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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피아니시모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크로노미터
작품등록일 :
2020.05.11 10:36
최근연재일 :
2020.05.22 18:47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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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8,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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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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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제1장.

DUMMY

인생은 순리대로 흘러간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인간은 세월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남자 레이먼드 킴. 그의 모습은 사계절 중 겨울에 가깝다. 시든 잎사귀만 무성하던 그에게 어느 날 나비 한마리가 날아왔다.


"목적지에 도착 했습니다."


차량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여성. 은발의 단아함이 인상적인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본다. 싱그런 햇살 푸르른 하늘 여기저기 녹음이 짙은 수풀들이 우거져 있었으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다른 세상에 던져진 듯 한 느낌을 들게 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있는 최첨단 시대.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전혀 달랐다.


한동안 주위 풍경을 눈에 담던 여성은 서서히 발길을 옮겼다. 자연 친화적 환경 속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는 별장. 고풍스러운 저택의 오래된 건축 양식과 담장 위 넝쿨은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버려진 고성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 연주자는 레이먼드 킴. 과거 천재 피아니스트라 불리던 그의 연주는 이 전원 풍경에 어울리는 포근한 음색으로 녹아 스며들었다. 어느 틈엔가 저택 안으로 들어온 여성은 연주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고 인기척에 피아노를 멈춘 레이먼드가 묻는다.


"누군가 자네는?"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오늘 방문 예정된 가사도우미 모델명 JN-7입니다."


레이먼드는 이내 피아노 커버를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공간에 누가 들어왔다는게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특별히 놀라진 않았지만 기척도 없이 들어와서 말이지."

"본사에서 미리 연락을 드렸으나 받지를 않으셨습니다."


얇고 가늘은 목소리. 돌아보진 않았지만 여자란 걸 알 수 있다. 뭔가를 찾는 듯 더듬거리던 그는 냉랭한 어조로 답했다.


"그런데 나는 여성 안드로이드를 주문한 기억이 없는데."

"죄송합니다. 마땅한 재고가 없어 부득이하게 내린 결정입니다."

"굳이 가사도우미에 성별을 따지려는 건 아니지만 내 동의도 없이 그런 결정을 내리다니 조금 불쾌한걸."

"특별히 남성 안드로이드를 선호하는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후우. 파이프를 입에 문 레이먼드

깊게 들이마신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잇는다.


"여자의 목소리는 그다지 달갑지 않거든."


세상과 단절한 채 홀로 살아온지 어언 40년. 군데군데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그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에게 어떠한 과거가 있었는지 알 리 없었던 그녀는 천진하게 답했다.


"하지만 여성 안드로이드가 더 섬세한 일처리가 가능합니다."

"기껏해야 가사만 돌볼 뿐인데. 섬세한 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예를 들면 레이먼드님께 더 양질의 식단을 올릴 수 있고 정원 손질시 더 화사한 꽃꽂이가 가능합니다. 남성 모델에는 그런 기능이 드물기 때문이죠."


곰곰이 듣고 있던 레이먼드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재미있네. 마치 로봇이 감정을 갖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군."

"안드로이드에게도 감정은 있습니다. 프로그래밍된 것이지만 말이죠."


최첨단 과학 문명을 대표하는 안드로이드는 영구적이고 결정론적이며 확률적 의사 결정을 내린다. 그들의 행동과 판단을 제어하는 건 바로 감성 지능 알고리즘. 수십 수백 가지 경우의 수를 대입시켜 입력된 프로그램은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감정 표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흥 그런 가짜 감정으로 인간의 흉내를 내려하지는 말게 역겨우니까."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기분이 상한 레이먼드는 자리를 떠났다.


#


2142년 현재 세계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지옥을 만들어낸다는 말처럼 변혁은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이 공존했다.


