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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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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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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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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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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우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부산국제영화제에서 <Escape>의 D-Cinema가 사고 없이 마무리 됐다.

실질적으로는 세계 두 번째 시험 상영이었다.

한국 언론에서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여 대서특필했다.

하드디스크를 담아서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최초가 맞긴 했지만.

어쨌든 유독 세계 최초라고 떠드는 것은 도가 지나친 자화자찬이다.

낯간지러운 짓이다.

류지호로서는 싫지 않았다.

외신에서도 D-Cinema 부분을 비교적 비중 있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특히 DALLSA Corp. 같은 류지호 소유의 여러 업체들이 기사마다 함께 언급되었다.

공짜로 브랜드 홍보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Escape>가 홍보가 되는 효과를 얻은 점이 만족스러웠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필름마켓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따라서 WaW 픽처스 관계자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해외 바이어들이 많이 찾아왔다.

<Escape>는 JHO Pictures 작품이며 배급은 ParaMax가 한다.

WaW 픽처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류지호가 아쉽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토론토에 출품할 걸 그랬나?”


김민아가 단박에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무슨 소리야? 이런 대단한 건 당연히 한국에서 해야지.”

“당연한 거야?”

“응.”

“왜?”

“세계 최초라며?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했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잖아. 국위선양이야 국위선양.”

“미국 영화에 미국 기술로 한 건데?”

“쳇. 그러게 왜 이 대단한 걸 미국에서 했어? 한국에서 하지.”

“한국에서 안 되니까 미국에서 한 거야.”

“다음부터는 한국에서 해.”


류지호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그나저나....”


김민아를 보좌하고 있는 강현도가 입을 열었다.


“진짜 안 할 겁니까?”

“뭘요?”

“광고 말씀입니다.”

“가온 계열사 광고라면 모를까. 다른 회사 광고는 안 합니다.”

“에휴, 한국 들어온 김에 몇 편 찍으시지....”


강현도의 푸념에 김민아 강하게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돈 좀 땡길 수 있는 기회인데.”


류지호의 매니지먼트인 CHAN으로 광고 출연 제의가 쏟아졌다.

광고료를 듣기도 전에 류지호가 거절했다.


“땡긴다는 표현은 또 어디서 배웠냐?”


류지호가 강현도를 쳐다봤다.

강현도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우찬이구나? 내 이 놈에 자식을 그냥 콱!”

“울 신랑 욕하지 마. 혼날래?”

“결혼도 안 했으면서 무슨 신랑이야?”

“약혼 했으면 이미 게임은 끝난 거지.”

“진짜 민아 네가 아깝다. 그 놈은 전생의 무슨 복 받을 짓을 했기에....”

“부럽구나?”

“하나도 안 부러워. 공익광고 들어온 건 없어?”


강현도가 떨떠름하게 되물었다.


“돈이 안 되잖습니까?”

“......?”

“잘 나가시는 의장님이 일을 해야 회사에 수익이 생기지 말입니다.”

“내가 연예인입니까?”

“연예인보다 더 잘나가는 슈퍼 울트라 캡숑 월드스타시죠.”

“상업광고는 별로 하고 싶지 않네요.”


김민아가 나섰다.


“우리도 알아. 그냥 거절한 광고들이 아까워서 상무님이 해본 말이야.”

“공익광고는 찍을 생각이 있어. 혹시 들어오면 네가 잘 판단해서 잡아.”

“알겠어.”


김민아의 대답에 힘이 쭉 빠져 있었다.

그런데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홀가분 그 자체다.

쏟아져 들어오는 광고 모델 제안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돈이냐 이미지 관리냐.

당사자가 명쾌하게 결정을 내려 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박미주씨를 영입했다고?”

“미주씨 굉장히 유능하더라. 큰 매니지먼트 회사에 있었다고 하더니 달라도 달라.”

“혜주씨도 함께 오는 거지?”

