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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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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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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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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DUMMY

설. 김설. 김철수와 이영희가 키우는 아이. 그 아이는 지금 혼란스러웠다. 왜 눈앞에 똑같은 모습이 있는 걸까?



“혼란스러워.”



눈앞의 다른 설이도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대놓고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말 모든 것이 똑같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른 점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완벽하게.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에 설이가 가장 처음 느끼는 감정은, 불안감. 내가 가짜인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


보통은 ‘저건 가짜야!’ 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설이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존재를 의심한다. 남을 의심하고 미워하는 것보다 자신을 탓하는 것이 편한 두 사람이었다.


지극히 낮은 자존감과 0층이라는 기이한 공간 속에서, 두 설이가 서로 아무 말도 없이 똑같이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한다.



‘오빠가 해결해줄 거야.’



인수는 만능해결사는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우노 길드에서는 아마 슬슬 인수를 취급에 주의해야 하는 탑험가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10년 뒤의 설이의 입장에서 인수는 정말 연약한 남자였다. 손에 든 채찍 살짝 휘두르면 깔끔하게 다짐육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실력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수의 존재를 제대로 확인한 설이는 그에게 기대고 만다. 여왕벌의 재능이 끼치는 영향인지 아닌지, 아마 그건 누구도 모를 것이다.



“······저, 저기여······.”

“왜요······.”

“저, 저세여?”

“······말투 씹······네, 내가 너예요.”

“저기, 라오 키즈는, 어디에 있어여?”

“죽었어요. 약해서.”

“아······그럴 것 같아여.”

“어차피 도움도 안 되는 놈들이잖아요.”

“맞아여. 도움도 안 되고, 시끄럽기만 하고, 쓰잘데기 없이 앵기기만 하고, 사람 귀찮게 만들어여.”

“처음 다 죽어 없어졌을 때는, 그래도 조금 외로웠지만 오래 가지 않았어요. 오빠가 곧 구하러 올 걸 알았으니까요.”

“······오래, 기다렸어여?”

“상관없어요. 이젠 오빠가 왔으니까.”



10년 뒤 설이의 눈동자에 서린 짙은 광기. 자신은 10년 뒤에 저렇게 되는 건가! 10년 뒤까지 인수만 바라보면서?


······과연, 그걸 인수가 좋아할까? 아마 싫어하겠지? 저런 광적인 집착과 사랑을 인수가 환영할 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은 그런 면이 적으니, 분명 인수는 어린 설이 본인을 더 마음에 들어 하겠지. 분명 인수는 본인이 진짜라고 생각하고 믿어줄 것이다.


괜히 뿌듯해지는 설이였다. 내가 더 뛰어나고 우월하다는 확증을 얻은 그녀의 표정에는 여유와 미소가 생긴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저렇게 강한 설이가 있다면 본인은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된다. 앞으로의 탑에 지금의 설이는 너무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그건 싫다. 지금의 설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망설이지도 않는다. 필요하다면 무엇이라도 얼마든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10년 뒤의 설이가 자신을 빤히 쳐다본다. 설이도 그 설이를 똑같이 마주 보며 각오를 다진다.


······잠깐. 이거 어째서인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아! 바로 얼마 전 1층에서 마을이 새시대에게 점령당했을 때도 이런 각오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분명히 끝이 안 좋았던 기억이 난다.


스르륵. 다시 앉았다. 얌전하게.



“뭐해요?”

“앉았다 일어났다 운동이여.”

“좋은 자세네요. 철수 아저씨가 그랬어요. 자신을 단련함에 있어 조금의 부족함도 있어선 안 된다. 마치 계단을 오를 때 조급함에 두 계단 세 계단을 한 번에 오르려다 미끄러질 수도 있는 것처럼.”

“으엑.”

“왜 그래요? 계단이 싫어요? 뭐야, 계단이 우스워?”

“아, 아니에여.”

“······괜찮아요. 설이도 잘 몰라요.”



10년 뒤의 본인은 철수에게 감화되어 버리는 건가. 어쩔 수 없겠구나 생각하면서도 참 싫은 미래였다.


