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연재수 :
901 회
조회수 :
3,837,980
추천수 :
118,862
글자수 :
9,980,317

작성
22.11.21 09:05
조회
4,291
추천
151
글자
25쪽

아리랑 겨레.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IMF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경제상황은 순항 중이었다.

적어도 주식시장은 그랬다.

1994년 11월 주가지수는 1,145포인트였다.

1995년 WTO가 공식 출범될 당시에 1,200선 가까이 갔다.

그랬던 주가지수가 IMF와 구제금융을 합의했던 97년 12월에는 400선을 밑돌더니, 2월 말에 접어든 현재는 200선을 향해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단기반등을 노리고 신용으로 주식을 매수한 개인투자자들로서는 주식을 매도하면 깡통계좌가 되기에 팔수도 없다.

외국인들도 일부 손해를 보았다.

50% 주가 하락에 환율 급등(2배)이 겹쳐 이중으로 손실이 난 것이다.

주가지수 하락은 한국증시의 간판 블루칩인 오성전자, 포항제철 또한 피해갈 수 없었다.

작년부터 상장기업들이 부도를 내자 부실 채권 규모가 커졌다.

그 여파로 금융주까지 위험해졌다.

특히 해외 단기자금을 차입해 재벌의 단기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하던 투자금융과 종금사가 가장 먼저 쓰러졌다.

이어 증권사로 여파가 퍼졌다.

업계 8위 고려증권이 회사채 지급보증으로 자금난에 빠져 부도가 났다.

업계 3위 동서증권은 우량 증권회사였다.

그런데 대주주인 극영건설이 매각을 발표하자, 고객들이 예탁금과 보유주식 출금을 요구하는 소동이 벌어져 결국 1997년 12월 12일 문을 닫고 말았다.

그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은행업종의 주가 하락폭이 가장 컸다.

1995년 말 550이던 은행업종지수는 1996년 한 해 동안 36%하락, 1997년 말에는 180포인트로 급락했다.

1998년 2월 현재는 100포인트까지 추락했다.

대표 시중은행이던 제일, 조흥, 상업, 서울 등 '빅5'는 공적자금을 지원받고 합병 또는 매각의 수순을 밟았다.

시중은행보다 주가가 더 높았던 경기, 대동, 동화, 동남 등 지방은행들은 증권시장에서 퇴출되어 사라질 예정이다.

제2 금융기관의 피해는 더욱 심했다.

30개 종금사 중 29개, 36개 증권사 중 11개, 30개 투신사 중 7개 모두 47개의 금융기관이 인가취소, 파산, 합병 등으로 간판을 내리게 되었다.

류지호가 여동생에게 예언(?)했던 금융사도 망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 이러다가 진짜 우리나라 망하는 거 아냐?


여동생의 근심이 류지호에게 전해졌다.


“우리나라 정도 되면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아.”

- 사람들이 망했다는데? 매일 뉴스 보기가 겁나.


뉴스에서는 긍정적인 뉴스보다 부정적인 뉴스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외환위기로 인해 스스로의 삶을 내려놓는 가장들의 사연들이 굳은 의지를 가지고 버티고 있는 국민들마저 흔들었다.


“지금은 많이 힘들지만, 다시 일어설 거야. 아라는 흔들리지 말고 공부에 집중해. 학생이 지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공부뿐이니까.”

- 어떻게 공부가 손에 잡히겠어. 같은 반 친구들 중에 학교에 안 나오는 애들도 있고, 전학 가는 애도 있고.... 암튼 학교 분위기가 말이 아니야.


태어나길 금수저 물고 태어났다면 걱정과 근심이 있을 턱이 없다.

남의 불행이 와 닿지 않기에.

류지호 가족은 벼락부자다.

그렇다고 여느 졸부들처럼 공감능력이 없진 않았다.


- 오빠 회사는 괜찮아?

“끄떡없어.”

-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아서 한국에 온다며?

“응.”

- 집에 들렀다 갈 거지?

“글쎄....”

- 많이 바빠?

“오빠가 영화를 찍잖아.”

- 여름에 촬영한다고 하지 않았어?

