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0층 모험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8.06 21: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12,476
추천수 :
99
글자수 :
852,780

작성
24.05.04 20:05
조회
19
추천
0
글자
12쪽

94화

DUMMY

“세상엔, 내가 아직 모르는 것들이 많다고. 나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아. 마치 하나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내가 선 곳이 달라지는 것처럼.”

“흐음, 겨우 저런 장치로 빌딩 전체에 피를 내보낸다니. 어떤 기술을 쓰고 있는 걸까?”

“새로운 광경, 새로운 깨달음, 새로운 배움. 이미 계단 위의 경치를 보았다고 자만하는 내게 세계는 또 한 번 내가 그저 계단 하나를 올랐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어디 연구 자료 같은 거 없나? 단순히 예술성을 위해 이런 장치를 만들진 않았을 텐데.”

“위를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아름답지. 바깥에서 한 행위에는 여전히 동감할 수 없지만.”

“아! 저기 컴퓨터! 얘들아~나 잠깐 자리 좀 비울게~”

“흠.”



다른 층들을 세 개 정도는 합친 듯 거대한 층의 정중앙에 위치한 커다랗고 동그란 기계가 마치 심장이 두근거리듯이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작동하고, 그 기계에 연결된 네 개의 굵은 관을 통해 빌딩 전체에 피가 뻗어간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작동하는 그 기계의 아래에는 선홍빛의 반짝이는 피가 담긴 투명한 원통형의 통이 있었다. 아무래도 저게, D인 것 같다. 그런 느낌이 온다.


내가 보기엔 그냥 신기한 광경인데 냐루냥이나 철수가 보기엔 두 사람의 흥미를 자극할 정도의 무언가인 모양이다.


철수가 감동 받고 냐루냥이 의구심을 품는 수준의 무언가. 오늘의 목표를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는 걸까?


어쨌거나. 피가 담긴 원통형 통에 다가가 그 위에 손을 얹는다.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



[비읍이라고 했나? 신입.]



그리고 과연. 손을 통 위에 얹자마자 D의 목소리가 내게 스며들듯이 들려왔다. 음성기관이 없는 액체의 형태니까, 뭔가 다른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걸까? 이건 배워두면 좋을 것 같다.



[너에게 이 구역의 정화를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넌 전혀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네. 없습니다.”

[그런가. 아쉽군. 모두에게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기회를 주려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건 자유가 아니라 죽음이에요. 혈종술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육체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냥 죽는다고요.”



그렇다고 혈종술을 익히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만, 혈종술을 익히기라도 했다면 적어도 이렇게 D와 같은 형태가 되기 위한 시도라도 해볼 수 있다.


당장 나 같은 경우에는 D를 보고 또 시야가 넓어진 듯한 느낌이 들어, 같은 것은 아니어도 응용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C에게 배운 것이 그것이었다. 사고의 확대. 살아있는 모든 것에 피가 흐르니 피의 광전사인 우리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생각을 닫아선 안 된다.


이렇게, D처럼 자신의 생각 하나에 매몰되어 버린 경우는, 이미 피의 광전사로서의 생명이 다 되었다고 봐도 되겠지.


선배들이 나를 보며 새로운 피. 라고 하면 반겨주고 아껴주는 걸 생각한다면 이쪽은 고이고 썩어서 딱딱하게 굳은 피딱지 같은 놈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의 근원이 피, 혈액이다. 모든 생명의 시작이다. 마치 연료와 같다. 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생명은 살 수 없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은데요. 물, 공기, 먹을 것들, 기타 등등.”

[그래, 넌 이해할 수 없겠지. 이 나의 순수한 혈액으로 이루어진 모습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아니요 대단한 건 알겠어요.”



피를 통해 자유로운 변형을 이루어내는 그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어쩌면 육체라는 정해진 형태가 없기 때문에 더 자유로워진 것일지도 모르지. 자동차를 오토바이로 바꿨던 모습을 생각하면 진짜 경이로운 수준이다.


게다가 지금도. 아마 진동이나, 뭔가 수단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도 다른 선배님들은 하지 못하는 일일 것이다.


흩어져 따로 뭉쳐 있더라도 모두 본인이다. 세상에 펼쳐진 모든 물이 단 하나의 의지를 가지고 모든 곳에서 행동한다고 생각한다면, 상당히 무섭다.


내리는 비, 흐르는 물, 허공의 수증기, 내게 스며든 식수마저도, 바다마저도.


