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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0층 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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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6.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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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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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19,034

작성
24.04.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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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DUMMY

“······어?”



내가 이렇게 메말랐었나? 가렵지도 않은 턱을 긁적이며 부서진 안드로이드며 죽은 사람들을 바라본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만약 설이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 그래. 그건 확실히 속이 뒤집어진다.


으음, 그렇다면 이웃이 이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어우, 그것도 상당히 역겨운 기분이다.


그럼 이 사람들은? 으으으음······역시, 별 생각이 안 든다.


이 사람들이 당한 일을 내 지인들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끔찍하다만, 딱 그 정도다. 여기 이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없다.


이게, 탑의 시스템인 걸까. NPC나 몬스터의 죽음에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는다. 아니, 아주 작은 감정만이 생긴다.


음, 안타깝게 되었네. 그냥, 딱 그 정도다.


냐루냥도 되게 건조하게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를 한 걸 보면 나와 비슷한 상황이겠지?


흠, 음, 기분 묘하네.



“······어, 혹시 철수도 그래서?”



철수는 정말 길고 긴 시간을 0층에서 살다가 나온 녀석이다. 어쩌면 녀석에게 이 탑과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이 내가 다른 몬스터나 NPC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철수는 0층 소속인 거지!


한 가지 흥미로운 가설을 찾아냈으니 이젠 움직여야겠다. 안드로이드들의 탄생 이유가 명확하잖아. 시간은 금이다.


가짜 피를 이용해서 살점을 금속으로 바꾸며 안드로이드로 바꾸어 버린다니. 육체를 가볍게 생각하는 게 피의 광전사지만, 이건 좀 경우가 다르네.


죽은 안드로이드. 죽은? 으음, 마땅한 표현이 없으니 죽은 안드로이드. 하여튼 그것의 몸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온다. 상당한 마력을 품고 있고, 이게 아무래도 목적인 모양이다.


마력을 품은 혈액. 이게 아마 희생자들 그 자체일 것이다. 약간, 액기스 같은 느낌일까? 저기 한 움큼이 아저씨고, 여기 한 움큼이 그 여자애고, 그런 것이겠지.


육체의 제약에서 벗어나 순수한 혈액이 되는 것이 D의 목표일까? 안드로이드는 육체를 대신하기 위함이고?



“좀 무서운 선배님이네. 어쩌면 싸워야 할 지도?”



바닥에 흩어진 피를 끌어모아 내 손에 큼직한 구슬의 형태로 뭉친다. 나중에 이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일단 영역에 넣어두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 저 멀리 빌딩을 바라본다. 내 예상이 전부 맞아 이번 일이 모두 D의 짓이라면 지금쯤 철수는 저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겠구나.


하여튼 괜한 친절이다. 알아서 끝낼 수 있으면 끝내줬으면 좋겠는데.


옥상에서 옥상으로 건너 뛰어다니며 끊임없이 빌딩을 향해 달려간다. 생각보다 멀고 높다. 빌딩에 가까워질수록 고층 빌딩도 늘어나고.



“으아아아! 힘들어! 나도! 나도 이동기!”



한참을 달렸다. 분명히 빌딩은 가까워졌지만, 아직도 아득하게 멀다. 제기랄.


차오르는 숨을 가다듬으며 저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젠 제법 높은 건물에 오르게 되어서 아래가 꽤 멀다. 이 근처는 나름 보안도 철저한 편인지 저 아래에 비하면 조용하기도 하고.


······어, 저기 자동차다. 저거 타고 가야겠다.


쾅!!



“호우! 와아! 이 높이에서 뛰어내려도 몸이 멀쩡~! 하진! 않고! 다리가 좀, 많이, 저리네.”

“꺄아악!”

“안드로이드다!”

“시큐리티!!!”

“아이고 이런.”



이럴 때가 아니네! 냉큼 점 찍어두었던 자동차에 달려가 냅다 문을 뜯어낸다. 그리고 탔는데! 으으음~! 어떻게! 시동을 걸지?


아이 씨, 나 왜 이걸 생각을 못 했지? 이걸 어째? 면허 있으면 뭐 하냐고 자동차 시동도 못 거는데!


······어! 파란 피! 혈액으로 육체를 안드로이드로 바꾸고 그 혈액을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 기술이라면! 이런 기계도 혈액으로 조종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영역에서 다급하게 뭉쳐왔던 피 구슬을 꺼낸다. 오오오!! 커다란 로봇 같은 게 나를 향해서 날아오고 있다! 무서워!