석유의 소멸과 함께 주요 에너지는 태양광으로 변환되었다. 북극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자 알래스카의 키발리나 섬을 비롯 몰디브 등 최저 지대의 섬들이 바다에 잠겨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으며 심각한 폐기물 처리 문제도 인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적도 부근의 대다수 국가들이 사라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물 부족 현상을 겪게 되었고 날로 심각해지는 가뭄과 사막화때문에 바닷물을 식수로 전환하는 담수화 기술의 사용이 세계적으로 급증하기도 했다.


이런 부정적인 현상과 동시에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수준의 성장을 이루어냈는데, 나노테크놀로지 산업의 시대가 가속화되어 모든 제품의 단가가 파격적으로 낮아지자 풍요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7G 통신 기술의 대중화로 자율주행 차량이 운행되었으며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정보 통신 분야의 대혁신이 일어났다.


슈퍼와 마트 대부분의 상가들은 완전 무인 자동화가 진행되었고 길거리 스마트 광고판에 이식된 마이크로 나노센서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하여 개인별 맞춤 광고를 선보이는 기술까지 개발되었다.


또한 기본 소득제도의 보편화로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와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으며 줄기세포로 인한 장기 배양과 장기 이식의 진화는 나노기술을 이용해 인체의 장기를 보강하고 교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게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발전을 거둔 분야는 바로 로봇공학. 즉 인공지능 분야였다. 대화가 가능하며 도우미 역할을 수행하는 안드로이드 로봇이 등장해 인간이 하게 되는 일의 대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신 하도록 만들었다.


인간을 닮은 것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안드로이드는 우리말로 인조인간이라고도 불리며 겉보기에 말이나 행동이 사람과 거의 구별이 안 되는 로봇을 의미한다.


현대의 안드로이드는 외모는 물론 동작이나 지능까지도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제작되었고 이들은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박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까지 발전되었다.


안드로이드는 비서, 경호원, 가정부, 반려자까지 목적에 맞게 제작되어 각 가정으로 보급된다. 외관상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지만 성별은 존재하지 않았고 프로그래밍된 대화만이 가능했다.


한때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자하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인간만큼 존엄성을 가진 개체로는 발전되지 못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듯하지만 모든것은 입력된 데이터대로의 행동일 뿐이었고, 학습하는 능력을 주입하지 않은 이유는 인류의 존폐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는 학자들의 우려와 맞물려 개발 자체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ㅡ쨍그랑!


거실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커피를 내리던 레이먼드가 잔을 놓친 모양이다.


"이런 실수를."

"제가 치우겠습니다 레이먼드님."


JN-7은 능숙한 동작으로 깨진 잔을 치웠다. 청소 도구함 위치를 가르쳐 준 적은 없지만 주문 생산시부터 모든 것이 데이터로 저장되어 있던지라 이 저택의 구조와 생필품의 위치까지 모두 꿰고 있었다.


"미안하게 됐군."

"괜찮습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오랜 세월 혼자 살아왔기 때문인지 남에게 피해를 입힌다거나 도움을 받는 게 익숙치 않았던 레이먼드는 로봇일 뿐인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여태껏 누군가를 집에 들인 적이 없어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베른가 17번지 레이먼드님의 저택에 최초로 오게 된 가사 도우미라는 것을 말이죠."


순간 너무도 인간 같은 외형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녀는 안드로이드였다. 감정도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인형이라는 사실에 레이먼드의 말투는 차갑게 바뀌었다.


"후우 그랬지. 앞으로 뭐라고 부르면 되겠나."

"저희 안드로이드는 모델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JN-7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른 호칭으로의 설정도 가능합니다."


모델명이 이름이라니 웃기지도 않았다. 평소 디지털 문화의 상징 같은 안드로이드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레이먼드는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거렸다.


"아무 의미 없는 단어가 이름이라니. 어떤가 슬프다는 감정이 드는가?"

"모델명 JN-7이 제 이름입니다. 슬프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목소리며 말투 뭐하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군. 차가운 눈빛도 그렇고."


