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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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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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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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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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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구차하지 맙시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한국의 게임역사는 ‘스타크래프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저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스타크래프트’ 이전 시대 한국게임계는 마치 중세 암흑기와 같았다.

‘스타크래프트’ 이후부터 찬란한 르네상스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게임하는 아이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게임하는 어른들은 ‘애들처럼 게임이나 하냐’며 핀잔 받기 일쑤였다.

PC게임이 노래방처럼 짭짤한 사업수단이 될 줄은 누구도 생각 못했다.

게임하는 걸 직업으로 삼는다는 건 더더구나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다.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사회가 그랬다.

3월 말.

드디어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가 발매됐다.

서구권 게임시장은 ‘RTS 전쟁’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야말로 RTS(Real-Time Strategy)의 춘추전국시대다.

자고 일어나면 혁신적인 게임들이 쏟아졌다.

그만큼 ‘스타크래프트‘의 쟁쟁한 경쟁자도 많았다.

어느 하나 만만한 상대가 없었다.

지존은 누가 뭐라고 해도 ‘커맨드앤컨커’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듄2’로 RTS의 초석을 놓은 웨스트우드 스튜디오가 작정하고 내놓은 최고의 대작게임이다.

영화 같은 동영상과 사실적인 그래픽, 치밀한 전략전술은 유저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인터페이스나 밸런싱 등 어느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게임이다.

여기에 외전격인 ‘레드얼럿’ 시리즈까지 가세하면서, 웨스트우드는 RTS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Snowstorm 개발자들의 기를 죽일 만큼 그래픽 부분에서 압도적인 ‘토탈어나일레이션’도 있다.

심지어 Snowstorm의 자회사인 시에라에서는 기존 RTS 통념을 깨고 우주공간에서의 전투를 표현했다.

실감나는 유닛 간 전투, 새로운 형태의 인터페이스, 뛰어난 3D 그래픽, 무엇보다 몽환적인 우주배경 그 자체가 예술인 ‘홈월드’라는 게임이 시에라 작품이다.

방대한 역사를 담은 교육적인(?) 게임인 ‘에이지오브엠파이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기라성 같은 게임들이 시장의 패권을 놓고 싸우던 시대가 90년 말이다.

사실 ‘스타크래프트’은 감히 명함도 내밀기 힘든 시대다.

그런데 ‘스타크래프트’는 RTS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게임이 된다.

막강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요인에는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지만, 단연 최고의 기획은 3종족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는 2종족을 만드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

삼강구도는 구현하기 더 힘든 시스템이었다.

종족이 셋이 되면 밸런싱이 무너지기 쉽다.

RTS의 생명은 밸런싱이다.

아무리 그래픽이 화려해도 밸런싱이 무너지면 끝이다.

그 어려운 걸 해냈다.

흥미로운 스토리, 배틀넷을 통해 최대 8명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점 등.

여러 획기적인 아이디어들로 인해 RTS게임계를 평정하게 된다.

거기에 한국의 PC방 문화와 결합하고, 케이블 채널의 기획까지 융합되면서 E-스포츠라는 전대미문의 문화이면서 산업을 꽃피우게 된다.

그 같은 미래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Snowstorm Entertainment 관계자들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웨인 롭슨(Wayne Robson)은 Snowstorm 게임타이틀의 해외유통을 총괄하는 책임자다.

그들을 맞이한 이들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설립되는 Snowstorm Entertainment 한국지사 수뇌부들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할 말입니다.”


웨인 롭슨과 한국 지사장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악수를 나눴다.

전에는 Snowstorm 게임의 한국유통을 스펙트럼DVD에서 책임졌다.

올해 3월 한국에서 발매를 시작한 ‘스타크래프트’까지 하고 계약이 종료됐다.

앞으로는 Snowstorm KOR.에서 게임을 직접 유통할 계획이다.

시에라 온라인의 게임까지도 맡게 된다.

웨인 롭슨팀이 강남의 Ritz & Garden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짧은 휴식을 취한 후 곧바로 업무를 위해 움직였다.

