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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0층 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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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7.02 21:00
연재수 :
1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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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9,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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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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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DUMMY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무실의 한가운데. 망망대해에 홀로 뜬 배라도 되는 양 의자에 앉아 안절부절못하는 인수가 있다.


길드는 지금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베테랑 파티 하나가 전멸한 것도 그랬고, 인수가 가져온 정보에 대한 확인이나 이후의 계획 때문에.


그러니까 지금의 이 소란이 모두 인수 덕분이라, 인수는 적잖이 지금 이 자리가 불편했다.



“저기, 그, 네 분은······?”

“아, 네네. 문제없이 잘 부활하셨습니다. 평소보다 힘이 더 넘치는 것 같다며 은근히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예?”



실제로, 몸에 큰 구멍이 뚫린 채로 죽어버렸던 네 사람은 인수의 영역 안에 던져지고 다시 나왔을 때는, 생각보다 멀쩡한 모습이었다.


마력이 흘러넘치다 못해 바다처럼 넘실거리는 인수의 영역에서 마력에 의한 영향을 받은 것인지 갑자기 떨어진 인간의 시체에 어리둥절했을 수인들의 치료를 받은 것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어, 그런데, 여기서 누구 기다리시는 거예요?”

“아, 그, 네 분에게 사과라도 드려야 하는 것 아닐까 해서······.”

“그런가요? 위험한 줄 뻔히 알면서도 홀려서 들어간 네 분도 딱히 잘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하, 웃으며 그 말만 툭 던지고 갈 길 마저 가는 직원. 거대 길드는 일반 사무직조차 평범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분명. 그 네 베테랑도 저 사무직과 비슷한 기분일 것이다. 위험성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홀린 듯 따라 들어간 것은 본인들의 잘못이다.


아이가 불 속으로 뛰어들 때 위험하다 말리는 것이 아니라 ‘어? 재미있겠는데? 당장 하자.’ 라며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어른은 못난이가 맞다.


우웅~우웅~


소란스러운 사무실 안에서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하나 멍하니 있었던 인수의 주머니에서 다음 사건을 던져줄 휴대폰이 진동한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여보세요?”

[나야. 허은.]

“어? 아, 네. 왜요?”

[잠깐 대화 좀 하자고. 올라와.]

“무슨, 이야기를?”

[얼른 올라오기나 해. 42층이야.]



가차없이 끊기는 통화. 잠깐 넋을 잃고 휴대폰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던 인수는 터덜터덜 엘리베이터를 향한다.


허은이나 허금이나 남매가 쌍으로 자길 귀찮고 힘들게 만든다며 속으로 괜히 투덜거리지만, 그것도 혹시 들킬까 겁이 나서 급히 주워 담아야 했다.


안내받은 42층에 오르고, 무수히 많은 문이 반겨주는 쭉 뻗은 복도를 따라 걸어 나가면 그곳에는 넓은 공간과 정면에 방 하나가 보인다.


이상할 정도의 냉기를 뿜어내는 그 방은 D의 빌딩에서 보았던 것처럼 문의 바깥으로 여러 전선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남극에라도 온 것처럼 두꺼운 옷을 입은 비서 하나가 인수에게 다가가 묻는다. 이런 경험은 뭔가 또 처음이고, 왠지 드라마의 한 상황 같아서 괜히 긴장되는 인수였다.



“내 손님이야. 들여보내.”

“아, 네. 출입 기록은 작성해야 하는데요.”

“응응, 그거하고 들어와. 비밀로 할 것도 없고.”



10인의 우노. 아마 이 나라의 안에서 그 누구보다 강할 그 10인의 우노 중 한 명도 보호받는 생활을 하는구나.


호랑이를 지키는 토끼. 소꿉놀이 같은 모습이다. 호랑이를 지키는 토끼는 자부심을 품고 살아갈까, 허무를 품고 살아갈까.



“어서 와. 자주 보네?”

“네······그래서 진짜 어쩐 일로? 저 뭐 잘못했나요?”

“내가 뭐 너 잘못해야 부르니? 물론, 주로, 네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나, 위험할 때 보긴 했지만.”



