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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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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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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The Destroyer. (7)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영화판은 치열한 자본주의 현장이다.

미국에서는 액션영화나 SF영화의 경우 보험에 들지 않으면 촬영허가가 나지 않는다.

사고위험 때문이다.

유럽 역시 보험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우린 보험 어떻게 했어?”

“벌써 영화종합보험 들어 놨지.”


영화제작에 따른 각종 리스크를 분담해 낮추고, 흥행 실패 시 손실까지 보장해 영화 한 편이 무사히 만들어져 상영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보험이다.

이 보험은 배우, 출연진, 의상, 소도구, 세트, 카메라, 필름 등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이로 인한 손실을 모두 보상한다.


“제작비의 몇 프로야?”

“우린 사고위험도가 너무 높아서 4.2%를 내야 돼.”


전체 예산이 아니다.

프로덕션 예산의 퍼센트다.


“그냥 보험회사 배 불려줘도 좋으니까 사고 안 났으면 좋겠다.”


영화종합보험료(Film Insurance)는 통상 영화제작비의 3~5% 정도를 납입한다.

상당한 금액이지만 보험가입 덕을 톡톡히 본 영화들도 꽤 많다.

<지옥의 묵시록>을 촬영할 당시 갑작스런 태풍으로 입은 150만 달러에 달하는 손해를 보험으로 대체했다.

<슈퍼맨>에서는 뉴욕의 야경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세팅했으나 정전으로 인해 찍지 못하자 보험회사로부터 5만 달러를 보상받았다.

<배트맨>도 당초 주연여배우로 뽑혔던 션 영이 팔에 골절상을 입자 보험회사는 그녀를 대신해 앤 베신저를 선정하고 부수적으로 소요된 의상 및 재촬영 등에 들어간 비용으로 최소한 50만 달러를 제작사측에 지급했다.

또 영국의 Loyd‘s 보험사는 <브레인스톰> 촬영 중 주연여배우 나탈리의 사망으로 제작이 지연되자 그에 따른 피해보상금으로 800만 달러를 지불하기도 했다.

<카사노바>의 경우는 촬영필름이 이탈리아에서 도난당하자 300만 달러의 보험을 보상받았다.

이 외에도 많은 영화들이 보험 혜택을 받았다.


“유럽에서는 어디 보험사야.”

“Loyd‘s.”


류지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금융그룹이다.

런던 금융계를 떠받치는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다.


“보험사들이 점점 깐깐해지고 있어.”


보험회사는 영화에서 보험금 지급이 자주 발생하게 되자,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90년대 들어서며 영화 현장에서 사고를 줄이기 위해 <고스트 버스터즈Ⅱ> 촬영장에 소방차를 대기시켰고, <007 살인면허>의 멕시코 촬영 때는 의료요원을 상주시켰다.


“우리 현장에는 뭘 해주겠대?”

“안전사고나 부상위험이 높은 장면을 촬영할 때는 앰뷸런스와 의료진을 현장에 상주시키겠대.”

“안전요원은?”

“필름부터 고가 장비의 도난 방지를 위해 고용하는 경호원을 우리와 일정부분 분담하기로 했어.”

“몇 명까지 고용할 수 있는데?”

“최대 30명.”

“한 번에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은 아니겠지?”

“평소 촬영에는 3~5명까지 가능해.”

“Pinkerton으로 했지?”

“네 비서들이 알아서 조정을 다 해놨더라.”

“알겠어.”


영화종합보험은 영화산업발전을 위한 든든한 후원자다.

모든 사고위험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전판이다.

선진국에서는 제작자는 물론 배우에게까지 영화의 질을 높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명과 재산의 손실의 위험에서 벗어나 오로지 영화제작에만 전력할 수 있을 테니까.


“G&P 자회사에 재보험사가 있지 않았나?”

“뭐?”

“아니야.”


가온GP투자신탁이 보험업까지 진출하는 것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차라리 만만한(?) G&P 계열의 보험사를 한국에 진출시켜 영화보험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는 류지호다.


✻ ✻ ✻


10월 중순.


<Remo : The Destroyer> 선발대가 열흘 앞서 오스트리아에 도착했다.

미국 대사관과 멀지 않은 호텔에 여장을 풀고 하루를 푹 쉬었다.

시차적응 겸 컨디션 회복을 마친 후 프로덕션 오피스로 출근했다.

언제든지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미국대사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가까운 곳에 단기 사무실을 빌렸다.