“응. 혜주언니와 수현씨도 함께 CHAN으로 올 것 같아.”

“잘 됐다.”


박미주는 기업형 매니지먼트 회사인 스타서치 출신의 여성 매니저다.

스타서치는 오성 계열 자회사 성격의 매니지먼트 회사로 야심차게 출범했다.

한국에서 대형 매니지먼트는 너무 이른 시도였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잠시 매니지먼트 업계를 떠나있던 박미주를 영입하라고 류지호가 김민아에게 조언했다.

최근 매니지먼트 CHAN에 박미주가 합류했다.

그녀가 스타서치에 있을 때 담당했던 배우가 김혜주와 전수현이었다.

두 여배우와 함께 매니지먼트 CHAN에 합류하게 된다면, 신생 기획사치고 날개를 달게 된다.


“난 가수 부분은 잘 몰라. 다만 배우에 있어서는 조언을 해줄 수 있어.”

“가르쳐 줘.”

“가수는 회사차원에서 노래와 춤을 트레이닝 시키면 한 명의 어엿한 엔터테이너를 만드는 게 가능해. 하지만 배우는 달라. 배우는 훈련을 받는다고 좋은 연기가 나오고, 인물 자체의 매력이 생기는 건 아니거든.”

“배우는 타고 나는 거라는 걸 말하는 거야?‘

“그건 나중 문제고. 비즈니스 부분을 말하는 거야.”

“비즈니스?”

“배우 매니지먼트는 기획사가 주도적인 힘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가는 것이 힘들어. 음악 사업을 하는 STAR-G나 대동 기획처럼 트레이닝과 관리를 시스템화하기가 힘들다는 거야. 가수는 픽업, 훈련, 데뷔, 관리까지 일방적인 전략 하에 기획관리가 어느 정도 되지만, 배우는 데뷔를 하고 명성을 얻게 되면 기획사가 그를 키운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잠재력이 가치를 갖게 된 거야. 매니지먼트는 그저 서포트만 한 것이지.”

“그래서 관계설정이 중요한 것 같아. 가수와 기획사, 배우와 기획사의 갑을관계가 다른 것 같아.”

“이쪽 바닥은 영원이란 없어.”

“에이, 설마....”

“언제든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으로 가버려. 또 9번 잘해주고 한 번 갈등이 생기면 완전히 관계가 틀어지는 게 이 바닥이야.”


김민아가 ‘척’ 허리에 양손을 대고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겁준다고 내가 그만 둘 것 같아?”

“하하. 겁줄 생각 없어.”

“그럼 뭔데?”

“네가 상처를... 이 바닥에 실망할까봐. 걱정이 돼서.”

“더럽고 아니꼬운 꼴 수도 없이 볼 거라는 건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야.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

“그래, 1절만 할 게. 민아는 어떤 놈하고 달라서 잘 할 거야.”


류지호는 화려함만 좇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잔소리일 뿐.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엔터테인먼트 세계는 어느 산업보다 경쟁적이다.

매순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급변하는 환경이다.

선배에 대한 ‘우대’나 ‘예우’보다는 그들에게 ‘진부’나 ‘도태’라는 이름을 쉽게 붙여버리는, 냉정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환상과 근거 없는 낙관만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게다가 은밀한 비밀과 욕망이 마구 뒤섞인 혼돈의 비즈니스 세계다.

그걸 빨리 인정해야 버틸 수 있다.

그리고 살아남을 수 있다.

성공은 그 다음 문제다.


“민아는 잘 해 낼 거야. 나도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내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지.”

“너하고 비교당하고 싶지 않거든!”

“나보다 더 잘할 거라니까.”

“아무리 잘 나가도 너처럼 되고 싶진 않네요.”

“.....?”

“너처럼 살면 난 숨 막혀서 죽을지도 몰라. 싫어! 난 그냥 가늘고 길게 살고 싶어.”