제일생명사거리에 위치한 G.O.M 빌딩을 방문해 Snowstorm 한국지사 겸 아시아 지부를 점검했다.

한국지사장은 금성소프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그 외 십여 명의 직원들은 선경미디어나 오성영상사업단 출신들로 채워졌다.

Snowstorm Entertainment 한국지사는 게임 유통 외에 E-게임 리그와 방송 중계 프로젝트도 함께 수행하게 된다.


“보스께서는....?”

“인천에 내려가셨습니다.”


그 시간 류지호는 인천 주안에 와있었다.

인천 시민회관은 남구지역의 대표적인 공연문화 공간이었다.

그랬는데, 안타깝게도 작년 3월 사용금지가 되었다.

류지호가 오동석 본부장에게 물었다.


“전체 몇 평입니까?”

“주차장까지 포함해서 1만4천 평입니다.”

“그 전체를 다 매입한 것 맞죠?”

“예.”


시민회관이 사용금지 된 후로 인천시와 시민단체 사이에 '주상복합 건물을 짓자' '공원을 조성해야 한다' 는 등 활용방안을 놓고 논란을 빚어왔다.

불행하게도 IMF 구제금융 체제로 들어서게 되었고, 인천시는 G.O.M Cinemas의 매입의사를 받아들여 최근 계약이 성사됐다.


“공원을 조성하자고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고생들 했네요.”

“공청회도 수차례 열어서 향후 부지 활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멀티플렉스가 주축이 되겠지만, 다목적 문화시설을 조성하고 다울재단이 운영하는 무료노인한글학교, 어린이놀이시설을 적극 유치하겠다는 저희 청사진을 시민단체가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시민단체가 반대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주안상권의 상인들과 인근 지하상가 상인들이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였기에.

맞은편 한교문고가 들어설 때 인천의 모든 서점들이 들고 일어난 것처럼 인천지역 극장주들이 들고 일어나긴 했다.

하지만 주안에 랜드마크가 들어선다는 명분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인천 지역방송과 신문들에 광고를 듬뿍 안겨주면서 우호적인 여론 조성에 힘쓰기도 했죠. 사실 감독님은 인천이 낳은 위인이잖습니까. 약간의 잡음은 있었지만 인천 전체적으로 여론이 긍정적인 편입니다.”

“주안역과 거리가 떨어져있긴 한데.....”

“주변에 성당과 대형교회가 있고, 결혼식장은 물론 유동인구도 꽤 되는 편입니다.”

“인천의 지점은 모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겁니까?”

“구월동, 부평역, 연수구 이곳 주안까지 해서 인천에서만 2003년까지 4개의 멀티플렉스를 갖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부를 둘러본 류지호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형, 그거 알아?”

“.....?”

“86년 5.3인천민주항쟁이 벌어졌던 곳이 바로 이곳이야. 거의 모든 인천시민이 모인 것처럼 일대가 아주......”

“일부 공간을 민주항쟁기념관으로 내어줄까요?”


오동석의 물음에 류지호가 딴소리를 했다.


“우리 어렸을 때는 시민회관에서 영화 많이 봤는데.....”


오동석은 류지호가 잠시 회상에 잠길 수 있도록 잠자코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건물 철거는 내년부터 진행할 계획입니다.”


류지호는 아무런 대꾸가 없다.


“철거비용만 대략 7억 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합니다.”

“동석이형.....”

“네. 감독님.”

“난.... 어릴 때 말이야. 친구들이 이 극장에서 만화영화를 볼 때 수봉공원에서 동생들과 놀았어. 극장표를 살 돈이 없었거든. 그러다가 국민학교에 갔는데 학교에서 공짜로 영화를 보여주는 거야.”

“우리 어릴 때는 단체관람을 하곤 했죠.”

“혹시 <종군수첩>이란 영화 기억해?”

“<종군수첩>이요?”

“박근혁, 유진춘, 장미연, 이명하 선배가 출연한 영화였어.”

“아! 그 영화요? 저도 그 영화 단체관람으로 본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저 학교땡땡이 치고 시내 나가서 영화 본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영화 내용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설악산인가에서 암벽등반 하다가 사고가 나고 하는 건 어렴풋이 생각나.”