“준비할 게 많아서.”


류지호는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을 받았다.

<Remo : The Destroyer> 프리 프로덕션 일정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다.

두 번째 IMF체제를 경험하는 류지호로서는 소위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원래도 정이 없긴 했지만.

류지호로서는 국가적인 행사에 참석해서 차마 박수를 칠 수 없었다.

뭐가 기쁘고 축하할 일이라고.

국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는 상황이라 더 그랬다.

게다가 경제인초청 오찬 간담회도 있단다.

새 대통령실에서는 정중하게 ‘꼭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 달라‘라고 표현했다.

안 붙여도 될 ‘꼭’을 붙인 의도는 뭘까.

초청이 아닌 일방적인 참석 요구와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온 사방에서 한 목소리로 명예로운 일이라며 반드시 참석하라고 조언했다.


- 대통령도 만난다면서?

“악수 한 번 하고, 밥 한 끼 먹고 오는 거야.”

- 그래도 그게 어디야. 대통령은 아무나 만나나?

“암튼,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니까, 너무 튀는 행동은 자제하도록 해.”

- 내가 뭐 어린 앤가. 그런 눈치도 없게.

“어린애는 아니지만 철이 없지.”

- 암튼 잠은 한데서 자지 말고 한남동에서 자. 엄마한테 오빠 좋아하는 음식 많이 준비하라고 말해 놓을 게.

“어머니가 식모냐?”

- 몰라 안 들려. 그럼 집에서 봐~ 이왕이면 새 언니 좀 데려오고~


류아라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픽.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실소를 흘러나왔다.

어째 여동생이 점점 어머니를 닮아가는 것 같았다.

류지호는 1층으로 내려 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맥주를 홀짝이며 마당으로 나갔다.


“4조....”


이렇게 저렇게 조달한 자금의 총액이 20억 달러다.

환율 상승으로 인해 무려 두 배가 뻥튀기가 됐다.

(주)가온과 가온GP투자신탁은 은행뿐 아니라 대기업 온갖 곳에서 걸려오는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달러가 넘쳐나는 두 회사를 주거래은행으로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은행이 줄을 섰다.

류지호는 오래전부터 외환위기에도 선방한 은행을 선정해서 주거래은행으로 삼았다.

특별히 교체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좋은 일만 시켜줄 수는 없다.

주거래은행은 최고 금리를 무조건 맞춰줄 테니 절대 다른 은행으로 옮기지 말아달라며 회장이 직접 미국으로 전화해 간청했다.

20억 달러의 일부는 달러당 1,993원으로 환전하고, 또 일부는 은행이 추천하는 기업에 넘기기로 하는 등 주거래은행과 보조를 맞췄다.

이번에 빚을 지어놓았으니 추후 기업대출을 받을 때 신경을 써 줄 것이다.

IMF로부터 긴급자금이 수혈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달러를 필요로 하는 기업은 차고 넘쳤다.

(주)가온과 가온GP투자신탁은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사실 4조 정도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욕심이란 게 한도 끝도 없어 그런 것인지.

혹은 실제 한국의 경제규모가 류지호가 막연히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큰 것인지.

20억 달러가 호수에 물 한 바가지 뜬 수준처럼 느껴졌다.

물론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한다면 4조란 자금으로 뭐든지 먹어치울 수가 있다.

어쨌든 전략기획실에서 올라오는 리스트를 보고 있으면.


“50억 달러 준비했으면 재계 3위도 가능했겠네.”


그 정도로 사들이고 싶은 기업이나 부동산이 넘쳐났다.

사실 못할 것도 없다.

JHO Company가 미국에서 회사채도 발행하고, 금융권에서 대출도 받고, 헤지펀드를 개설해 자금을 모았다면 충분히 가능한 규모이긴 했다.

분명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 계획하고 꿈꿨던 것보다는 더 많은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후우.


별안간 류지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에 분노와 함께 답답함이 섞여 있었다.

IMF는 한국에 긴급 자금을 지원해주는 대신, 환율자율화와 금리자율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그들의 요구에 따라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도 철폐됐다.

