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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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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6.1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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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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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99화

DUMMY

“······.”



토끼는 지금 혼란스럽다.


토끼는 분명히 설이를 보았다. 바로 방금까지 설이 참 무섭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설이가 인수와 아는 사이인 줄은 몰랐지만.


아무리 봐도 같은 사람이다. 표정과 분위기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 동일하다. 쌍둥이인 걸까? 혼란스러운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되어간다.



“오빠~이이잉~”



인수와의 만남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저것이 정말 방금 전까지 가죽이 갈라질 것 같은 살기를 내뿜던 그것과 동일인이 맞는 걸까?


······에이, 아닌가 보다. 토끼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그쯤하고, 다음 거 하자.”

“······너도 참, 제정신은 아니다.”

“기왕 여기 온 김에 할 수 있는 거 하고 가면 좋잖아. 그렇잖아도 설이랑 카나 친구는 벌써 꽤 스펙업했어. 이제 형 차례야.”

“지독한 놈.”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해야지. 설. 형한테 한 번 자랑해줘야지. 네가 배우고 얻은 것들.”

“우우우······징그러운데······.”



아, 그 수많은 눈동자가 머리 대신 떠다니는 그건가. 확실히 징그러운 모습이다. 어라? 그런데 다른 사람 아니었던가? 왜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거지?


······공산품인가? 어우, 저런 것이 계속해서 찍혀져 나오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나?


토끼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난다. 별로 가까이서 보고 싶은 비주얼은 아니었다. 게다가 설이가 휘두르는 채찍에서 흘러나오던 독은 멀리서 냄새만 맡아도 지독한 독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새롭게 알게 된 건데. 여왕벌이라는 재능은 어느 정도 육체에도 변화를 주는 것 같아. 모습이 변한다기보다는, 작은 독침을 꺼낼 수 있게 되는 정도.”

“그냥 설이가 말해주게 내버려 둬. 극성 부모도 아니고, 애가 말할 틈은 줘야지.”

“철수가 유독 설이한테 극성이긴 해~?”

“그게 극성인 건가? 방치 아니었어?”

“맞아여, 저 좀 내버려두세여!”

“뭐지? 내 가치관이 이상한 건가?”

“얘네들이 이상한 거니까 진정하세요. 익숙해지기 어렵죠?”

“네~뭐 이런 친구들이 다 있나 싶네요~”

“아하하, 제 말이 그래요~”

“······.”



오오, 설이의 표정에서 질투가 느껴진다. 뾰루퉁한 표정으로 볼을 부풀리고 더 강하게 인수에게 안긴다! 조금 전의 모습과 비교한다면 세상 무해하고 귀여운 모습이다.


대체 뭘까? 내숭인가? 한 발자국 더 뒤로 물러난다. 이제 보니 이 다채롭고 아름다운 세상은 인수의 영역 안쪽보다 더 피 튀기는 전쟁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 설이가 뭘 했는데? 궁금하네~”

“설이 그 정도로 아기 아니야 형.”

“영희는 어디 갔냐? 자?”

“요양 중.”

“어디 아프데?”

“그냥 요양 중. 이유는 없데.”

“놀고 있는 거잖아 그럼.”

“그렇게도 표현하지.”



철수와 인수가 조잘조잘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사이에 설이가 우다다 달려 나가 철수가 가지고 있는 팔찌 채찍과 같은 팔찌에서 채찍 한 줄을 뽑아낸다.


채찍의 표면에 반들반들하게 코팅되어 있는 설이의 독. 여왕벌이라는 재능으로 얻어낸 독은 과연 어떤 종류일까. 인수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물론 토끼는 잘 알고 있었다. 무려 이배수의 가죽마저도 녹일 수 있을 정도의 강렬한 독이란 것을.



“오오, 이게 독이야?”

“!”

“네, 네! 지금은 아직, 따끔거리는 정도에여!”

“오! 오오! 진짜다! 오오, 이런 것도 되는구나? 이야, 역시. 무슨 재능이든 마냥 안 좋은 건 없나 봐.”

“글쎄. 독이긴 한데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기보다는, 미약 같은 느낌이라 조금 아쉽지.”

“미약? 미약이 뭐야?”

“음약, 춘약, 최음제. 그러니까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마약이야.”

“우와······진짜 미치겠네. 그럼 왜 따끔거리는 거야?”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니까.”



따끔거리는 정도라니? 이배수의 가죽을 조금이라도 녹일 정도의 위력이었는데? 혹시 여러 독을 그때그때 바꿔서 꺼낼 수 있는 건가?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가 없다.


