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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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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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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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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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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아리랑 겨레.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대통령이 인자한 옆집 할아버지 같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난 남의 이야기 듣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랍니다. 하하.”


이미 깔아준 멍석이다.

류지호는 그간 품고 있었던 생각을 거침없이 꺼냈다.


“아시다시피 금을 팔아 미국달러를 사면 외환 보유고가 늘어날 생각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렇게 모인 금의 일부는 이미 해외시장에 팔려나갔습니다. 1월 한 달 동안 32억 달러의 무역 흑자 중 10억 5천만 달러가 금 수출에 의한 것이란 보고서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국민들에게 혹은 대외적으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그런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달에 대규모로 금을 시장에 팔아서 시세가 말이 아니게 하락했습니다.”


덕분에 JHO와 가온은 헐값에 금을 꽤 많이 확보했다.


“남은 것만이라도 골드바로 만들어 한국은행에 보관하고 이를 담보로 외국은행에서 차입을 하는 것을 검토해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대통령님만 허락하신다면 월가의 대형 금융사와 금을 담보로 주선을 해볼 용의도 있습니다.”

“인수위의 경제자문이 내게 그런 비슷한 건의를 한 적이 있었더랬지요.”

“.....”

“불행하게도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제더이다.”


신임 대통령이 금 모으기로 모아진 금을 외환보유고로 활용하려고 보니, 기업들이 자기들 빚 갚는 것에 급급해 급하게 수출해버렸다.

사실상 남은 금이 얼마 없었다.

한국은행은 모인 금 가운데 겨우 3t만을 확보했다.

이 시점에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은 대략 13t에 불과했다.

금 모으기로 모은 227t의 금을 모두 한국은행에 집중해서 외환보유고로 전용했으면 좋았을 텐데.

특히나 금은 안전자산으로 유사시 최종결제수단이 된다.

외환위기와 같은 비상사태에서 더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IMF 외환위기가 진정된 다음 금 시세는 급등하였으니, 이때 류지호의 말처럼 일이 진행되었다면 한국의 국익에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임이 자명하다.

게다가 국제 금시장의 시세를 교란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금이 한순간에 시장에 유통되면서 시장 교란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당연히 시세 폭락으로 국제적인 비판에 직면했다.

한국 기업들 역시 시세 폭락으로 제값 받고 팔지 못했다.

해외에서는 한국의 일부 재벌종합상사의 호구 짓을 비웃고 있다.

미국과 중국만 신난 건 비밀도 아니다.

한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금을 두 국가가 은밀하게 사들였으니까.

이미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될 즈음 전문가들이 이런 상황을 예견한 바 있다.

신문칼럼이나 강연에서 여러 차례 경고하기도 했다.

IMF 구제금융 상황과 경제회복에만 매몰되어 미처 살피지 못해서 그렇지.

국민들이 모은 금이란 먹음직스러운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긴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던 것.


“저희 어머니도 저와 제 동생들 돌반지를 금 모으기 운동에 내셨다고 합니다.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 모아진 금이 좀 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올바르게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에 감히 한 말씀드렸습니다.”


류지호는 더 자세한 사항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한 말도 한도를 넘은 것처럼 여겨졌다.

이 이상 나가면 대통령의 심기를 상하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나에겐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혹시 젊은 혈기로 대통령님의 심기만 불편하게 해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앞으로도 종종 나와 정부를 향해 직언을 해주길 기대할게요.”


그럴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류지호는 내심 단단히 결심했다.


‘오지랖도 한계가 있지. 이젠 대통령과 정부 일에까지 오지랖이라니.’


류지호는 청와대를 빠져나오면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내 감정회로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왜 가끔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는 거지?’


과거 회귀로 인한 부작용인 것인지.

아니면 비루했던 지난 삶과 달리 부와 권력이 생겨 겁이 없어진 건지.

지나친 자신감에서 오는 오만일 수도 있다.


후우. 후우웁.


류지호는 달리는 차 안에서 단전호흡을 해보았다.

그간 정신없이 바빴다는 이유로 호흡을 건성으로 해서 정신과 마음 모두가 붕 떠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김태평 대통령과의 인연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앞으로 자주 만날 수밖에 없다.

류지호가 소유한 (주)가온이 얼마 안 가서 대기업이 될 테니까.


✻ ✻ ✻


청와대를 나선 류지호가 서라벌호텔로 향했다.