원 달러 환율이 1998년 1월 2배 이상 급등했고, 시장의 실세금리도 30%에 이르러 금융시장은 마비상태에 빠졌다.

30%의 금리로 자금을 차입하여 이익을 낼 수 있는 기업이 있을 리가 없다.

시간이 흘러도 공황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종합주가지수, 환율, 부동산 시장 등이 계속해서 수직 낙하운동을 하고 있다.

투자한도가 철폐되자 외국인들이 초토화된 한국 증시에서 우량주를 주워 담았다.

한국정부 관료나 기관투자자, 개인투자자들은 대부분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

자신들 앞가림하기 바빴으니까.

소수만 위기가 기회임을 알고 과감하게 주식에 투자했다.

추후 그들은 부자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98년 한 해 집값은 평균 12.4%, 전세금은 18% 넘게 떨어진다.

부동산 가격 폭락은 담보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이 추가 담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벌어지게 된다.

서울 반포동 미도아파트(34평)가 1.6억 원에 팔릴 정도다.

부동산 폭락이 어떠한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IMF 구제금융에 대한 불안감이 나라 전체를 엄습했다.

국민들 사이에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새마을운동단체 가운데 한 곳에서 '애국가락지 모으기 운동‘을 시작했다.

공중파 방송사가 이를 모방해 본격적인 캠페인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금 모으기 운동’이다.

물론 우리민족은 나라에 환란이 닥치면 뭐라도 한 손 보태려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긴 했다.

그 중에 1907년 2월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도 있다.

오죽하면 ‘국난극복‘이 특기인 민족이란 말까지 만들어졌을까.


‘평화의 댐 모금운동 같이 대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못된 족속도 있었지만.....’


어쨌든 국민들은 자기 집에 있는 금붙이를 나라 살림에 보태 쓰라고 기증하기 시작했고, 3백만 명 이상이 참여한 이 금 모으기 운동으로 무려 225.79t의 금이 모였다.

이 금의 사용을 두고 여러 말이 나오는 것과 상관없이, 국내외적으로 IMF 외환위기의 극복 원동력으로 금 모으기 운동이 꼽힐 정도로 인상적인 움직임이긴 했다.

외신에서도 이 캠페인을 주목해서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

금 모으기 운동의 여파가 어느 정도였냐 하면, 올 초 국제 금값이 1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정도였다.

100톤 가까이 한꺼번에 시장에 풀렸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정말 미련하고 멍청하고 바보 같은 짓이었지.’


한국 재벌들의 나부터 먼저 살고 보자는 이기심 덕분에 GARAM Invest와 G&P가 헐값에 안전자산인 금을 꽤나 사들일 수 있었지만.


✻ ✻ ✻


한국의 대통령 취임식에 스티븐 아들러도 초청받았다.


“난 이번에 못 가. 이미 스탠퍼드 아태재단인가에 말 해두었어.”


류지호는 스티븐 아들러와 함께 한국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혼자서 한국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초청자 중에서 마이키 잭슨은 친분이 전혀 없었고, 암투병 중인 리사 테일러는 갑자기 건강상태가 나빠져서 한국행이 취소됐다.

마이키 잭슨이 그녀의 친서를 직접 한국의 신임 대통령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미국에서 초청된 인원만 대략 70여 명이다.

미 행정부 요인과 상·하원 의원 중에는 류지호와 친분이 있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들은 전세기를 이용해 평택기지로 들어갈 예정이다.

결국 류지호는 수행원 몇 명만 데리고 조용히 한국으로 들어왔다.


2월 25일.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됐다.

IMF 체제임을 감안해 비교적 검소하게 준비했다.

검소한 행사 규모와 상관없이 외빈과 각계 인사만 4만 5천명이 참석했다.

약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취임식은 신임 대통령의 선서가 끝나고 비둘기 1천여 마리가 날아올랐다.

예포가 21발 발사되고 기념식수까지 마친 후에 모든 공식 행사가 끝이 났다.

류지호는 취임식 내내 박수나 치고 신임 대통령과 악수 한 번 나누고 국회의사당을 떠났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릴 예정인 만찬까지 시간이 조금 떴다.

