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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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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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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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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DUMMY

​ 본인이 언제나 설파하고 다니던 계단론으로 얻어맞아 너덜너덜해져 힘없이 추욱 늘어진 철수가 멍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그저 지켜본다.


저러다가 분명 또 뭔가 이상한 소리를 하나 툭 던지겠지. 시험의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것마냥 두 설이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철수를 빤히 바라본다.


자신에게 향하던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하늘을 올려다보던 철수는 잠깐 두 설이에게 눈길을 주다 자신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카나에게 말한다.



“하지만 친구. 이러면 다른 문제가 생겨.”

“뭔데?”

“내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포기하는 것으로, 한 사람이 혼란스러워질 거야.”



친구 카나의 말대로. 유일하게 계단론을 이해해준 고마운 친구의 말을 따라 두 설이 중 가짜 설이를 죽인다. 라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으로 혼란에 빠지게 될 한 사람이 있다.


언뜻 보기엔 설이 본인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이는 본인과 똑 닮은 가짜의 등장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한없이 땅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아이니까.


가짜 설이의 존재 자체가 진짜 설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이제야 겨우 힘내고 나아가려고 하는 아이의 앞길을 지뢰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짓거리.


하지만 그건 혼란이라고 할 수 없다. 혼란보다는 우울과 포기, 체념에 가까운 감정일 것이다. 혼란에 빠질 사람이란.


쾅!



“아하하하! 옛날 생각난다~! 철수랑 저 넓은 초원을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그 잠깐 사이에 멀리도 왔다! 우리 설이 대견하게 잘 컸어! 어? 우리 설이 맞나?”

“왔어?”



두 설이와 철수, 카나가 몸을 숨기고 있던 어느 작은 건물을 박살 내며 후광을 등에 업은 채 등장한 인수. 어지간히도 바쁘게 찾아다닌 것인지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8레벨의 탑험가의 수준에서는 상상도 못 할 마력이 담긴 대검과 팔로 크게 휘두르며 10년 뒤의 설이를 공격하는데!



“······!”



우리의 눈치 빠른 인수. 그 잠깐 사이에 이상함을 눈치챈다.


이곳엔 철수가 있다. 느긋하게 인사를 하는 것도 그렇고 곧장 영희가 품에 안기는 것을 봐도 저 철수는 진짜가 분명했다.


그런데 그런 철수가 있는데 설이가 아직도 둘이나 있다. 철수를 잘 아는 인수의 입장에선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가짜와 진짜가 있다면 가짜를 처리할 텐데? 설이를 위해서라도. 둘 다 가짜라면 그냥 내버려둔 채로 나왔을 테고.


혼란. 혼란에 빠지는 한 사람은 바로 인수였다.


바로 방금 철수나 카나와 완벽하게 똑같은 괴물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영희조차 순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0층이라는 곳의 시간이 지독하게 뒤틀려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5층이라는 탑의 일부가 만들어낸 불안정한 설정이 존재함을 몰랐더라면,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가짜와 진짜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을 수 있다. 철수가 둘을 죽이지 않았다. 철수조차 누가 진짜인지 모른다?


휘두르다 목에 닿기도 전에 멈추려 했지만, 무거운 대검은 관성을 이기지 못해 그대로 쭉 휘둘러졌고, 그때 인수의 눈에 보인 것은 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10년 뒤 설이의 모습.


퍽!


아마 그대로 휘둘렀다면 깔끔하게 목이 잘렸을 그 공격은 인수가 급하게 손을 뻗어 날을 막아낸 덕분에 설이의 목을 파고 들어가 피가 철철 흐르게 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대검을 뽑아내면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올 지금의 상황. 흘러넘치는 피의 양만 보면 이미 죽었어야 했지만, 설이는 죽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짜가 맞지 않나? 가짜니까, 눈깔괴물이니까 목을 조금 베여도 괜찮은 것 아닌가? 지금 눈에 보이는 피도 가짜 아닌가?


