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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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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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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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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DUMMY

카나는 오늘. 본인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과 최악의 경험을 했다고 자부한다.


하나는 인터넷 방송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찍어보았다는 것. 김철수라는 인물의 어마어마한 이슈몰이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주로 접하게 되는 2층 정도의 탑험가들의 모험담이나 싸움이 아닌, 분명히 탑험가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힘을 가진 철수의 싸움이었다.


그 유명한 공략조니 뭐니가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서 궁금했던 사람들은 아마 오늘, 그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베일에 싸여있던 존재 중 하나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다들 철수가 어느 거대 길드 소속일 것이고 철수라는 이름도 분명히 가명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탐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공략조 딜러들은, 땅을 뒤집는다더니······.”



오크 마을을 제물로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여러 개체가 뒤섞여 마치 산처럼 거대했던 눈깔괴물 덩어리는, 이젠 없다.


까만 살점은 깍둑썰기 된 채로 가지런히 한 곳에 쌓여 있다. 곧 찾아올 예정인 장소예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해두었다.


커다란 눈동자는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뽑아내어 눈깔괴물 덩어리 본인의 가죽을 이용해 감싼 뒤 채찍으로 감싸 묶어 두었다.


그중에서 핵으로 의심이 되는 눈동자, 아직도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는 그 눈동자는 허공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채찍에 찔리고 휘감긴 채 허공에 떠 있다.


1층에서는 그야말로 재앙이라고 할 수 있는, 만약 저런 것이 몬스터 폭주 당시에 나타났다면 정말 세계의 절반은 멸망했을 정도의 괴물이 참 섬세하게 해체되어 나열되어 있다.



“신기하다.”



그리고 정작 그런 일을 해낸 당사자는 그저 마냥 지금의 이 상황을 신기하게 여기고 있다. 본인이 저지른 일인데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제자리에서 천천히 돌며 주변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숲이 들판이 되고 전에 없던 커다란 구멍들이 여기저기 생겨났고, 산은 깎여나갔다. 땅은 오염되었고 공중에 눈깔괴물이 흩뿌린 불길한 보라색의 안개 같은 것이 떠다닌다.


그런 광경을 괴물과 함께 만들어낸 인간이 그저 조용히 ‘신기하다.’ 라고 말한다. 카나야 말로 참으로 신기하고 괴이해서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아 참.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원래 방송 예정 없었는데 얼떨결에 킨 거라서요! 그럼 이만~!”

“응? 아직 방송 중이었어?”

“몰랐어요?”

“응. 좀 부끄럽네. 사람들이 나 그러고 있는 거 다 봤을 거 아니야. 좀 더 깔끔하게 할 걸 그랬어.”

“아······.”



사건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지금. 고요가 자리 잡은 그 자리에 적당히 거리를 두고 앉은 두 사람. 장소예가 오기 전까지는 이렇다 할 이야기가 이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역시나 입 다물고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철수는 그림으로 그린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뭐가 저렇게 애수 젖은 눈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냥 멍하니 있을 뿐이란 것을 알지만 궁금해진다. 살짝 고개를 드는 모습마저도 마치 화보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허공에 떠다니는 먼지를 보았을 뿐이란 것은 알고 싶지 않다.


예쁘지만 딱히 쓸 곳은 없어서 막상 사고 나면 계륵이 되어버리는 그런, 관광지에서 홧김에 산 관광 상품 같은 인간이었다.


······그렇지만. 방송적으로는? 잡아야 했다.



“철수······야. 편하게 말해도 되는 거지?”

“응.”

“철수야. 너, 방송 관심 있어?”

“응.”

“방송 직접 하는 건?”

“그건 좀. 귀찮아.”

“아~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쓰읍, 그래도, 뭐, 방송에 나오는 거~자체는, 괜찮은 느낌?”

“응.”

“아~어어, 그, 아! 아직 제대로 소개도 안 했구나? 나 카나고, 22살!”

“누나네.”

“어, 어······음······.”



액면가 20대 후반의 철수에게 누나 소리를 듣자니 조금 부담된다. 인수도 그랬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야 할 단계일 것이다.


어쩐지 괜히 ‘누나’ 라고 콕 집어 말하는 것이 강조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고, 실제로 철수는 떨떠름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혼자 속으로 재미있어하고 있지만 어쨌거나.



“왜?”

“아니. 맞지 누나지. 저기 철수야. 쓰읍, 그으~음~아~! 이런 말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혹시! 저기! 연락처 좀······?”

“응?”

“아! 아니~! 다음에도 혹시! 혹시 또 방송에 출연해줄 수 없을까 해서~!”