과거 가온GP투자신탁 본사였고, 현재는 영업소로 쓰이고 있는 여의도 사무실을 들러 직원들을 격려했다.

가온 계열 금융사 투자팀은 비축하고 있던 자금을 공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선별해 두었던 폭락한 주가들을 모으느라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다.

거의 모든 한국주식종목의 주가가 완전 폭삭 주저앉았다.

아무거나 사들여도 될 것만 같았다.

일단은 우량주 중심으로 주식을 매입했다.


‘주식이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할 것 같았으면 주식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어 있을 테지.’


한국 주식시장의 주가폭락은 외국인들의 국내 우량주 매수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아남그룹은 외국인 지분율이 29.43%로 30%에 육박했고, 광성그룹 22.13%, 오성그룹 18.96%, 신진지프그룹은 18.87%에 달했다.

특히 투자한도 확대 이후 외국인들이 대유그룹과 오성그룹의 주식을 집중 매수했다.

외국인 투자한도가 26%에서 50%로 확대된 작년 12월 11일부터 2월까지 외국인들은 8,701만주의 국내주식을 추가로 사들였다.

외국인의 국내 전체 상장주식에 대한 지분율이 같은 기간 동안 8.59%에서 9.99%로 1.4%포인트 확대됐다.

특히 대유그룹 관련 3,848만 8,327주, 오성그룹 관련 3,143만1,805주를 확보해 2개 그룹 주식만 6,992만132주나 사들였다.

이에 따라 외국인들이 보유한 총 대유그룹주는 1억1,059만 여주로 30대 그룹 중 가장 많았고, 오성그룹주도 8,129만 주에 달하게 됐다.

그러나 경일자동차그룹 주식의 경우 외국인들이 한도확대 이후 오히려 많이 팔아 지분율이 8.2%에서 8.02%로 낮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JHO와 가온에서 대유그룹 주식은 얼마나 확보하고 있습니까?”

“JHO는 저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가온GP는 대유건설, 대유증권 중심으로 해서 지분율을 유의미하게 늘렸습니다.”


이전 삶에서 대유그룹의 워크아웃과 해체는 충격적인 대사건이었다.

영화만 파고 있던 류지호조차 그 사연을 꿰고 있을 정도로.


“정확하진 않지만, 1~2년 내에 (주)대유가 3개로 분리될 겁니다. 올해 안에는 가온GP가 오너 일가 외에 내국인 중에서는 가장 높은 지분율을 보유하길 바랍니다.”


원래 역사에서는 워크아웃으로 (주)대유지스틱스가 먼저 분사되었다.

이후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유가 3개사로 재탄생했다.

청산을 위한 (주)대유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유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유건설로 나뉘었다.

류지호는 (주)대유인터내셔널과 (주)대유건설 및 대유증권 세 사업부문을 노리고 있다.

(주)대유인터내셔널에 대유그룹의 모태사업인 무역은 물론 백화점, 미디어 등 사업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백화점과 호텔 사업 인수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영상 및 케이블TV 사업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대유인터내셔널을 인수해야 했다.

대유증권은 가온GP투자신탁회사를 투자은행으로 키우기 위해, 대유건설은 한국에 테마파크 및 각종 개발사업을 위한 포석으로 인수를 준비하고 있다.

IMF 빅세일이 아니면 좀처럼 매입을 생각지도 못했을 서울 중심가 초고가 빌딩을 비롯해서 전국의 알짜 부동산에 대해서도 확보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 외에도 가온GP투자신탁의 순매수 상위종목에 오성전자, 한국전력, 금성전자, 포항제철, 선경텔레콤, 국민은행, 오성화재 등이 포함되었다.

우량주를 매입하기 위해 외국인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꽤 많은 주식을 저가에 확보할 수 있었다.


“월가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흑인 래퍼가 ‘대박을 내려면 마약을 팔거나 농구를 하라’는 말에 따라 주식이라는 마약을 팔기 위해 주식 트레이더가 된다는 말이 있지.”


그들은 부지런히 일해 돈을 만들어낸다.

다만 탐욕이 그들을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는다.