“하하. 저도 생각났습니다. 참 그때는 반공영화는 학교 전체가 우르르 몰려가 단체관람하곤 했는데.... 그리고 다음날 윤리선생인가가 숭고한 조국애니 투철한 국가관이니 조국수호에 헌신이니 하는 말을 떠들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참 대단한 것 같아.”

“그 영화가 그렇게 대단한 영화입니까?”

“시간이 엄청 오래 지났는데도 기억나는 걸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드네.”


인천 남구지역의 어른과 어린이들에게

만화영화부터 연극공연, 영화상영까지 27년간을 이어왔던 문화공간이던 시민회관이 G.O.M Cinemas에 의해 복합상영관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전 삶을 생각하면 좋은 상권도 유동인구도 많은 지역은 아니다.

그럼에도 매입했다.

주안에서 단일 부지로 이 정도 땅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아 서다.


“극장주들 반발이 만만치 않죠?”

“난리도 아닙니다.”

“부평과 주안은 최대한 공사를 천천히 하도록 하세요.”


저절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극장주들의 반발과 일부 시민단체들의 반대 등.

한동안 멀티플렉스 체인망 구축에 험난한 길이 예상되었다.


“인천터미널이 들어서는 구월동이 가장 먼저 오픈 될 예정입니다. 인천의 다른 지역들은 최장 5년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사를 천천히 해야 직장에서 쫓겨났거나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하루라도 더 공사장에 나와서 막노동이라도 하면서 일당을 받을 거 아닙니까?”


오동석이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일당 말씀입니까?”

“나도 알아요. 병신 같은 짓이란 걸.”


오동석이 내심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우리가 1조원을 털어서 그들에게 일일이 나눠줄 순 없잖아요.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퍼주는 스케일도 남달랐다.

아무리 아무렇게나 입에서 나온 말이라지만.

1조라니.


“건설사들이 이해하겠습니까? 그들은 어떻게든 저비용으로 빨리 공사를 끝내야 하는 입장인데....”

“형, 시공사 선정에 있어서도 무조건 입찰가격을 낮게 잡지 마.”


후우.

기어코 오동석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가능하면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우리 건물을 올려 봐. 비록 대도시 위주가 되겠지만. 여기저기 공사판과 극장 리모델링을 벌여봐. 그래서 그곳에서 일당잡부들 많이 썼으면 좋겠어.”

“가뜩이나 극장 매출 떨어질 것 같아 노심초사인데....”

“영화도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볼 거 아냐. 당장 끼니 걱정하고 길거리로 나앉게 생긴 사람들이 극장에 오겠어?”

“그건 정부가, 나라가 하는 겁니다. 감독... 아니 지호야....”


오동석이 간곡하게 부탁조로 말했다.


“넌 영화만 생각해. 영화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면 되잖아.”

“영화로 희망을 주긴 개뿔..... 미국에서 돈 정말 잘 벌어. 형도 알잖아. 한 달 만에 달러와 금가지고 두 배로 뻥튀기 한 걸. 그뿐인 줄 알아? 작년에 뉴욕 투자회사가 태국 환율 장난칠 때 끼어들어서 형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돈 벌었어. <타이타닉>으로 JHO가 얼마나 벌고 있는데.”

“그 만큼 세금을 내잖아 세금을.... 네가 낸 세금으로.....”

“세금? 알 게 뭐야. 그냥 미치겠어, 답답해. 짜증나. 뭣 같아. 내가.....!”


류지호는 결코 흥분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담담하게 말하는 그 모습이, 그 어조가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오동석은 그래서 더는 말 꼬리를 잡을 수 없었다.

항상 더 먼 곳, 더 높은 곳, 더 거대한 무엇을 바라보던 류지호의 활활 타오르던 눈에는 어떤 회한이 어른거렸기에.

대중예술가가 공감능력이 없으면 그가 만드는 작품은 일기를 전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IMF 외환위기는 나라경제가 망가진 것으로 끝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었다.

그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그로 인한 트라우마는 한국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황금만능주의, 한방주의, 각자도생 같은 공동체의 건전성을 헤치는 방식으로.


