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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피아니시모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크로노미터
작품등록일 :
2020.05.11 10:36
최근연재일 :
2020.05.22 18:4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3,414
추천수 :
171
글자수 :
108,781

작성
20.05.13 10:02
조회
163
추천
7
글자
11쪽

제7장

DUMMY

버터플라이 사이버트로닉스. 이 시대 최고 최대의 과학 연구소이다. 2142년 현재 인류가 최첨단 디지털 시대를 열게 된 첨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회사는 메인 분야인 로봇 생명공학을 비롯해 물리학 화학 항공우주학에 나노 테크놀로지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무기 관련기술. 에너지 관련기술, 융합 및 거리측량 관련기술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디지털 기계 문명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기관이다.


사이버트로닉스가 급부상할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인공지능 기술 분야. 최초의 인간 친화적 안드로이드 모델명TN을 비롯해 JN까지.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의 개발은 버터플라이 사이버트로닉스를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르도록 기여했다.


제이엔을 만들어낸 기관도 버터플라이 사이버트로닉스로 안드로이드의 생산은 용도에 따라 산업용과 가정용으로 나뉘어 고객이 원하는 옵션으로 주문 판매하고 있었다.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가사도우미를 저택에 들인지 이제 일주일째. 레이먼드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버터플라이 사이버트로닉스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첨단 과학 문명을 자랑하는 시대에 이렇게 상담사가 직접 전화를 받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주문시 맞춤 제작으로 출고되는 안드로이드의 경우 세부적인 데이터 입력이 필요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직접 의견을 컨버전트 하고 있었다.


"나 레이먼드 킴이라는 사람이요."

[용건을 말씀해주십시요. 레이먼드님]


분명 사람이 맞을 텐데. 들리는 목소리는 제이앤보다 몇 배는 더 기계처럼 느껴졌다.


"다름이 아니고 가사도우미가 필요한데.."

[베른가 17번지 레이먼드님의 저택에는 일주일 전 가사도우미가 배송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다른 문제가 있으십니까.]


예상했던 일이다. 가정집에서 값비싼 안드로이드를 여럿 구매하는 경우는 드물었으니까. 더군다나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같은 용도의 가사도우미를 찾고 있으니 의심을 살 만도 했다. 하지만 레이먼드는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답했다.


"내 저택이 워낙에 넓어서 말이지. 하나로는 부족해서 그러네. 왜 뭐가 잘못되었나."


그러자 상담사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일까. 하지만 잠시 뒤 밝은 목소리로 돌아온 그녀는 흔쾌히 요구를 받아들였다.


[주문 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레이먼드님의 데이터는 이전 주문시 제출했던 내용을 토대로 입력시키겠습니다. 더 추가하실 내용이 있으시면 팩스 또는 이메일 앱으로도 접수를 받고 있으며 상담사를 통해서도 가능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전에도 가사도우미를 주문했으니 크게 달라질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레이먼드는 몇 가지 요청 사항을 덧붙였다.


"이번에는 남성 안드로이드로 부탁하네. 그리고 요리 목록에 프렌치토스트를 추가해주고 꽃꽂이 기능은 빼는게 좋겠군."

[입력되었습니다. 더 필요하신 사항은 없으십니까.]

"없네. 언제쯤 오게 될런지나 알려주게."

[빠르면 내일 오후. 늦어도 이삼일 내에는 방문할겁니다. 제품 제작 완료시 홀로그램 매니져를 통해 주문하신 안드로이드를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옵션을 추가하시겠습니까.]


이전 제이앤을 주문했을 때도 그랬지만 저택을 돌보는데 굳이 외형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던 레이먼드는 상담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필요 없네. 최대한 빨리 배송해주게나."


#


점심시간. 쓴 입맛을 다시던 레이먼드는 그만 수저를 내려놓았다. 테이블에는 아직 반도 비우지 못한 오믈렛이 남아 있었지만 넵킨으로 입술을 훔치며 식사를 마친 것이다.


