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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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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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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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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페가수스는 계속해서 날아오를 겁니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월드 프리미어 전까지 <타이타닉>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우세했다.

기대 속에 공개되었던 오프닝 첫 주 성적 역시 꽤나 실망스러웠다.

개봉 첫 날 북미에서 860만 달러를 벌어 들였고, 개막 주말 동안 2,674 개의 스크린에서 2,80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거둬들였다.

스크린 당 평균 1만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였다.

P&A 포함 3억 달러에 가까운 돈을 퍼부은 영화의 오프닝 성적으로는 최악이었다.

모두가 쫄딱 망했다고 난리를 피워댔다.

당연한 거다.

<쥬라기 공원> 오프닝 기록의 절반도 안 되고, <스크림Ⅱ>, <라이어 라이어>보다도 관객 동원을 못했으니까.

실망스러운 박스오피스 추이에도 불구하고 트라이-스텔라는 스크린 수를 끝끝내 유지했다.

결국 4주차부터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사실 특별한 대작 경쟁작도 없다.

아카데미 프리미엄이 얹히면서 북미에서만 15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게 된다.

1998 년 10월 1일 극장에서 내려오게 되는데, 10개월 동안 최종 북미 수익은 6억 달러, 월드와이드 13억 달러의 박스오피스를 기록하게 된다.

월드와이드 1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최초의 영화를 기록하게 된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배급력 이상의 능력을 발휘한다.

죽을 각오로 총력을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주 2,674개에서 시작했던 스크린을 10주차 3,200개까지 늘린다.

이 스크린 숫자를 무려 3개월을 유지한다.

트라이-스텔라의 사운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류지호가 기자들에게 <타이타닉>의 성공을 단언했던 이유가 2주차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미국 주요 매스컴에서 <타이타닉> 관련 설문조사 발표가 나간다.

미국의 10대 소녀 중 7%가 <타이타닉>을 두 번 본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내용이다.


N차 관람 신드롬.


일명 ‘레오 마니아‘라고 불리는 레오날드 그레이프의 열혈 10대 팬들이 박스오피스를 견인하게 된다.

즉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재난영화가 아니라, 근사한 로맨스 영화로서 젊은 여성관객에게 크게 어필하게 된다.

또한 전대미문의 흥행기록에는 멀티플렉스의 괴력을 무시할 수 없다.

트라이-스텔라는 3,200개의 스크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 하게 된다.

홍보 및 마케팅비용만 무려 7,000만 달러 이상 소요된다.

참고로 <타이타닉>은 한 차례 재개봉과 3D영화 개봉을 하게 되는데, <타이타닉> 한 편으로 극장에서 벌어들인 매출이 총 22억 달러에 이르게 된다.

보통 할리우드 영화의 부가시장 수익은 북미 박스오피스의 최소 3배~5배에 이른다.

각종 판권 판매와 유료 케이블 시장, VHS·DVD 판매 및 대여 등에서 월드와이드 17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매출을 기록하게 된다.

98년 9월에 출시되는 LD는 수십만 장이 팔려나가게 되고 이후 IVE 엔터테인먼트에서 99년에 발매하는 DVD는 북미에서만 100만 장이 팔려나간다.

그 시기에는 미국 가정의 5%만이 DVD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다.

100만장이 판매되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결과다.

또 2005년 다시 3장짜리 스페셜 콜렉터 에디션이 북미에서 발매되고, 2장, 4장, 5장 등 여러 제품군이 국가별 상황에 맞게 발매되게 된다.

이후 2007년 영화 10주년 기념으로 에디션이 또 출시된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Blue-ray 3D, 2D Blue-ray, DVD, 디지털 카피 및 다양한 기념품을 포함한 한정판 Collector's Edition 박스 세트도 아마조니아닷컴을 통해 독점 판매되기도 한다.

수 십 년간 영화 한편으로 얼마나 어떻게 우려먹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심지어 공중파, 케이블TV에 사상 최고가로 판권이 판매된다.

재밌는 부분도 있다.