“탐욕은 선한 거야. 나쁘게 볼 거 없어. 탐욕은 올바를 뿐 아니라 제대로 먹힌다고. 탐욕은 진화적 정신의 핵심을 명확히 해주고 그것을 관통하면서 또 그 정신을 담아낸단 말이야. 인생, 돈, 사랑, 지식, 무엇에 관한 것이든 탐욕은 인류를 보다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줬어.”


류지호는 매튜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논쟁을 벌이고 싶지도 않았다.


“형은 괜찮아?”

“뭐가?”

“뭐겠어?”


매튜가 류지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동생아, 프로 포커플레이어는 돈을 따는 것에 목표를 두지 않아. 오로지 게임의 승패만 신경 쓰지. 난 돈을 따려고 일을 하고 있지 않단다. 난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야.”

“스트레스 관리 잘 해. 예전으로 돌아가지 말고.”

“너나 잘 해. 영화 찍을 때마다 예민해지는 주제에.”

“내가 뭘 얼마나 예민해진다고?”

“너도 이 형처럼 영화가 게임이라고 생각하잖아. 먹히냐 먹어치우냐.”

“형 같은 줄 알아!”

“걱정마라. 난 예전에 나도 아니고, 그 이전의 나도 아니니까.”

"다시 태어났다는 걸 어렵게도 말한다. 뉴욕으로 언제 돌아갈 생각이야?”

“몰라.”

“러시아는?”

“괜히 GARAM 분석가와 트레이더들이 연봉을 많이 받는 게 아니란다.”

“금융 파트는 형이 알아서 해.”


류지호가 몸을 일으켰다.


“벌써 가?”

“청와대 가서 얼굴 비춰야 돼.”

“가서 인맥 관리 잘 하고.”


류지호는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재계인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업규모는 미국 기업이 훨씬 크다.

문화예술계 인사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활동한 것은 단편영화 두 편밖에 없지만.

외빈이라고 하기에는 국적이 한국인이고, 내빈이라고 하기에는 외국에서 주로 활약하고 있다.

청와대 만찬장에서도 애매한 위치였다.

친한 사람들이 미국에서 초청받아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처음으로 국내 경제단체장과 주요 재벌들과 안면을 텄다.

재계는 이미 신임대통령과 지난달에 국회 귀빈식당에서 면담을 했다.

IMF 외환위기였던 만큼 경제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 논의가 이뤄졌다.

이들은 IMF 외환위기 조기 극복을 위해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총수 개인 재산의 경영 투입, 비주력 계열사와 부동산·주식 처분을 통한 재무구조개선 등 ‘재벌개혁’ 관련 5개 조항에 합의한 바 있다.

이 만찬장의 주인공은 신임대통령이다.

류지호는 인사하고 밥만 먹었다.

마이키 잭슨이 참석했으면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했는데, 아쉽지만 만찬장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이키 잭슨이 초대했습니다.”

“언제요?”

“문화예술인 간담회 끝나고 곧바로 만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서라벌호텔에 묶고 있던가요?”

“예.”

“일정 조정하세요.”


청와대 영빈관 만찬에 참석했던 류지호가 신촌으로 향했다.

그레이스 백화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매장을 둘러보았다.

지난 1992년에 세워져 신촌 상권을 책임졌던 그레이스백화점은 신촌로터리의 랜드마크다.

작년 매출액이 3,300억 원,

국내 백화점 중 8위에 랭크될 정도 영업실적이 좋은 백화점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주주 간 불화설과 자금압박설에 시달렸다.

시공사였던 경일건설까지 공사대금을 모두 지불해달라는 압박을 가했다.

내외부적으로 시달리던 차에 (주)가온의 백화점 사업팀이 인수의사를 타진했다.

경일건설 측에서는 백화점을 운영하는 금강개발의 자회사인 경일쇼핑을 통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공개입찰에서 가온 백화점이 경일쇼핑보다 1억 원을 더 써냄으로써 그레이스백화점을 차지하게 됐다.

총 인수금액은 2,295억 원.

가온은 그레이스백화점의 소유주인 양장물산의 부채 2,295억 원을 떠안기로 했다.

실제 영업양수금액은 515억 원이었다.

