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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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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7.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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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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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24화

DUMMY

“인수야. 넌 지금 세상에서 가장 높은 레벨이 몇인 줄 아니?”

“어어어, 45였던가요? 7?”



차가운 바람이 부는 13층의 어딘가. 그런 차가운 바람에 어울리지 않는 다소 얇은 복장의 두 사람이 여유롭게 눈밭을 걸어 나가고 있었다.


13층이나 되니 주변엔 역시나 사람이 없다. 온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이 남은 것처럼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그저 시끄러운 바람 소리로 가득하니 그들은 평소보다 더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40이지만. 실제로 49야.”

“어? 저 어렸을 때 40레벨이 어쩌고 하니까, 이젠 그것보다는 더 높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도 막, 지금은 몇 레벨인 거다~사실은 100레벨도 넘겼을 거다~이러고.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안 나네요?”

“44에서 45 올릴 때 들어가는 시간이 평균 5년이라고 하면 믿을래?”

“어우······.”

“후후. 2레벨에 하나, 4레벨 하나. 8, 16, 32. 총 다섯 개의 재능을 가지게 되잖니?”

“네네 그렇죠. 전 벌써 네 개지만요.”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어쨌거나. 44레벨부터, 5, 6, 7, 8, 9. 그때부터는 몬스터를 잡거나 던전을 돌거나, 퀘스트를 아무리 많이 해도 레벨이 오르지 않아.”

“어? 왜요?”

“그때부턴 재능을 꽃피워야 하거든.”

“······아!”



비슷한 이야기를 철수에게서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육체의 한계가 어쩌고, 영혼이 어쩌고 했던 이야기.


빠르게 육체를 한계까지 키운 뒤 영혼을 단련한다. 탑험가들에게는 그 육체의 한계가 바로 47레벨이었다.


즉, 육체가 레벨, 영혼이 재능. 철수는 그것을 빠르게 앞당기려 했고, 실제로 지금 인수는 레벨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니 철수의 계획은 생각보다 잘 진행되어가고 있는 듯했다.


그런, 해석되는데. 상당히 중요해 보이는 이야기를 너무 간단히 알게 된 것 같아 조금 멍한 기분이 드는 것은 별수가 없었다.



‘그렇구나. 벽이 어쩌고 하더니, 재능을 진화, 아니 각성? 하여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구나?’


“와아, 대단하네요. 그럼 누님은 지금 레벨이?”

“나, 47레벨. 벌써 세 개 재능을 꽃피웠지! 감히 자신하는데, 누구도 나보다 빨리 이 레벨에 닿지 못했을걸?”



평소 언제나 침착하고 조용하던 허은이 어울리지도 않게 으쓱거리며 자랑스러워할 정도로 대단한 업적이었던 모양이다.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척하니 얹고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편 모습. 30살의 그녀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초창기에 얻었던 재능인데! 지켜보는 사람이라는 재능이었거든? 각성 이후에는 ‘내려다보는 사람.’ 이 되어 있지 뭐야? 시야도 훨씬 넓어지고, 인식 능력도 높아지고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보는 것마저도 가능해졌지!”

“와아 쩐다! 우와~!!”

“하!”



이미 인수는 친구의 재능을 위대한 친구로 진화시켰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기로 한다. 애초에 친구의 재능 자체가 도통 뭔지 알 수가 없으니.


그렇지만, 어쨌거나 재능이 하나 바뀌었으니까, 그게 각성이라면 인수는 45레벨의 문은 프리패스 되는 걸까?



“그럼, 10인의 우노들 대부분이 그런 거예요?”

“모두 그렇지는 않아. 안 아저씨, 아 그러니까 전 대통령은 어쩌면 모든 재능을 꽃 피운 그 너머의 경지, 50레벨이지 않을까 하는데, 그 사람은 느와르에게 당했잖니. 덕분에 탑의 시스템에서도 벗어나게 되었지. 탑에 들어오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힘을, 다 잃은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고. 다만, 본인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가 없어서 힘을 쓰지 않으셔. 게다가 나이도 있어서, 어지간해서는 안 싸우려고 하지. 몸에 무리가 간다나?”

“으음, 모든 재능을 꽃 피워도 나이는 이길 수 없나 보네요.”

“사람 따라 다르겠지. 난 어릴 때보다 지금이 더 몸 상태가 좋거든.”



네 명의 베테랑들과 함께 할 때는 여기저기서 뛰쳐나오는 몬스터들에 연속되는 전투를 거듭하며 나아가야 했던 인수.


