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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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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6.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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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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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DUMMY

​“······지극히 옳은 말이야. 남의 물건에 상해를 입혔으니 말이 아닌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옳지.”



고개를 끄덕이며 인수의 항의를 정당하다 말하던 설인은, 진지하게 자신이 인수에게 어떤 보상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봐도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잘난 인물인 것이 확실한 설인인데, 상상 이상으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수로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처음 보여준 모습을 보았을 때는 권위적이고 가차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이 되었는데, 막상 인수가 뭐라뭐라 고함을 지르니 ‘네 말이 맞네.’ 라며 자신의 권위를 침해한 인수에 대해서는 따로 나무라지 않는다.



“흐으으음, 신입이라 원래부터 탕으로 안내할 예정이었으니 탕에 출입을 허락한다는 것은 보상이 되지 않을 것이고.”



만약, 인수를 자신과 같은 설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분명히 인수도 이미 죽은 네 베테랑처럼 공격당했을 것이다.


다행인 점은 인수에겐 버니타임이 있어 저들처럼 즉사하는 일은 없어 싸울 기회 정도는 생겼을 것이란 점이지만, 싸우면 이길 수 있는 상대일까?



“쩝. 그런데 그 전에. 내 호기심 하나만 해결해도 될까?”

“뭐요!”

“왜 인간을 펫으로 삼았지? 그 뜨겁고 더러운 것을 곁에 두는 이유가 뭐야? 너는 이렇게나 맑은 기운을 품은 아이인데. 아까운 짓 하지 말라고.”

“딱히. 이유는 없어요. 어쩌다 보니?”

“아하, 어쩌다 보니. 조용히 있는 너의 곁으로 인간이 다가온 것이군. 귀찮아서 내버려 두었더니 어느 순간 너의 펫이 되어 있었던 것이고. 그렇군 그랬어. 이거이거, 대단한 친구로군.”



딱히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차가운 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기본적으로 차분하고 냉정한 설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필드에서 만나게 되는 설인들은 죄다 미치광이처럼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탓에 일반적인 탑험가들이 그걸 알 수는 없을 테지만.


만약 다른 탑험가들이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들에게 탑 안에서 말이 통하면 NPC 안 통하면 몬스터 정도의 인식일 테니까.


NPC는 탑의 주민, 몬스터는 탑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일어난 버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피의 광전사인 ABDC, 영역에서 살아가는 수인들, 5층 주민들의 인간적인 모습, 0층에서 마주쳤던 이배수까지. 이러한 특이한 모습들을 보아온 인수에게는 전혀 달랐다.


아니 오히려, 정말 게임의 NPC처럼 느껴져 기억에도 남지 않는 마을 주민들보다 몬스터들이 더 탑의 주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을이라는 요정들이 지켜주는 영역의 바깥으로는 특별한 이벤트 없이는 나오지도 못하는 npc 보다 탑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필드의 몬스터들이야말로 탑에서 자유로울 테니까.


그런 관점에서 몬스터는 어떻게 바라봐야 좋을지, 그건 조금 애매한 부분이기는 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렇다면 특이한 너에게는 ‘온수’ 를 허락해도 되겠지. '사우나' 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이 말이지.”

“······.”



던전 안의 몬스터가 자기만 아는 이야기를 꺼내버렸다. 게임의 npc라면 대충 아는 척을 하던가 뭔지 모르겠으니 알려달라고 하겠지만, 만약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몰라? ‘온수’ 를? 전혀 모르겠나? 아는 것이 전혀 없어? 부모에게 들은 것이 없나? 부모는 누구지? 어디서 태어난 거야? 너, 정체가 뭐지?”



따위로 진행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온수. 그것이 무엇일까. 나눈 대화가 많지는 않지만 저들은 뜨거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설인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온수를 보상으로 내어준다. 왜 뜨거운 것을 싫어하는 그들에게서 대가로 뜨거운 온수가 거론되는가.


설인의 온천. 들어오기 전 듣기론 다른 탑험가들도 설인들이 왜 온천을 찾아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설인이 안락사하기 위한 장소라는 추측마저 나왔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설인은 조금 전 다른 설인을 내쫓았다. 자격이 안 된다는 듯이. 그리고 바깥의 온천을 폐수, 라고 불렀다.


정말로 더럽고 위험한 물은 아닐 것이지만, 저들에게 이 욕탕 바깥의 온천은 저들이 버린 폐수에 불과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곳도 목욕탕인 것은 다들 목욕 가운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하다. 그렇다면 폐수란 이곳에서 용도를 다한 목욕물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체 온수가 뭐야?’