그래도 의외로, 자신이 뭔가 벽에 부딪혔을 때, 무언가 조언이 필요할 때 떠올릴 어른이 있다는 건, 지금의 설이가 생각해도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아니 하지만 역시 그게 철수라는 건 조금······.



“어, 저기여, 그러면여, 그쪽의 철수 아저씨는 어디에 있어여?”

“몰라요. 어디라도 있겠죠. 그런 사람이니까요.”

“으음? 옆에 없어여?”

“설이는 이제 애가 아니니까요.”

“으음, 어른이 된다는 건 슬픈 일이네여.”

“맞아요. 설이도, 그저 언제까지고 어리고만 싶었는데.”

“덜 배웠네.”



?!


화들짝 놀란 두 설이가 뒤로 후다닥 물러난다. 어린 설이는 뒤로 물러나려다 붙잡혀 버렸지만.


어린 설이를 붙잡은 것은 어깨에 카나를 태운 철수. 아무래도 어린 설이와 함께 다니던 그 철수처럼 보였다.



“어른이 됨이 슬프다니. 어름이 됨도 또한 그저 계단을 하나 올랐을 뿐인 일이야. 계단 위의 경치에 조금 더 가까워졌음에 희망을 품어야지.”

“알 수 없는 계단 위의 경치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 계단 위의 경치가 내가 그리던 것과 다르지 않을까 하는 미지의 공포에 더 가까워진 것이기도 하지. 나이가 들었다는 건, 계단을 오르기 어려워졌다는 의미기도 하고. 서글픈 일이야. 어렸을 때는 내 눈앞의 모든 것이 내게 맞춰 작았는데.”

“친구. 그러한 미지의 공포를 모르는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계단을 논하며 미지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는 거지. 이건 의견의 제시가 아니야. 혼내는 거지.”

“아 그런 거야?”

“공포를 느낌은 당연하지만, 그 공포를 저 모습이 되어서도 극복하지 못했음은 솔직히 말해 그리 바람직하지 않아. 그러니까, 덜 배웠다고 하는 거야. 그저 조금 아쉬울 뿐이지만, 한 편으론 아쉬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성장에 기쁘기도 해.”

"그럼 칭찬 한 마디 해주지?"

"안 돼. 정신이 너무 연약해. 육체가 완성에 가까워졌는데도 정신이 완성되지 않은 것은 큰 문제야."



나타나자마자 잔소리. 두 설이가 동시에 눈을 피했다. 철수의 잔소리는 10년이 지나도 듣기 싫었다.


그런 모습이. 둘 다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그 광경이, 조금 철수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설이와 똑같은 모습, 똑같은 행동, 말투와 생각. 정말 설이가 0층에서 철수와 10년을 보내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저들은 그저 설이의 모습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완전히 설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이야 설이의 모습을 따라 한 것이겠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며 자기 자신조차도 속이게 된 것이리라.


진짜를 따라 하던 가짜는 결국 또 다른 진짜가 되었다. 지금 이 자리에 가짜는 없다. 모두 진짜였다.



“쩝. 아쉽지만 별수 없지. 여기서 죽어줄래?”



그냥 그렇다고.


진짜를 뛰어넘어 본인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게 된 가짜? 철수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박수 세 번 정도 쳐주고 싶었지만 설이에게는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굳이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설이를 생각한다면 저런 혼돈을 주는 존재는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인정하는 너는 오직 너 하나뿐이다. 자 보아라. 너는 오직 너 하나로 완전하며 너를 대체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보여주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직접 설명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왜여!”

“왜요!”

“왜, 라. 흠.”



죄 없는 죽음에 명확하고 납득이 가는 명분이 존재하는가. 몬스터 태생이라는 이유는 다소 서글프지 않을까?


명분 없는 행위는 과연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시험 백 점 맞으면 게임기 사줄게! 라고 약속했지만 정작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부모와 같지 않을까?


신뢰를 주지 못하는 부모는 아이의 눈에 어떻게 비치게 될까. 부모를 신뢰하지 못하는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자라게 될까.