레이먼드는 무미건조한 대화에 싫증이 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창 새 곡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흥이 깨져버렸어. 가서 커피나 내오게."

"늘 마시던 대로 내오겠습니다."

"내 커피 취향까지 입력되어 있는 건가?"

"레이먼드님에 대한 건 모두 데이터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 별장의 구조와 함께 말이죠."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귀찮게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거실을 빠져나온 레이먼드가 2층 서재로 올라가자 JN-7은 주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모든 게 데이터로 저장되어 있다곤 했지만 모르는 사실도 있을 것이다. 가령 레이먼드가 안드로이드를 싫어하고 디지털 기계 문명을 배척하는 이유에 대해서 라든지. 또는 이런 외진 산속에서 오랜 기간 홀로 살아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프라이버시에 관한 내용은 집안일을 하는데 필요 없을 테니 말이다.


"커피 가져왔습니다. 에스프레소 투 샷에 바닐라 맞으시죠?"


커피 잔을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평범한 여자였다. 비록 차가운 은발머리와 초점 없는 눈동자는 냉랭한 이미지를 풍겼지만 말이다. 이렇게 인간과 흡사한 안드로이드를 구분하는 방법은 목덜미에 새겨진 홀로그램 마크. 제작사의 로고인 나비의 날개가 희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고 나가게."


마치 오래된 고서처럼 낡은 책을 읽어 내려가는 레이먼드의 손등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의 나이 어느덧 70세가 되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현대 의학이라면 얼마든지 원하는 나이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임에도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순리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말없이 지켜보던 JN-7이 대화를 걸었다.


"셰익스피어를 다시 보시는 겁니까?"

"뭐든 오래된 것이 그 깊이를 제대로 표현해내기 때문이지. 인간은 별개지만."

"오래된 인간이야말로 가장 깊이 있고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래된 인간? 하하하핫."


마치 자신을 빗대어 말하는 듯 한 소리에 레이먼드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저 로봇이 한 말이었지만 왠지 씁쓸해진 레이먼드는 커피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었다.


"그럴 때는 연세가 드신 이라고 하는게 올바른 표현이다."

"그렇군요. 바로 입력시켜 놓겠습니다."

"아무래도 예의범절에 대한 건 프로그램 해두지 않은 모양이군."

"부족한 정보는 사회에 적응하면서 채워 넣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이 처음 파견이기 때문에 미숙한 부분이 많으니 양해바랍니다."


안드로이드의 구매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존재했다. 첫째 본사에 직접 주문하여 신상품으로 출고되는 경우와 이미 시중에 판매된 안드로이드를 구매하는 방식. 많은 경험이 축적된 중고품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불필요한 습관이나 정보를 원치 않는 경우에 직접 본사에 생산 의뢰를 맡기곤 했다. 지금 그녀의 메모리는 새하얀 도화지와 같은 상태로 오직 레이먼드에 대한 데이터만이 입력되어 있었다.


"처음이라고? 내게 생 초짜를 보낸 건가?"

"그러나 처음이니만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도 성의껏 할 필요도 없네. 그저 내 작업에 방해만 되지 않게 해주면 돼."

"알겠습니다. 레이먼드님."


처음 안드로이드가 세상에 나온 건 반세기 전이었다. 초기 모델명 NT는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여 폐기되기 일쑤였으며 통제 불능 사태까지 이르게 되자 한동안 생산은 멈추게 되었다. 이후 새롭게 개발된 JN시리즈는 부드럽고 온화하며 전보다 훨씬 인간에 가깝게 바뀌어 사람들 앞에 선보이게 되었지만 생산비 문제인지 이전 수십 배에 달하는 가격이 책정되었기 때문에 모든이가 혜택을 누릴 수는 없었다. 과거 천재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렸던 레이먼드 킴은 상당한 자산가였기 때문에 가사도우미 한대 정도는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모델명 JN시리즈의 생산 방식에는 세상에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숨어 있었고 아날로그 피아노와 접촉시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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