후발대가 오기 전까지 류지호는 파벨 노보트니가 지휘하는 경호팀과 함께 로케이션 촬영지를 둘러봤다.

국경을 넘어 슬로바키아 야외 세트장도 바쁘게 오갔다.

그 시간 레이먼드 쿤디가 이끄는 촬영팀은 테스트 촬영을 진행했다.

독일로 보내 현상을 해보면서 현지 현상소 품질을 확인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날씨 참 지랄 같네!”

“12월과 1월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건 디렉터도 알고 있었잖아.”


슬로바키아의 겨울은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겨울 촬영을 고집했다.

동유럽 특유의 겨울철 창백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담기위해서다.

실제 보스니아 내전의 종전협정이 12월에 체결되기도 했고.

암튼 JHO Pictures가 임대한 전세기가 미국과 오스트리아 사이를 왕복했다.

<Remo : The Destroyer>의 주연 배우들을 오스트리아로 모셔오기 위함이다.

할리우드 조합 가운데 영향력이 막강한 두 곳은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이다.

실제 촬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모든 현장이 배우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래도 이번에는 주연들에게 비서와 운전기사를 따로 붙여주지 않으니까.”

“유럽 로케이션에서는 Pinkerton의 경호원들이 수행하는 거지?”

“응. 오너 디스카운트도 없더라. 칼 같이 받을 거 다 받던데?”

“네고를 못한 본인 책임을 회피하려고?”


앨런 포스터가 입을 다물었다.

계약을 유리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프로듀서의 몫이었으니까.

어쨌든 주연배우들은 무조건 5성급 호텔 스위트를 예약해줬다.

윌리 워커와 오순탁은 톱스타가 아니다.

그럼에도 주연이기에 받아야할 혜택이다.

열악한 해외 로케이션이라서 그렇지, 국내였거나 유럽 선진국에서 촬영을 진행했다면 촬영장소에서 몇 분 거리 내 5성급 호텔, 식사, 객실 수준까지 일일이 따져야 했다.

배우가 감독과 친분이 있다고 불편함을 감수한다?

할리우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배우조합에서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문제를 삼으니까.

당연히 제작사와 배우는 합의한 계약서 조항을 성실하게 이행한다.

그렇게 안 하면 당장에 소송을 불사하는 곳이 할리우드다.


“윌리는 뜻을 접었어?”

“응.”


윌리 워커가 본인이 직접 운전해서 촬영장소로 출근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계약 단계에서 프로듀서와 그 문제로 실랑이를 벌인 일이 있었다.

윌리 워커는 JHO Pictures측에서 제공하는 차량과 운전기사와 경호원을 거부했다. 자신이 선호하는 차량을 타겠다면서.

JHO Pictures는 당연히 윌리 워커의 취향을 존중했다.

다만 그가 직접 운전하게 될 때 발생할 위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안전문제도 그렇고. 경호 차량이 한 대 더 추가되어야 하잖아. 윌리는 아직 그 정도 레벨의 배우가 아니야.”

“해외에서 경호원이 운전하는 차량을 이용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윌리의 뜻대로 하기로 한 거야?”

“응.”

“샘과 크리스 문제는?”


두 사람과는 휴식시간 보장을 놓고 약간의 이견을 보였다.


“촬영 중간에 스위스에 다녀온다는 게 말이 돼? 그것도 5일 씩이나.”


휴가비용은 배우 부담이라지만.


“두 사람의 휴가 때문에 촬영일정을 조정하는 것은 안 된다고 했어.”

“계약이 깨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하려나....?”

“톱스타의 갑질이 갈수록 더 하는 것 같아.”

“샘과 크리스는 톱스타는 아니지.”

“톱스타든 뭐든! 이놈에 할리우드가 지독할 정도로 배우중심인 것은 맞잖아.”

“그런 톱스타도 프로듀서에게 꼼짝 못하는 것도 할리우드거든.”


제아무리 톱스타라고 해도 모리스 메타보이 같은 거물 프로듀서에게 꼼짝 못한다.

레온 브룩하이머에게도 설설 기는 것이 할리우드 톱스타다.


“흥. 좋겠어. 거물 프로듀서라서.....”


할 말이 궁색해진 앨런 포스터가 괜히 류지호를 걸고 넘어졌다.

류지호는 할리우드에서 A-List에 당당히 들어가는 프로듀서였으니까.

그린라이트를 켠 모든 영화에서 실패를 모르는 미다스의 손 앞에서 까불 배우는 거의 없다.