“우찬이는 짧고 굵게 살고 싶다던대?”

“누구 맘대로!”

“그래, 네 맘대로 우찬이하고 오순도순 잘 살아라.”

“왠지 욕처럼 들려.”

“축복이야 축복.”

“내 1호 연예인이라 그냥 넘어가준다.”

“연예인이 아니라 영화감독이야. 자꾸 헛갈릴래?”

“그럼 한국에서 영화 좀 찍어. 그래야 우리도 어디 가서 네 매니저라고 자랑하지.”

“때가 되면.”

“그때가 언젠데?”


김민아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일단 할리우드에서 영화 찍고 나서 생각해 보자.”

“빨리 찍고 와.”

“왜 우찬이하고 오래 떨어져 있기 싫어서?”

“그걸 말이라고....”


류지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얼굴을 붉히는 김민아의 모습이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 수줍게 고우찬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모습과 겹쳐 보였다.

매니지먼트 CHAN은 류지호 관련 매니지먼트를 하지 않아도 수익을 내는데 큰 문제가 없다.

조연급인 공다연과 연극배우 출신 신인 남자배우 몇 명을 돌보는 것으로는 전혀 수익을 낼 순 없겠지만, A급 여배우인 김혜주와 전수현이 합류하는 것이 시작이다.

류지호가 정보를 주었다.

잠재력 있는 십여 명의 배우에 대한 정보다.

그들 가운데 절반만 계약할 수 있다면 5년은 문제없이 회사를 돌릴 수 있다.

무엇보다 안심이 되는 것은 박미주를 영입했다는 사실이다.

류지호가 기억하는 그녀는 매니지먼트 업계의 여걸이다.

130명의 배우와 70명의 매니저들을 총괄했었던 베테랑이다.

거친 판에서 굴러먹었지만 머리가 있는 강현도와 기업형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근무하며 스마트함을 갖춘 박미주.

김민아의 오른팔, 왼팔이 되어줄 터.

게다가 류지호가 그렇게 되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

매니지먼트 CHAN 망할 수가 없다.

소속 연예인 관리실패로 스스로 자빠지지만 않는다면.


✻ ✻ ✻


류지호는 대선후보 간담회 이후로 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를 대신해 박건호 대표가 주요 행사를 다녔다.

박건호 대표는 제1 야당 대선 후보자의 오찬에 참석해 류지호의 의중을 전달했다.


“감독님은 국가보훈처에서 전 세계 한국전쟁 참전용사 후손들의 상황을 파악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후손들을.....?”

“미국의 파커 가문과 류 감독이 한국전쟁 참전용사 및 그 후손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 류 감독이 미국에서 한국전참전용사회 지원에 진심을 다한다고 듣긴 했지요.”

“연세들이 많아 자칫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한국과의 인연이 끊어질 것을 우려하시더군요. 우리는 원수는 쉽게 잊어도 은혜는 절대 잊지 못하는 민족 아닙니까?”

“원수까지 잊는 것 같아 안타깝긴 하지요.”


제아무리 비공개 오찬이라고 하더라도 노골적인 말이다.

박건호 대표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극장입장권통합전산망 사업, 부산국제영화제 불간섭 등에 대한 류지호의 의지를 전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가져오는 것과 별개로 한국영화는 국민의 정부에서 괄목할만한 진흥을 이루게 된다.

대통령이 문화대통령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문화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사상 최초로 문화 관련 예산이 전체 정부 예산의 1%를 넘기 시작했던 것도 국민의 정부부터다.

국민의 정부는 영화계와의 공약이었던 영화 검열 폐지와 민간 자율형 행정위원회인 영화진흥위원회 설치, 영화 등 문화콘텐츠산업의 벤처업종 적용, 문화산업진흥기금의 설치, 극장전산망의 공공화, 스크린쿼터 준수, 영화진흥금고의 확충 등을 담은 법안을 입법한다.