터너 브로드캐스팅 자회사 TNT는 매회 아카데미가 열리기 직전에 <타이타닉>을 방영하게 된다.

마치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록들을 깰 자가 과연 누구냐라고 묻기라도 하듯이.

그 외에 테마마크, 기념품, 각종 피규어, 의류, 잡화 등 다양한 상품에 관련된 로열티 역시 일일이 계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스타워즈>로 갑부가 된 조지프 루카스 못지않게 제이미 캐머론 역시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부를 거머쥐게 된다.

<타이타닉>은 트라이-스텔라 50, 캐머론의 라이트닝스톰 15, 패러마운틴이 30, JHO Pictures 5의 판권분할 계약을 맺고 있다.

여담으로 20세기 PARKs가 이 판에 끼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고, 패러마운틴 역시 제작비를 더 대서 판권을 더 많이 차지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류지호가 그들의 지분을 올려줄 리가 없었겠지만.

이 모든 내용들은 최소 5년 후에나 알게 되는 성과다.

현재는 모두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박스오피스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단 두 사람만 빼고.


“Moe는 긴장이 안돼요?”

“응.”

“왜요?“

“네가 선택한 영화잖아.”

“내게도 1.7억 달러는 엄청나게 큰돈이에요.”

“잘되겠지. 언제나처럼.”


모리스 메타보이가 별 걱정을 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올해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의 실적 때문이다.

<타이타닉>이 박스오피스 폭탄을 터트리지만 않으면 된다.

올해도 매우 만족스러운 순이익이 기대되고 있으니까.

모두 19편을 투자·제작·배급해서 총매출이 31억 달러에 달했다.

겨울 시즌 개봉한 <나 홀로 집에Ⅲ>와 <타이타닉>을 제외한 매출이다.

12월 현재 두 영화 모두 박스오피스 추이가 나쁘지 않다.

참고로 올해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박스오피스 30위 권 내 주요 영화는 다음과 같았다.

<맨 인 블랙>(5억), <이보다 좋은 순 없다>(3억), <라이어 라이어>(3억),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3억), <제5원소>(2.6억), <LA 컨피던셜>(1.3억), <스피드Ⅱ>(3.2억), <도니 브래스코>(1.5억), <티벳에서의 7년>(1.7억), <U 턴>(6천만) 등이다.


트라이-스텔라 인하우스 영화와 제휴 영화사 작품들이 골고루 섞여있다.

겨울 시즌 개봉 영화 두 편을 제외하고도 박스오피스 영업이익만 최소 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

부가시장과 기타 수익까지 포함하면 10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완벽한 정산은 내년 가을쯤에 가서야 윤곽이 나온다.

전 세계 주요 국가 개봉과 비디오 등 판매가 그때 쯤 완료되기 때문이다.


“올 해도 고생했어요.”

“그래서 말인데?”


모리스 메타보이가 이렇게 말을 꺼낼 때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돈 이야기다.


“뭐에 쓸 건데요? 혹시 Gower Studios 리모델링?”

“거긴 이미 예산집행이 완료되지 않았나?”

“그럼 또 헤이우드 앨런이 스크립트를 가지고 왔어요?”

“그 친구는 이제 ParaMax와 작품을 하기로 했어.”

“그럼 뭔데요?”

“지난여름 컨벤션을 연 것처럼, 트라이-스텔라 파티를 산타모니카에서 하면 어떻겠나? 아주 성대하게.”

“어느 정도로요?”

“아주 매우 굉장히 엄청!”


그놈에 파티 너무 좋아들 한다.

할리우드 파티가 단순히 놀고먹고 즐기는 자리가 아니란 것을 알지만.


“그러니까 어떤 규모로요!”

“제휴영화사 친구들까지. 내 친구와 자네 친구들도 불러도 좋고.”

“그게 파티에요? 대형 이벤트지?”

“뭐라고 부르든 무슨 상관인가. 드디어 우리 모두가 모여서 축하를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류지호는 혹시 모리스 메타보이가 <타이타닉>의 엄청난 흥행을 진즉 예견이라도 하고 있나 의심했다.


