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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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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5.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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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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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3,868

작성
24.05.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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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DUMMY

​ 가끔은 그냥 사람이 미워질 때가 있다. 아무런 이유는 없다. 어딘가에 풀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과 슬픔과 우울함이 불특정 다수를 향하게 될 뿐이다.


바로 지금이 그런 느낌이다. 철수에게 믿음을 배신당하니 세상이 미워진다. 너 왜 냐루냥 몰라 보는 건데? 지금까지 날 속인 거니? 인간적인 척 하려고 냐루냥 팬인 척 했니? 실망이야.



“일을, 해결했다니 무슨 말이야?”

“응. 그 D라는 사람 찾아가서 어쩌고 하는 거 있잖아. 그거.”

“······?”



뭐야. 얘 왜 이래? 평소의 철수라면.



“D 만나러 가자. 스왐프는 신경 꺼.”



라고 했을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테마 전쟁이 D의 소행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면 녀석은 ‘오, 이거 형에게 꽤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다른 큰 의미 없는 일은 자기가 해결할 것이고, 그걸 딱히 더 길게 설명하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탑의 어디에 있어도 바깥과 연락이 가능해지는, 우리가 얻으려 했던 기술은 얻었으니 D 일에만 집중해도 된다. 라고 말한다면 또 모르겠는데.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다급하게 넘어가려는 이 모습은, 뭔가 있다.


조금 더 철수를 빤히 바라본다. 그런 내게 뭔가 들키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급하게 고개를 돌리는데, 두 번. 두 번 고개를 돌렸다.


한 번 고개를 돌렸다가 곧바로 반대로 돌렸다. 그리고 처음 돌아본 곳에 있었던 것은 살짝 미소 지은 채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냐루냥이 있었다.


그래. 그랬구나! 철수야! 넌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구나!


나를 힐끗 바라본 철수가 내 표정을 보더니 조금은 난감한 듯 미간을 찡그린다. ‘아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다?’ 라는 의도가 보이는 표정이다.


하지만 철수야. 네가 그런 의도를 보내는 이유가 지금의 내 표정 때문이지 않니. 이, 이 참을 수 없는 마음을 억누르기가 어렵구나! 아이! 에잇! 내 친한 동생이 그렇게 좋아하는 냐루냥! 소개해줘야지! 암~!



“철수야! 그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겠니!”

“······하아······.”

“냐루냥 냐루냥! 여기 이 친구가 제 친한 동생이거든요? 아니 얘가~뭐만 하면 냐루냥~냐루냥~이러는 애 거든요~!”

“어머 정말? 제 팬이에요?”

“············예············.”



캬아~! 보기 드문 철수의 부끄러워하는 모습! 허은 이후로 처음이다! 내가 너 그러는 거 볼 때마다 약간 쾌감 비슷한 걸 느끼는 것 같다고 하면 너무 악질 같으려나?


으음~알 것 같아. 만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도 있긴 하지만 괜히 만나서 자기 판타지가 깨지는 것도 싫었던 거지?


그런 와중에 냐루냥이 보여서 무작정 달려온 게 또 철수답다면 철수다워. 일단 저지르고 본 거지 이놈아?



“이런 데서 팬을 만날 줄은 몰랐네요!”

“예, 뭐, 저도요······그, 방송,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편하게 대하셔도 됩니다.”



아아아~흥미가, 생긴다만. 다시 생각하니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 D 문제 해결해야 하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셋이 다 같이 D를 찾아가 볼까? 지금 이 상황, 나 혼자서는 어떻게 결정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어.


선배인 D의 뜻을 따라야 할 지. 아니면 D의 사상에는 문제가 있는 듯하니 후일을 위해 미리미리 제거함이 옳은지.


마침 냐루냥이나 철수가 있으니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을 것이다. 나만 힘내면 되는 상황이지.



“철수 너는 D랑 만나본 거야? 그 기술 얻으려면 D랑 만나야 했던 거 아니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상황 돌아가는 거 보니까 내가 처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내가 알아서 처리했어. 나도 관련해서 기술이 있거든. 실제로 쓰는 건 처음이었지만.”

“그래. 그럴 것 같았어. 다른 애들은?”

“영희랑 설이가 형 걱정을 그렇게 하더라.”

“너도 좀 해주라.”

“내 걱정이 필요해?”

“으음~필요 없긴 해!”



