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0층 모험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8.06 21: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12,450
추천수 :
99
글자수 :
852,780

작성
24.04.28 20:00
조회
21
추천
0
글자
13쪽

91화

DUMMY

“어디~”



우지직! 콰직!


잘은 모르겠는데 뭔가 보안 장치가 걸려 있던 보급 상자의 뚜껑을 그냥 힘으로 열어버렸다. 쓰읍, 흠. 이상하다. 내가 아무리 8레벨이라고 하더라도 여긴 5층이고 이건 5층 수준에 맞는 상자일 텐데?


그야 물론, NPC들도 층의 수준에 맞게 강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무슨 갈대 대충 엮어 만든 상자라도 되는 것처럼 뜯기진 않을 텐데.


흐음, 그래도 꼴에 30레벨의 탑험가가 달고 다니던 팔이라 이건가? 힘깨나 쓰는구만 그래.


그러고 보면 난 아직도 이 팔이 얼마나 힘을 품고 있는지를 모른다. 무의식적으로는 이렇게 기존의 나는 못 할 일을 해버린다만, 정작 전투에 들어가면 원래 내가 내던 정도의 힘만 내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단 말이지?



“쓰읍~어째 전부 즉석 식품이네. 되게 맛없게 생겼어.”



먹을 것만 잔뜩 든 것은 아니고 정말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용품들이 잔뜩 들어 있어서 그래도 확실히 이거 하나면 나름 살만하겠다는 느낌은 든다.


어떻게 잘도 이런 상자를 저렇게 쌓아두고 살았구나 싶다. 다른 건물과 연결된 다리도 보이는데, 혹시 다른 건물에 배달된 보급 상자도 빼앗은 건가?



“옷도 좀 갈아입어야겠지. 그런데 나 언제까지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거야? 가벼워서 편하긴 편하다만.”



이 상자 저 상자 다 열어보며 내용물을 확인해 보는데, 딱히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하긴 뭐, 엄청 특별하게 있을까.


그럼 이걸, 이제, 뭐, 건물 사람들에게 나눠주자. 가져서 뭐 하겠어 이런 거.



“진짜로, 그냥 주겠다고?”

“예.”

“왜?”

“필요 없으니까요.”

“······허허! 허허허! 그래그래! 외지인에게는 필요 없는 거지!”



아무도 반으로 갈라진 남자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관심도 없는 모양인지 그저 자기 몫의 보급 물자만 후다닥 가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약에 절어 버린 여자들은, 잘은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의사, 라고 지칭한 괴상한, 저건 안드로이드가 아닐까 싶은 생김새의 여자가 회수해갔다.


뭐 저 여자는 이거다 저거다 설명을 해주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판타지는 좋아한다만, SF는 뭐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그것도 이런 뭔가, 인간이라는 개념이 뒤틀려서 경시되어가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그런 사회가 배경이라면 더.



“뭐야, 아이비도 있잖아?”

“아이비?”



눈에 보이는 것은 새파란 액체가 담긴 투명한 팩이다. 아이비, 라니. 음료인가? 이름만 들어선 뭔지 알 수가 없는데?



“그게 뭔데요?”

“아, 이거 말이지? 여기 다 둘러봐라. 몸이 순수하게 인간인 녀석들이 드물지? 저런 놈들은 혈액이 오염되는 경우도 종종 있거든, 그렇다 보니 언제나 혈액이 부족해.”

“으음~헌혈로 피를 받으려고 해도 조건이 안 되는 사람이 많다?”

“그래. 그래서, 여기 커다이 사에서 제조한 게 이 아이비다. 가짜 피야. 이걸 조금 더 정제하면 안드로이드들 연료로도 쓴다던데, 글쎄.”

“아아······가짜 피요?”