에이전시 역시도.


“시끄럽고! 통관은 잘 마쳤대?”

“무슨 통관이 그렇게 복잡한 거야?”


실무를 책임진 본인이 더 잘 알지.

류지호가 알 리가 없다.


“문화부에서 협조했다면서?”

“총기류는 통관이 복잡하지 않았는데, 특수효과 장비와 그립 장비 통관이 더럽게 복잡한가 봐.”

“촬영에는 지장 없겠지?”

“그럼.”


앨런 포스터가 앓는 소리를 한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세계 어디를 가나 대접을 받는다.

<Remo : The Destroyer>가 오스트리아와 슬로바키아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한다는 뉴스가 현지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다.

사실 공무원들에게 뇌물조로 찔러 준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할리우드 예산서에는 접대비 항목이 따로 있다.

해외 로케이션에서 소요되는 뇌물이 회계에 접대비로 잡힌다.

오래된 할리우드 관행이다.

미국 세무당국에서는 이 부분을 어느 정도 용인한다.

자국 내에서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건 엄연한 범죄다.

다만 전 세계를 촬영장으로 이용하는 할리우드 산업의 특성상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는 원활한 영화 촬영을 위해 불가피한 면이 있음을 감안해 준다.

액수가 지나치게 크거나 빈번하게 벌어졌다면, 당연히 의심을 받는다.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횡령배임이나 자금 세탁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 같은 할리우드 관행을 이용해 자금세탁을 하는 일도 종종 벌어졌었다.

세금에 있어서 철두철미한 미국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MPAA의 로비력을 우습게보는 거다.

LOG 컴퍼니와 워너-타임 주주명부와 사외이사 확인해 보면 답이 나온다.

미국의 유력자들이 수두룩하다.

어쨌든 톱스타만 대접받고 큰 혜택 속에서 영화를 찍는 것은 아니다.

감독 역시 반드시 보장 받는 것이 있다.

바로 영화 제작비의 일정부분을 쓸 수 있는 재량권이다.

<타이타닉>에서 제이미 캐머론은 1,000만 달러의 재량권을 보장받았다.

그 예산은 감독 마음대로 쓸 수 있다.

1,000만 달러어치 고급 요리를 먹어도 된다.

무엇을 하든 스튜디오는 간섭할 수 없다.

류지호는 A-List 감독이 아니다.

따라서 제작비 재량권이 그리 크지 않았다.

이번 영화에서는 200만 달러를 보장 받았다.

류지호는 그 재량권을 아끼고 아꼈다가 꼭 찍고 싶지만 모두가 반대하는 장면을 찍을 때 사용할 계획이다.


“예산을 다 머릿속에 넣어놓고 찍으면서 새삼스럽게.”


남들은 천재라고 칭송하지만.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영화 수십 편 해보면 저절로 된다.

더불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영화를 꿰고 있으면 그렇게 된다.


✻ ✻ ✻


첫 촬영지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내와 외곽의 한적한 구역이다.

10월 중순부터 촬영장비들이 미국에서 공수되었다.

배우들도 속속 오스트리아로 입국했다.

현지 적응과 준비를 마치고,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미국 애틀랜타, Tri-Stellar Studios 등 총 16주 촬영의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마침내 11월 첫 주.

<Remo : The Destroyer> 촬영이 시작되었다.

스파이의 도시 오스트리아.

레모 윌리엄스가 본격적으로 스파이 세계에 데뷔하는 시퀀스다.

실내 씬은 Tri-Stellar Studios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야외 촬영 위주로 진행되었다.

오늘은 50명의 엑스트라가 나오는 장면 위주로 촬영이 계획되어 있어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한 눈 팔 시간도 없고.


“Set!"


조감독 터커 툴리의 목소리가 비엔나의 한 거리에서 울려 퍼졌다.

곧바로 류지호의 사인이 이어졌다.


“레디!”

“롤. 스피드...!”


실제 촬영이 들어가면서 워킹 타이틀을 쓸 이유가 없게 된다.

따라서.


“<Remo : The Destroyer>! 씬 23! 커트 1 테이크 1!”


크랭크인 시점부터는 배급사 트라이-스텔라에서 언론플레이를 시작했다.

경쟁사가 비슷한 포맷으로 영화를 제작하려고 해도, 먼저 시작한 류지호 팀보다 빨리 개봉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영화제작 시작을 알려도 상관없었다.


“액션!”