“건물은 무조건 튼튼하게 그리고 소방시설 대피로 등 안전도 신경 쓰고. 대규모 공연시설은 한 번 사고 나서 삐끗하면 끝이니까.”

“....예.”

“그만 서울로 올라갑시다.”


류지호는 시민회관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았다.

세월의 무상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저 공간에, 민주항쟁이 벌어졌던 역사적인 공간에,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첨단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도 함께 낡고 닳아간다.

부디 시간의 기억들만큼은 닳지 않기를.....


✻ ✻ ✻


마포구 서교동의 한 건물.

소유주는 국어강사로 유명해져서 국회의원까지 된 사람이다.

연면적 617평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5층의 이 건물은 케이블TV 다솜방송 사옥으로 사용되고 있다.

LA로 돌아가기 전, 류지호가 마지막 일정을 이곳에서 소화했다.

다솜은 ‘사랑‘의 순우리말이다.

전 소유주가 국어강사 출신이고, 1995년 교육채널로 시작했기에 사명을 순우리말로 지었던 모양이다.


“인수조건이 어떻게 됐었지요?”


다솜방송 신임사장 이호준이 얼른 대답했다.


“240억 원이었습니다. 대부분 부채인데 3년 거치 8년 분할상환하기로 했습니다.”

“이 건물은요?”

“서 의원 소유로 대부분 은행권 담보로 잡혀있는 것으로 압니다.”

“사겠다고 하면 팔까요?”

“부동산 시세가 너무 좋지 않아서 매물로 내놓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빌딩의 주인은 교재 및 입시학원 등 교육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인물이다.

비록 다솜방송은 실패했지만, 꽤나 자산가인데다가 현직 국회의원 신분이기까지 하다.


“현재 남아있는 직원 수가 몇 명입니까?”

“서른 명 조금 넘습니다.”


명색이 케이블 방송국인데 숫자가 겨우 30명.


“한창 때는 몇 명이 근무했습니까?”

“70명 안팎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50명까지 증원시켜보세요.”

“알겠습니다.”

“몇 년 동안 회사가 어려워서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을 겁니다.”

“....예.”

“사기진작 차원에서 연봉을 케이블업계 중상위권으로 끌어올리시구요.”

“회사 사정이 여의치가......”

“광고 몰아 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하루 종일 WaW 픽처스가 배급하는 영화들로 도배가 되고, 가온 산하의 서비스 업체들과 특수관계 회사들 광고만 수주해도 충분히 꾸려갈 수 있다.


“채널 프로그램 변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늦어도 11월까지는 문화관광부에서 허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다솜방송이 준비하고 있는 케이블 채널은 모두 셋.

게임전문 채널.

대유로부터 DCN을 인수해 열게 될 영화전문 채널 방송.

마지막으로 새로운 채널을 신청하거나 적당한 채널을 인수합병해서 드라마·버라이어티를 전문으로 하는 방송.

이렇게 세 개 채널을 다솜방송이 통합·관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Snowstorm의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한국에 들어왔죠?”

“오늘 오전에 인사를 나눴습니다.”

“게임리그는 언제 쯤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이르면 내년 여름에는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솜방송은 Snowstorm Entertainment, 아네모네 PC방 프랜차이즈와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활용한 E-게임(스포츠) 사업도 함께 준비할 계획이다.

다솜방송의 게임 채널은 Snowstorm Entertainment와 정식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한 한국의 유일한 정식 사업자다.


“미국의 MLB를 벤치마킹해서 상부·하부 리그 개념을 도입하고, 승강제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중계권 규약은 Snowstorm과 조율이 잘되고 있습니까?”

“이견이 있지만 좋은 방향으로 합의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류지호는 각종 저작권 및 상표권 등에서 전방위로 선점해둘 계획이다.

그렇다고 가온이 Snowstorm 게임을 독점할 생각은 없다.

누구나 ‘스타크래프트‘ 관련 리그를 운영하거나 중계를 해도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가칭 E-게임 컨소시엄이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시킬 경우에만 라이선싱을 제공할 생각이다.

