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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0층 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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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8.06 21: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12,479
추천수 :
99
글자수 :
852,780

작성
24.06.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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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0화

DUMMY

난 나름, 이 탑을 오르면서 사람이 많이 닳았다고 생각했다. npc들이야 어찌 됐든 상관없다는 마음이고, 철수의 영향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다소 뒤틀렸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이 마냥 탑의 저주, 라고만 하고 싶지는 않다. 뭔가, 내 잘못에서 눈을 돌린 채 그저 무지성 하게 남 탓하며 ‘난 잘못 없는데 쟤가 나빠서 나도 실수한 거임ㅇㅇ’ 정도의 느낌이 되어버린다.


나라는 인간의 죄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지극히도 무책임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선 안 된다.



“······.”

“뭐라고 말이라도 해 봐 형.”

“맞아요, 인수 씨. 지금 인수 씨가 입 다물고 있으면 더 어색해져.”

“시간을 좀 주자 얘들아~응?”

“주저하고, 뒤로 미룬다 해서 오를 계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지.”



책임감. 나의 모든 선택은 책임감을 기준으로 해야 하며 나는 나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맞아 오빠, 무슨 말이라도 해줘. 선택 받았는데 너무 조용하니까 무섭잖아.”

“으으으! 멋, 멋대로 오빠라고 부르지 마세여! 설이의 오빠에여!”

“응~설이도 설이죠? 오빠오빠 설이도 설이에여~”



채, 책임을, 책임을······난 무책임한 인간이라······사실 책임지는 법은 잘 모른다고 하면, 안 될까.


난 선택을 했다. 선택을, 그걸 선택했다고 해도 되는 걸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어려워서 그냥, 둘 모두를 선택한 나는, 어떠한 죄책감도 가지고 싶지 않았을 뿐인 나약한 인간인 것은 아닐까.


이, 이 빌어먹을, 미래 설이의 근본이 내가 아는 설이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었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솔직히 ‘에엥, 그건 좀 짜치는 선택인 것 같은데요. 그런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어용~’ 이라고, MC 토끼가 말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네! 좋은 선택!”



이라는 말만 남기고 휙 사라졌지. 허허.


덕분에 나는 대충 질러 버린 대가를 치러야 했고, 감동한 미래 설이와 살짝 삐진 어린 설이 둘 모두를 곁에 두게 되었다.


아니, 그, 뭐냐. 쯧. 이유는 있다. 그냥 어영부영한 선택은 아니다.


근본을 보았다. 두 사람의 근본. 하나는 어린 설이, 내가 모르는 설이의 모습이었고, 하나는 미래 설이의, 지금 내 두 눈에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마 어린 설이의 근본이 내가 모르는 과거의 설이일 것이고, 미래 설이의 근본이 내가 아는 그대로의 설이겠지. 10년 뒤 설이나 지금 설이나 외형에 큰 차이는 없어서 미래 설이라는 말도 좀 이상하게 느껴지긴 한다만.


내 친구들을 따라 한 이 눈깔괴물들은, 그 과거마저도 따라 했다. 철수를 보며 확실히 알게 되었다. 철수마저도 잊어버린 멀고 먼 과거 속에 파묻혀 버린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까.


그래서, 근본이라며 보인 어린 설이의 모습이 마냥 진짜 설이의 근본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설이라는 한 명의 사람은 탑에 들어와 우리들과 만나며 완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그전까지는 그저 쓰레기 같은 부모의 아래에 붙어 있는 무언가 취급이었을 것이다. 설이 본인의 자의식이 지극히도 약했겠지. 심지어 팔려나가 모습이 바뀌기까지 했으니, 정체성의 혼란도 있었을 테고, 자존감도 바닥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설이와 지금의 설이는 다른 사람이다. 처음 오마탑에서의 설이와 지금의 설이를 비교해도 완전 다른 사람이라고만 느껴지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설이의 근본. 지금의 설이가 있게 한 근본의 모습은, 그냥 내 눈에 보이는 설이의 모습 그대로다.


······라는, 식의. 생각도 가능해서. 그래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근본이라는 게 본인이 부정한다고 해서 근본이 아니게 되는 그런 건 아니지만, 이게, 참, 워낙 특이한 공간과 상황이라서.


······에휴.



“야 철수야.”