가짜 피라니. 그거 굉장히 귀에 거슬리는 단어네. 내가 혈종술을 쓰는 피의 광전사라 괜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 5층. B가 나를 여기로 보냈단 것은 그 D라는 사람이 이곳에 있기 때문일 텐데, 혹시 그 사람이 이 가짜 피를 만들었나? 아니면 혹시, 착취당하고 있나?


B가 나를 이동시켜주었는데 도중에 방해받아 땅바닥에 떨어지게 된 나를 생각하면. 지금 D의 위치는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자면, 저 멀리 보이는 비기스트 빌딩이라던가. 투명한 막으로 보호받고 있는 저 빌딩이라면, 이동되던 나를 튕겨냈을지도 모른다.


즉, D는 저 빌딩 어딘가에? 좋아. 당장의 목표는 만들어졌네. 할 게 만들어지니 역시 의욕이 생긴다.



“마침 잘됐네. 아파트에 다친 놈들도 많은데.”

“어우, 파란 피를 수혈하는 겁니까?”

“몸에 들어가고 잠깐이면 붉게 변하더라고. 신기하지?”

“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다른 아파트도 돌아다녀 보자. 이곳의 옥상을 차지하고 있던 그놈과 비슷한 놈들이 있다면 찾아가서 죽여버리자. 빼앗은 것을 다시 빼앗아 세상에 뿌려주마. 의적이라고 하나 그런걸?


어쨌거나. 아파트와 아파트를 연결하고 있는 다리. 보급 상자를 뜯고 연결해서 만든 그 너덜너덜한 다리 위로 올라서니, 대뜸 그 성질 사나운 여자애가 내게 소리쳤다. 마지막까지 뭘 하려고?



“자, 잠깐! 어딜 가는 거야!”

“? 다른 아파트.”

“왜!”

“어어, 그냥.”

“위험하잖아!”

“이 정도 수준이면 괜찮을 것 같아. 더 위험한 일도 겪어봤는걸.”

“아니, 그게! 그······야!”

“왜 자꾸 소리를 질러?”

“······고, 고마워······.”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한참을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주저하다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도망간다.


허 참. 갑자기 이러니까 적응 안 돼. 처음부터 좀 살갑게, 아니 살갑지는 않더라도 적당히 평범하게 경계했으면 얼마나 좋아?


갑작스러운 태도의 변화에 내가 당황하니 뒤늦게 아저씨가 내게 한마디 툭 던진다.



“원래 여린 애야. 격한 상황에 겁을 먹어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악을 쓴 거지. 좀 이해해줘.”

“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에요. 당황스러울 뿐이지.”

“나도 당황스러워. 이 도시에 이런 일을 해주는 사람은, 잘 없거든.

“······.”

“선의를 베푼 너의 앞에도 선의가 가득하길. 떠나가는 외지인에게 내 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축복이야, 언제나 감사하죠. 좋은 하루 되세요. 오랜만에 폭식하시겠네.”

“식구가 많아서 괜찮을는지 모르겠네! 허허!”



허허 웃으며 보급 물자를 챙겨 내려가는 아저씨를 마지막으로 이제 옥상에 주민들은 없다. 메뚜기 떼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깨끗하네.


그러면 이제 나도 텅 빈 옥상을 떠나간다. 여기저기 깡패 같은 놈들이 있을 테니, 빠르게 정리하고 끝내자. 오늘 하루는 좀 쉴까 했는데. 다시 의욕에 불이 붙을 줄이야.



“뭐야 이 새끼야!”



건너간 곳에서 마주친 깡패는 건너편에서 나를 이미 봤던 모양인지 이미 아파트의 주민들을 끌고 와 고기 방패로 쓰고 있었다.


바니바니로 토끼들을 잔뜩 불러냈다. 토끼들의 등장에 그게 공격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고 당황하던 녀석은 토끼들에게 물어뜯겨 죽었다.



“신입이냐?”



내가 옥상에서 사람들에게 물건을 건네주는 것을 보며 신입이 들어왔다 착각하던 녀석은 허세를 부리며 떡하니 소파에 앉아 있기에 소파 쨰로 동강 내주었다.