“연락처는 없어. 나중에 형 번호 알려줄게. 그쪽으로 연락해.”

“음~! 그건 좀 그렇지 않나?”

“그런가. 휴대폰 하나 구해야 하나.”

“오! 그거 좋다! 헤헤, 나 아는 사람 있는데 소개해줄까?”

“어디에 있는데?”

“아~! 너, 혹시, 거기 아나 거기? ㅁㅁㅁ! 거기 보면 엄~청 큰 고깃집 있잖아~!”

“몰라.”

“아, 그래? 다른 지역에서 왔니?”

“몰라. 탑 밖을 이야기하는 거면 다음에. 아니면 하나 구해줘.”

“내가? 아, 그러면 다음에도 방송에 나와줄 거야?”

“응.”



방송에 내보내기에는 다소 재미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지만, 오늘의 전투를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보았고, 그게 세계 곳곳에 퍼지게 되면 다음에 다시 한번 그가 카나의 방송에 얼굴을 비칠 때 그녀에게도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겨우 그 정도. 휴대폰 하나 정도는 그냥 내어줄 수도 있었다. 들이는 노력과 수고에 비해 리턴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난 방송에 나와도 할 말이 딱히 없는데.”

“음~그건!”

“아, 여기 있군. 오랜만, 아니, 처음? 뭔가 익숙한 듯 낯선 얼굴이라 새로운 듯 반갑구려. 만나서 반갑소, 소인은 장소예라고 하오.”



아, 와버렸구나. 아쉬웠다. 철수의 지인이 왔다면 이 이상 방송과 관련된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푸른 한복을 입고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장소예의 뒤로, 우노 길드의 문양을 짊어진 이들이 우르르 따라온다.


어라? 이때부터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그제야 뒤늦게, 장소예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우, 우노 길드의, 그, 그?”

“아. 만나서 반갑소 카나양. 팬이라오. 석 달 전 올린 2세대 여돌 리믹스 정말 인상 깊었다오. 이젠 들을 수 없는 노래의 리와인드라 향수를 느꼈소.”

“???”

“그런 것도 했구나.”

“자네도 한 번 들어보시게. 나쁘지 않으니.”

"2세대 어쩌고가 뭔데?"

"어허~젊은 친구라 그런가 잘 모르는가 보오?"

"노래? 옛날 노래야?"

"옛날 노래라고 하니 가슴 아프구려. 내 언제 나이가 이리도 들어버렸는지."



우노 길드 소속의 탑의 전문가. 이 한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탑험가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지식을 보유한 인물이 바로 그일 것이다.


우노 길드의 최중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한 그가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다고?



“안녕하세요~”

“······파, 펀. 파펀. 음.”

“음~되게 어렵게 떠올리시네. 영상 잘 봤어요! 되게 잘 싸우시던데?”

“아. 부끄럽네.”

“파펀? 정유정?! 우노 길드의, 그! 공략조의! 그! 불 주먹의 그!!!”



분명히 카나 자신은 1층에 있는데 1층에서 절대로 마주할 수 없을 괴물들이 우르르 나타나고 있다.


이게 철수 낙수 효과? 벌써부터 달다. 이런 사람들과 안면을 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오늘 일어난 일을 썰 풀기만 해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들으려고 할 것이다!


당분간 방송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에 카나는 저도 모르게 번지는 미소를 참는 것이 힘들었다. 너무 좋아해도 속물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이것이군. 눈깔괴물.”

“이름 좀 성의있게 짓지.”

“생기다 만 것들에게 뭐 하러.”

“기존에 탑에 나타나던 돌연변이들과 비슷한 생김새와 특징을 가지긴 했으나, 이건 또 참신한 모습이오.”

“그런데 왜 이렇게 잘라 놓은 거래요?”

“심심해서.”

“허허, 그 괴물을 상대로 어지간히도 여유가 있었나 보오.”



짧은 대화 이후 곧바로 주변에 벽을 세우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는 우노 길드의 사람들. 이제 두 사람은, 딱히 할 일이 없어졌다.


카나는 철수를 그렇게 오래 보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제 슬슬 자리를 비우려고 할 줄 알았다. 심심하니 재미가 없니 어쩌니. 어지간히도 쾌락을 좇는 사람 같으니까.


카나의 입장에서도 그러는 편이 더 좋았다. 다음 방송에서 그래도 좀 방송을 이어 나가려면 방송이 아닌 지금 어느 정도 관계의 진전이 필요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철수 같은 인간과 방송하면서 방송 사고를 내지 않을 자신이 카나에게는 없다.



“······.”

“······.”

“······.”