류지호는 할리우드에서 스타들의 스타라는 톰 메이포더와 식사도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배우들을 여럿 만나고 실제 친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마이키 잭슨은 류지호에게 남다르게 다가왔다.

스타들의 스타니까.

‘황제‘라는 칭호가 허락된 유일한 팝가수였으니까.


두근.


호흡으로 진정된 가슴이 약간 요동쳤다.

방한 자체가 워낙 관심이 많아서 인지, 수백 명이 매일 마이키 잭슨을 보겠다고 호텔을 찾아 북적거렸다.

한국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일본에서까지 날아와 호텔과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팬들 일부는 호텔 객실까지 잡고 이제나저제나 마이키 잭슨과 마주치길 학수고대했다.

안타깝게도 철통같은 보안과 경호로 마이키 잭슨의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대인기피증이라고 알려질 정도로 사람과 대면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마이키 잭슨이다.

그런 이가 류지호를 초청했다.


“어서 와요.”


마이키 잭슨은 풀 메이크업 세팅을 한 채 류지호를 맞이했다.


“만나서 영광이에요. 잭슨씨. 지호 류에요.”

“나도 반가워요. 지호.”


특유의 미성이 류지호의 귀를 간질였다.


“내 친구들은 나를 Jay라고 불러요.”

“미키라고 편하게 불러요.”

“예. 미키.”

“Jay를 만나고 싶었어요. 이렇게 한국에서 만나게 되네요.”

“웨스트우드로 연락했다면 더 일찍 만남이 이루어졌을 텐데요.”

“하하. 지금이라도 만났잖아요.”

“점심식사는....?”

“난 한국 요리 중 비빔밥을 가장 좋아해요.”

“하하. 그러셨지요.”


마이키 잭슨이 방한하면 주로 비빔밥을 먹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서라벌호텔 한식당 메뉴에 비빔밥은 없었다.

마이키 잭슨이 머무는 동안 비빔밥이 메뉴가 되었으며 4개월 정도 한정판매하기도 한다.

넓은 스위트 룸 곳곳에 풍선 장식이 되어 있다.

한쪽 방에는 아이들이 전자오락기에서 오락에 열중이다.


"아이들과 동화적 분위기를 좋아해 다양한 색의 풍선을 방안 가득 달아달라고 호텔에 부탁했어요. 그들은 친절하게도 아이들을 위해 전자게임기도 준비해 줬어요. 아마 미국으로 돌아갈 때 전자게임기를 몇 대 사가게 되지 않을까 해요.“


전 세계에서 가장 억울한 연예인.

가짜 아들이 나타나질 않나.

사고 때문에 생긴 백반증에 성형중독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아이들에게 베푼 선행이 아동성도착자라는 매도로 돌아오고.

아이들을 위해 가게 물건을 통째로 구입하면 개념 없는 과소비라고 지탄받고.

뭘 해도 비난을 만들어내는 미디어로 인해 바람 잘 날 없는 생활이다.

비록 스타 중에 스타.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팝의 황제라고 불리지만.

결코 행복하지만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모두가 높이 올라가 있는 사람을 추락을 시켜야 직성이 풀리고 그것에서 희열을 느끼나 봐요.“


자조적인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매우 담담하게 들리는 건 류지호의 착각일까.

마이키 잭슨은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나도 아동성애자라고 오해 받고 있어요.”


가깝게 지내는 배런 렌프로와 부적절한 관계라든가.

청소년센터의 아이들과 자주 접촉하는 걸 두고 황색언론에서 소설을 싸질렀다.

그런데다가 몇 년간 여자와 데이트하고 있는 모습이 외부에 알려진 바도 없고.

때문에 아동성애자거나 최소 동성애자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물론 비서진이 나서서 그런 루머를 퍼트린 사람들에게 고소를 먹였다.

Pinkerton Corp.의 탐정능력을 총동원해 황색언론사 한곳을 탈탈 털어서 끝내 폐업시켰다.

동성애자 루머를 불식시키기 위해 돈 주고 여자를 안아도 문제다.

출연을 미끼로 여배우를 침대로 끌어들이는 것도 당연히 안 된다.

이래저래 고달픈 삶인 것은 류지호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나를 화내게 하는 것은 내가 나쁜 사람으로 찍혔다는 사실이 아니에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내 노래와 춤에 감동하지 않을 거란 것이 날 힘들게 하지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 모두가 날 미워하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잡지에서 읽었다고 해서 TV에서 보았다고 해서 그곳에 실린 내용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들은 루머를 믿었다.