“응.”

“넌,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니?”

“응.”

“개새, 아니다.”

“왜요 오빠? 설이가 대신 욕해줄까요?”

“! 욕, 욕해도! 제가 욕해여! 철수 아저씨 개, 개XX!!”

“진심이 부족해요. XXX!!”

“기분이 좀 묘한데. 대뜸 욕을 두 번이나 들어야 한다니.”

“나보다 더하겠어?”

“뭘. 이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넌 뭐든 상관없겠지. 그저 재미있을 테니까! 어?! 아니야?! 아니냐고!!


쯧. 그래, 뭐. 어쨌거나! 됐어! 머리는 조금 아프지만 문제는 해결이 됐지. 새로운 문제가 생겼지만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 완벽이란 없는 거야. 1부터 숫자를 세어 100을 채워도 그다음엔 101이 있는 것처럼.


철수에게 지금 당장이라도 누가 진짜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난 선택을 했고, 내 곁에 있는 두 설이를 모두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졌다. 그러니,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짜라고 믿으면 그게 진짜인 거지.


그렇게 혼자 납득하고 이해하고 있을 때, 우물쭈물하던 카나 씨가 한 발자국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쓰읍~아아~! 다시 한 번! 죄송해요 인수 씨······저 때문에 일이 좀, 꼬인 것 같네요.”

“쩝.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저도 할 말 없죠.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하고, 헤어지고, 그냥 얼른 집에 갑시다. 집에 가서, 좀, 쉬었다가, 그리고 다시 시작합시다.”

“와아, 인수 씨 사람이 되게 단단하네요.”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여튼! 우리는 다시 세계수의 앞으로 모였다. 5층의 최후도 지켜보았고, 그 안에서 나타났던 도플갱어? 비슷한 무언가들 덕분에 발생했던 여러 일도 얼추 해결됐고, 이제 집에 가야지.


곁가지가 너무 길었어. 우리는 탑을 오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지 이런 무슨 이상하고 기이한 체험을 하기 위한 신비 탐험대 같은 게 아니다.


다시 한번 거대한 절벽 같은 세계수의 문을 열고 들어간 우리들은, 1층에서 우리를 맞이해주는 수희를 마주하게 된다.



“가실 거죠?”

“그래. 또 당분간은 만날 일 없겠구나.”

“헤헤, 심심하면 놀러 오세요!”

“오냐. 여기까진 왜 내려왔어?”

“아! 워프 게이트 연습하려고요! 이제 완벽해요! 진짜로!”

“못 미더운데.”



수희가 뭐라던 그냥 피식 웃어넘긴 철수가 냐루냥이 잠들어 있는 저, 엄청나게 화려한 공간을 휙 잡아당겨 없애버리고 냐루냥을 사뿐하게 안아 든다.


쯧쯧. 다들 멀쩡한데 냐루냥만 운이 없어서 죽어버리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이 이상하고 기이한 세계를 냐루냥이 볼 수 있었다면 저 탑의 바깥에도 0층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졌을 텐데.


아니, 애초에 스왐프 그놈들 때문이라도 앞으로 눈깔괴물이 나타날 일이 많아 자연스럽게 0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겠지마는.



“······이제 와서 하는 말이긴 한데. 만약 그 빌딩이나 도시가 이 0층이 아니라 탑의 바깥으로 나갔다면 철수 너도 탑에서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겠네.”

“딱히. 오히려 나는 이번 일로 조금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

“엥? 무슨 확신?”

“······계단을 오르는 법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점?”

“진짜 뜬금없다 철수야.”

“나름 큰 깨달음인데. 앞으로의 내 활동 목적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거야.”

“퍽이나 그렇겠다.”



에휴. 하여튼 저놈의 계단론은 정말.


어쨌거나. 우리는 다시 생명의 호수에 도착했다. 정말로 철저하게 연습을 한 모양인지 이번엔 굉장히 안정적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역으로 우리를 옮겨준 수희가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헛구역질하기는 했다만, 조금 더 연습하면 괜찮아질 거야.



“이제 저기 호수 아래로 내려갈 거야.”

“왜? 호수 아래에 뭐가 있어?”

“어.”

“뭘 하려는 거야? 설명은 해줘야지.”