“······어?”

“왜.”

“아니, 어, 응?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으려고?”



우노 길드가 세운 벽의 바깥에서 적당한 바위를 찾아 걸터앉은 철수가 조용히 어디선가 꺼낸 책을 읽으려 하자 카나가 황급히 물었다.


정말? 그냥 이곳에서 기다리려는 건가? 그렇게나 심심해했던 인간이 갑자기? 뭔가 다른 자극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어. 왜.”

“아······. 책, 좋아하나 보다?”

“응. 너는?”



그래도 카나에게는 하나 희망이 있었다. 무려 철수의 반문. 대답 이후 침묵 유지가 아닌 대화를 이끌어가기 위한 노력을 철수가 카나를 위해 친히 행해주고 있다.


얼떨결에 별 의미 없이 친구라고 불렀던 그 작은 요소 하나가 이 사태를 만들고야 말았다.


카나의 입장에서야 그런 것을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거나 상대가 대화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점은 그녀에게도 희망적이었다.


좋아, 아주 좋아. 다음의 방송을 위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 보자.



“나도 책 좋아해! 이거저거 읽는 편. 방송하다 보면 말실수가 가장 위험하거든. 그래서!”

“음. 말을 적게 하면 말실수를 안 할 텐데.”

“그럼 방송이 재미가 없잖아.”

“아.”

"그런데 뭐, 지식이 풍부하다고 실수를 안 하는 건 아니더라고. 참 어려워. 그치?"

"어렵지."



읽으려던 책을 덮었다. 철수에게도 지금의 대화는 꽤나 흥미로웠다. 평소 철수가 익숙하고 능숙했던 탑이나 전투 따위의 분야가 아닌 전혀 다른 방송이라는 분야.


무엇이 궁금한가에 대한 대답이 ‘아는 것이 없어 뭐가 궁금한지도 모르겠다.’ 라는, 바닥부터 시작하게 되는 이 기분.


대체 얼마 만일까. 무에서 시작해서 쌓아 올라가는 이 과정들. 철수는 오늘 카나라는 계단을 올라볼까 한다.



“내가 보는 방송은 냐루냥 방송 하나뿐이라. 그 사람은 전체적으로 나긋나긋하게 방송하잖아.”

“오! 와아! 너! 되게 평범하게 말한다! 그렇게 말할 줄 아는구나?!”

“······응? 무슨 의미야?”

“아니아니. 그냥 개인적으로 신기해서. 맞긴 해! 냐루냥 방송은 나긋나긋하지. 나도 그 분위기 좋아하기는 하는데 우리 방송 시청자는 또 달라!”

“그렇구나. 하긴. 넌 나긋하고 포근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이런 세상에 그렇게 살려면 엄~청 잘 사는 집이어야 하는 거야. 나처럼 평민 출신은 어림도 없다 이거지~”

“평민 출신? 탑 밖 사회에 계급이 있었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란 건 언제나 있었단다. 너도 잘 사는 집 애구나?”

“그렇구나. 잘 모르겠어.”

“내 방송 앞으로도 계~속 도와주면 내가 이거저거 많이 알려줄게! 상부상조! 서로 돕는 거지!”



카나의 선언에 철수는 살짝 커진 눈으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소리 없이 피식 웃는다.


세상에,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말을 꺼낸 카나의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미남이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 철수도 카나에게 어느 정도의 호감이 생겼다는 의미일까?!


······카나가 철수의 즉사 함정 같은 외모에 빠져 좋은 꿈을 꾸고 있을 때, 철수는 카나를 분석하고 있었다.



“좋지. 너처럼 적극적인 사람을 좋아하거든.”

“아이, 뭐, 무슨, 얘는 대뜸 그런 소리부터 하고 그러니~!”



비록 철수가 카나의 ‘도와주다.’ 를 ‘탑을 오를 수 있게 도와주다.’ 로 알아들어 새로운 인수의 서포터쯤으로 여기게 되었더라도. 일단 서로가 서로의 니즈는 채워주고 있었다.


이건 각인가? 남들에게 다 딱딱하고 이상한 사람이 오직 나에게만 웃어주고 평범하게 말을 하고 나를 도와준다! 이건 각일 지도 몰라!


카나는 괜히 신나서, 그리고 오늘의 일 때문에 조금 흥분해서 조금 급하게 전진하려 하는데.



“그럼~어디~음~마을에서! 카페라도 가서 커피나 마시면서, 계속, 이야기할까?”

“안돼.”



철수가 싫대.


쾅!!!


그러자 세상이 폭발했다! 세상에! 철수의 거절이 그렇게나 충격적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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