아주 조금의 사실에 조작이 교묘하게 섞인 이야기들임에도.

대중들이 바보여서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믿고 싶어 하는 걸 수도 있다.

왜냐하면 루머의 주인공은 유명인이거나 부자이거나 자신들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들이니까.


‘용기를 잃지 말아요. 포기도 하지도 말아요.’


류지호는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Jay도 항상 조심해요. 높이 올라간 사람은 추락할 일만 남았다는 걸 알아야 해요.”

“be careful of what you do.”


류지호가 ‘Billie Jean’의 가사 한 대목으로 응수했다.

행동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마이키 잭슨이 웃으며 화답했다.


“think twice.”


류지호는 다시 한 번 ‘Billie Jean’의 가사로 호응했다.


“So take my strong advice, just remember to always think twice.”


마이키 잭슨 역시 호응했다.


“Do think twice.”


‘Billie Jean’은 마이키 잭슨이 잭슨 파이브 시절 경험한 것을 가사와 춤으로 표현한 노래다.

단순히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이상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짓이 진실이 되고, 거짓만을 믿는 풍조에 대한 은유가 담긴 노래다.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언제든 말해줘요. 당신의 빅팬이자 지지자로서 돕고 싶어요.”

“고마워요.”


마이키 잭슨은 엄청난 부자다.

그가 막대한 돈을 써서 정보를 얻고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자꾸 궁지에 몰리는 것은, 언론의 여론 조정도 한 몫 하고 있을 터.

법정에서 진실로 승리할 순 있다.

여론과 대중에게는 이길 수 없다.

그것이 연예인의 숙명이다.

무엇이 진실이든, 그것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대중들은 자신이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취하니까.


“아이들과 소수인종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잘 알아요. Jay는 좋은 사람이에요.”

“좋은 녀석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긴 해요. 하하.”


오랜 시간 마이키 잭슨과 대화를 나눌 순 없었다.

류지호에게 허락된 시간은 40분 남짓.

그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소외된 아동들을 위한 기부 프로그램에 대해 주로 대화를 나눴다.

좀 더 많은 부분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류지호는 짧은 만남의 아쉬움을 안고 서라벌호텔을 나섰다.


황제에게 경의를.

전설에게 경배를.


오글거리는 말이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팝의 황제 마이키 잭슨에게 속으로 경의를 표했다.


❉ ❉ ❉


최근까지 온 나라가 금 모으기 운동으로 떠들썩했다.

전국 누계 약 351만 명이 참여하며 IMF 극복에 대한 국민적 단합을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자금을 빼던 외국투자자들 사이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국가의 위기에 힘을 모으는 것을 보니, 한국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군.”


정부와 국민이 단합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한국의 모습이 인상적이라 반응이 나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금 모으기 운동 초기에는.


"저게 무슨 시장원리냐?"

“자유시장경제, 자본주의 나라가 맞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나라다."


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이제는 분위기가 급변했다.


“한국은 빌린 돈을 반드시 갚으려고 하는 나라라는 인식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서서히 힘을 얻고 있습니다. 당장 신뢰회복은 어렵겠지만, 좋은 신호를 국제사회에 보낸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가온GP투자신탁의 노아 시거가 국제동향을 설명했다.


“게다가 한국은 지난해 12월 경상수지가 큰 폭의 흑자로 돌아서고 IMF의 권고도 적극 받아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자본은 떼일 염려가 없는 쪽으로, 이자율이 높은 곳으로 흘러드는 게 생리입니다. 최근 홍콩에서 단기투기성 자금이 서울증시로 흘러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노아 시거는 일부 우려도 있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봤다.

상황변화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이 투기성 자금이기 때문이다.


“민간부문의 해외차입에 대해 한국정부가 보증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민간에 대해 외면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와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우 경제를 떠받치고 있던 화교자본이 홍콩과 싱가포르 쪽으로 옮겨가면서 외환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믿고 있던 미국과 일본이 가장 먼저 자금을 한국에서 뺐다.


“일부 금융기관의 잘못된 투자로 태국·인도네시아에 100억 달러 이상이 물려 있다면서요?”