“우리도 이번 기회에 다 같이 모여서 신나게 먹고 마셔보자고. 우린 그 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렸어.”

“Moe가 호스트가 되는 거죠?”

“나, 나 혼자?”

“왜 말은 더듬는데요?”

“자네는?”

“Moe가 제의한 거 잖아요. 난 그냥 즐기고 싶은데....”

“진심 아니지?”

“올해 대규모 투자를 많이 해서 여유가 별로 없어요.”

“그럼 내년으로....?”

“화려하게 하지 말고, 소박하게 해요.”

“소박하게?”

“Gower Studios의 사운드 스테이지에서 파티를 하는 건 어때요?”

“입주는 내년 여름이나 되어야 할 텐데?“

“그때는 그때고요.”


모리스 메타보이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테드 윤이라고 UCLA에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로 석사를 받은 동문이 있어요.”

“파티 플래너야?”

“네. 할리우드 이벤트 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 회사가 어려운가?”

“아니요. 반대에요. 잘 나가요.”

“오호. 기특하군.”

“영화업계 쪽 파티는 한 번도 안 해봤대요. 이번 기회에 고향출신도 돕고, 동문도 돕고, 우린 파티를 즐겨보자고요.”

“좋아. 회사 자금 쓰지 말고, 자네하고 내가 부담하는 걸로.”

“어차피 내가 대부분 부담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반반씩 해.”

“편할 대로 하세요. 그리고 UK 탤런트 에이전시라고 있어요. 거기 대표도 저와 같은 한국인이고, UCLA 출신이에요. 아마 죠셉 박이 꽤 유명한 팝가수와 밴드를 섭외해 올 수 있을 겁니다.”

“좋았어!”

“파티는 제 비서실에서 준비할게요. Moe는 돈만 대요.”

“역시 자네가 최고야!”

“혹시 트라이-스텔라에서 근속기간이 가장 오래된 직원이 누구에요?”

“댈런.”

“댈런 맥컬리 부사장이요?”

“그 친구도 창립멤버이니, 15년이 넘었겠구만.”

“스탠 크레이그 이사도 비슷하겠군요.”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는 1983년에 창립되었다.

당시 댈런 맥컬리는 애송이 법률 파트너로 인연을 맺은 이후 현재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만약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스탠 크레이그 배급총괄과 함께 차기 회장을 노려볼만한 인물이다.

여담으로 댈런 맥컬리는 트라이-스텔라가 소닉 쪽으로 매각을 고려하고 있을 때 GARAM Invest에 매각하자고 주장했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처음부터 류지호가 G&P와 매우 밀접한 관계임을 간파했었다.

트라이-스텔라가 인수·합병되어 어수선할 때, 회사를 지켰던 인물이다.

류지호가 초창기 트라이-스텔라에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샘 리버먼을 포함해 댈런 맥컬리 같은 창립멤버 등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친 류지호계파’라고 불리기도 한다.

트라이-스텔라 초창기 멤버들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인사다.


“우리 업계는 이직률이 꽤 높잖아요.”

“그렇지. 한 작품 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친구도 많고, 우리는 커리어를 쌓으며 몸값을 높여야 하지. 댈런 같은 경우는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야.”

“우리도 근속 기간에 따라 기념품을 증정하면 어떨까요?”

“기념품?”

“Snowstorm Entertainment 알죠?”

“게임 개발 회사잖아.”

“그곳에서는 5년 10년 이런 식으로 오래 근무한 직원에게 상징물을 선물로 줘요.”

“회사차원에서? 인센티브가 아니라 상징물을 준다고?”

“주로 그들이 개발한 게임에 나오는 유명한 검을 주죠.”

“우리는 가장 박스오피스 수익이 높았던 영화에 나오는 소품을 만들어서 줘야 할까?”

“그건 나중 문제고.... Moe는 어떨 것 같아요?”

“자칫, 회사에 오래 붙잡아두려고 하는 쇼로 비춰질 수도 있어.”