한적한 도로에 엑스트라들이 간간이 오간다.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걸어가는 워커와 와츠를 스태디캠이 화면에 담으면서 뒷걸음질 쳤다.

앨리나 와츠는 영국의 MI6 정보원이다.

스크립트에 이름 없이 MI6로 표기되어 있다.

처음은 정면의 풀 쇼트(F.S)를 촬영했다.

이어서 바스트 쇼트(B.S)로 한 번 더 찍었다.

걸어가는 그녀의 움직임처럼 카메라가 움직이며 행인 사이로 신문을 펼쳐 얼굴을 가리는 어딘지 수상한 남자의 모습을 담았다.

마지막으로 워커와 와츠의 뒷모습을 스태디캠 쇼트로 촬영을 마무리했다.

편집에서는 정면 풀 쇼트, 바스트 쇼트, 뒷모습 쇼트, 앨리나 와츠의 시점 쇼트(POV), 다시 정면 풀 쇼트의 순서로 붙게 된다.


“좋았어!”


이어 자동차에 카메라맨이 탄 채로 누군가에게 쫒기는 윌리 워커의 트래킹 쇼트를 촬영했다.

보통 이런 장면에서는 카메라 카(Camera Cars)가 동원된다.

또는 리깅 시스템(Rigging System)이 운용되거나.

류지호는 승용차의 흔들리는 승차감을 담고 싶어서 핸드헬드 촬영을 주문했다.

때문에 Camera Car가 아닌 일반 승용차에 오퍼레이터가 직접 탑승해 촬영을 진행했다.


“우스운 표현이지만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해 봐.”


헨드핼드 기법을 촬영하면서 흔들리지 말라니.

말이 안 되는 말이다.

그럼에도 카메라 오퍼레이터는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미국 영화는 기본적으로 카메라 오퍼레이터를 고용하지 않으면 노조 조항에 위배된다.

고용 문제는 조합원의 생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촬영팀 구성은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잡는 오퍼레이터가 있고 개퍼, 즉 조명을 총괄하는 헤드 스태프가 있다.

즉 카메라를 관리하거나 다루는 것은 카메라 오퍼레이터(한국의 촬영기사), Ist AC가 포커스, 카메라를 관리 및 운반하고 2nd AC는 1st AC를 보좌하면서 렌즈 운반, 슬레이트, 카메라 일지 기록, 상황에 따라 필름 로딩 등의 역할을 한다.

특히 Ist AC는 카메라가 반출되면 반납할 때까지 절대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 3인 외에 나머지 촬영팀은 그립과 일렉트릭션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할리우드를 포함한 서구권에서는 촬영팀에 촬영, 조명, 그립이 하나로 구성되어 편성되어 있다.

서구권과 충무로의 큰 차이점 중에 하나가 헤드 스태프로 갈수록 현장에서 할 일이 많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반면에 충무로는 위로 갈수록 앉아서 지시만 내리고 아래서 일하는 사람만 정신없이 뛰어다닌다는 거다.

암튼 미국은 저예산 독립영화를 제외하고 무조건 DP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원칙적으로 촬영감독(DP)이 카메라를 직접 잡을 수 없다.

따라서 미국 촬영감독들이 현장에서 노출계를 들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감독이 원하는 영상을 디자인하고 촬영·조명·그림을 설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촬영감독은 카메라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감과 구도 특히 조명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다.

촬영현장 운영의 책임은 프로덕션 매니저에게 있지만, 현장에서 기술 스태프 전반을 지휘하는 것은 DP의 권한이자 책임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카메라 운영에 일일이 매달릴 시간조차 없을 때가 많기 때문에 굳이 DP가 오퍼레이터가 할 일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카메라를 잡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계약 시에 촬영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잡을 건지 안 잡을 건지 명시하면 된다.

할리우드 상업영화는 무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멀티카메라 시스템이다.

카메라 사용 대수가 늘어나 그에 따른 적정 인원이 고용되었을 경우는 촬영노조 룰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카메라를 잡을 수가 있다.

그에 따라서 <Remo : The Destroyer>에서도 레이먼드 쿤디가 종종 A 카메라를 잡았다.

매 촬영 셋업마다 최소 A·B 두 대의 카메라가 동원되기 때문이다.

오늘 같은 길거리 촬영에서는 최소 다섯 대의 카메라가 동원된다.

허가 받은 시간에 치고 빠지려면 한적한 곳에서 충분히 리허설을 해야 하고, 촬영 현장에서는 여러 위치에서 다양한 앵글로 한두 번 촬영만으로 'OK' 커트를 얻어내야 한다.