(주)가온으로써는 코어백화점 인수에 이은 두 번째 백화점 인수였다.


“브랜드들과 논의는 하고 있습니까?”


전원 고용승계로 직장을 잃지 않게 된 백화점 총매니저가 즉각 대답했다.


“네. 의장님.”

“리모델링 기간 동안 영업을 하지 못하면 당장 생계에 지장을 받지 않습니까?”

“직원들의 경우 재교육 및 코아백화점과 인력재배치를 진행하게 됩니다. 일부 입점 상인과 브랜드는 성의를 다해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백화점 사업팀과 긴밀히 협조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리모델링을 통해 재탄생할 그레이스백화점에는 12개관을 갖춘 G.O.M 신촌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백설그룹 산하 멀티미디어 사업부가 올해 말 강변 테크노에 개장하는 멀티플렉스에 비해 강북 진출은 1~2년 늦게 되었지만, 신촌 상권이라는 중요한 거점을 하나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오성그룹 개혁안에 영화 사업도 들어있다고요?”


오동석이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달리 눈치 백단의 오성이겠어요?”


지난 달 오성그룹은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멀티플렉스 사업 중단 및 미디어사업 투자 방침을 발표했다.

시기도 나름 절묘했다.

정확하게 대통령 취임식보다 한 달 전에 발표했다.


‘대유와 달리 이렇듯 발 빠르게 죽는 시늉을 해서 국민의 정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


류지호는 굳이 재벌 흥망성쇠를 파고 들 생각은 없다.

어쨌든 오성영상사업단이 투자한 초호화 뮤지컬 ‘그리스’가 흥행에 실패하고, 본사 강당을 개조해 최신 시설로 만들었던 극장마저도 폐장해 버리게 된다.

업계에서는 사업 철수가 ‘그리스’ 흥행실패와 수년 간 한국영화 투자에서 재미를 보지 못해서라는 이유를 믿지 않았다.

오성그룹이 겨우 그 정도 이유로 미래의 유망 산업인 영화 사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성그룹은 영상사업단 해체에 들어갔다.

오성-백설식품 간의 계열분리가 본격화되면서, 오성이 백설과의 선긋기에 나선 것도 컸다.


“표면적으로 형제 가문 간 중복 사업을 피하겠다는 논리를 폈지만...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부적으로 ‘국민(영화인들)에게 욕먹고 있는’ 멀티플렉스 및 영화 산업에서 발을 빼겠다는 속셈이라는 것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재벌이 2,000억 시장까지 먹어치우는 것은 너무하긴 하죠.”

“결국 오성영상사업단이 추진하던 사업 대부분을 백설그룹 멀티미디어가 가져가게 될 것 같습니다.”

“캐치온도?”

“예. 웃긴 게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한국영화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는 겁니다.”

“생색내기겠지.”

“내년 한 해만 180억 원을 투자한답니다.”


2년 간 오성영상사업단이 한국영화 15편에 140억 원을 투자했던 것과 비교하면 통 큰 투자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올해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40편 정도까지 급감할 우려가 있는 상황이어서 우리영화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투자를 확대했다고 밝힘으로써 마치 한국영화를 걱정하고 발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시늉을 했다.


“풍국은 어떻게 하고 있죠?”

“친분이 있는 일본 기업을 끌어들여 극장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광성은 계열사 백화점에 멀티플렉스를 개장하겠지요?”

“확실합니다.”


IMF 외환위기와 상관없이 충무로가 본격적적으로 개편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웃긴 일이 벌어진다.

2월 28일 <타이타닉>이 전국 78개 극장에서 동시 개봉하게 된다.


- IMF 구제금융 체제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웬 말이냐!


시민단체와 극장연합회가 미국산 영화 안 보기 운동을 전개한다.

연일 G.O.M 강남점 앞에서 시민단체와 극장연합회(에서 동원한) 회원들이 시위를 벌인다.

연일 신문에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떡하니 달린다.


[억만장자 영화 사업가의 두 얼굴.]


류지호를 콕 찍어 저격하는 칼럼이다.

주된 내용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한국영화 시장 초토화.