이런 변화는 영화인들의 검열로부터의 자유로운 사상적 향유를 가져 왔고, 나아가 남북문제나 사회적 이슈를 다룬 다양한 영화가 제작되는 계기가 된다.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영화계가 ‘좌파’로 몰리게 된 이유가 된다.

때문에 보수정권에서는 영화계를 야당의 적극적지지 세력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되고.

정치적 탄압에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정권이 대중문화예술계를 완전히 망가뜨리지는 않는다. 황금알을 누가 가져 가냐를 둘러싼 다툼이 권력 주변에서 일어나게 되지만,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짓까지는 저지르진 않는다.

어쨌든 국민의 정부부터 영화계의 숙원들이 하나씩 해결되어감에 따라 한국영화는 질적 성장을 통해 선진적인 영화산업시장을 열게 된다.

그렇게 10여년이 흐른 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국에서 만큼은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할 수 있는 영화 산업이 한국에서 펼쳐지게 된다.

류지호의 기억 속에 있는 낙관적인 전망일 뿐.

당장은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외환위기 직전이다.

박건호 대표가 공개행보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류지호는 비공개 행보를 이어갔다.

G.O.M Cinemas의 나용근 사장과 함께 부산 시내를 돌아다녔다.

센텀시티 개발예정지를 시작으로 남포동의 부산극장과 대영극장을 둘러봤다.

80년대 남포동 극장가는 대영·혜성·부영극장 3곳을 합쳐 3,500석을 자랑했다.

당시 주말에 관객이 서서 볼 정도로 영화관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부산극장은 1993년 복합영화관으로 구조를 변경했는데, 3개 상영관(총 2,217석)을 출범시키면서 복합상영관 시대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G.O.M Cinemas는 그런 부산극장과 3년 임대 운영계약을 체결했다.


“부산극장 임대는 내년까지던가요?”

“그렇습니다.”

“인수는 어렵겠죠?”

“부산극장은 포기하고, 대영과 혜영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여겨집니다.”


G.O.M Cinemas는 서울극장의 박종환 회장이 구속된 사이, 부인이 운영하고 있던 대영극장을 전격적으로 인수했다.

이전에 인수했던 혜영극장 부지까지 포함해 G.O.M 남포동점을 신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시공사는 정해졌습니까?”

“부산지역 향토 건설사에 맡길 계획입니다.”

“서면으로 가봅시다.”


서면역은 앞으로 80년대 개통한 1호선과 99년 개통 예정인 2호선이 교차하게 되는 환승역이 된다.

서면상권은 백화점과 재래시장, 지하상가와 먹자골목이 한데 모인 거대 복합 상권이자 부산 지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상권으로 꼽힌다.

2000년대로 넘어가면 지하철 환승역을 끼고 있는 ‘더블 역세권’이 된다.

이점 덕분에 직장인과 학생, 주부 등 다양한 소비 계층을 끌어 모은다.

특히 소비가 활발한 10~30대 젊은층 유입이 많아진다.

류지호와 나용근 사장이 광성백하점 부산본점과 태화쇼핑몰 주변을 돌아봤다.

두 백화점 주변이 서면 상권의 주축이다.

류지호는 부산토박이가 아니기에 지역의 중요한 상권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때문에 중구, 부산진구, 해운대구, 북구, 연제구, 사상구까지 광범위하게 돌아다니면서 90년대 후반의 부산 시내 분위기를 확인했다.


‘남포동, 서면, 해운대, 센텀시티 정도에 들어가면 될까....?’


극장 당 기본 10개관으로 잡으면 40개 스크린이다.


“나 사장, 혹시 부산 인구수 압니까?”

“380만 정도 될 겁니다.”


참고로 부산의 인구는 1995년 388만 명까지 올라갔으나 96년부터 완만하게 감소하기 시작해 20년 후에 350만 명까지 떨어지게 된다.