“한국으로서는 한 푼의 외화도 아쉬운 마당에 거기 물린 자금만큼 이중의 부담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원하지 않는 사이에 아시아 외환위기의 최후 보루가 된 셈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끝까지 버티던 인도네시아도 백기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적 자본흐름이 한국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바뀔 조짐을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 이면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었다.

재벌그룹 종합상사들이 그 장본인들이다.

류지호가 대통령에게 고자질(?)하려고 했던 바로 그 문제다.

재벌 소유 종합상사가 수출한 막대한 금이 국제시세를 훨씬 밑도는 헐값에 팔렸다.

워낙 시세가 폭락해서 국내 금 유통업 종사자의 절반이 실업자 신세가 됐다.

1월 달 수출증가분의 대부분을 금 수출액이 차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부진한 수출 실적을 금 모으기 운동이 메운 것이다.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한 직후, 수출업무를 맡은 재벌그룹 7대 종합상사들이 앞 다퉈 한꺼번에 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공급량이 워낙 많아 값이 떨어질 수밖에요. 심지어 팔려나간 금 중의 상당수가 국제금평가기관인 LBMA 등을 통해 국제공인을 받지도 않았답니다.”


서둘러 파는 바람에 국제시세보다도 낮은 헐값에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

이중으로 손해를 본 것이다.

물론 GARAM Invest과 가온GP신탁투자가 그 과정에서 제법 쏠쏠히 금을 사들일 수 있었다.


“게다가 대기업 계열 제련업체들의 처리능력 부족으로 상당량의 금 제련작업이 해외업체를 통해 이뤄졌다고 합니다.”


제련에 따른 부가가치가 외국 업체에 넘어간 것이다.

국내 세공업체에 맡겨 장신구로 가공해 팔면 수출가격의 30% 이상을 더 받을 수 있는데도 이를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만약 세공을 거쳐 수출됐을 경우 약 2억∼3억 달러를 더 벌어들일 수 있었던 걸 놓쳐버린 셈이죠. 새 정부가 IMF의 요구를 받아들여 강력한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걸 것을 예상해 어떻게 해서든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서 그랬다곤 해도.... 매우 멍청한 짓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원료를 얻기가 어려워진 국내 중소 세공업체의 80%가 휴·폐업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귀금속기술자 2만 명 중 50%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많은 기술자들이 일본·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모아 준 금이 아무런 산업효과도 낳지 않고 밖으로 흘러나갔다.

가만 내버려두었으면 지금처럼 대량의 관련 업계 실업자도 생기지 않았을 터.


“더 웃긴 게 뭔지 아십니까?”


류지호는 하나도 안 웃겼다.


“IMF 체제를 잘 버티고 있는 몇몇 업체들의 경우 환율이 올랐기 때문에 비싼 값에 외국에서 금을 사오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금 수출업무를 맡은 재벌그룹 종합상사들이 금 모으기 운동이 한창인 때에도 금을 수입해 팔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금을 수출한 해외업체로부터 수출가격보다 0.2∼0.5% 높은 값으로 사들였다.

엉망진창이다.

류지호 역시 데본 테럴에게 금 모으기와 관련한 동향을 조사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내용들이다.


“7대 종합상사들이 얼마나 수입했다고 합니까?”

“금 모으기 기간 중에 대략 10억 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종합상사들이 수출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서다.

IMF 구제금융 체제에서 종합상사는 재벌그룹 구조조정과 관련해 1순위 대상으로 꼽혔다.

특히 그룹사정이 좋지 않았던 대유그룹의 행태는 도를 넘었다.


“금 모으기 운동의 재고 3t에 대해 7개 종합상사가 판매할 수 없도록 정부가 조치를 취했습니다.”

"얼마나 비축하고 있답니까?"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13t까지 포함해 16t입니다."


사실 금 모으기 운동에 대해서 비판한 단체는 한국 귀금속중앙회가 거의 유일했다.

원자재의 대량수출은 자원 고갈을 초래한다는 것이 주요 주장이었다.

사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문민정부는 외환위기가 올 것을 알면서도 방임했으며 막상 닥친 후에는 컨트롤타워 역할도 못했다.

어쨌든 국민의 정부는 금 수출을 늦추기로 결정했다.

7개 종합상사를 보유한 재벌 총수는 청와대로부터 강력한 주의를 받아야 했다.

그간 7개 그룹은 종합상사에서 금 거래를 통해 실적을 올려줌으로써 간접 이익을 얻었다.