부모도 아닌 자신은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걸까. 부모 비슷한 것이긴 하고, 어느 정도 자처하고 있기도 하지만 참 팔자에도 없는 고민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렇긴 하다. 왜 둘 중 하나가 꼭 죽어야 하는 거야?”

“그건.”

“도플갱어처럼 둘이 만나면 하나는 죽는 것도 아니고, 저 설이가 이 설이를 납치하기는 했지만, 딱히 다른 해를 끼치진 않았잖아?”

“······쯧. 사실, 그래서 더 그런 것도 있어. 설이라는 인간의 사고방식. 그 사고 속에서 자기 자신이 너무 낮은 곳에 있어.”

“자존감이 낮다?”

“그래서, 똑같은 사람이 하나 더 있으면 ‘내가 가짜인가?’ 라고 생각하겠지. 그런 애야.”

“아하~저런~! 우리 애한테 방해되니까 처리하겠다는 거구나?”

“그렇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음?”



카나의 의문. 왜 굳이 하나를 죽여야 하는가. 카나야 철수가 워낙 아무나 퍽퍽 죽여대는 것을 봐왔던 탓에 그만 좀 죽이라는 마음에 던지는 말이었지만, 철수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자신의 계단론에 공감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친구의 ‘왜 죽여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상당히 무겁게 다가왔다.


만약 저 질문을 인수가 했다면 인수를 납득시키기 위한 설명을 했을 것이다. 인수의 질문은 대체로 납득과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카나의 경우에는 납득시키기 위한 설명이 아닌, 그것이 옳은가! 에 대한 고찰이 필요했다. 카나의 질문이 바로 ‘그거 맞아?’ 라는 질문, 아니 반박이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계단론을 공감해주는 현시점 단 하나뿐인 철수의 유일한 이해자이기에 철수의 고민이 조금 깊어진다.



“철수야. 네가 말했을 거야.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방해가 되니 처리한다. 라는 너의 결정은 너무 독단적이지 않니?”

“?!”

“철수. 너, 마치 계단 위의 경치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지 않아? 옳은 길을 알기에 그 길을 강요하는 사람 같지 않느냐고.”

“······내, 내가······내가, 계단을, 강요해?”

“마치 옳은 방법이 있다는 듯. 너는 그 길만 따라오면 된다는 듯!”



계단을 오르며 아직까지도 무엇이 옳은지 모르기에 많은 것을 긍정해 왔던 철수. 그런데 정작 설이의 앞에선 정답이 있다는 듯 행동했다. 이 말인가?


남들이 어떻게 살건 관심도 없고 긍정하지만 내 자식은 안 된다!! 모순적이지만 아마 대부분이 그 기분을 알 것이다.


철수마저도 그랬던 것일까? 우리 애가 조금 더 좋은 길을 걷길 바라서,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곳으로 끌고 가려 했음인가?


물고기 잡는 법이 아닌 물고기를 주려 했음인가!



“뭐라는 거에여?”

“나도 몰라요.”

“계단론 잘 아는 것 같았는데.”

“철수 아저씨의 수준은 너무 높아서. 여기선 그냥 아는 척만 하세요.”

“······아~그렇구나~!”

“으음~완전히 이해했어!”



정작 대상이 되는 설이들은 뭐라는 것인지 도통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지만, 철수의 혼란과 충격은 커져간다.



“각각 개인에게는 모두 다른 계단이 있는 건데!”

“크윽!”

“넌 너의 계단을, 아니 네가 가본 적이 없는! 네가 만들어낸 가상의 계단을 설이에게 강요하려는 거야!”

“아, 아아!”

“오만하도다!”

“······!”



털썩!


심지어는 정신적인 충격에 휘청이며 전에 본 적이 없는 표정으로 무릎까지 꿇는 철수를 인수가 봤다면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을 텐데.


어쨌거나. 덕분에 설이의 목숨줄이 조금 더 길어진 것은 분명했다.



“······에휴.”



해소되지 않는 혼란에 설이의 한숨이 깊어지는 것도, 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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