‘부산도 구마다 동마다 멀티플렉스가 들어섰겠지? 대략 20개에서 최대 30개까지 있었겠구나.’


서울의 경우 2010년대 예술극장과 자동차 극장 포함 극장이 60개 이상이었다.

인천은 인구 300만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25개 내외였다.

류지호는 인천보다 많고 서울의 절반 정도로 보고 경쟁력 있는 위치 선점에 고심했다.


“전국 주요 대도시의 코어 극장에는 무조건 좌석 600석 이상의 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용근 사장이 펄쩍 뛰었다.


“600석이면 최대 3개 스크린, 기본 2개 스크린을 더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캐나다의 Eye-MAX를 소유하고 있는 거 알죠?”

“알고 있습니다.”

“5대 도시 G.O.M 1관은 제대로 된 Eye-MAX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스크린 사이즈와 시설을 갖춰야 합니다.”

“저희가 Eye-MAX 시스템을 독점하는 겁니까?”

“독점은 안 좋은 겁니다.”

“예?”

“독점 안 한다고요."

“그 좋은 걸 왜?”

“독점보다 전체적으로 파이도 키우는 것이 좋은 것 같아서요.”

“의, 의장님.....”


나용근 사장은 황당해서 말을 더듬었다.

현재 70mm 포맷은 Eye-Max가 유일했다.

할리우드에서도 더 이상 70mm 영화를 제작하지 않고 있다.

나용근 사장은 지난 JHO Company LA 컨벤션에서 의장이 소유한 영상 기업들의 CEO들과 대화를 나눠보았다.

미국 기업들이 기술력을 확보하게 된다면, 극장업계에 일대 혁명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63빌딩이나 엑스포 행사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Eye-MAX 영화를 일반 영화로 똑같이 볼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시스템을 독점할 수 있다면 엄청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 같은 이점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아요. G.O.M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겁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무슨 경쟁력 말씀입니까?”

“아까 내가 600석을 갖추자고 하니까 뭐라고 했죠?”

“3개 스크린...”

“우리의 가장 큰 경쟁자는 대기업입니다. 그들 역시 나 사장처럼 생각하겠죠.”

“스크린 크기나 상영관 규모를 키우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스크린을 하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서.”

“사실 스크린 숫자는 더 많은 영화를 극장에 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극장의 속성이란 것이 관객이 잘 드는 영화를 집중적으로 걸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보면 잘되는 영화를 몇 개 스크린에서 동시에 상영하게 되겠죠. 이미 미국에서 그런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고.”


미국은 한국처럼 멀티플렉스의 스크린 다수에 한 영화로 도배하는 짓은 벌이지 않는다.

그런 짓을 애초에 할 수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


“600석 규모에서 영화를 상영하나, 200석 규모 3개관에서 하나의 영화를 상영하나 수익에는 큰 변동이 없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관객은 당연히 스크린이 더 거대한 상영관을 찾게 되겠죠. 특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경우에. 돈 되는 영화를 3개관에 깔아서 욕을 먹느니 차라리 대형관을 하나 만들어서 상영하는 게 나은 거 아닐까요?”

“관객들은 600석이라는 북적거리는 상영관을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대한극장은 무려 3개 층 1,950석이잖아요. 그런 곳에서는 관객들이 어떻게 영화를 봤죠? 게다가 멀티플렉스는 경기장 방식의 좌석배치잖아요.”


세계 최대 스크린 사이즈인 가로 34m, 세로 13.8m에 펼쳐지는 시원한 영상과 입체음향 사운드가 초대형관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상영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맛이 더욱 살아날 것이다.


“강남 1호점은 용적률 등 당시 법률적인 문제 때문에 대형 상영관을 갖추지 못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대한민국의 주요 대도시에 들어서는 극장 1관은 무조건 600석 이상을 갖춰야 합니다. 똑같은 영화를 상영하고, 똑같이 쾌적한 관람 시설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면 대형 스크린에서 영화를 관람하겠습니까 아니면 일반 멀티플렉스 사이즈에서 관람하겠습니까?”