원래 신입인 인수에게 탕을 안내할 예정이었다니 온수가 탕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 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분명히 뭔가 다른 의미가 있을 텐데.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문에 빠르게 주변을 살펴본 순간, 한 설인의 눈에서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질투의 눈빛.


아주 짧은 순간이었을 뿐인데도 정확히 인수에게 들켜버린 설인은 인수와 얼떨결에 눈이 마주치고 화들짝 놀라 혼자 엉덩방아를 찧는다.



“야야야, 신입아. 괜히 동족을 겁주지 마. 그야 물론, 질투란 감정은 역겨운 것이다만, 별수 없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잖아, 그 정도는 넘어가 주라고.”

“응? 내가? 뭘? 그냥 쳐다본 건데?”

“······아~그런 느낌? 그래. 좋아. 아~니! 그래서! 온수 싫어 좋아! 그거만 말해. 싫다면 다른 걸 생각해볼 테니까.”



질투. 질투다. 온수. 설인의 얼어붙은 피를 녹여내어 설인들이 싫어하는 뜨거운 기운을 온몸에 퍼트릴 온수다. 그것을 질투했다.


설인. 온수. 뜨거운 기운. 안락사. 폐수. 질투. 마지막으로, 탕을 지배한 듯 보이는 강력한 설인.



“글쎄. 얼마나 순도 높은 온수일지 봐야 알겠는데?”

“크흠······까다롭기는. 펫을 가족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다더니. 너도 그런 거냐? 너무 그렇게 뜨거워지지 말라고.”

“그래서? 어디까지 제공할 수 있지?”

“흠······상당히 강한 인간들이었지, 그런 것이 넷이라면······그래, 나는 밀도라 표현한다만 너의 표현에 맞춰, 중상 정도 순도의 온수를 제공하지.”

“······.”

“이봐이봐, 이 정도면 꽤 쳐준 거야. 일반 설인에게 실수의 대가로 지불하기엔 오히려 꽤 큰 보상이라고.”

“흐음······그래. 정당한 대가인 듯해. 받아들이지. 대가를 받는다면 너를 용서하도록 하겠어.”

“좋아좋아. 그렇게 시원하게 가자고.”



땡~!


공간 전체에 울리는 종소리. 거대 설인이 걸어 나올 때만 잠깐 열렸던 문이 저절로 활짝 열리며 뜨거운 수증기를 뿜어낸다.


설인들이라면 당연히 싫어해야 옳지만, 저들은 하나 같이 진지한 표정으로, 기대하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문의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침 목욕 시간이군. 좋아. 아주 좋아.”

“뭐야. 다 같이 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 저것들은 하급 온수에 몸을 담글 테니까. 게다가, 사우나에도 들어가야 하고. 너도 마찬가지야. 이번 한 번이 끝나고 나면 다음엔 저들과 같은 과정 이후에 하급 온수에 몸을 담가야 할 거야.”

“흥. 그러면 또 펫을 데려와야겠네?”

“하. 농담하는 설인이라니. 어차피 할 거면 재미없는 걸로 해.”

“이게 웃겨?”

“네 주제에 할 말인가 싶어 웃겨. 농담 잘하는 것도 재능이야 친구. 함부로 하지 말라고. 혹시라도 웃기는 말을 했다가는 벌금이야.”

“쯧. 내 재능이 죄스럽네.”

“하!”



애초에 웃음이 많은 편인지 살살 올라가려는 입꼬리에 자기 뺨을 툭툭 쳐서 억지로 내리는 거대 설인이 발소리도 없이 조용히 문의 안으로 들어가고, 인수도 그것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탕의 안에서, 여러 설인들이 그 열기에 힘들어하면서도 더 뜨거운 욕탕에 몸을 담근다.


자칫 잘못하면 녹아 죽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저들은 기꺼이 탕에 몸을 담그고 기대감으로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우리의 존재가 참, 덧없이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해.”

“안 그런 존재도 있나?”

“있지. 저 위대하고 위대한 드래곤이라거나. 초월적이고 신성한 신이라거나. 허무의 반대편에 서 있거나, 허무의 개념에서 벗어난 이들이 있지.”

“······쯧. 괜히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뭘. 철학이란 삶의 연료이자 미래야. 타인의 피와 살로 나아가는 우리에겐 반드시 필요한 사고라고.”

“······흠. 그렇군.”



드디어. 인수의 머리에서 모든 것이 맞춰지기 시작했고, 이젠 시험해볼 순간이다.



“내가 신입이라 잘 몰라 그러는데, 중상급 온수면 몇 명이야?”

“중상급이면, 글쎄, 얼추 100명 정도 되겠지. 통상적인 설인을 기준으로 말이지. 그거 물은 거 맞지?”

“당연하지.”