미국에서는 수천억 원을 투자해 영화를 제작하면서 정작 한국영화계에 투자하는 금액은 실망스럽다는 것도 꼬집는다.


[오성, 대유 등 대기업이 자본력이라는 덩치를 앞세워 할리우드라는 외풍에 대한 바람막이와 국내 중소 영화사에 대한 자금줄 역할을 했고, 특히 영화산업을 체계화한 공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런데 할리우드에서 ‘영화신동‘라고 추앙받는 영화감독 겸 제작자 류지호는 말만 그럴 듯하게 하면서도 사실상 한국영화계 장악을 조용히 실현해 나가고 있다.]


오성그룹의 한국영화 투자 계획과 비교하면서 류지호를 깎아내리는 칼럼이다.

오성 계열의 언론사가 먼저 이런 논조를 핀다.

이후 진보 언론 한 곳에서도 WaW 픽처스가 한국영화를 집어 삼킬 것이란 논조의 칼럼을 내보낸다.

전략기획실과 CHAN 매니지먼트는 이 같은 분위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작가의말

습작에서는 대우그룹에서 케이블 채널만 인수했지만, 이번 리메이크에서는 판을 좀 키울 생각입니다. 시공순위 2~3위를 다툴 정도의 건설사를 인수하면 주인공이 해외에서 벌이는 개발사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리메이크에서 주인공이 개발사업을 좀 많이 벌입니다. 디X니는 어찌 할 수 없다고 해도 유니X셜은 뛰어넘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새로운 한 주 활기차게 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4 왕족만이 왕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10 22.12.12 4,249 147 27쪽
363 The Destroyer. (13) +7 22.12.10 4,149 145 26쪽
362 The Destroyer. (12) +9 22.12.10 3,783 127 26쪽
361 The Destroyer. (11) +9 22.12.09 3,926 146 28쪽
360 The Destroyer. (10) +9 22.12.09 3,758 124 27쪽
359 The Destroyer. (9) +9 22.12.08 3,932 143 28쪽
358 The Destroyer. (8) +14 22.12.08 3,769 132 26쪽
357 The Destroyer. (7) +9 22.12.07 3,945 144 25쪽
356 The Destroyer. (6) +10 22.12.07 3,830 131 25쪽
355 The Destroyer. (5) +9 22.12.06 4,094 141 26쪽
354 The Destroyer. (4) +8 22.12.06 3,904 132 27쪽
353 The Destroyer. (3) +8 22.12.05 4,006 142 21쪽
352 The Destroyer. (2) +7 22.12.05 4,025 121 25쪽
351 The Destroyer. (1) +12 22.12.03 4,349 146 26쪽
350 위험으로 내몰지도 않을 테니 걱정 마.... +8 22.12.02 4,311 137 26쪽
349 WaW는 아주 살판났네! +8 22.12.01 4,429 141 28쪽
348 나는 세계의 왕이다! (3) +8 22.11.30 4,230 145 22쪽
347 나는 세계의 왕이다! (2) +11 22.11.29 4,230 160 24쪽
346 나는 세계의 왕이다! (1) +13 22.11.28 4,323 153 24쪽
345 구차하지 맙시다. (3) +12 22.11.26 4,344 141 30쪽
344 구차하지 맙시다. (2) +10 22.11.25 4,274 132 26쪽
343 구차하지 맙시다. (1) +8 22.11.24 4,272 135 25쪽
342 아리랑 겨레. (3) +11 22.11.23 4,256 131 24쪽
341 아리랑 겨레. (2) +4 22.11.22 4,165 149 22쪽
» 아리랑 겨레. (1) +11 22.11.21 4,292 151 25쪽
339 일단 눈앞에 닥친 것부터..... +14 22.11.19 4,422 145 33쪽
338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6 22.11.18 4,271 147 26쪽
337 페가수스는 계속해서 날아오를 겁니다! (2) +6 22.11.17 4,258 147 28쪽
336 페가수스는 계속해서 날아오를 겁니다! (1) +13 22.11.16 4,332 150 24쪽
335 스파이영화의 전통을 망치지 않기를..... +11 22.11.15 4,338 152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