당장은 그게 이 빌딩과 D의 피로 한정되어 있으니 엄청 큰 문제가 되고 있지는 않다. 푸른 피를 이용해서 강제로 피로 바뀌었던 주민들도, D가 아니라 D에의해 프로그래밍된 기계라고 봐야할 테고.


내가 걱정한 것들은 아직 멀고 먼 이야기다만, 궁극적인 D의 목표는 그런 게 아닐까?



[아니. 넌 모른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이 빌딩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기껏해야 내가 버린 육체의 대용품이라고만 생각할 테지.]

“아닙니까?”

[아니다. 나는 언제나 위를 노린다. 더, 더 높고 위대한 것이 되길 희망한다. 피의 광전사. 그 틀마저 벗어나 나는 경외로운 존재가 될 것이다.]

“그게, 뭔데요?”



더 위대하고 경외로운 존재. 내 눈은 자연스럽게 철수를 향했다. 내가 아는 가장 위대, 하지는 않지만. 대단하고 경외로운 존재가 저거다.


0층이라는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영역에서 셀 수도 없이 길고 긴 시간을 살아온 초월적인 인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 인간.


영희랑 세트로 합쳐서 생각하면 더 납득이 안 되는 생물이다. 저놈이 훨씬 더 영악하고 나쁜 놈이었다면 신 노릇하면서 이상한 종교 단체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너 외지인. 스스로를 탑험가라 부르는 이 세상 바깥의 존재들은 모르겠지. 몬스터, npc라고 불리는 우리가 가진 속박을.]



피가 조금 뜨거워짐을 느낀다. 전해지는 말에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통에 올린 손바닥을 통해서는 다른 것이 느껴졌다.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한 인간의 허무와 울분. 만약 지금 눈앞에 멀쩡한 육체를 가진 D가 있었다면 와락 일그러진 표정으로 울먹이며 말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난 이곳을 벗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이 끔찍한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다. 자유로워질 것이다.]

“······잠깐.”

[내가 너의 선배고, 네가 나의 후배이나, 너는 나와 전혀 다른 감상을 품겠지. 자신에게 편리한 시스템이라고만 생각할 테지. 너에게 나의 존재란 겨우 그 정도에 불과함을 안다.]

“!”

[이 도시의 인간들이 안드로이드가 되었을 때. 그들이 죽었을 때. 넌 어떤 기분이었지? 알고 있다. 별 생각이 들지 않았겠지.]

“그건······!”

[모두 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확신했다. 이 세계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인 너와, 그렇지 않은 나의 차이. 그리고 나의 가치.]



텅!


D가 나를 밀어냈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D의 목적을 알게 되니 기분이 더 복잡해진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D 나름으로는 이 탑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었고, 도시의 사람들도 함께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었던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본질은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뭐라 할 말이 생각 나지 않네.



“철수야! 이 사람 목적을 알 것 같아!”

“뭔데?”

“탑을 벗어나고 싶데! 몬스터 취급 받고, 뭐 그런 게 싫다고 하는데?!”

“훌륭하네.”

“아니! 지금 그런 말을 하면······! 그냥 내버려둬? 아니, 그런 게 가능하긴 한 거야?”

“안 될 건 없지. 나도 0층에 있다가 여기에 온 건데. 가능한가 아닌가는 모르겠지만.”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한참을 어딘가 멀리에서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던 냐루냥이 다가왔다.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지금 여기. 이 빌딩.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바깥에서 들어온 것들이야.”

“예?”

“이 탑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로 만든 게 아니라, 탑의 바깥, 우리가 살아가는 그곳에서 얻어낸 것으로 지어진 탑이라고. 그러니까, 커다이 사에서는 단순히 빌딩을 만든 게 아니야. 나 너. 우리와 같은 탑 바깥의 인간을 만든 거야.”

“이렇게 큰 빌딩을 지을 자제들을 어떻게 구하는데요?!”

“응. 원래 커다이 사는 처음부터 바깥 물품을 화폐 대용으로 사용했었어. 처음엔 이렇게 높은 빌딩도 아니었고. 그러니까 20년 동안 차분하게 쌓아온 빌딩이고, 계획이라는 거지.”

“20년······! 그렇게 오래?!”

“실망스러운데.”



나와 냐루냥이 그 긴 시간동안 지속해온 계획에 놀랄 때, 철수는 단호하게 실망했다고 말한다.


아니, 마냥 실망했다기에는 다소 복잡한 표정이니, 아마 본인도 뭐라 적당히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실망스럽다고 표현한 것일 것이다. 물론, 그 복잡한 감정에 가장 가까운 감정이 실망, 이긴 할 테지만.