“그게 뭐가 어때서요? 유능한 인재를 붙잡아두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거죠.”


게임 개발사는 하나의 게임 타이틀이 출시되기까지 오랜 시간 직원이 개발에 참여한다.

때문에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게임에 애정이 큰 편이다.

반면 할리우드 스튜디오 대부분의 직원은 이 영화도 하고 저 영화도 한다.

실제 제작에 참여하는 것은 프로듀서뿐이다.

나머지는 배급이나 홍보, 법률, 회계 그 외 경영지원과 관련된 사무직이다.

충무로에서는 그들을 영화인이라고 치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트라이-스텔라 직원들은 영화인 노조에 분과별로 가입되어 있는 엄연한 영화업 종사자다.


“우리가 독단적으로 그런 행사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싶은가?”

“네.”

“그러니까 실적이나 그의 능력은 보지 않고, 근속 기간만 보겠다는 거지?”


사실 그 말이 그 말이다.

능력이 없는데 오래 근속하는 일은 없으니까.


“나는 트라이-스텔라에서 10년을 근무한 우리 직원이 긍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비록 그가 우리 곁을 떠날지라도.”

“긍지?”

“사실 우리가 제작했거나 배급한 영화들의 영광은 제작, 감독, 배우가 다 가져가잖아요. 영화제에서 배급상이나 홍보마케팅상, 법률지원상, 경영지원상 주는 곳이 있던가요?”

“없지.”

“트라이-스텔라는 점점 영화현장에서 멀어지고 있어요. 투자·배급 쪽에 집중하고 있죠. 초창기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분위기였지만, 앞으로는 영화인이 아닌 사무원이 되지 않겠어요? 어디 가서 트라이-스텔라 직원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순 있겠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는 하지 못하지 않을까요?”

“한국인은 다 자네 같은가?”

“.....?”

“한국인들이 모두 자네 같다면 난 한국을 사랑할 것 같네.”

“파티비용은 내가 다 낼 게요. 됐죠?”

“Jay는 따뜻하고 인정 많은 사람이야.”

“알아요, 나도. 그러니까, 본론으로 돌아가자고요.”

“일단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지.”

“직원들이 동의한다면 이번 파티는 조금 시간이 촉박하고, 내년 Gower Studios에 입주하고 나면 그때 대형 이벤트를 하는 걸로 해봐요.”

“그럼 나도 받게 되는 건가?”

“Moe와 나는 5년 근속을 받게 되겠죠.”

“그렇단 말이지?”

“보석같이 사치스러운 것이 되어선 안 됩니다. 메타보이 회장님.”

“물론이지!”

“이만 일어나요. 워드씨 만나러 가야죠.”

“그럴까?”


두 사람이 베벌리힐스의 회원제 레스토랑에서 <REMO> 오리지널의 주인공이었던 프레디 워드를 만났다.


“한국계나 아시아계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요?”


류지호는 어이가 없었다.

당시 <Remo> 제작비화가 너무 엉터리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대부분의 스태프는 한국을 중국이나 대만으로 생각했다네.”


당시 <Remo> 스태프에는 한국, 중국, 일본 출신의 스태프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감독조차 한국에 대한 고증에는 관심이 없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도 캐릭터와 에피소드 위주로 하다 보니 한국문화에 대해 존중이 없었다.

존중은커녕 혐오하지나 않았으면 다행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시대를 조금 앞서가지 않았나 싶어. 지금이라도 <Remo>가 다시 제작된다니 난 매우 기뻐. 비록 나는 이제 레모 윌리엄스를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프레디의 레모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거죠.”

“디렉터 해밀턴은 뭐라고 하던가?”

“행운을 빌어 줬어요.”

“나도 <Remo>의 새로운 이야기에 행운을 빌어주지.”

“그거 알아요? 프레디가 한국에서 꽤 유명하다는 거.”

“내가?”

“<북회귀선>으로 유명해요.”


노골적인 성애묘사로 에로티즘 영화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 함정이긴 했지만.


