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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피아니시모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크로노미터
작품등록일 :
2020.05.11 10:36
최근연재일 :
2020.05.22 18:4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3,399
추천수 :
171
글자수 :
108,781

작성
20.05.17 09:50
조회
115
추천
5
글자
11쪽

제15장.

DUMMY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

레이먼드는 상체를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더 강력한 무기를 찾고 계신 듯한데 제가 잘못 들었나요?"


선글라스에 갈색 페도라를 눌러쓴 남자.

날카로운 인상의 그는 성큼 두 사람에게 다가왔고 허공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보이자 눈앞에 하나의 영상이 그려졌다.

마치 작은 모니터를 손 위에 올려놓은 듯 생성된 홀로그램은 플라즈마 쇼트건을 비롯해 다양한 무기들을 차례대로 보여주었고 이내 남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제가 보유하고 있는 상품들입니다. 이런 곳에선 절대 구할 수 없는 무기들로 가득하죠. 물론 원하시는 쇼트건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남자의 정체는 바로 불법 무기 브로커.

일반인에게 판매를 금하는 위험 화기를 취급하는 이들은 돈만 지불한다면 어떤 무기라도 구해주는 암거래 상인이다.


본래 생활용 가전기기를 생산하던 그들은 과거 꽤나 잘나가던 기업의 엔지니어들이었다. 하지만 첨단 문명의 신기원을 이룩한 사이버트로닉스의 아성에 밀려 설 자리를 잃게 되자 뒷골목 브로커가 되어 암흑세계와 거래를 시작한 것이다.


법적으로 금지된 플라즈마 에너지의 사용부터 취급하는 모든 것이 불법이었던 그들은 최근 안드로이드까지 만들 요량으로 부품을 수집하는 중이었고 어젯밤 저택에 침입했던 괴한들 또한 이들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보아하니 브로커로구만."

"네 그렇게들 부르더군요. 하지만 저희는 어디까지나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팔고 있는 이런 장난감들로는 불안감만 더 높아지기 마련이니까요."


브로커는 그럴싸한 언변으로 설득하려 했지만 레이먼드에겐 그저 혀를 나불거리는 뱀처럼만 보일 뿐이었다.


"돈만 주면 어떤 무기라도 다 구해줄 수 있다는 건가?"

"물론입니다 어르신. 말씀만 하십시요."


거의 다 넘어왔다고 생각한 브로커는 더욱 간사한 목소리로 속삭였지만 레이먼드는 콧방귀를 뀌며 그의 말을 역설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다니 웃기지도 않는군. 자네들이 그렇게 팔아넘긴 살상 무기들이 범죄에 사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는가? 그런 것 까지 계산할 머리는 없나보지?"


그러자 정곡을 찔린 브로커는 썩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구매자의 개인사까지 관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서로 죽고 죽이는 톱니바퀴에 기름칠을 하는 격이구만. 장사는 아주 잘 되겠어."

"하하 그런 식으로 순환되는 게 바로 시장 경제 아니겠습니까."


더 이상 이런 녀석과 말을 섞는다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레이먼드는 단호한 어조로 한마디하며 돌아섰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기생충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군. 가서 다른이나 찾아보게."

"아쉽군요.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협상은 결렬되고 레이먼드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때 말없이 지켜보던 제이앤이 브로커에게 손을 내밀었다.


"명함 한 장 받을 수 있을까요."

"네?"


브로커는 당황스러웠다.

분명 안드로이드일거라 생각했던 그녀가 명함을 요구하고 있다니. 실제로는 사람이었던 것일까. 확인이 필요했던 그는 흘끗 제이앤의 목덜미를 살펴보았지만 초크에 가려 사이버트로닉스의 로고인 나비 문양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안 주실 건가요?"


재차 반복되는 요구에 얼떨결에 명함을 건넨 브로커. 그러자 제이앤은 쉿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가져가며 나직이 말했다.


"필요하면 연락드리죠."


제이앤은 생각은 이러했다.

앞으로 사이버트로닉스라는 거대한 기관에 맞설지도 모르는 지금 이 불법 무기 브로커와의 만남은 의외로 큰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이미 전 세계의 신뢰를 얻고 있는 대기업을 상대로 한 외로운 싸움에서 반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무력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언젠가 이 브로커를 찾게 될 날이 오리라 생각한 그녀는 받은 명함을 지갑 속에 고이 넣어 두었다.


#


"이거 받게나."


상점 밖으로 나온 레이먼드는 제이앤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왜 이걸 제게 주시는 겁니까."

"나보다 자네가 더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지."


결국 원하는 무기를 구하진 못했지만 그나마 값비싸고 잘나간다는 전자 수갑과 방탄 보호막을 구매한 레이먼드는 물건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라면 네 몸은 스스로 지킬 수 있겠지."

"저보다 레이먼드님이 안전이 우선입니다."


어젯밤 괴한들에 습격당해 자칫 고철 부품으로 돌아갈 뻔 한 사실을 알고있던 레이먼드는 거금을 들여 호신 장비를 구매했고 이렇게 직접 센트럴 시티까지 나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걱정하지 말게. 내 목숨 하나는 건사할 수 있으니까."


의아했다. 상대는 무장한 괴한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잘 걷지도 못하는 노인이 어떻게 저리 자신만만 할 수 있을까.