내장 몇 개가 기계로 되어 있는 놈이라 흐르는 피 사이사이로 기름이 섞여 있었다. 피의 오염. 이거였구나.



“떨 한 대?”



대뜸 마약을 건네던 마약에 절어있던 놈은 가만히 있었는데 혼자 스텝 밟다가 옥상에서 추락했다. 그곳은 사람들도 그냥 조심스럽게 물자를 훔쳐 가던 곳이라, 특별히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오히려 온 김에 뭐라도 먹고 가라며 초콜릿 하나를 받았다. 좋은 사람들이었어.



“어머.”

“어.”



이 아파트, 저 아파트. 비기스트 빌딩에 다가가며 나아가던 중에, 나와 마찬가지로 점령당한 옥상을 정리하던 탑험가와 마주쳤다.


뭔가 좀, 이질적인 생김새의 그녀는 새하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는데,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냐루냥?”

“응, 맞아.”



오, 오오. 오오오······철수에게 이걸 말하면 환장하겠지?


아, 아니지. 냐루냥이 왜 여기에 있지? 냐루냥도 상당한 강자라서 훨씬 더 높은 층에서 노는 걸로 아는데? 가끔 콘텐츠 때문에 아래층에 내려오는 거 빼면.


와아, 철수 그거 때문에 보지도 않는 방송의 특징을 알고 있네. 거참.


어쨌거나, 뭔가, 굉장히, 산책하다 우연히 만난 것 같은 느낌으로 만나게 되었다. 둘 다 옷 여기저기에 피를 묻히고는 있지만 아무튼 산책 중에 만난 느낌이다.



“너도 아파트 정리 중이었니?”

“아, 네. 어어, 냐루냥, 도?”

“응. 나도.”



오, 확실히. 철수가 말하던 따뜻하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뭔가 되게 친근하고, 포근하고, 나긋하고, 누나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살살 웃는 표정 하며 부드러운 말투 하며, 사람이 아니라 인형 같은 생김새이기는 하지만 더 기괴하게 생긴 탑험가도 있으니까, 너무 거부감이 들지도 않는다.



“아 참. 초면인데 반말을 해버렸네? 죄송해요.”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냥 계속 반말해주세요. 나중에 제 친구가 보면 분해서 죽으려고 할 것 같아서. 아참참, 전 박인수입니다.”

“아하하! 친구가 내 팬인가 봐?”

“네네, 김철수라고, 이상한 애 하나 있어요.”



없어서 못살지. 요즘 나나 설이 키운다고 정신없어서 덜 보는 것 같긴 하던데, 심할 때는 틈이 날 때마다 봤었다.



“혹시 퀘스트 중이었니? 아파트 정리 퀘스트.”

“어! 이거 퀘스트로도 떠요?!”

“응. 아이구~그건 몰랐구나?”

“아아~! 보상 좋아요?”

“보상은 별로야. 여기 주민들이 하나 같이 짠돌이거든. 게다가 이곳에서는 들고 내려갈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리고 개인적으론, 주민들과 정을 쌓지 않는 편이라.”

“아, 그래요? 하긴, 좀 많이 틱틱 거리긴 하더라고요~”

“그것도 그렇지~얘네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애들이 많아서, 친해지고 나서도 자기한테 이득이 될 것 같으면 날 배신하거든. 좀 착하다 싶은 애들은 금방 다른 주민들에게 당해서 죽어버리기도 하고. 아 물론, 그냥 성질 더러운 애들도 금방 죽지만. 그래서 그런지 나이 든 주민을 보기 힘들어.”

“어우.”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어. 착하게 살면 뒤통수 맞는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 그냥 인간성이 상실된 사회를 보여주고 싶은 건지. 너도 여기 와서 친해진 주민이 있지 않니? 아, 착한 애 중에서.”

“······어~친, 해졌나? 네에, 비슷한 사람이 있긴 한데.”