욕탕의 목적, 온수의 정체. 명확해졌다.


이곳, 설인의 온천은 탑험가들이 레벨업을 위해 탑을 오르듯 다른 여러 설인들의 피와 살로 자신을 강화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욕탕에 들어가면 설인들은 녹아내린다. 즉, 욕탕은 녹아내린 설인 액기스를 모으는 그릇 같은 것이고, 그 안의 액기스가 바로 온수인 것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경험치가 가득 들어 있는 탕. 녹아내리는 것을 버텨낼 수만 있다면 강해질 수 있다.


아마 그 산증인이 눈앞의 거대 설인이겠지. 대체 얼마나 많은 설인 액기스를, 온수를 받아들인 것일까?



“인간 넷으로 설인 백이면 충분히 이득이군.”

“뭘. 내가 죽인 그 인간 넷이면 설인 백은 거뜬히 죽였을 놈들인 것을. 너도 조심했어야지. 친구 네가 보통 설인이 아니란 것은 알겠지만 조금 전의 그 넷은 아무리 너라도 힘들었을 거야.”

“사실 그래서 더 아쉬운 거야. 강한 펫을 모두 잃었잖아.”

“쯧쯧, 안전불감증인 거냐? 그럼, 나도 굳이 길게 말하진 않겠어.”

“이봐. 궁금해서 그런데. 이곳에 다른 인간은 들어온 적 없어?”

“없지. 인간은 이곳을 알아차릴 방법도 없고, 알아차린다 해도 들어올 방법이 없으니까.”

“그래, 잘 알겠어.”

“자자, 저기야. 중상급의 온수부터는 개인 탕이야. 분에 겨워 눈물이 흐르지 않아?”

“퍽이나.”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라. 기운에 비해 제법 훌륭한걸?”

“흥. 됐어. 아,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이곳이 중상급 온수가 있는 탕이라면, 최상급 탕은 어디지?”

“최상급의 탕은, 내게 인정받은 설인만이 출입할 수 있지. 그곳은 아주 길고 긴 시간 동안 끓고 있는, 아주, 아주 뜨거운 온수가 있거든. 설인의 왕이 되고자 했던 모든 이들이 녹아내린 곳이지.”

“왕이라.”

"이젠 더 인재도 남아 있지 않아. 갑갑해서 미칠 지경인데, 시간만 흘러가. 그러니."



거대 설인이 인수를 바라보며 씨익 웃는다. 묘한 위기감이, 묘한 불안감이 마음에서 피어오르고, 기이한 기분이지만 버니타임이 시작될 것만 같은 기분마저 느낀다.



“잘 전하고 와라, 피의 광전사. 우리들은, 우리를 이끌어준 왕을 기다리고 있다.”

“······엣.”



짙은 살의와 호기심. 하지만 그것을 간신히 이성으로 유지하는 거대 설인은 그 살의와 호기심 탓인지 몸에서 수증기를 뿜어낼 정도로 뜨거워져 있었다.


소름이 끼치는 미소와 내뱉는 숨 한 줌에서도 느껴지는 짙은 광기에 인수는 말을 잃었다.



“너 같은 놈이 처음인 줄 아냐? 전에는 C인가 뭔가가 들어왔었지. 하여튼, 피의 광전사 놈들은 하나 같이 미치광이 놈들이라니까. 그 녀석은 도플갱어였지?”

“······.”

“넌, 재미도 있었고. 내가 네 친구를 죽인 것도 있고, 내가 뒤늦게서야 알아차리게 한 그 재능을 높이 사서, 살려주는 거야. C 그놈은 실력은 좋았다만 재미가 없었지. 죽이려고 했는데, 어둠 속에 숨지 뭐야.”

“······어, 엇······.”

“목욕이 끝나면 출구로 안내해줄 녀석들이 올 거야. 잘 따라가. 아, 그리고, 언제든지 또 와도 좋아. 넌 재미있었으니까. 대신, 다음엔 그냥은 탕에 들어갈 수 없을 줄 알아. 알아듣지? 대가를 지불하란 의미야.”

“······.”

“대답.”

“네!”

“하! 역시 재미있어. 요정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그럼~잘 쉬다가. 녹지 말고.”



뚜벅뚜벅 돌아가는 거대 설인. 인수는 탕에 들어가지는 했지만, 무서워서 멍하니 있다가 얻는 것 하나 없이 돌아 나가고 만다.


아니, 애초에 인수는 그들의 피를 따라 해 속이고 있었던 것뿐이니, 그에게 온수는 그저 말 그대로의 따뜻한 물에 불과했다.



“······결국 나, 그냥, 네 사람 죽게 한 것 말고는 딱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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