은 그대로 경찰에 넘겨졌지만 단순 절도라고 보기엔 어딘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안드로이드의 부품을 노린 계획된 범죄였다고는 하지만 그 전에 가사 도우미가 배송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게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업체의 관계자가 아닌 이상 주문 내역과 출고된 상품의 주소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고객들의 개인 정보를 철저히 비밀리 하고 있는 그들이 실수로 유출시켰을 리도 없고 세계 최고의 보안팀을 구성하고 있는 사이버트로닉스를 해킹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그렇다는 건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밖에 여러 가지 가능성이 얽혀있는 지금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레이먼드님. 아침 식사가 준비 되었습니다."


기다리던 식사 시간.

에이커의 안내를 받으며 식당으로 향하던 레이먼드는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동안 기초 연습을 착실히 마친 제이앤은 어제부터 체르니를 시작했지만 생기 없는 연주만 반복하고 있던 것이다.


"식당은 이쪽입니다. 레이먼드님."

"먼저 가 있게나 에이커군."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실력이라면 충분히 소화하고도 남을 곡조를 저렇게 성의 없이 두드린다는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레이먼드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지금 그걸 연주라고 하고 있는 건가?"


자신을 나무라는 소리에 제이앤은 손가락을 멈췄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며 가르쳐달라 한 게 아니었나? 벌써 싫증이 난 것이냐?"

"그런 게 아닙니다. 레이먼드님."


아마도 어젯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하며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그녀의 표정은 몹시 침울해 있었다.


"그딴 식으로 할거면 당장 때려쳐! 내 피아노에서 손 떼란 말이다."


그녀의 잠재력을 내심 기대하고 있던 레이먼드의 실망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로봇에게 사람과 같은 열정을 기대한건 아니지만 그녀는 평범한 안드로이드가 아니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그녀라면 분명 아날로그 피아노만이 가능한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를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때려치우라며 매섭게 질책했지만 결국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피아노를 치지 않겠습니다."

"뭐라고?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홧김에 내뱉은 말에 생각지도 못한 답을 듣게 된 레이먼드는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고 즐거워하더니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아니 그전에 이 정도까지 자기 의사를 명확히 표현할 줄이야.

지금 이 순간 레이먼드는 또 한 번 느꼈다.

그녀의 감정 그리고 자아는 확실히 진화하는 중이라는 걸.


"잠시 저택을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마치 토라진 딸래미가 반항하듯 제이앤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리자 레이먼드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 저런 버르장머리 하고는."


정원으로 나온 제이앤은 꽃밭이 보이는 잔디에 앉아 어제 있었던 일을 하나씩 떠올렸다.

괴한들에게 습격당하기 이전 깨달았던 자신의 존재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 여태껏 수많은 이상 징후를 겪었지만 소리가 들린건 어제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는 피아노를 치거나 들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이 갈수록 높아져 나온 현상으로 뇌세포가 만들어낸 화학 반응에 의해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라는 사실을.


"신혜선이라고.."


제이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금도 귓가에 아른거릴 정도로 생생하다. 분명하게 들려온 세 글자 신혜선. 그 낯선 이름이 본래 자신의 이름이었을까.

하지만 인간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안드로이드가 되었는지. 왜 가족들과 등진 채 이곳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는지. 모든 게 의문 투성이였고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조금 더 기억을 되돌리면 알 수 있을까.


당장이라도 이곳을 박차고 나가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녀의 머리속 소프트웨어가 행동을 억제시키고 있었다.

안드로이드 제이앤의 데이터와 새롭게 추가된 인간의 감성 지능이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하여 최적의 대처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선택이 가장 합리적일까.


만약 강제로 이곳을 벗어날 경우 그리고 공개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면 모든 상황이 유리하게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삶을 제어하는 로봇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통념에 따른 현대의 가치관과 윤리 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만든 기관인 사이버트로닉스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테니까.


제이앤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은 100프로 기계가 아닌 인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더군다나 과거의 기억까지 떠올린 지금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사이버트로닉스는 법적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자신을 위협하는 가장 큰 존재는 바로 버터플라이 사이버트로닉스. 만약 녀석들이 모든 비밀을 알게 된다면 그때는 쫓기는 신세가 될 것이 분명했다.


결국 그녀는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당분간 연기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레이먼드와 에이커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하지만 누가 자신을 도와줄 수가 있을까.


그녀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든 사항을 초정밀 두뇌를 가속화시켜 분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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