“그럼 이제 곧 그 친구에게 뭔가 일이 생길 거야. 이 층은 그런 걸 좋아하거든.”

“아 진짜요?”



괜히 마음에 걸린다. 그건 좀 너무하지 않나? 이제야 기껏 친해질 기회가 생긴 것 같았는데? 진짜? 정말?



“냐루냥은 이제 뭐 하실 거예요?”

“으음~아파트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빌딩에 가려고. 아무래도 일이 꽤 크게 난 것 같으니까~”

“음! 그럼 저는 여기서!”



냉큼. 처음 아파트로 돌아가 본다. 설마, 진짜로? 진짜로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고? 내가 떠나가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아직 한 시간도 안 됐어!


아파트의 옥상에 도착, 주저 없이 곧장 문을 열고 내려가면.



“어!”



짙은 피 냄새가 스멀스멀 공기를 타고 전해져온다. 세상에, 정말로?


쾅!


여기저기 이유도 모르게 대뜸 죽어있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1층까지 내려간다. 아니 뭐야, 진짜로 냐루냥의 말대로 되었다고? 진짜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더라. 대강 인사만 나눈 사이라고 해도 안 좋은 일을 당했다는 소식에는 안타까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무리 그래도. 뭐 그다지 좋은 추억은 없데도. 처참하게 죽은 모습을 본다면, 적잖이 충격적일 것이다.



“세상에······.”



옥상에서 보았던 나체의 여성이, 상반신만 간신히 남은, 나머지 부위는 모두 투박한 생김새의 기계로 대체된 그 여성이, 날 아파트에 들여보내 주었던 아저씨며, 겁을 먹어서 잔뜩 사나워져 있던 치와와 같은 여자애나, 말이 없던 남자애, 진한 화장의 아저씨도 모두 죽인 뒤였다.


한 손엔 푸른 피가 담긴 팩을 든 채 그들에게 그것을 뿌리고 있었는데, 살리려고 하는 것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푸걱! 푸거걱!


푸른 피가 닿은 죽은 이들의 시체가, 육편이 차가운 금속으로 변화하며 점점 그들의 몸이 기계가 되어간다.


인간을 안드로이드로 만드는 안드로이드. 커다이 사의 푸른 피. 그랬구나. 그거 참, 끔찍한 일이다.



“······D가 테마 전쟁을 일으킨 건가? 아이고~이거 어째?”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0층 모험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0 149화 +1 24.08.06 34 1 15쪽
149 148화 24.08.06 13 0 15쪽
148 147화 24.08.06 12 0 12쪽
147 146화 24.08.06 10 0 13쪽
146 145화 24.08.05 8 0 12쪽
145 144화 24.08.05 11 0 14쪽
144 143화 24.08.05 9 0 12쪽
143 142화 24.08.05 9 0 13쪽
142 141화 24.08.04 9 0 14쪽
141 140화 24.08.04 13 0 13쪽
140 139화 24.08.01 14 0 12쪽
139 138화 24.07.30 13 0 12쪽
138 137화 24.07.28 13 0 12쪽
137 136화 24.07.26 12 0 12쪽
136 135화 24.07.24 14 0 12쪽
135 134화 24.07.22 18 0 12쪽
134 133화 24.07.20 20 0 12쪽
133 132화 24.07.18 16 0 12쪽
132 131화 24.07.16 16 0 13쪽
131 130화 24.07.14 20 1 13쪽
130 129화 24.07.12 14 0 13쪽
129 128화 24.07.10 18 0 13쪽
128 127화 24.07.08 18 0 13쪽
127 126화 24.07.07 15 0 12쪽
126 125화 24.07.04 16 0 14쪽
125 124화 24.07.02 17 0 13쪽
124 123화 24.06.30 19 0 12쪽
123 122화 24.06.28 21 0 13쪽
122 121화 24.06.26 20 0 14쪽
121 120화 24.06.24 20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