팡!



“에잇!”

“오오! 오오오! 뭐가 팡팡 터지는 소리가 났어!”

“채찍의 끝이 순간적으로 음속을 넘으면서 나는 소리야. 대단한 재능이야.”

“이야~! 네가 어쩐 일로 설이 칭찬을 다 하냐?”

“내가 처음 채찍 배우기 시작할 때는 고생했거든. 내가 나를 많이 때렸었지. 그런 거랑 비교하면 아주 훌륭해.”



토끼는 알고 있다. 그녀가 채찍을 휘두르는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설이가 채찍을 휘두르는 모습은 그냥 어린아이가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허공에 대고 휘적휘적하면서 뿌듯한 표정을 짓는 설이는, 이젠 가증스럽고, 조금은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저렇게까지 내숭을 떨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모두에게 인식시켜 다른 이들의 보호를 받으려 하는 행위가 분명하다. 그런데 그 대상이 인수라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어차피 지켜줄 대상을 찾는 것이라면 인수보다는 더 강한 상대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바로 옆의 철수가 훨씬 더 강할 텐데?


분명 토끼가 보기엔 그런데, 설이의 눈이 향하는 곳은 철수보다도 인수와 카나였다. 두 사람에게 듬뿍 칭찬받은 다음에야 철수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철수 아저씨, 진짜로, 그거 꺼내여?”

“흠. 내가 좀, 과하게 개조하기는 했지만, 일단 보여주기는 해야겠지.”

“으으으으.”

“좀 징그럽기는 하지만 나는 나름 멋있다고 생각해.”

“······이 언니도 이상해······.”



어쨌거나 드디어 선보이는 설이의 새로운 힘.



“부르셨습니까 누님!!”

“안 불렀어.”

“왜 라오만 찾으십니까 누님!”

“안 불렀으니까 들어가. 뭘 부르던 내 마음이야.”

“저희도 잘 할 수 있습니다 누님!”

“들어가!”



설이의 몸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라오 키즈들. 기능적인 부분을 따지자면 하등 쓸모없는 놈들이기는 했지만, 일종의 애완동물 같은 개념으로 쓰이고 있었다.


저런 놈들이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거지? 라고, 인수는 생각하지만, 설이에게는 정말 은근히 멘탈 안정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토끼는 그런 것보다도 다른 게 조금 궁금해졌다. 왜 저런 하찮아 보이는 것을 꺼내는 걸까? 더 무서운 머리 없는 괴물 군대와 끔찍한 생김새의 라오가 있는데.



“사과야 나와!”



아! 나왔다! 머리가 없고 사제복을 입은! 한 손엔 지팡이, 다른 한 손엔 마도서를 들었고!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수많은 눈동자가! 없다.


정확히는 눈동자는 있었지만 커다란 눈동자 단 하나만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뭐야. 라오야? 머리 땠어?”

“응. 없는 편이 나은 것 같아서. 척추에 박아버릴까 생각도 했는데, 여러모로 쓸모가 없어서. 애초에 설이한테 마법은 안 맞는 것 같아.”

“포기했구나?”

“올바른 자세로 계단을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계단을 오르는가, 도 중요한 거지.”

“그래. 그럼 그 뇌는?”

“라오한테 박았어. 라오는 원래 마법사니까 붙여두면 잘 쓰지 않겠어?”

“이젠 사과에여!”

“으음~라오, 아아, 아니. 사과도 애가 좀 멍청하지 않았나?”

“마법으론 꽤 머리가 돌아가. 도구로는 쓸만해. 동료로는 없는 편이 낫고.”

“그래서 머리를 땠구나. 그럼 눈은 왜 박아둔 거야?”

“눈이란 게 또, 마법적으로 꽤 큰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고. 없으면 없는 데로 의미가 있다지만, 라오, 아니 사과는 눈이 있었던 놈이라서.”

“복잡하다 마법.”



이제 슬슬, 이제서야 슬슬. 토끼는 이상함을 느낀다. 이상한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되는 거지? 모든 것이 내가 보았던 것과 달라.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사실 현실의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고 나는 그저 흐릿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삑! 삑삑!”

“뭐야? 왜 갑자기 저래?”

“뭐가 이상하다는 건데? 말을 해 말을.”

“근데 얘는 누구예요?”

“저, 저기, 저 안 봐줘여······?”

“삑! 삑삑!”

“달라? 뭐가?”

“삐익!”

“······아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 어? 어라? 네 말대로면······응?”