"음식은 어떠십니까. 입맛에 맞으신가요."


제이앤은 평소와 다름없이 부드럽게 말했지만 레이먼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리와 관련된 데이터가 전부 삭제되었음에도 식사 시 필요한 말과 행동 양식은 그대로 남아있던 것이다. 이 오믈렛도 레이먼드가 직접 만든 것이지만 그녀는 마치 자신이 준비한 음식이라도 되는 양 곁에서 지켜보며 맛에 대한 감상을 물어보았다.


"저녁 메뉴는 송로 버섯과 벨루가 캐비어가 들어간 화이트 트뤼프입니다."


다음 저녁 메뉴까지 브리핑 하는 모습에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레이먼드는 버럭 큰소리로 화를 냈다.


"지금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데이터를 전부 삭제해버리기 전에 닥치지 못해?"

"1번 섹터에 포함된 데이터의 삭제는 본사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 그런데 대체 왜 지워진 거냐고!"


식식대며 화를 내던 레이먼드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2층 서재로 올라갔다. 안 그래도 혈압이 높아 걱정인데 빨리 새로운 가사도우미가 오지 않으면 고혈압으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겠다.


"여기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민들레꽃차 입니다."


어느 샌가 쪼르르 다가와 찻잔을 들이미는 제이엔. 무슨 병 주고 약주는것도 아니고.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찬찬히 뱉어내던 레이먼드는 못이기는 척 잔을 받아들었다.


"그래 고맙다."


약이 오르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녀가 이런 상황을 의도한 것도 아닐 테고 급작스런 오류로 인해 데이터가 지워지는걸 막을 방법은 없었을 테니까. 더군다나 사람도 아니고 능동적인 문제해결 능력이 부족한 로봇이었으니. 레이먼드는 생각 없이 화를 낸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향기가 좋군."


이렇게 향기가 좋은 차도 내오는걸 보면 확실히 그녀에게 악의는 보이지 않는다. 꽃차 한잔에 마음이 유해진 레이먼드. 하지만 그가 맛을 음미하려는 찰나 제이앤은 다음 스케줄을 지시한다.


"피아노 레슨 시간이 되었습니다. 거실로 내려가시죠 레이먼드님."


아침부터 이어진 정원 손질에 직접 준비한 식사까지. 이제 좀 쉬어볼까 했는데 피아노 레슨이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스파링 전용 샌드백 안드로이드가 있다던데 이러다가 그것까지 구매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레슨 때마다 느끼지만 제이앤의 피아노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였으니 습득이 빠를 수도 있겠지만 이건 마치 프로그램을 입력하듯 가르치는 모든 것을 그대로 흡수하는 느낌이었다.


"거기 두 번째 음에 악센트!"


레가토 스타카토 악센트 그리고 붓점과 역붓점까지. 기본 음표 연습만 반복하고 있는데도 소리의 흐름이 부드럽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대로라면 바로 체르니로 넘어가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계적인 느낌은 완전히 지울 수 없었다.


"자 일단 거기까지 하고. 오늘은 다른걸 배워보도록 할까?"

"저는 피아노가 좋습니다."

"내가 말하는 건 다른 파트를 이야기하는거다. 연습곡이 아닌 완전한 곡을 연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피아노 레슨시 레이먼드가 우려하는 문제점. 그건 반복된 연습만을 강요할 경우 자칫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변질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악보대로 틀리지 않게 빈틈없이.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고 안정된 연주를 추구하는 콩쿨용 피아노는 표현이 몹시 제한적이다. 리미티드 포텐셜 오로지 악보에만 의지해 연주를 한다는 건 피아노라는 악기를 죽이는 것과 다름 없었고 더 높게 오를 수 있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한계를 정해주는 것과 같았다.