좀처럼 이해할 수 없던 제이앤은 재차 그에게 물었다.


"레이먼드님이 안계시면 제가 저택에 머무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무기를 제가 소지하고 있는 건 아무 의미가 없지 않겠나요."

"흠 틀린 소리는 아니군. 하지만 의미가 없다고 보지는 않네. 자네는 안드로이드이기 이전에 내 첫 제자니까."


제이앤은 조금 감동했다.

단지 로봇일 뿐인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고 무엇보다 제자라며 인정을 해주다니. 만약 그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을 이해해주고 같이 싸워줄 수 있을까.

언젠가 그에겐 모든 걸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에이커가 조금 늦는 모양이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걸 보니 아무래도 거래처 확보에 시간이 더 필요한 듯싶다. 본래 정확하고 확실한 일처리를 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게 로봇이라지만 에이커는 이런 면에서 유독 더 깐깐하게 느껴졌다. 이것 또한 신규 모델인 AK만이 가진 차별점일까.


결국 그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만 했던 둘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예술 공원을 찾았다.


"흠 이런 곳에 공원이 있었군."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공원.

대로변을 잇는 중앙쪽 광장에는 원형의 커다란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곳곳에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

소음과 기계 냄새로 가득한 곳에서 이렇게 숲과 나무로 둘러싸인 공간이 있었다니. 자신의 저택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나름대로 잘 갖춘 공원의 네이쳐한 모습에 레이먼드는 살짝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쪽에 앉으시죠. 레이먼드님."


가까운 벤치에 자리한 둘은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백인과 흑인에 동양인.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었고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드로이드와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레이먼드 곁에 제이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전 각 가정마다 컴퓨터가 보급되던 시절처럼 이제는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곁에 있는 게 당연시되는 시대였고 갈수록 그 비중은 높아져만 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광경은 당연한 결과였고 이제는 흔한 모습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는 건 처음입니다."

"하긴 그렇겠군. 나 이외에 다른 이는 거의 본 적이 없을 테니."


신기한 듯 사람들을 바라보던 제이앤은 문득 자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신혜선으로 불리던 시절. 자신 또한 저들과 마찬가지로 거리를 거닐고 있었을까. 평범한 한명의 인간으로 누군가의 손을 잡고 말이다.

다정히 이름을 불러주던 엄마의 목소리. 하지만 좀척럼 그녀의 얼굴이 그려지지 않는다. 조금 더 기억을 되새기면 볼 수 있을까.


"어떤가 도시에 나오게 된 소감이."


그러자 한동안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던 그녀는 부러운 듯 답한다.


"다들 행복해 보입니다. 그리고 무척 다양하군요."

"다양하다고? 무엇이 말인가."

"성별 피부색 체형 그리고 헤어스타일 누구하나 똑같은 사람들이 없네요."

"그건 당연하지 않은가. 사람이 인형은 아니니까."


기계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조차 다양한 모습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시대이긴 했지만 뭐가 그리 신기한지 제이앤은 사람들을 보고 느끼는 바를 직설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저기 분수대 앞의 남자는 무척 뚱뚱하군요.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마치 돼지같네요. 왜 다이어트 약을 쓰지 않는 걸까요."

"그래? 하하핫! 다이어트 약은 세 달에 한번만 복용할 수 있지. 아마 얼마 후면 체형이 바뀔거라네. 그런데 돼지라니 비유가 너무 적나라하지 않은가."

"그렇습니까. 저는 그저 정확한 묘사를 위한 단어 선택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자네 말을 듣기라도 했다면 무척 실망했을걸세. 아니 엄청 화를 냈을지도 모를 일이군."


이후에도 그녀는 거리의 사람들을 정확하면서도 잔인하게 묘사했고 그때마다 레이먼드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순간 광장 중앙에 놓여진 단상이 지면과 분리되기 시작했다.

드드드 솟아오른 바닥은 낮은 둔턱을 만들었고 이내 몇 개의 기둥과 함께 자그마한 스테이지가 마련되었다.


"무슨 일이지?"

"글쎄요. 이벤트라도 열리는 걸까요."


이 공원의 이름은 아트록스 예술 공원.

비록 디지털 문명이 대세인 시대였지만 사람들의 마음까지 전부 기계화 된 건 아니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고. 인간의 삶은 예술의 자유를 통해 신장되고 더 다양한 삶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예술 활동에 대한 갈망은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바라는 삶의 가치중 하나였고 이렇게 공원에서 작은 연주회를 접함으로써 나름대로 갈증을 해소하고 있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 무대를 향해 걸어 나갔다.


저벅저벅 바닥을 울리는 구둣소리.

젠틀하게 올린 머리와 매치되는 스마트한 마스크.

화려한 턱시도를 수놓는 스팽글 조각이 물결처럼 일렁거린다.

자칫 클럽 가수처럼 보일수도 있는 남자였지만 그는 피아니스트 안드로이드였다.


서서히 계단을 밟고 무대 위로 오르는 남자.

홀로그램 클라이언트에 짧은 수식을 입력한다.

그가 그린 것은 높은음자리표 모양의 코드.

그러자 스테이지에는 어느새 럭셔리한 홀로그램 피아노가 우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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