허은과 함께 걸어가는 이 눈밭은 전과 다르게 고요하고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심지어는 햇빛에 비춰 하얗게 빛나는 눈밭이, 아래에서부터 솟아나는 설인의 핏물에 하늘로 뻗은 뾰족한 고드름을 만들어내는 모습조차 아름답게, 보인다.



“엇.”

“여기 몬스터 왜 이렇게 많니? 하나하나 정리하기 귀찮아. 게다가 엄청 호전적이네? 여기 처음 왔을 때 만났던 설인들은 이 정도로 멍청하게 달려드는 몬스터도 아니었는데. 탑도 시간이 흐른다는 건가?”



눈 아래에 숨어 기습을 꿈꾸던 설인들이 소리도 없이 죽어 그저 저 새하얀 눈밭을 장식하는 뾰족한 고드름이 되어가는 것을 바라본다.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이렇게 고요히 그저 죽음만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


아무튼. 그렇게 눈밭을 죽음으로 물들이며 걸어가던 그들은 금방 설인의 온천에 닿을 수 있었고,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간다.



“······하아, 오셨습니까, 손님.”

“오오, 나를 기억하네?”

“당신 같은 진상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그때만 생각하면 몸이 뜨거워집니다. 게다가 이번에도 옆에, 무언가, 를······.”



목욕탕의 입구를 지키던 설인이 인수를 보며 질린 듯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며 문을 열어줄 생각으로 몸을 비키며 바로 옆의 허은을 바라본다.


또 인간을 데리고 왔구나. 괜히 귀찮은 일이 또 생길 것 같아 냉큼 저번에 네 사람에게 주었던 것과 같은 것을 주려고 했는데, 그의 행동이 점점 느려진다.


설인과 인간의 눈에 확 드러나는 외형적인 차이를 묻는다면, 눈처럼 새하얀 피부, 머리카락, 몸에서 흘러나오는 한기, 비교적 큰 덩치에 손끝과 발끝이 마치 얼음처럼 투명하다.


허은에게는 딱히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피부는 적당히 혈색이 좋아 보이고, 머리카락도 옅은 갈색에, 키도 크지 않다. 손끝 발끝? 평범한 인간의 것이다.


그러니 그저 인간으로 보는 것이 분명히 옳았는데, 도저히, 그런 무례를 범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설인은 이미 그녀를 인간으로 보았고, 그런 그녀를 무언가, 라는 굉장히 모욕적인 언사로 지칭했기에, 그는 벌벌 몸을 떨며 무릎을 꿇었다.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할 정도로 공포에 떨며 설인은 전에 없이 공포에 질려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그저 문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던전에서의 주인공은 허은이 분명하다. 그 허은은 설인의 과한 공포에 어리둥절할 따름이지만.


툭툭.



“응?”

“거 뭐라도 좀 해줘요. 왕답게!”

“······아, 내가? 저거한테? 왜?”

“에이, 이제 곧 설인의 왕이 될 거잖아요?”

“그건 확정 사항이 아닌데?”

“그럼 뭐, 그냥 좀! 불쌍하니까~”

“흐음.”



인수가 어리둥절한 그녀를 툭툭 건드리며 그녀에게 작게 속삭인다. 공포에 떠는 저 설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주라고.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것도 그림이 괜찮았지만, 허은은 냐루냥이기도 하니 여기에선 냐루냥다운 대사 하나 정도는 던져줘도 괜찮을 것이다.



“착한 아이네. 이름이 어떻게 되니?”

“······저, 저는, 저는, 그저, 이름 없는, 문지기, 일, 뿐입, 니다······.”

“자리 있는 사람에게 이름 없다니. 안타까워라.”

“저희에겐, 왕이, 어, 어, 없, 기에······.”

“그래. 그럼 너에게, 내가 이름을 줄게. 아주 오랜 시간, 너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것을 치하하는 뜻에서.”

“!!”

“지기. 네 이름은 지기야. 마음에 드니?”

“아······아아!!”



냐루냥이라는 캐릭터는 따스함이 있다. 부드럽고 포근한 사람이다. 철수조차 매료할 정도의 위력을 가진 그 따스함이 녹아 있는 말의 한 마디에 결국 설인은 완전히 녹아버린다.


하지만 녹아내린 그 물웅덩이의 한 가운데에는 녹지 않은 작은 얼음 결정이 하나 남아 있으니, 그건 죽음이 아닌 새로운 탄생을 의미할 것이다.



“냐루냥 캐릭터 잘 만든 것 같아요.”

“캐릭터라고 하지 말아줄래? 예전엔 부캐라고 불렀다고 그런 거. 세상이 이 꼴이 되기 전의 일이긴 한데 뭐, 요즘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후후, 좋은 일이야.”