“사실 원작자인 머피씨도 한국을 잘 모르더구만.”

“그가 머물고 있을 때는 폐허뿐인 한국이었으니까요.”


류지호는 저녁을 먹으며 프레디 워드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비록 세월이 많이 내려앉은 얼굴이었지만, 서글서글한 인상만큼이나 털털한 사람이다.

원래 이런 자리는 추억팔이가 주된 화제다.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면 지겨워 하품이 나올 수도 있었다.

류지호는 프레디 워드의 추억팔이에 무리 없이 공감했다.

충무로나 할리우드나 무명의 설움은 똑같았으니까.


✻ ✻ ✻


내정되어 있던 치운 배역의 순탁 오와 특별출연을 승낙한 프레디 워드를 제외하고, 중요한 주인공 캐스팅이 지지부진했다.

잭 워든이 직접 브래들리 피츠를 만나고 왔다.


“내년에 3편을 찍어야 해서 하고 싶어도 못한대.”

“진짜로 할 마음이 있었으면 다른 딜을 걸었겠지.”

“그에게도 사정이란 게 있어.”

“밴은 뭐래?”

“그쪽 문제는 계약금이야.”

“얼마나 달라기에?”

“웨스 스나입스 만큼 달라더라.”

“출연료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하네.”


웨스 스나입스는 <블레이드> 출연료로 1,000만 달러를 불렀다.

4,000만 달러 예산 영화에서 A-List 레벨의 출연료를 요구한 것.

결국 출연료를 절반으로 깎고 나머지는 러닝 개런티와 협력 프로듀서 크레디트로 맞춰주었다.

그러면서 웨스 스나입스는 자신이 프로듀서라도 되는 양 제작 전반에 은근슬쩍 간섭하면서 촬영 현장에서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였다.

할리우드에서는 안 그런 것이 이상할 정도다.

스타 배우들이 촬영에 들어가면 은근히 갑질이 심하다.

모든 것이 스타배우 중심으로 돌아가기 판이기 때문이다.

미국 영화계는 배우조합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예를 들어 오늘 촬영이 몇 시에 끝나면 몇 시간은 휴식해야 한다든가, 촬영 장소에서 몇 분 거리 내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5성급 호텔이 있어야 한다든가, 배우가 대기하는 트레일러에서 스튜디오까지 몇 걸음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식의 내용이 계약서 조항에 다 적혀 있다.

심지어 애완동물 사료 제품까지도 계약서에 넣는다.

톰 메이포더나 케이아누 립스 같은 매너 좋은 배우도 있다.

대부분의 톱스타는 본인의 기분에 따라 현장 분위기를 만든다.

그랬던 이들이 얌전해 질 때가 있다.

나이를 먹거나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다.


“밴이 떠오르는 할리우드 스타이긴 했지만, 아직 웨스와 비교되는 배우는 아니야.”

“청춘스타이긴 하지.”


웨스 스나입스는 흑인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배우이자, 액션 스타다.

기본 관객동원이 어느 정도 보장된 배우란 소리다.

물론 <아마겟돈>이 개봉하게 되면 두 사람의 위상이 역전되기 시작하겠지만.


“레온이 밴에게 바람을 잔뜩 집어넣은 모양이야.”

“무슨 바람?”

“<아마겟돈>을 개봉하고 나면 뜰 거라고 말하고 다니는 모양이야. 영화 홍보를 위해 그러는 것도 모르고.”

“밴은 그렇게 멍청한 친구가 아니야.”

“난 에이전트가 농담을 하는 걸로 알았어. 헌데 진심이더라고.”

“대략 500만 달러에서 최대 800만 달러를 달라는 거네?”

“그렇지 않다면 스크립트 작업에 참여하게 해달라는군.”

“밴이 글을 좀 쓰긴 하지.”


잠시 류지호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보았다.

<아마겟돈>이 개봉하기 전에 밴틀리 애플렉과 계약하면 엄청 이득이긴 하다.

이후부터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A-List 출연료를 받게 되니까.