그런데, 그런데 가짜라면 대체 왜 가만히 있는 거지? 똑바로 인수의 눈을 마주 본 채로 조금은 씁쓸한 듯 웃는 10년 뒤 설이는, 정말 가짜가 맞나?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 이 검을 뽑는다? 만약 얘가 가짜가 맞다면? 저기 보이는 저 진짜 설이가 뭐라고 생각할까?



“무슨 상황이야?”

“글쎄?”

“이 새끼가······.”



남의 목에 검을 박아 넣은 채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조금 모양새가 이상하니 인수는 10년 뒤 설이의 목에서 검을 뽑아내 곧장 장갑의 핀을 뜯어 생명수를 뿌려주려 하지만, 10년 뒤 설이는 목에서 검을 뽑아내자마자 재생하고 있었다.


뭘까. 정말 괴물이 맞는 건가? 하지만 철수를 생각해본다면 또 불가능한 영역은 아니다. 10년이라는 기간을 이곳에서 보냈다면 그야 당연히 가능하겠지. 당장 인수 그의 손도 자연스럽게 재생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철수에게 가르침을 받아 저렇게 강해졌다! 라는 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진짜 철수는 이곳에 겨우 열흘 머물지 않았던가?


이 설이가 가짜라면 가짜 철수에게 배웠다는 것이 되는데, 가짜 철수에게 배운 것으로 이런 힘을 가질 수 있나?



“······.”



인수 본인이 휘두른 공격을 겸허히 받아들이려는 그 모습에 놀란 것인가? 아니다. 인수는 겨우 그 정도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괴물이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잖아? 바로 지금 의심의 씨앗을 심어 다른 가짜들의 생존을 더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빌드업일 수도 있다.


10년 뒤 설이를 내려다보는 인수의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은, 지금까지 모아온 각종 근거 때문일 것이다.



“뭔데?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아아~그, 저기요! 인수 씨! 저희 이제 그냥 집에 가요~뭐, 굳이 굳이 또 피 볼 필요 없잖아요?”



철수가 모르쇠로 나오는 이유를 방금 찾았다. 그녀는 그녀 덕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길어졌다는 것을 과연 알까.


그녀의 입장에서야 우리와 쭉 함께 있었던 설이가 진짜 설이일 테니 그냥 데리고 돌아가면 되는 것 아니냐! 하는, 합당한 생각이겠지만.


아쉽게도 이곳 0층은 그렇게 당연한 공간이 아니다. 탑의 안에서는 당연하다, 라는 단어는 그 가치를 잃는다. 이곳 0창에서는 당연한 것은 없다.


어쩌면, 빌딩 바깥에 있던 설이는 오히려 0층 이동이 더 일찍 진행되어서 다른 일행들보다 더 오랜 시간 이곳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수가 그러했듯이 모두가 이동되는 시간이 달라 설이가 이곳에서 10년을 보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 10년 사이에 가짜 철수를 만났고, 진짜가 되고자 했던 가짜 철수가 설이를 훌륭하게 키워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 0층이라면 철수의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가짜 철수가 철수를 완벽히 연기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철수라면 누가 가짜인지 바로 알아냈을 텐데. 바로바로 처리하는 편이 편했을 텐데. 아, 잠깐.


쾅!



“꺄악! 이, 인수 씨?! 인수 씨도 가짠가?!”

“아니야. 형은 가진 마력이 너무 커서 못 따라 해. 지금 이 공격은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려는 거지.”

“너 가짜지!”

“그건, 직접 확인해야지.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씨익 웃으며 덤비라는 듯이 손을 까딱이는 철수. 불시에 한 공격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막아냈고, 저 여유로운 표정과 행동에 이배수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던 흥미롭다는 듯한 반응.



“쯧. 진짜 맞네. 아이 씨! 야! 그러면 야! 누가 진짜인지 말해줘~!!”

“여기 얘가 진짜겠죠~!”



철수와 가까운 곳에 있는 설이. 쭉 함께했을 설이를 앞으로 데려오며 화를 내는 카나에게 인수는 곤란한 표정으로 철수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놈이 냅다 저 설이를 붙잡으니까 저 설이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거죠? 지금까지 계속 같이 있기도 했고.”