물웅덩이 한 가운데의 얼음 결정을 주워 주머니 속에 넣으며 두 사람은 문의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네 사람과 함께 들어왔을 때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감탄하면서 지나갔던 복도를 허은은 관심도 없다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나아간다.



“여기 경관이라도 좀 구경하시면서 가시지.”

“응? 어 그래. 예쁘네. 주술적인 의도가 다분한 배치야. 너무 빤히 바라보면 홀려서 집중력이 흐트러질 거야.”

“아.”

“걔네들이 왜 그렇게 허무하게 당했나 했더니. 이거 때문이었구나?”

“······.”

“다음에 알려줘야겠다. 저기니?”



철수라면 인수와 함께 ‘호오, 상당한 솜씨야. 아름다워. 이곳을 찾아온 방문자의 마음을 이완시켜주기 위함일까? 설인의 온천이면서도 따스한 배려가 있네.’ 라며 공감해줬을 텐데!


아무리 철수가 싫어도 결국 마음 맞는 건 철수인가. 답답함만이 늘어나는 인수는 목욕탕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힌다.


그곳에는 여전히 목욕 가운을 걸친 여러 설인들이 보이지만, 전과 달리 작아진 설인도 보이고, 사라진 얼굴도 보이고, 전보다 눈에 띄게 커진 설인도 보인다.


쿵!


그리고, 마치 연극의 시작이라도 되는 양 탕의 문을 박차고 나와 한 설인을 집어 던지는 거대 설인이 나타난다.



“이틀 연속으로 이런 동족이 나타나는 건 조금 가슴 아픈데? 이틀 연속으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확실히 부끄럽고. 또 만나 반가워, 광전사.”

“이렇게 빨리 볼 줄은 몰랐지?”

“몰랐지.”



거대 설인의 눈이 허은에게 향하고, 그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은 채 다시 인수를 바라본다.



“이렇게 빨리. 우리의 염원을 이뤄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역시. 살려서 돌려보낸 가치가 있는 남자였어. 피의 광전사. 너희들은 언제나 참, 상상을 초월해서 재미있다니까.”

“다들 나를 잘 알아보네. 이제 설인의 특징은 없을 텐데?”

“무슨 당연하고 지당하신 말씀을, 공주님. 저희들은 언제나 공주님을 기다려왔습니다.”

“······이 나이에 공주님은 좀······.”

“곧 여왕이 되실 수도 있으시니, 지금은 당연히 공주님이라 불러야지요.”



거대 설인이 다른 설인들을 휙 둘러보며 그저 조용히 고개만 까딱이자 다들 조용히 탕을 벗어나 복도로 나간다. 오직 허은 하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대우가 어마어마하네요.”

“그러게. 난 좀 싸워야 할 줄 알았는데. 이러면 나 혼자 올 걸 그랬어.”

“그 꿰뚫어 보는 사람? 그걸로는 이런 상황이 안 보이나 봐요?”

“몬스터 속이야 알게 뭐니?”

“아 그런 느낌?”

“이쪽으로. 아아 그리고, 광전사. 너는, 으으음, 고맙긴 하지만 다음에 다시 와줘. 그땐 분명히 환영해줄게. 어때?”

“마음대로.”

“······아니. 저 아이는 내 신하야. 내 허드렛일을 도맡는 아이인데, 네가 뭐라고 내쫓니?”

“예?”

“아 그런 것이었습니까? 그렇다면 광전사가, 네가 이곳에 온 이유는, 사전답사인 거냐?”

“어? 아, 네에?”

“죄송합니다. 저희들의 시설이 공주님의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모양이군요.”

“정진하도록.”


자신을 바라보며 살짝 웃는 허은은 그저 지금의 상황이 재미있는 듯 보였다. 신하니 어쩌니 하는 것도 ‘이것도 되나?’ 하며 그저 찔러본 것이었겠지.


그래, 마치 인수가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저지르는 것처럼. 최초의 탑험가들, 10인의 우노들. 그들은 대체로 그런 성격이었고, 그렇게 살아도 아직까지 살아있을 정도의 강자들이었다.



“안내해주겠니?”

“저에게 그러한 영광을 허락하신다면 얼마든지 기꺼이.”

“그래. 가자. 너도 참 착한 아이구나?”

“영광입니다.”



허은의 옆에서 은근히 쩔쩔매며 욕탕의 문을 열고 안을 안내하는 거대 설인. 인수를 보며 안 따라가냐며 턱짓한다.



“솔직히 여기까진 예상 못 했는데.”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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