그 뿐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스펜서 베어드 2nd Unit 유닛이 완전히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주로 비엔나 도시 풍경이나 각종 인서트 촬영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또한 헬기에 탑승해서 카 체이스 장면을 항공촬영할 예정이다.


‘해외 로케도 재밌네.’


스태프들이 고생하는 것과 달리 류지호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웬만한 신인감독이라면 중압감으로 스트레스가 심할 법 한 상황이다.

이전 삶에서 첫 장편영화 연출을 했던 날이 다시금 떠오를 정도로 류지호는 여유가 있었다.


‘첫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 개천에서 용났네.... 큭.’


이전 삶에서 입봉할 때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마음에 담겼다.

할리우드 데뷔감독이긴 했지만, 이번 영화는 무려 5,000만 달러짜리다.

지금 시점의 환율로 무려 600억 원이다.

제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숫자다.

그런데 류지호는 별로 압박감을 못 느꼈다.


‘이러면 안 되지. 신인의 자세로....!’


신인이 되어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긴장되는 일이다.

하지만 중고신인 류지호 입장에서는....

긴장보다 설렘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 ✻ ✻


다음 날은 비엔나 외곽 지역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어제 촬영한 부분에서 수상한 사람들에게 감시를 받는 레모와 MI6 정보원 스토리와 이어지는 장면이다.

오늘도 액션장면이 포함된 촬영이다.

미니 크레인, 스태디캠, 와이어 액션 장비들이 준비되어 있다.

시 당국으로부터 한 개 블록 전체를 허가 받았다.

배우들의 대기 장소인 트레일러들과 각종 촬영지원 차량들이 도로가에 늘어서 있다.

보험회사에서 파견한 앰뷸런스와 의료진도 대기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촬영장의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했다.

촬영 현장에 세팅되어 있는 모니터 스테이션에는 다른 할리우드 영화와 다른 독특한 점이 눈이 띠었다.

스토리보드와 함께 프리비주얼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가 따로 준비되어 있는 점이다.


“액션!”


수상한 남자들의 추격을 따돌린 레모와 MI6 요원이 골목으로 들어간다.

괴한이 두 사람에게 권총을 겨누며 모습을 드러낸다.

독 안에 든 쥐 신세다.

그런데 레모와 MI6 요원은 긴장한 표정이 아니다.

심지어 MI6 요원을 연기하는 앨리나 와츠가 남자들을 향해 비아냥댄다.


[악당들이 다 모였네]


괴한들은 러시아의 해외정보국(SVR) 소속이다.

앨리나 와츠가 MI6 요원인 걸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악당? 이들도 스파이란 말이에요?]

[KGB죠.]

[해체된 지가 언제인데?]

[......]

[어쨌든 적이란 말이잖아. 그렇지?]


레모 윌리엄스가 나선다.

시그니처 액션이 전개된다.

손가락 관절과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레모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몸을 움직인다.


탕.


러시아 요원 한 명이 방아쇠를 당기지만, 이미 예상한 레모가 총알을 피하고 난 후다.

<매트릭스>의 총알피하기와 다르다.

네오는 발을 땅에 붙이고 허리를 젖히면서 피하지만, 레모 윌리엄스는 무협지의 보법(步法)을 밟는 것처럼 발을 놀리고 몸을 흔들어 상대의 주의력을 흩뜨리는 방식이다.

게다가 신속하게 상대방에게 접근해 권총 슬라이드와 바디를 분리해낸다.

러시아 요원들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총알을 피하는 인간을 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기회를 놓칠 레모 윌리엄스가 아니다.

사부에게 그렇게 배우지도 않았고.

손을 쓰기 시작하면 손속에 사정을 두어서는 안 된다.

레모 윌리엄스가 환상적인 몸놀림으로 러시아 요원들을 제압한다.


[죽이지 말아요.]

[적을 살려주란 말입니까?]

[그들을 죽이면 곤란한 일이 벌어져요.]


다이얼로그 씬은 한 테이크만에 ‘OK'가 났다.

대부분의 시간을 격투 장면을 찍는데 할애했다.

갖가지 와이어액션이 사용되었다.

지금 이 시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와이어액션 활용을 보여주었다.

대부분 류지호의 아이디어다.

와이어액션은 공중부양, 중력을 거스르는 무술동작, 안전장치 등에 기본적으로 사용된다.

2010년대에는 그 쓰임새가 다양하게 변형된다.