“왜, 왜요! 아니에요?”

“저놈이 죽이려고 잡았을지 지키려고 잡았을지 누가 알아요? 영희도 몰라요 그거.”

“모르긴 해~”

“어? 철수야?”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철수는 인수가 보기에는 그래도 여전히 고민이 많은 듯 보였다. 아직도 고민은 되지만 친구라는 카나의 말이 있으니 좀 더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철수가 보고 있는 것은 설이일 것이다. 진짜 설이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어떤 길을 오르려 할까. 철수는 지켜보려고 하지만. 이건 과거로 돌아가는 짓이었다.


철수가 설이의 자유를 완전히 인정해주었던 초창기. 두 사람이 얼마나 길고 긴 평행선을 걸었는지를 떠올리면 된다.


선택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설이를 철수는 끌고 갈 생각이 전혀 없고, 설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이끌어가는 방법을 전혀 모르지만 버림받고 싶지 않아 철수를 붙잡는다.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진짜 설이가 살고 싶다면 철수에게 말을 하면 되고, 그렇다면 철수는 분명히 설이를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설이는 그러지 않는다. 고민이 커진다. 낮고 낮은 자존감은 그녀를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번엔 인수마저 혼란스러워하는 꼴을 보았으니, 설이의 고민과 고뇌, 후회와 죄책감은 커질 테니, 차라리 죽여달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두려워하던 시기의 설이라면 무작정 살려달라고 빌었을 텐데, 철수와의 탑 여행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거칠게 극복해버린 설이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마저 가능했다.



“아, 짜증 나.”



슬슬 머리가 아파져 왔다.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 너무나도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설이의 심적 성장? 오늘 일만 아니었어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참이었다.


머리도 복잡해지고 감정도 복잡해지고 뒤죽박죽 뒤섞이기 시작하는 감성과 이성의 소용돌이 속에서 광전사 특유의 광기가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하고, 복잡하게 뒤섞인 그 모든 것은 극단적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다.


쾅!


대검에 마력을 집어넣는다. 잔뜩 무거워진 대검을 힘겹게 들어 올려, 인수는 그 대검의 끝을 잘라내어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을 뿜어낸다.


애매하고 이상하고 기이한 이 모든 상황들은, 탑에 속하지 않은 0층의 위로 5층의 일부인 커다이 시만 덜렁 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것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새로운 모든 것들이 기이하고 부족하고 이상한 것 아닐까?


그래, 그렇구나! 그렇다면! 가득 채우자! 테마가 없던 이 0층에! 테마를 만들자! 이미 한 번 테마 전쟁을 일으킨 전적이 있는 인수! 무엇도 두렵지 않다!


있는 힘껏 마력을 분출하고, 그것도 모자라 영역을 활짝 열어 토끼고 수인이고 뭐고 우르르 뛰쳐나오게 만든다.


갑자기 세상을 피로 물들이고 수를 다 셀 수 없을 정도의 몬스터를 풀어버리는 인수. 그 철수와 그 영희마저도 그런 인수의 행동을 막을 수 없다!



“기다려 설아! 금방 끝난다! 이 아저씨 못 하는 게 없단다!!”

“······아 ㅈㄴ 멋있어······.”



인수의 폭주에 뭔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채는 카나지만, 설이들은 그저 인수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철수와 영희는 그저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볼 뿐이다.



“······철수야, 이거, 내 잘못이니?”

“계단을 모두 오른 다음에야 잘못된 계단을 올랐다는 걸 알게 되겠지.”

“어머어머 어떡해, 나, 나 진짜 실수했나 봐. 인수 씨한테 사과해야 하는 거지?”

“나중에 나랑 같이하면 돼.”

“너도 하는 거구나?”

“안 하면 더 크게 혼날 거야.”

“······아니, 그래서 진짜 설이는 누구야?”

“형한테 말하지는 말고. 진짜는 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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