물론 관객의 관람 취향은 제각각이다.

관객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아이디어는 아니다.

하지만 Eye-MAX를 소유하고 있는 오너, 또 Eye-MAX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소유한 극장에서 70mm 사이즈의 영화를 35mm 사이즈 상영관에서 상영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류지호 스스로가 Eye-MAX 시스템을 배반하는 꼴이 된다.

잠시 류지호의 지시를 궁리해 본 나용근 사장이 입을 열었다.


“경기장 스타일의 객석 디자인에서 다시 복층 구조의 클래식한 극장으로 돌아가게 되겠군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차차 아이디어를 모아보자고요. 참고로 미국에는 복층이 아닌 단층의 경기장 스타일의 600석 이상 초대형관이 존재합니다.”

“극장 부지가 원체 넓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이 옆으로 건물을 키웠다면, 우린 위로 올리면 되지 않겠어요?”

“어쩌면 한 층에 한 개 관이 들어설 수도 있겠군요. 아니면 지하로 내려가던가.”

“미리부터 예단하지 말자고요. 멀티플렉스 부지들을 확보하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까.”

“일단 TF와 백화점 사업부에 일러두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류지호가 김우영 비서실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발권시스템 개발은 어떻게 되고 있답니까?”

“내년 가을, 이르면 봄에 G.O.M 지점에 설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비보안회사인 나래안전에는 나래정보기술이라는 자회사가 있다.

부도 일보 직전의 ATM 제조회사를 인수했는데, 그 회사에서 온라인 영화티켓예매서비스까지 포함한 극장전산시스템(발권 시스템)을 개발 중에 있다.


“CineFeel.com과 연계는요?”

“동시 진행 중입니다. 추후 CineFeel.com은 극장 예매를 맡고 나래정보기술이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하드웨어 공급, 유지보수 지원을 담당하게 됩니다.”


나래안전은 보안경비 서비스 외에 유망시장인 극장 전산시스템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사업다각화를 꾀했다.

멀티터치 기술은 1982년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그 즈음 오성그룹에서 운영하는 자연농원이 신용카드를 사용해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티켓자동발매기를 한국에 첫선을 보였다.

발권시스템 시장에 진입하려는 업체가 국내에는 거의 없었다.


“현금을 직접 발매기에 넣어 티켓을 출력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이겠죠?”

“현재는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이용한 영화티켓자동발매기 기술에 머물고 있습니다. 온라인 예매와 결합한 발권시스템을 개발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당 얼마에 납품받게 되는 거죠?”

“7,000만 원입니다. 나래정보기술에서는 가격을 5,000만 원까지 낮출 수 있도록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은 본점과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것 맞죠?”

“예.”


극장전산시스템은 예매 상황과 극장 좌석 점유율, 박스오피스 수입 등을 본점에서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를 통해 각 지점의 운영을 컨설팅하거나 홍보마케팅의 방향을 수정·보완할 수 있다.

다양한 데이터도 수집 및 축적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참고로 이전 삶에서 유명했던 예매사이트 필름맥스는 내년 하반기에 사이트를 열게 되고, 이듬해 여러 영화관 체인과 협업하여 온라인 통합 예매서비스를 오픈하게 된다.


“휘유~ 이러다가 우리가 다 해먹는다는 말이 나오겠는걸.”

“대유, 오성, 경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는 안 하는 게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구멍가게만 여러 개 모은 거라 사람들이 눈 하나 깜짝 안할 겁니다.”

“큭. 그렇겠네요.”

“전략기획팀의 젊은 친구들이 수립한 계획대로 진행되어 어느 정도 그룹의 체계가 잡힐 10년 후라면 모를까. 당장은 그런 말 들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영화판에서는 그런 말 나오는 것으로 아는데.... 나 사장도 앞으로 자주 귀가 가려울 겁니다.”