수많은 모니터의 앞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그녀의 주변은 온갖 기계들의 부품이나 전선이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었다.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터져 나오다가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릴 때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좋을지 모를 상태에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 마저 든다.



“평소에 눈치 되게 빠르더니. 오늘은 내가 널 왜 부른 건지 모르겠어?”

“아니, 뭐, 짐작 가는 부분은 있는데요.”

“그래, 한번 말해 봐.”



모니터를 바라보던 몸을 돌려 인수를 바라보는 허은. 이미 무언가 짐작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지금 당장의 상황의 어디에서 어떤 단서를 찾아냈기에 인수는 허은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일까.



“설인이세요?”

“어떤 이유로 그렇게 생각한 거야?”



방 전체를 가득 채운 전자기기. 하나 같이 열을 뿜어내는 물건들이다. 다 때놓고 봐도 저렇게 많은 모니터가 빛을 내고 있는데도 방이 춥다는 것은 이상했다.


아마 기계의 발열을 잡기 위해 허은이 일부러 방의 온도를 낮게 만든 것이리라.


그런데 그건 에어컨 따위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닌가? 겨우 그런 이유로 허은의 정체를 설인으로 추측하는 것은 이상하다.



“표정이나 말투가 제게 원하는 게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길드 전체적인 분위기도 시끌벅적한데, 겨우 던전의 다른 요소 하나 발견한 것치고는 너무 소란스러워요. 애초에 저처럼 설인을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근처에도 갈 수 없는 공간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분주한 건 뭔가 이유가 있는 거겠죠.”

“오호.”

“그리고 5층에 내려오셨을 때. 막 한기 뿜어내고 그랬잖아요. 그때부터 의심스럽긴 했죠.”

“보통은 뭔가 마법을 썼다고 생각하지, 그걸 설인의 증거로 받아들이진 않아.”

“누님 마법도 씁니까? 엔지니어 같은 거 아니었어요?”

“······너도 참, 정상은 아니야.”



하지만 탑을 오르는 인물이 정상적이라면, 오히려 그게 더욱더 비정상이겠지. 탑이란 그런 공간이었다.


인수는 그런 탑을 오르는 탑험가들 사이에서도 조금 이질적이었지만, 오히려 최초의 탑험가였던 허은에게는 조금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래, 뭐든. 그렇지 않아도 성장이 막혀 있던 참이었거든. 더 높이 올라가야 하는 걸까, 언제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길을 찾았어.”

“오오.”

“고마워. 그런데 오늘. 내가 왜 널 부른 것인지. 그건 아직 대답 안 한 것 같은데?”

“······.”



뚱한 표정으로 괜히 대답하기 싫다는 듯 눈을 돌리는 인수.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을 수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같이 가자고요? 그 던전에?”

“넌 이미 그곳의 대장과 안면을 텄잖니. 너랑 함께 가는 편이 내게 더 수월할 수도 있지.”

“으으음, 무서운데······.”



그러나 솔직한 마음에, 아직 끊어지지 않은 호기심이 그의 마음 한구석에 불붙어 있었다. 궁금하고 궁금하다. 그 목욕탕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다음에 찾아와도 봐주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아마 정말 봐주기는 할 테고, 몇 번 드나들면 친해지는 것도 아주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다만, 조만간 느와르의 화려한 복귀가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화려한 복귀에는 5층에 새롭게 자리 잡은 인수 일행을 공격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던전에 들어가 있는 동안 느와르가 완전히 복귀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꽤 곤란한 일이 될 것 같았다.



“괜찮겠어요? 느와르 곧 복귀할 건데.”

“어디 내가 싸우니 냐루냥이 싸우지.”

“그게 그거잖아요!”

“얘는, 냐루냥은 무투가. 나는 네 말대로 엔지니어. 뭐가 그게 그거라는 거니?”



잠깐 고민하는 인수. 그래. 잠깐.


마음은 이미 기울었다. 10인의 우노인 허은과 함께라면 안전도 분명하고, 거대 설인이 말했던 ‘왕을 기다린다.’ 라는 말의 진실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허은의 힘을 일부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흥미가 생긴다. 느와르가 나불이고 보다 이쪽이 훨씬 더 인수의 취향이다. 모험. 모험이다. 새로운 모험, 탐험, 신비, 미지.