네깟 놈의 걱정 따위 길 가다 눈에 밟힌 돌멩이 하나보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딱 그 정도 감상으로 걱정해줄 것 같아서.


그러고 보면 이 자식도 은근히 설이는 챙겨주는 것 같던데. 영희의 영향인가? 흠. 나름 어린애라고 신경이 쓰이긴 쓰인다는 건가? 주제에 사람다운 척을 하네.



“그럼 이제 바깥이랑 통화도 할 수 있나?”

“기술을 얻기는 했지만 당장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 어느 정도 연구와 실험이 필요해.”

“으음~맞아, 그럼 너, 고층에서도 생방송 가능한 장비 만들면 그거 냐루냥한테도 팔 거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아니 이게, 저희가 오늘 여기에 온 게 그, 고층에서도 바깥과 연결되는 기술? 그런 걸 얻을 생각으로 왔거든요.”

“어~그런 건, 길드에 부탁하는 편이 낫지 않아? 5층 이상 올라가는 탑험가에게는 지급될 텐데?”

“······응? 그런, 거였어요?”

“응. 그럼 너 설마, 다른 고층 탑험가들이 매번 1층에서 저 높은 고층까지를 일일이 왔다 갔다 한 줄 알았어?”

“어······.”



이건, 진짜 몰랐네. 소문이 진짜였구나? 그랬구나. 아잇, 젠장. 길드에 물어보기나 할 걸 그랬어.


아, 아니지! 그래, 설령 길드에서 뭐, 그런 걸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걸 분해해서 우리가 마음대로 써먹지는 못했을 거 아니야 그렇지? 헤, 헤헤, 난, 난 틀리지 않았어!


쯧. 뭔가 김이 새네. D와 테마 전쟁에만 집중하자.


셋이 나란히 비기스트 빌딩을 향해 걸어가 본다. 초대받은 것은 나뿐이고, 철수가 막을 부수고 등장한 탓에 이제 외부의 침입을 막는 것도 하나 없었지만, 빌딩을 향하는 것은 우리 셋뿐이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점 더 그 크기가 실감이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빌딩의 비교적 작은 문은 조금 옹졸하게 느껴진다. 기왕 엄청 큰 빌딩을 지었으면 문도 좀 큼직큼직하게 하지. 뭔 산만한 건물에 개미구멍 같은 문을 달았담.



“그거 아니? 여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모든 게 너무 작아 보여.”

“응? 겨우 이 정도 높인데요?”

“이게 ‘겨우’ 이 정도 높이라고 부를 수 있는 빌딩이야?”

“흠. 1층 수준도 안 될 것 같은데.”

“······아~0층 기준? 그그, 0층에 있다는 세계수?”

“0층? 세계수! 진짜 있었구나? 거 봐~! 아니! 내가~애들한테 0층 이야기하면 막 지구 평평설은 안 믿냐면서 자~꾸 뭐라고 그런다니까?”

“지구가 평평합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얘 좀 특이하다?”

“예에, 철수가 좀, 일반적이진 않습니다.”



빌딩 크기와 비교하면 개미구멍 같은 자동문을 지나 온갖 로봇들이 나열한 빌딩의 안으로 들어선다. 미사일 런처 같은 것이 잔뜩 우리를 노리고 있어서, 나는 무서워 죽을 것 같다.



“여긴 늘 이러더라? 일부러 겁 줄려고.”

“상당히 투박한 로봇들이네. 저런 디자인도 좋지.”

“듬직하다.”



참 다행히도, 좌우로 냐루냥과 철수가 있다. 이게이게 또 세상 듬직하다.


냐루냥은 무술가에 고양이 장갑 끼고 싸우는 이상한 컨셉 잡은 사람이지만, 그렇게 30층까지 올라간 괴물이고, 철수는 철수다. 세상 듬직하지.



“마침 잘됐네. 재료가 좀 필요할 예정인데.”



팔찌에서 얇은 실을 뽑아내 휘두르니, 그 실은 곧 두꺼운 채찍이 되어서 주변의 로봇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한다.


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긴 한데, 확실히 철수가 채찍을 잘 쓴다. 설이가 채찍을 들고 다니게 된 것도 철수가 직접 가르치겠다는 의도겠지.


먼 훗날 설이가 철수처럼 저렇게 채찍을 휘두르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무섭다? 제발 철수처럼은 되지 말아라?



“그런데 너는 초대받은 입장인데도 이런 대우를 받는 거니?”

“그러게요. 통제가 안 되나?”