“탑을 속박이라고 여겼다. 그를 위해 탑에서 얻은 육체를 버리고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육체를 만든다. 대단하네. 좋은 발상이야.”



층이 붉게 물든다. 경보가 울리고 시작하고 곳곳에서 로봇이나 무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리를 죽이려 들고 있다.



“탑이 생겨난 이후 탑험가들을 보며 자신의 꿈을 키워갔다. 멋진 동기야. 그런데 너무 빨라. 20년 전에 나타난 탑에서 20년 전부터 꾸던 꿈. 허무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이 뭔지도 모를 외지인의 모습을 보고 바로 그 모든 것을 알아차려 따라하려 한다? 나름 탐구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치고는, 지나치게 서둘렀어. 그렇게 어쨌거나 시작한 계획으로 이미 한참 전에 탑은 완성했지만 어째선지 형이 나타나자마자 시작한 혁명의 순간.”

“야, 너······.”

“동기나 계기에서의 실망이 아니야. 그냥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게 너무 슬퍼. 피의 광전사라는, 형의 존재가 지금을 만들어낸 거잖아.”



탑에 속한 몬스터, NPC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감을 보이는 것은 그저 그렇게 설계되었을 뿐인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말과 행동 생각이 그저 그렇게 설계된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건, 너무 서글픈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탑의 몬스터나 NPC에게 느끼는 감정을 생각해본다면, 철수의 말이 맞는 것 같다.



“······.”



부쩍 생각이 많아지는 철수다만, 그래도 멈추지는 않는다.


탁.


철수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간다. 분명히 그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철수가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타박, 타박. 천천히 한 발자국씩 나아갈 때마다 철수를 눈으로 쫓기 어려워졌다. 빨라서? 아니다. 높아서. 그리고, 나나 냐루냥을 제외한 나머지는 어째선지 땅을 파묻히고 있다. 뻘밭에 빠진 것처럼, 그 아래에서 누군가가 끌어당기는 것처럼 철수의 발걸음에 맞춰 아래로 내려간다.


이번엔 또 무슨 신비를 일으키는 것인지 이해조차 할 수 없는 현상을 만들어내더니, 철수가 D가 담긴 통에 손을 얹고 말한다.



“내 목표가 조금 더 명확해졌어. 고마워.”

“철수야?”

“······일단 다른 곳으로 가봐. 어떻게 될지 나도 궁금하네.”



펑!


D가, 사라졌다. 철수가 어딘가로 보낸 것 같은데······.



“야. 그걸 그냥 그렇게 보내면 어떡해?”

“응?”

“아니, 야······D 그 양반 이 빌딩 만든 이유 자체가 탑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며? 그런데, 그 중심이 갑자기 사라지면 큰일 나는 거 아니야?”

“머리가 터져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아니, 그건 그런데······여긴 심장이잖아.”

“······어?”



저 얼빠진 표정 좀 보라지. 참으로. 참으로 경이롭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0층 모험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0 149화 +1 24.08.06 36 1 15쪽
149 148화 24.08.06 13 0 15쪽
148 147화 24.08.06 12 0 12쪽
147 146화 24.08.06 10 0 13쪽
146 145화 24.08.05 8 0 12쪽
145 144화 24.08.05 12 0 14쪽
144 143화 24.08.05 9 0 12쪽
143 142화 24.08.05 9 0 13쪽
142 141화 24.08.04 9 0 14쪽
141 140화 24.08.04 13 0 13쪽
140 139화 24.08.01 14 0 12쪽
139 138화 24.07.30 14 0 12쪽
138 137화 24.07.28 13 0 12쪽
137 136화 24.07.26 12 0 12쪽
136 135화 24.07.24 14 0 12쪽
135 134화 24.07.22 18 0 12쪽
134 133화 24.07.20 20 0 12쪽
133 132화 24.07.18 16 0 12쪽
132 131화 24.07.16 16 0 13쪽
131 130화 24.07.14 20 1 13쪽
130 129화 24.07.12 16 0 13쪽
129 128화 24.07.10 18 0 13쪽
128 127화 24.07.08 18 0 13쪽
127 126화 24.07.07 15 0 12쪽
126 125화 24.07.04 16 0 14쪽
125 124화 24.07.02 17 0 13쪽
124 123화 24.06.30 19 0 12쪽
123 122화 24.06.28 21 0 13쪽
122 121화 24.06.26 20 0 14쪽
121 120화 24.06.24 20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