업체들의 위조 수출계약서 등을 보고 실질 심사도 없이 마구 도장을 찍어 구매승인서를 내준 은행들도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 황당한 일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금 모으기 운동 때 종합상사에서 금 수출로 재미를 본 일부 직원들이 믿을 만한 도매업체를 중간 중간에 넣어 ‘폭탄업체‘와 거래하도록 하면 세무조사도 피할 수 있다는 계산 아래 공공연히 변칙 거래를 주도하며 세금을 포탈하기 시작한 것.

그들이 금을 싸게 팔면서도 이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부가세가 부과된 금괴도 수출할 때는 그 세금을 환급해주는 제도 때문이다.

즉, 노숙자 등을 바지사장으로 한 폭탄업체를 세워 1~2개월만 거래하고 부가세를 내지 않은 채 폐업하면, 업자는 세금 부담이 없어 금괴를 원가보다 낮게 팔아도 이득을 보게 되고, 국가는 폐업 업체 때문에 걷지도 못한 세금을 수출할 때 다시 되돌려줘 국고가 그만큼 축나게 되었던 것이다.

일부는 이런 방식으로 몸담고 있던 대기업에 수익을 내준 뒤 아예 퇴직하고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서기도 했다.

결국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 직원과 금 도매상 등이 변칙적인 금괴 수출입 거래를 통해 2조원대의 세금을 포탈했다가 검찰에 적발된다.

그야말로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한 초대형 범죄라고 할 수 있다.

세금 포탈에 가담한 대기업은 10대 기업에 포함된 대기업 계열 종합상사 5곳과 제련회사 두 곳 등 총 7개 기업이다.

이전 삶에서는 2년의 수사로 밝혀질 사건이다.

주요 경제지들이 금 모으기 운동의 뒷사정을 캐낸다.

그 과정에 있었던 대기업 종합상사들의 비리를 까발린다.

그 시기가 절묘했는데, 딱 공소시효가 지난 다음이다.

이번엔 아니다.

류지호의 오지랖(?)으로 인해 두 달 만에 밝혀지게 된다.

비록 엄청난 양의 금이 이미 해외에 헐값에 팔려나갔지만, 남은 3t은 금괴로 제련되어 한국은행에 보관된다.

이를 담보로 해외금융사에서 달러를 들여온다.

그 해외금융사는 뉴욕의 G&P 투자은행이다.


“이번 거래에 두 가문의 어르신들이 개입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들이요?”


왠지 꺼림칙한 류지호다.

대니얼 그레이엄이 뭘 어떻게 얼마나 한국에 대고 수작질을 벌일지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어쨌든 재벌들의 이기적인 행동과 일부 탐욕스러운 자들의 망국적인 범죄행위가 있었지만, 금 모으기 운동 자체가 평가절하 되거나 하는 일은 없다.

정책을 돌보던 사람들도 나라에 있는 금을 싹 다 모은다고 해도 외환위기를 극복하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이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의지를 피력하는 것이다.

금 모으기 운동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신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국민들이 나서서 금을 모으는 나라라면 금방 돈을 갚을 거라는 신뢰의 명분이 되었다.

그 와중에 불법이나 잘못을 저지른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금 모으기 운동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사실 이 운동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할 순 없다.

중요한 것은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외국 투자금의 발길을 붙잡아 둘 수 있는 효과는 있었단 사실이다.


“언론에서도 쉬쉬하고 퇴사한 임원과 직원 위주로 꼬리 자르기 하는 걸 눈감아주는 걸로 봐서는 정치적 판단을 내린 모양입니다.”


대기업 종합상사의 불법 및 이기적인 행동이 만천하에 드러난다면, 금 모으기 운동으로 형성된 국민화합과 대외이미지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다.


“외국 자본이 모를 리가 없잖아요?”

“알아도 자신들의 먹잇감이 더 망가지는 걸 원하지 않을 겁니다.”


한국의 대기업은 아주 좋은 먹잇감이다.

금 관련 사건으로 정부가 나서서 조치를 취하면 가뜩이나 떨어진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안 될 말이다.

그들로서는 사건이 커져선 안 된다.

이제 막 빅세일로 수금을 시작하는 마당에.

암튼 해외 투기자본은 신이 났다.

살려둘 건 살려두면서 두고두고 지갑에서 돈 빼먹듯 써먹고.