“형이나 다른 애들은, 애초에 0층 소속이 아니라서 나가는 게 어렵지 않을 거야. 굳이 따지자면, 억지로 이곳에 붙들려 있는 느낌이지.”

“너희들은 나가려고 하면 쉽게 나갈 수 있지만, 나나 철수처럼 0층의 주민은 상황이 또 다르거든. 커~다란 두 힘의 충돌이 필요해!”

“커다란, 두 힘······.”

“나랑 영희가 서로의 힘을 부딪칠 거야. 그러면 틈이 생길 건데, 그 틈 사이로 집어넣으면 이동이 되는 거지. 나름 몇 번 해본 일이라, 크게 문제 되진 않을 거야.”



어라. 그러면 나 다시 그 틈에 끼어서 막 온몸이 박살이 나는 경험을 해야 하는 건······아니겠지. 그래, 카나 씨나 설이는 안전하게 도착했잖아 여기.


그러고 보니까 억울하네! 왜 나는 온몸이 부서지면서 도착하는 건데! 억울해!


······그러거나 말거나 이하생략! 위대한 철수와 경이로운 영희의 일대기를 한 번 더 눈에 담는 것이 뭐 얼마나 특별하다고!


그냥, 뭐, 그냥, 영희 심기 안 건드리게 조심해야겠다 정도의, 그 정도의 각오가 생긴 정도. 그냥 철수가 날 많이 봐주고 있구나, 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정도.



“와아 역시 영희님. 영희님 덕분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어요!”

“뭐야? 왜 또 존댓말? 그냥 말 편하게 하라니까? 너 자꾸 이랬다 저랬다 할래? 혼난다!”



카나 씨도 나와 비슷한 감상인 모양이네.


0층에서 다시 이동하여 도착한 이곳은, 5층, 인 것 같기는 한데. 그건 주변에 보이는 녹슨 로봇 같은 놈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여서 알 수 있었다.


동그랗게. 누가 스쿱으로 퍼낸 것처럼 움푹 파인 구덩이의 안에서 눈을 떴으니, 그 녹슨 로봇이 보이지 않았다면 아마 이곳이 5층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덜컥!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주는 충격에서 미처 다 벗어나지도 못한 잠깐 사이에 철수가 들고 있던 냐루냥이 갑자기 과격하게 발작을 일으키듯이 움직이더니 번쩍! 눈을 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철수의 눈이, 전에 본 적이 없이 크게 떠지고, 누가 봐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당황하는 냐루냥을 살며시 땅에 내려준다.


혹시라도 또 쓰러질까 겁이라도 나는 것처럼 끝까지 부축하는 모습이 정말······너 가짜 철수 아니지?



“???”

“괜찮으세요? 냐루냥, 정말 오래 잠들어계셨어요.”

“우욱! 어우! 어욱! 잠깐 나, 나 속이 울렁거려. 목소리에 버터 펴 발랐냐?”

“철수야! 그대로 가만히 있어 봐~? 이야~표정 예술이네 이거, 완전 화보야 화보.”

“너희들, 어? 나는, 왜, 이곳에?”



냐루냥이다. 정말 냐루냥이 살아있었다. 왜 0층에서 죽어있던 사람이 탑으로 돌아오자마자 되살아난 것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하여튼 살아났다.


탑의 신비라고 대충 설명해버리면 난 또 어쩔 수 없이 이해와 납득의 단계로 넘어가야 할 텐데, 흐으으음, 기분이 좀 묘한데. 뭔가 좀, 속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 흠.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니? 분명, 커다이 시가 사라지면서 너희들도 같이 사라졌을 텐데······?”



냐루냥의 물음, 인데. 이상한 위화감이 든다. 뭔가 잘못된 말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연하지 않은 말을 당연하게 하는 듯한, 그런 말을 들은 듯한 느낌.



“! 이게 아니지! 얘들아! 여긴 위험해! 지금은 우선 자리를!”

“또, 너희들이냐?”



냐루냥의 말을 끊고 등장한 것은,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 이지만. 분위기로 누군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묘하게 위에 서 있는 듯한 태도. 내가 너보다 잘났다. 라는, 그러한 우월감에 도취해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저 사람은, 아마도.



“새시대?”

“약한 주제에 눈치는 빠르네. 오래는 못 살겠어?”



······그러게. 정말 맞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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