승부조작 엄단, 선수인권 및 권익보호 장치 등 미국의 연예조합 규약집을 참고해 관련 규칙을 마련해 두었다.

특히 E-스포츠 분야에서 게임개발사와 한국의 사업체들이 처음부터 사업을 계획하고 조정하면서 쌓인 노하우를 가지고 북미와 유럽까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길 원했다.

물론 흥행게임의 개발사가 모두 해외 업체다.

그 때문에 게임 라이선싱과 관련해 딴죽을 걸면 어쩔 수 없다.

단일 게임의 수명이 짧기도 하고.

류지호가 Snowstorm Entertainment를 처음부터 참여시킨 것은 어중이떠중이가 게임계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고, 대기업의 횡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내부적으로 테스트를 충분히 해보길 바랍니다.”

“따로 TF를 꾸려서 최적의 중계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직 ‘스타크래프트’는 찻잔속의 태풍입니다. 내년 하나로통신에서 국내 최초 상용 ADSL 기반의 인터넷 서비스를 개시하면 세상이 달라질 겁니다.”


관계자들은 류지호가 하도 강조를 해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

천지가 개벽할 정도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지만.

게임계로만 한정해서 보더라도.


“PC방이 동네 오락실을 압사시킬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겁니다. 내년부터는 동전 넣고 버튼을 눌러대는 것 대신,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리며 ‘스타크래프트’와 MMORPG라는 온라인 세상으로 사람들이 빠져들 겁니다.”


솔직히 이호준 사장은 류지호의 장담을 믿지 못했다.

남이 하는 오락을 구경하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프로스포츠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물론 ‘스타크래프트‘의 게임성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것은 안다.

그럼에도 오락을 넘어 문화로 심지어 프로스포츠가 된다는 것에는 회의적이다.

E-게임이 문화가 아니라 스포츠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프로로 구성된 팀이 있고, 스폰서가 있으며, 리그가 구성되면 된다.

리그를 통해 스타가 만들어지고,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관람을 하게 되면 응원문화도 만들어진다.

그것이 프로스포츠가 아니고 무엇일까.

리그까지는 어떤 국가든지 만들 수 있다.

독특한 응원문화와 팬덤은 오로지 한국에서만 가능하다.

야구장을 주점이자, 노래방이자, 나이트클럽으로 융합시킨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이다.

PC게임 가지고 프로스포츠로 못 만들 이유가 없다.


“세계 최초의 게임 대회는 아니지만, 세계 최초의 E-스포츠 전문 방송국이 되길 바랍니다.”

“네. 의장님!”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한 류지호가 한남동 집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 ❉ ❉


출국 전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매튜 그레이엄과 조민욱이 찾아왔다.


“보스께서도 몇 번 투숙해보셨을 맨해튼의 오리엔탈 호텔은 하룻밤 숙박료가 최소 600달러의 최고급 호텔입니다. 이 호텔의 식당이나 행사에서 남은 음식은 ‘시티 하비스트’에 보내집니다. ‘시티 하비스트’는 노숙자 숙소나 무료급식센터에 음식을 전달해주는 사회단체입니다. 단순히 남은 음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금을 전달하기도 하고, 자선경매행사가 열릴 때는 이 호텔의 패키지 상품을 기부하기도 합니다.”


조민욱 부사장이 길게 설명했다.

류지호는 뉴욕과 LA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자선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도시빈민가 청소년 센터 운영과 한국전참전용사회 지원, 저소득층 어린이 치료 프로그램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 태권도대회 지원, 한인동포 지원, 재난지원 등.

개인적으로도 많은 기부활동과 자선활동을 벌이고 있다.

조민욱이 보기에 류지호 본인도 자신의 자선활동을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억만장자에 걸맞게 자선사업 부분에서도 백화점식이라고 할까.

좋은 의미가 아니다.

주먹구구식이란 뜻이다.

한국에서는 따로 재단을 만들어 사업을 벌이고 있진 않았다.

게다가 IMF으로 실직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일환으로 멀티플렉스를 동시에 건설해서 일시적이나마 고용창출효과를 노려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얕은 생각이다.