갈가리 찢어 팔아먹거나 손에 넣을 건 단숨에 먹어치우고.

바야흐로 해외 거대자본과 투기자본의 쇼핑타임이 찾아왔다.

대기업 2세 회장들과 각 기업 CEO들은 거의 모두가 해외유학파거나 좋은 학벌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수준 높은 경영, 경제 수업을 받은 사람들이다.


“사회의 도움 없인 그 어떤 비즈니스도 불가능하다는 걸 책이나 혹은 교수들로부터 배웠을 텐데.... 쯧.”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장에는 한반도를 호랑이로 형상화한 조형물이 등장했다.

얄팍한 자본가들과 위정자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이 호랑이란 걸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배고픈 호랑이는 매우 사납고 난폭한 숲의 제왕이다.

한반도라는 숲은 이 호랑이들의 영역.

여우는 게으르고 무신경한 호랑이를 잠시 속여먹을 순 있다.

언제든 잡아먹힐 수 있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

바다 건너 하이에나와 대륙의 들개 떼가 한반도 숲으로 몰려오고 있다.

비록 상처입고 기력이 쇠해 동굴에 웅크리고 있어야 하지만.

길고 긴 겨울을 인내한 후.

기력을 되찾은 호랑이가 동굴을 나와 포효하는 날.

호랑이가 예전보다 더욱 용맹한 모습으로 숲을 활보할 것이란 것을.

류지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렇게 되길 간절히 소망했다.


“아리아리아리랑 아리아리아리랑 아리랑 가슴에 꽃을 피우세~”


류지호가 군가를 흥얼거렸다.

노아 시거와 함께 자리한 문지열과 조준열이 따라 흥얼거렸다.

군가를 아는 것으로 봐서는 그들 역시 육군 출신이다.

‘아리랑 겨레’는 육군의 10대 군가(애창군가)였으니까.


작가의말

습작에서는 주인공의 개입으로 금모으기 운동으로 모은 금 절반 정도를 새 정부에서 건진 것으로 전개를 했습니다. 리메이크 과정에서 최대한 현실에 맞게 바꿨습니다. 대신 주인공이 국뽕이 차오를 수 있는 대규모 투자를 한국에 하게 됩니다. 재벌들의 삽질로 주인공이 싸게 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 돈을 다시 한국에 투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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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1

  • 작성자
    Lv.99 시역과의
    작성일
    22.11.23 09:22
    No. 1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나도밤나무
    작성일
    22.11.23 09:32
    No. 2

    읽으면서 어 조금 다르네 했건만
    그런 속사정이 있었네요
    오늘도 재미있게 읽고 가네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11.23 10:20
    No. 3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루시오엘
    작성일
    22.11.23 10:27
    No. 4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지구주민
    작성일
    22.11.23 10:53
    No. 5

    금지금 사건은 충격적이고 가슴아픈사건이죠. 국가와 기득권이 어떻게 국민을 착취하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니까요. 이후 이제 국난이 와도 국민은 위기에 나서지 않게 되는 분이기가 생겼지요. 기득권의 계층 갈라치기도 심화도었고요. 예전에 지역,학벌로 갈랐다면 이젠 재산, 연령, 성별로 갈라치기 하니까요. 국가폭력과 기득권 착취에 다들 현명하게 대처하면 좋겠습니다

    찬성: 10 | 반대: 0

  • 작성자
    Lv.81 지구주민
    작성일
    22.11.23 10:55
    No. 6

    금지금은 골드인고트 금중의 금, 골드바를 뜻하고 당시 수사팀에서 금지금사건으로 불렸습니다. 국민들의 나라사랑에 대한 염원이 담긴 골드바 사건이였던거죠.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아프네요. 뒷이야기의 씁쓸함까지요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99 글램스
    작성일
    22.11.23 11:00
    No. 7

    맞네요. 습작과 뭔가 다른데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ehqur
    작성일
    22.11.23 11:39
    No. 8

    대기업들이 신문에다 지 까고있는데 성자행세하고있네.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99 ehqur
    작성일
    22.11.23 13:33
    No. 9

    서울랜드가져오면 좋은데 운영사가 절대안팜. imf이시기라면 후하게쳐주면 살수있으려나

    찬성: 0 | 반대: 2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2.11.23 14:13
    No. 10

    수고 하셨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무한땅꼬마
    작성일
    22.11.27 01:30
    No. 11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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