철수를 바라본다. 이 인간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지금 모습 그대로일 것만 같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0년 전에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을 인간은 아니다.


아니, 철수라면 그러고도 남겠지만 영희가 그 모습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을 리가 없다.


설이.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10살이면서 어른의 모습을 한 아이니 10년 동안 늙지 않을 것이다? 이상한 말이다. 더 늙어서 30대로 보인다면 모를까.


카나, 는. 사실 인수의 눈에는 익지 않은 사람이다. 그저 ‘어, 되게 예쁜 사람이네.’ 정도의 인식만이 존재할 뿐이지만, 10년 전과 똑같은 모습이란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철수가 10년의 세월 동안 변하지 않게 조치를 취했다?



“철수야. 변하지 않음이란 어떤 걸까?”

“······.”



저 경멸의 눈을 보라. 철수는 위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위로 올라가는 과정도 절대 무시하지 않는 인물이 변하지 않는 외모를 추구할 리가 없다.


게다가 딱히 인수가 받을 충격을 줄여주겠다는 대견한 마음으로 외모를 유지해줄 위인도 아니니.



“형, 뭐 영원이니 영겁이니. 추구하는 건 나쁘지 않아. 그게 저주니 뭐니 하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어어 됐어. 야, 여기 오고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열흘.”

“열, 열흘? 열흘?? 10일? 10년이 아니고?”

“10년? 뭐 하러?”

“뭐, 하러라니?”

“형이 오래 안 올 것 같으면 잠깐 나갔다가 들어오면 되잖아.”



그래. 이곳의 시간의 흐름이 다르단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철수다. 엄청 자유롭게 0층과 탑을 오갈 수 있진 않더라도 문을 여는 것은 분명 가능하다.


하물며 이곳엔 저 거대한 세계수의 주인인 요정도 있고, 이배수도 있다. 그 둘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동이 그렇게까지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너무 자주 드나드는 건 안 좋겠지만. 내가 미쳤다고 10년 동안 형을 기다려? 그것도 얘네들이랑?”

“어, 응······아니, 그, 저, 세계수의 그 요정이 너 못 나가게 막지는 않을까 해서······.”

“형.”

“응.”

“영희가 놀고 있, 요양 중인 곳이 거기야. 걔는 우리가 빨리 나가줬으면 할걸? 겨우 열흘 있었는데 ‘아~이제 집에 좀 가라고~!’ 나 참. 우리가 귀찮다는 거야?”

“원래 부모가 며칠이고 집에 안 가고 있으면 답답하고 그런 거지 뭘.”

“부모?”

“네~저 세계수를 심은 게 철수고 키운 게 영희라고 하더라고요?”

“······진짜야?”

“응.”



그렇다는 말은, 그렇다는 것은.



“모, 몰라······모르겠어······.”

“뭘?”

“아니, 그, 철수야 잘 들어 봐?”



철수에게 토끼가 본 것을 모두 이야기해주는 인수. 도대체 언제 그런 긴 이야기를 들은 것이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그런 것보다는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들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10년을 제가 여기서 인수 씨를 왜 기다려요. 나만이라도 내보내 달라고 하지.”

“아,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10년이라. 그 정도 시간이면 설이를 실력자로 만들 수 있지. 10년······끌리는데? 여기 잠깐 있다 갈래? 때마침 이배수도 있으니까 딱인데.”

“정신 차려 철수야.”

“저 채찍 잘 썼어여?”

“말도 또박또박 잘했다는데?”

“우으, 지금도 잘 하는데여······.”

“어? 어어, 그럼그럼. 그렇지. 그런데 다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응?”



10년이 아니라 열흘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배수는 10년이 지났다고 말을 했고, 토끼의 앞에는 10년 뒤의 설이가 나타났던 것일까?



“흠. 이런 건 영희가 잘 알겠지. 일단 세계수에 가보자.”

“······야, 그런데 사실 알고 보니 진짜 10년이 지난 거고 네가 가짜인 것이라면?!”

“그럼 어쩔 건데.”

“어?”

“내가 가짜고, 미친 설이가 진짜면. 형이 뭘 할 수 있는데? 뭐, 도망이라도 가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왜 나만 취급이 항상 이런 거야?”

“그야. 형은 본인 실력에 비해 강한 적만 만나고 있으니까. 익숙해져야지 어쩌겠어.”

“와아, 용케 살아계시네요?”

“설이가 빨리 강해져서 지켜줄게여!”

“허허, 고맙네······.”



조금, 슬퍼지는 인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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