가령 리액션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와이어액션으로 체공시간을 늘려서 스턴트맨이 발차기 타격시 강도를 줄일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부상방지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다.

노하우가 없으면 활용을 못한다.

타이밍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Vic & Jay 스턴트팀은 류지호의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행시킬 방법을 몰랐다.

그나마 홍콩에서 영화를 했던 최영웅이 있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태권도 시범단 발차기가 아니고?”

“트릭킹이라는 거야.”


류지호는 최영웅과 헨리 깁슨을 실리콘밸리의 한 도시인 마운틴뷰로 출장보냈다.

그 곳에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트릭킹 크루 웨스트 코스트 마샬 아츠(WCMA)의 본거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식명칭 마샬 아츠 트릭킹(Martial arts Tricking)은 태권도를 비롯해 각종 무술, 기계체조, 비보잉까지 결합시킨, 인간이 맨몸으로 펼칠 수 있는 극한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액션 스포츠다.

동작이 크고 화려해서 2010년대 액션영화의 중요한 콘셉트가 된다.

현재는 할리우드 스턴트맨들이 류지호가 요구하는 트릭킹을 디자인하거나 카메라 앞에서 실행할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홍콩식 와이어액션과 트릭킹을 섞어서 활용하는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다다닥.


마샬 아츠 트릭킹에는 파쿠르 기술도 들어가 있다.

레모 윌리엄스는 벽을 평지처럼 달려가거나 초능력 수준의 체공능력을 보여준다.

파이트 액션과 와이어 액션 모두 프레임수를 조절해 저속촬영했다.

슬로우 모션은 초당 24프레임보다 많은 프레임으로 찍는다.

저속촬영은 반대다.

24프레임 이하로 촬영해서 영사할 경우 피사체의 움직임이 빨라져 운동감이 올라간다.

광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노출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저속 촬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정상보다 느린 속도로 카메라를 구동시키게 되면, 그 만큼 프레임의 노출 시간이 길어져 더 많은 광량을 받아들이는 원리다.

야간에 도시 전경을 촬영할 때 자주 활용되는 기법이다.

암튼 홍콩과 충무로에서는 맨손격투에 관한 저속촬영 프레임수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 있다.

할리우드 맨손격투는 저속촬영은 잘하지 않았다.

홍콩무술영화 경험이 나름 풍부한 최영웅이 나섰다.


“저속촬영을 하게 되면 액션 동작이 좀 더 빨라 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다들 잘 알겁니다. 그렇다고 프레임수를 무턱대고 늘려서는 우스꽝스러운 동작이 나오죠.”


홍콩영화는 격투액션의 긴박한 속도감을 위해 저속촬영 속도에 대한 경험치가 많이 쌓여있다.

방사룡이 찍는 속도감, 홍삼모가 찍는 속도감, 류자양 팀의 속도가 조금씩 다르다.


“단 한 프레임지라도 팀들마다 프레임레이트가 다른 것은 액션의 디자인이 다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서 방사룡 대형은 소도구와 지형지물을 많이 사용하면서 주먹 교환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홍삼모 형은 시원시원한 발차기를 중심에 놓고 격투 시퀀스를 디자인하죠.”


최영웅은 홍콩 액션영화 사례 몇 개를 레퍼런스로 제시했다.

그런 후에 할리우드식 액션 속도와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탄생할 속도감을 테스트 했다.

그 결과 <Remo : The Destroyer>는 격투 시퀀스에서는 22.5P 프레임레이트, 자동차 추격전이나 주인공이 달리는 장면은 21.5~22P 프레임레이트로 결정되었다.

카메라 앵글과 사이즈, 피사체의 움직임에 따라 정상 속도와 저속이 정확하게 계산되어 촬영되어야 한다.

노출 부족이나 피사체의 과격한 움직임으로 인해 프레임레이트가 좀 더 올라갈 수도 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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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The Destroyer. (12) +9 22.12.10 3,783 127 26쪽
361 The Destroyer. (11) +9 22.12.09 3,925 146 28쪽
360 The Destroyer. (10) +9 22.12.09 3,758 124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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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The Destroyer. (8) +14 22.12.08 3,769 132 26쪽
» The Destroyer. (7) +9 22.12.07 3,945 144 25쪽
356 The Destroyer. (6) +10 22.12.07 3,830 13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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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The Destroyer. (2) +7 22.12.05 4,025 12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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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 위험으로 내몰지도 않을 테니 걱정 마.... +8 22.12.02 4,311 137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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