냅다 액체로 바꿔서 에라 모르겠다고 일단 자동차에 쑤셔 박았는데!


콰직! 콰지직!


자기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피가 자동차를 완전히 다 잡아먹더니 멋대로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퉷! 하고, 나는 바깥으로 뱉어졌다! 뭐지? 실수했나?


콰직콰직 소리를 내며 모양이 바뀌던 그것은 살점이 생기는가 싶더니 다시 금속으로 변하기 시작하며, 오토바이가 되었다. 흠. 음. 누구 취향일까 이건. 일단 내 취향은 아닌데. 오토바이 위험해 보여서 싫어.



“두 손을 들고 멈추십시오. 멈추지 않을 시 발포하겠습니다!”

“으악! 이럴 때가 아니네!”



냉큼 오토바이에 걸터앉았고, 내가 뭘 하기도 전에 자기가 혼자서 발사되듯이 출발했다. 워어, 뭐야, 왜 이래?



[넌 누구냐.]

“으악! 뭐야! 누구야!”



점점 빠르게 달려 나가는 오토바이 위에서 어째야 할지 몰라 가만히 앉아 있었더니 대뜸 귓가에 소리가 울렸다.


이상하다? 바람 소리 때문에 귀가 아플 정도로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린다고? 진짜냐?


귀를 만지작거렸더니, 그때가 되어서야 뒤늦게 귀에 뭐가 들어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잠깐 사이에 이런 걸 넣은 거야?



[대답해라. 넌 누구인데 내 피를 조작할 수 있는 거지?]

“??? 내 피? 조작? 당신이 D입니까?”

[음? 내 코드 네임을 알아? 뭐야. 동료였나?]



와아, 와아아아아. 오늘의 만남은 다소 다 갑작스럽고 당황스럽네. 냐루냥도 그렇고 여기 D도 그렇고.


D, 라는. B가 만나보라고 추천해줬던 사람을 만난 것은 좋다만, 그 사람이 현재 테마 전쟁의 원인으로 보인다는 것은 또 복잡한 마음이다.


나야 뭐 잘 몰랐고 어쩌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지만 D는 대놓고 본인이 저지른 일 아닌가? 좀 무서운데.


에잉, 거 뭐냐. 고층에서도 바깥과 연락이 가능한 기술 얻어보겠다고 이러는 건데 왜 점점 일이 이렇게 꼬이는 거야 대체?



[넌 누구지?]

“아아아아, 어어어어어, 비읍?”

[처음 듣는 유형의 코드 네임이다만.]

“신입이라.”

[그런가. 그럼 내가 모를 수도 있겠군. 그래. 그래서 넌, 왜, 내 피에 간섭한 것이지? 굉장히 불쾌한 일이다만.]



아니 그야, 뭐, 내 입장에선 적을 죽이고 얻은 전리품이니까, 라고 대답하면 안 되겠죠? 그냥 모르는 척할까? 신입이라 잘 몰랐다고?



[그런가? 다음부턴 주의하도록.]



와아, 생각보다 자비롭잖아? 뭘까 이건?



[게다가. 마침 잘 됐어. 이대로 쭉 빌딩으로 와라. 날 도와주었으면 한다.]

“······어~어떻게요?”

[이 도시의 주민들을 육체로부터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알다시피 육체는 그저 피의 그릇일 뿐. 하지만 육체는 그릇이면서도 제약이지. 너도 알 것이다. 우리 피의 광전사는 모두 육체의 변형을 이룬다는 것을. 그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육체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되는 것 아닌가?]

“음~그럼, 혼자 하시지?”

[좋은 건 다 같이 나눠야 하지 않은가. 왜 그렇게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거지? 피의 광전사는 그런 치졸한 생각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

“······.”



아니, 그거야 뭐, 선배님들 하는 거 보면 그렇긴 한데. 그분들은 하나 같이 ‘못하면 하지 마. 다른 길 가면 되지 뭐.’ 라고 한단 말이야.


내가 아는 가장 이상한 인간인 철수도 결과를 정해두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놈인데.


그야 물론 어느 정도의 방향성과 목표에 대한 이미지는 철수도 부정하지 않겠지만 이런 식으로 ‘이게 맞으니까 이렇게 해야 해.’ 라고 하면 철수가 크게 노할 것이다.



“하. 계단을 오르는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과 해석이 있을 수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계단의 끝에 서지도 못한 녀석이 계단 위의 경치를 단정 짓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밖에는 못하겠는데?”