선의의 행동이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실질적 도움도 안 된다.

조민욱은 이번 기회에 빅보스가 벌이고 있는 자선사업에 대해 정리해 줄 필요성을 느꼈다.

그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실업에 대해서도.

일종의 미니 강의라고 할까.

류지호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파커재단처럼 자선재단을 하나 만들어야 할까요?”

“그 부분은 투자 자문들이 여러 차례 건의 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GARAM Invest의 월가맨들은 자선활동까지도 투자와 결부시키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는 파커가문처럼 수십억 달러를 기부해 재단을 설립한 후, 보건·교육환경 개선에 막대한 지원을 하는 초대형 자선사업가가 있고, 1년에 수십 달러 단위의 기부금을 내는 일반인도 있다.

크고 작은 자선활동이 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시간을 쓸 것이냐, 돈을 낼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것이냐에 따라 자선활동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자선행위를 투자로 보고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가를 따지는 이들도 있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체계적으로 해야겠지요. 혜택도 꼼꼼하게 챙겨야 하고.”

“미국은 한국과 달리 공익사업에 대해 법률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고, 조세지원도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그리고 만약 JHO가 기업공개를 하게 될 때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보스의 우호지분을 재단출연이라는 방식으로 따로 빼둘 필요도 있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더는 골치를 썩고 싶지 않아 류지호가 순순히 동의했다.

이번 참에 재단을 하나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자선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괜히 낯간지러웠다.

매년 엄청난 돈을 쓰면서도 스스로 난 척을 하는 것 같아 꺼리는 면이 없지 않았다.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다.

중구난방이었던 기부와 자선활동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보스가 하시는 사업은 그다지 고용창출효과가 없습니다.”

“무슨 사업을 말하는 거죠?”

“한국에서 복합상영관을 동시에 여러 군데 건설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더 큰 플랜이 있다.

JHO Company의 도널드 제이콥과 한국의 가온 전략기획실에서 비밀리에 검토 중이라 류지호는 말을 삼갔다.


“앞으로 자본시장은 점차 노동보다는 기술집약 쪽으로 이동의 가속도가 붙을 겁니다.”

“그렇겠죠.”


미국에서는 전통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 점차 IT 산업으로 대표되는 연구기술자본, 레저·영화·미디어를 포함하는 기술문화자본으로 이동하고 있다.


“일찍이 경제학자들은 전통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임노동이나 재화, 서비스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지능력’에서 파생된 기술, 문화 역시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연구기술자본의 대표적인 예가 헨리 게이츠의 파인소프트사라면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기술문화자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산업분야에서 이윤율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자본이 ‘잉여가치’를 창출해 줄 만한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거다.

그게 바로 연구기술자본 그리고 기술문화자본이다.

이런 체제에서 전통적인 ‘노동’ 개념은 여지없이 파괴된다.

투입된 노동시간에 비례해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테크놀로지) 수준이 잉여가치의 산출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만 해도 기술은 공짜로 쓸 수 있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기술은 특허나 비밀보장 등의 법제화를 통해 기반을 마련한 뒤, 임노동을 제치고 점점 스스로도 잉여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주역으로 부상했지요. 문제는 기술 중심의 자본축적구조에서 발생하는 고용문제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속도보다 파괴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산업영역의 고용감소는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와 그에 영향을 받는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처럼 호황인 국가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동남아발 경제위기와는 별도로 실업에 대한 장기적 대책이 시급했다.

실업문제는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기업들이 호황을 구가함에도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외환위기를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양상이 빚어질 가능성이 매우 농후합니다. 기업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보다는 경쟁력과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투자에 집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술투자가 일정량의 고용을 창출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고용보다는 해고의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조민욱보다 류지호가 더 잘 안다.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조선, 자동차 산업보다 반도체 기업이나 IT기업이 훨씬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두 기업 간 고용을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아울러 보스께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울 생각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고용효과는 미미할 것입니다. 결국 엔터 기업은 유통에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슬슬 지겨워지려 하고 있다.


“나도 압니다. 부사장. 하지만....”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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