“언젠 갈 건데요?”

“지금 바로. 네 말대로 느와르의 복귀가 멀지 않았으니까. 출발하자.”



끼익, 소리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다가오는 허은의 뒤로는 전과 달리 차가운 한기가 뿜어져 나와 주변을 가차 없이 얼리고 있었다.


평소에 잘만 조절하던 것을 지금은 조절하지도 않고 있다. 그만큼 허은이 느끼던 ‘벽’ 에 대한 갈망은 거대했다.


10인의 우노, 최초의 탑험가. 가장 높이 탑을 오른 탑험가. 하지만 지금은 느와르라는 존재 때문에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었고 레벨은 오르지 않은 채 멈추었고, 성장의 길은 보이지 않는다.


답답하던 참에 갑자기 드러나기 시작한 위로 향하는 길.



“그런데 이거, 솔직히 통상적인 루트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응? 왜요? 뭐가요? 설인이 되어야 그 던전을 통해서 목욕탕에 들어갈 수 있는 거니까, 충분히 통상적이고 정석적인 루트 아닌가?”

“탑은, 위로 올라가는 것으로 재능을 꽃피우는 구조로 되어 있어. 나의 메카닉으로서의 재능도 5층에서 시작해 27층에서 더 다듬어지고 전문화되었거든. 다른 사람들도 그래, 오빠도 그렇고, 우리 유정이도 그렇고.”

“오오, 되게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거야.”

“? 아, 뭐 어쨌거나. 그래서 그렇군요? 위로 올라가는 걸로 설인의 재능이 다음으로 진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서?”

“그래. 숨어 있는 요소라거나 그런 것 따위는 예전부터 많았어. 지금 너희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서는 당시엔 꼭꼭 숨겨져 있던 요소가 꽤 많아. 부활이 가장 큰 숨겨져 있던 요소였지.”

“와아 옛날이야기.”

“재능의 진화가 더 위가 아니라 오히려 재능이 생겨났던 그곳에서 다시라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이야.”

“······오오.”



기분이 묘했다. 0층에서의 일도 그렇고, 5층으로 돌아온 뒤의 이배수의 힘을 빌려온 일도 그렇고, 이번 허은의 말로 명확해진 전과 다른 재능의 진화 과정도 그렇고.


탑이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난 것인지, 왜 하필 본인이 탑에 들어온 시점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뭔가 할 때마다 변화가 생기고 숨겨져 있던 것들이 밝혀지는 순간순간들. 지금껏 누구도 하지 못한 모험을 하고 있는 자신은 말 그대로 탑에게 선택받은 것은 아닐까? 변화하지 않은 채로 멈춰버린 탑이 변화를 원해 그를!



‘······아, 내가 아니라 철수인가?’



라는 생각. ‘어? 나 좀 특별할지도?’ 라는 생각에 파묻힐 뻔했지만 금방, 철수라는 그냥 척 보기에도 특별한 존재가 떠오르고 말았다.


다만, 분명히 인수도 여러모로 특이한 사람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인수의 인식 속에서 인수 본인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마치 자신을 평범하다 말하는 소년 만화 주인공처럼.



“그래요! 까짓거 한 번 더 가보죠 뭐!”

“음~열정 좋네.”

“그런데 설인들은 뭔가 그, 감정이라거나 그런 것들을 싫어하는 것 같던데 누님은 아닌 것 같네요?”

“하하, 그건 그것들이 겨우 그런 걸로도 녹아내릴 나약한 놈들이니까 그렇겠지.”

“오······.”

“왕을 기다리고 있다. 고 했지? 후후후, 후후, 내게 어울리는 자리야.”

“누님, 그런 야망이 있었군요?”

“응? 아니 그런 건 아니고······아 됐어. 얼른 가자.”



10인의 우노 허은과 함께 하는 탑 모험. 이걸 나중에 철수나 카나에게 말하면 두 사람이 얼마나 질투할까.


성장이 가로막혀 고민하던 자신이 드디어 벽을 뛰어넘어 오빠인 허금을 뛰어넘게 된다면 허금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두 사람은 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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