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바라는 계단 위의 경치를 떠올리고 그려 나가는 것은 이상적인 계단을 오르는 인간의 자세야. 부정하지 않아. 하지만 모두가 너와 같은 계단 위에 있지 않음을 왜 간과하는 것인지 모르겠어. 모든 계단이 모두에게 알맞게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니야. 인간인 나에게는 지나치게 큰 계단이 있고, 반대로 지나치게 작은 계단도 있는 것이지. 모두가 너와 같은 계단을 오르길 바란다면 딱 하나의 자세만을 정해둔 채 계단을 오를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됐어. 보폭이 다르다면 걷는 법도 달라져야 옳은 거야. 아이가 오르는 계단과 어른이 오르는 계단의 부담이 같을까? 거인의 계단과 인간의 계단과 요정의 계단은 같을까? 그리고 그들이, 네가 주장하는 ‘똑같은’ 계단의 끝에서 바라보게 될 계단 위의 경치는 과연 같을까? 그걸 모르는 녀석이 올바른 계단을 오르는 자세를 논하는 것은 다소 우스운데.”



크아아아! 김철수우우!! 내 머리에서 사라져!! 그놈의 계단론! 그만해!!


가만 생각해보니 그 새끼는 어쨌거나 올라가는 사람을 부정하지는 않으니까 탐탁지 않아도 부정하지는 않겠구나. D를 만나도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둘 소지가 다분하다.



“음, 일단, 만나고 봅시다!”

[그래. 혈종술을 다룰 줄 아는 인물이 늘어나면 나도 편하지.]



쓰읍, 찾아가면 나도 혈액으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데?


콰직!


귀에서 뭐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딱딱하게 굳은 핏덩어리가 후두둑 떨어진다. 으으으, 기분 나빠.


두 번이나 테마 전쟁이라는 이상한 현상에 휩쓸린 것도 피곤한데 하필이면 이번엔 같은 과 선배가 저지른 일이라니. 피의 광전사는 모두 제정신이 아닌 건가?


끼익!


순식간에, 저기 멀리로만 보이던 비기스트 빌딩의 앞에 도착해버렸다. 어마어마한 싸움의 흔적들. 여기저기 펼쳐진 육편과 금속 파편들.


여전히 굳건한 투명한 막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작은 구멍이 생겨나는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와아~덕분에 편하게 들어왔네?”

“!!!!”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냐루냥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다들 왜 이렇게 갑자기 휙휙 나타나?! 이 층의 테마가 그런 건가?! 사람들 진짜!



“방금 전에 통화 다 들었어. 비기 대 빅테가 네 선배인 거야?”

“어, 뭐, 그, 비슷한 무언가······요.”

“어머, 그럼 너 커다이 사가 이기게 만들려는 거니?”

“아니요, 딱히 그럴 생각은 없기는 한데, 쓰읍, 이게 또, 선배님이다 보니. 말이라도 통하면 좋을 텐데. 말이 통할 것 같은 사람도 아니라······.”

“응. 짧긴 했지만, 대충 듣기만 해도 그런 것 같더라.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니? 육체가 제약이니 벗어나 자유를 얻는다니. 그건 극복이 아니라 회피잖아?”

“어, 듣고 보니!”

“스스로 타협한 것이란 것을, 본인은 알까? 참, 안쓰러워.”



······쓰읍······음. 뭔가 불안하다. 일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알 수 없는 찌릿찌릿한 이 기분은 뭘까.


그래, 뭔가, 뭔가 철수가 일을 저지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 그 녀석은 반드시 일을 저지른다! 여기엔 냐루냥이 있으니까!


~~~!!!!


거대한 폭발음과 충격. 산산이 부서지는 빌딩을 지키고 있던 투명한 막. 저렇게 허무하게 부서지는 것이었구나?


자욱한 먼지의 장막 속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저 실루엣은, 달리 생각할 것도 없이 철수가 분명했다.


여기 저 새끼. D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기로 결정했구나. 그런데 냐루냥이 보이자마자 후다닥 달려왔다 이거지?



“아 저 미친놈······냐루냥, 제가 김철수라는 앤데, 어어, 그러니까~.”

“형. 일 끝났어. 가자.”

“······어? 나?”



좀, 당황스럽네? 냐루냥은? 여기 냐루냥 있어 철수야! 뭐야 너! 어디 아파?! 가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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