“두 사람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 하는구나 두 사람 다.”

“내가 왜?”

“내가 뭐.”



둘 다 초대받은 입장이 아니니까 그러지!


뭐, 어쨌거나. 철수의 한바탕에 적당히 정리된 로비는,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상당히 넓고, 뭔가, 붉은 관 같은 것이 잔뜩 뻗어 있었다. 마치 혈관처럼.


······안에 피가 들었다. 진짜 혈관이잖아?



세상에, D가 다룰 수 있는 피의 총량을 지금 보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자랑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빌딩 전체를 자신의 육체로 여기고 있다는 의미인가?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혈액만으로 완벽한 지성체가 되는 방법을 찾았다. 육체의 대체제인 안드로이드를 생산한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자신을 담아두기 위해 빌딩을 사용한다?


······어어, 그럴 거라면, 육체를 버릴 이유가 있었나? 그냥 더 큰 몸으로 갈아탄 거지? 그렇지? 심지어는 육체가 필요한 이유를 본인이 직접 증명했잖아?


아니아니, 다른 의도가 있을 수는 있겠네. 육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본인이 머물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 육체보다 피가 먼저다! 그걸 증명하겠다! 같은 느낌이라면 그럴 듯할지도?


뭔가 이 빌딩에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쯧, 지금 여기에 다른 선배들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턱.


냐루냥이 피가 흘러가는 수많은 관 중 하나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뭔가 알아보려는 듯이 가만히. 뭘 하려는 걸까?



“파동을 느끼는 거야. 저 관의 끝이 어디인지 알아내려고.”

“설명 안 해도 되는데.”

“형도 알아?”

“모르지.”

“궁금할 것 같았는데.”

“너 원래 그런 설명 안 해주잖아. 괘씸해서 듣기 싫어.”

“왜.”

“네가 냐루냥 좋아하니까 괜히 말 많아지는 거잖아. 네가 좋아하는 거 나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괜히 그러는 거 아니야 맨날 계단론 말하는 거처럼.”

“흠. 하나하나 다 맞는 말 같아서 할 말이 없네.”

“네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길 바란다면 평소에 너도 남의 말 좀 듣고 좀, 친절하게 살아라 인간아.”

“가르침 고마워.”

“배워줘서 고맙다.”

“싸우는 거니?”



조금 난감하게 웃는 냐루냥. 싸우는 건 아니라고 말해준다. 정말로 싸운 게 아니니까. 이 녀석이 마음을 다해 투덜거리는 것은 설이 뿐이다. 정신연령이 비슷해서 마찰이 잦은 것 같아.


어쨌거나!



“굉장히 기분 나쁜 빌딩이야. 빌딩 각각의 구역들이 인체의 장기 역할을 하고 있어. 최하층에는 마력 응집기 같은 게 있는 모양인데, 으음, 따지면 영양분을 강제로 공급 받고 있는 듯한 느낌?”

“철수 네 생각은 어때?”

“우스워. 닿지 못하는 영역에 닿기 위해 애를 쓰다 머리가 망가졌겠지. 일을 저지르고 난 다음엔 되돌릴 수 없었을 테고, 그렇게 되었으니 자신이 옳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외의 나머지는 모두 틀린 것으로 취급했을 거야. 본인이 결국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오히려 상황이 나빠지기만 했다는 사실을 마주하기 싫었겠지.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마냥 우습다고는 못하겠지만.”

“그걸 물은 게 아니긴 한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냐고? 알아서 해. 괜찮아 보이네.”



너라는 문제에 내가 냈던 대답이 전부 정답이라 마음이 놓인다 철수야. 내가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진 않은 모양이다.


어쨌거나. 냐루냥의 신체 분석과 철수의 심리 분석 끝에 판단은 이상하게도 내가 내리게 되었다. 철수야 그렇다고 쳐도 냐루냥까지 나를 빤히 바라보는 의도를 모르겠다. 누나는 뭔데 제게 판단을 맡기는 걸까요?



“올라가자. 일단 구경이나 하자. 뭐 어떻게 생겨 먹은 사람인지.”

“후후, 물탱크에 들어가 있을 것 같은데?”

“건물을 인체에 비유하여 설계한다는 건 책으로만 읽었던 기술이야. 기대돼.”

“그거 마법 서적 아니니? 기계랑은 관계없을 텐데.”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별이 어렵더군요.”

“집중해주세요~”



오늘의 목표. D 무너뜨리기. 하극상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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