“제발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대기업이 되었다는 말도 될 테니까요.”


(주)가온에서 여주 촬영 스튜디오, 센텀시티 가온타운, 대도시 멀티플렉스 체인망 구축, 케이블 채널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만 10년 간 2조 3천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순차적으로 투입될 자금이긴 하지만, 엄청난 규모다.


“극장 사업은 나 사장만 믿어요.”

“적어도 코엑스몰점을 오픈할 때까지 여유를 가지고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작은 비바람에도 집이 무너지죠. 우리는 불과 몇 년 전에 백화점이 무너지는 걸 똑똑히 목격했잖아요. 자금이 얼마가 들어가든 건물도 시스템도 튼튼하게 만들어 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류지호가 부산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을 때 서울 강남 가온GP투자신탁 본사.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맬 때다.

반대로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가온GP투자신탁운용이다.

노아 시거를 비록해 팀장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다들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처럼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매튜 그레이엄이 강남 본사에 와있다.


“빅보스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린 이 나라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해.”


모두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우리가 점찍은 땅이든 빌딩이든 기업이든. 다른 투기세력에게 절대 뺏기지 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맞습니다!”

"당연한 말을!"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매튜 그레이엄의 도발에 투자팀이 전의를 불태웠다.


- It ain't what you don't know that gets you into trouble. It is what you know for sure that just ain't so.

(당신을 곤경에 처하게 하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영화 빅 쇼트(The Big Short)에서 나오는 말이다.

미국의 주택 버블이 최고도에 달해 관련 파생상품시장도 달아올랐을 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고 불리는 주택 버블의 붕괴를 예측한 주인공들이 ‘매도(Big Short)’ 포지션을 취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내용의 영화다.

누군가는 한 순간의 위기로 전 재산을 잃는다.

반면에 누군가는 그 위기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다.

인간에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돈의 민낯.

권력자와 자본가들이 초래한 경제위기로 모든 것을 잃게 된 사람들은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까.

설사 책임을 묻는다고 그걸로 다 되는 걸까?

이번 위기로 소수의 사람들이 인생역전에 성공한다.

그들이 쥔 막대한 부는 그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하고도 합리적인 대가일까.

거창하게 금융자본주의의 모순이니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누가 물을 엎질러 놨든, 시간이 흐르면 물은 마르기 마련.

누가 일을 망쳐놨든, 또 다른 누군가가 올바르게 제 자리로 돌려놓는 법이다.

절망이란 괴물에 잡아먹혀 포기하지만 않으면.

사람이 저지른 일은 사람이 수습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말

비가 오고 나서 한층 쌀쌀해 진 것 같습니다. 건강 유의하십시오.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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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The Destroyer. (13) +7 22.12.10 4,149 145 26쪽
362 The Destroyer. (12) +9 22.12.10 3,783 127 26쪽
361 The Destroyer. (11) +9 22.12.09 3,927 146 28쪽
360 The Destroyer. (10) +9 22.12.09 3,758 124 27쪽
359 The Destroyer. (9) +9 22.12.08 3,932 143 28쪽
358 The Destroyer. (8) +14 22.12.08 3,769 132 26쪽
357 The Destroyer. (7) +9 22.12.07 3,945 144 25쪽
356 The Destroyer. (6) +10 22.12.07 3,831 131 25쪽
355 The Destroyer. (5) +9 22.12.06 4,094 141 26쪽
354 The Destroyer. (4) +8 22.12.06 3,904 132 27쪽
353 The Destroyer. (3) +8 22.12.05 4,006 142 21쪽
352 The Destroyer. (2) +7 22.12.05 4,025 121 25쪽
351 The Destroyer. (1) +12 22.12.03 4,349 146 26쪽
350 위험으로 내몰지도 않을 테니 걱정 마.... +8 22.12.02 4,311 137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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