아무리 완벽한 연주를 한다고 해도 표현에 한계를 느낀다면 그 피아노는 더 이상 발전할 수가 없다. 조금은 거칠더라도 피아노 자체를 즐길 수만 있다면 한 차원 높은 단계를 밟게 될 것이다. 제이앤은 안드로이드다 그녀가 제대로 된 연주를 하기 위해선 조금 더 피아노의 즐거움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완전한 곡이란 멜로디가 있는 곡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동안 열심히 해서 내리는 상이라고 생각해라."


감격한 제이엔은 두 눈을 반짝이며 레이먼드를 올려다보았다. 그렁거리는 눈망울이 영 부담스러웠던 그는 이내 시선을 피하며 레슨을 이어갔다.


"지금부터 네가 배울 곡은 젓가락 행진곡이다."


피아노를 위한 작은 왈츠로 널리 알려진 젓가락 행진곡은 Chopstick 혹은 커틀릿 폴카라고도 불린다. 1877년 어느 날 러시아의 작곡가 알렉산더 보로딘의 작업실에 들어온 어린 의붓딸 가냐는 피아노 앞에 앉아 두 손가락 만으로 건반을 뚱땅거리기 시작했고 보로딘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단순한 음형의 반복에서 놓여나지 못한다는 조건 속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변주를 펼친다는 시도가 보여준 호기심은 결국 수 세기에 걸쳐 이어지게 되었고 당시 어린 소녀가 보여준 피아노곡이 바로 오늘날의 젓가락 행진곡이 되었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일 테니 잘 보고 따라하거라."


레이먼드는 양 검지 손가락을 젓가락처럼 세웠다. 그리곤 건반위에 올려놓자 지켜보던 제이엔이 물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음계별로 손가락 번호가 지정되어 있던 게 아닌가요?"


하지만 레이먼드는 미소 지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껏 철저하게 계산된 형식과 리듬으로 같은 동작만 반복했다면 이번에는 그 틀을 모두 깨부숴야 이 레슨의 의미가 있었다.


이윽고 시작된 레이먼드의 젓가락 행진곡. 통통통 물방울이 튀기듯 익살맞은 소리는 점차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고 단순하고 같은 음만 반복되고 있음에도 곡 전체가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동화 같은 연주에 제이엔은 천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껏 웅장하고 세련되며 깊이 있는 연주만 감상해온 그녀에게 젓가락 행진곡은 발상의 전환을 갖게 해주는 센세이션한 피아노곡이었다.


"자 어때. 따라할 수 있겠나?"


짧고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변주. 레이먼드는 제이엔에게 바통을 넘겼다. 피아노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가 백프로 소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작 한번 듣고 모든 음을 그대로 흉내 낼 수는 없을 테니까. 레이먼드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이 레슨의 의도는 그녀가 이 곡을 통해 조금 더 피아노에 흥미를 갖게 하려는데 있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 이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는 레이먼드가 보여준 젓가락 행진곡을 완벽하게 재연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첫 음악.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앙증맞은 손가락 왈츠는 건반 위에서 미끄러지듯 춤을 추고 있다. 사뿐사뿐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마디에 이르자 지켜보던 레이먼드의 손이 건반으로 향하고


그러자 예정에 없던 협연이 이어졌다. 천재 피아니스트 레이먼드 킴의 다양한 화음과 편곡이 가미된 젓가락 행진곡은 더 이상 단순 반복의 커틀릿 폴카가 아닌 풍부한 음색으로 가득한 훌륭한 연탄곡으로 재탄생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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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4 군필사제
    작성일
    20.05.13 14:18
    No. 1

    지루한 감이 있네요 뭔가 적대자적인 요소가 슬슬 필요할거 같아요 아마 남성안드로이드가 될꺼 같기도 하고 기대해봅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8 크로노미터
    작성일
    20.05.13 14:37
    No. 2

    제 글 봐주는 친구랑 같은 말씀을 해주셨네요. 레슨 파트가 1화 분량인데도 살짝 지루하다는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더이상 나오진 않겠지만 역시 사람보는 눈은 다 비슷하네요. 솔직하고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생각해보고 수정해야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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