<Dream Come True>처럼 실험적이며 저예산 독립영화였다면 적은 출연료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고예산 영화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에이전트는 그런 계약을 절대 하지 않는다.

주연 커리어가 있는 배우는 최대한 받을 수 있는 만큼 받으려 하는 것이 당연한 거다.

배우 몸값이란 것이 올라가기는 어렵지만 떨어지기는 쉬우니까.


“B-List에 있던 배우들도 오디션을 봐야겠어.”

“그렇게 하지. 밴은 어찌할까?”

“통화를 하든,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눠보든. 내가 알아서 할게.”

“그렇게 알고 있을 게.”


다음 날부터 앨런 포스터가 바빠졌다.

가장 먼저 수잔 베일리와 함께 B-List들의 오디션 일정을 조율했다.

처음으로 만난 배우는 영국 출신의 클리프 오웬이다.

영국 왕립드라마아카데미를 졸업한 이 배우는 연극무대와 영화를 오가며 배우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


다음으로 만난 배우는 데이빗 더멜.

피지컬이 매우 좋았다.

190Cm가 넘는 신장에 미식축구 선수다운 폼을 보여주었다.

현직 모델이어서 그런지 소위 ‘카메라발’을 잘 받았다.


“아쉬운 건 연기력.....”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어필했다.

그럼에도 연기 초보자 태를 벗지 못한 모습이다.


“<씬 레드 라인> 촬영은 모두 마친 겁니까?”

“지난달에 크랭크업 했습니다.”


선량한 옆집 미국형 같은 인상에 목소리도 근사했다.

패트릭 커비즐이 후보군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았다.

거장 테리 맬릭(Terry Malick)이 20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전쟁영화 <씬 레드 라인>은 모리스 메타보이가 직접 프로듀싱한 영화다.

오랜만에 팔을 걷어붙이고 영화에 전력투구했다.

다시는 전쟁영화에서 모을 수 없는 배우들이 다수 출연했다.

저스틴 펜의 경우는 출연료 1달러만 받겠다고 할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

예산 초과, 로케이션 촬영 문제, 편집권 등 우여곡절이 많은 영화다.

모리스 메타보이는 아카데미상에 대한 어떤 감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직접 영화를 챙겼으니까.

모리스 메타보이가 직접 챙기는 영화는 대체로 아카데미 노미네이트가 기본이다.

아무튼 패트릭 커비즐은 <씬 레드 라인>에서 주요한 배역을 소화했다.

그 외에도 비슷한 레벨의 배우들을 서너 명 더 만났다.

마지막으로 오디션을 본 배우는 윌리 워커(Willy Walker)다.

영화 한 편이 운명을 바꾼 배우다.

바로 <분노의 질주>의 브라이언 오코너다.

이전 삶에서는 <분노의 질주> 영화로 주짓수 무술에 입문하고, 자동차 광이 되었으며, 그 취미로 인해 안타깝게 짧은 생을 마감했던 비운의 배우였다.

이미 어린이 모델로 활동했다.

13살에는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했다.

류지호도 몰랐던 내용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윌리 워커는 남부 해변을 누비면서 수영과 서핑을 하며 자랐다.

꽃미남 타입이다.

그만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매력적인 미소가 트레이드마크다.

마초 이미지가 약해 할리우드 프로듀서들로부터 저평가를 받고 있었다.


“상의를 한 번 벗어봐 줄 수 있어요?”


훌렁.


윌리 워커는 아무렇지도 않게 훌렁 상의를 벗어버렸다.

까무잡잡하게 탄 그림 같은 근육들.

따로 몸을 만들 필요가 없어 보였다.

오디션이 끝나고 잠시 티타임을 가지며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인성까지.

좋은 배우가 좋은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좋은 사람은 언제가 좋은 배우가 된다.

연기력이나 스타성과 상관없는 문제다.

케이아누 립스, 윌리 워커 같은 일상에서도 좋은 사람은 배우로서 롱런할 수 있다.


‘왜 리치 슈왈츠버그같은 감독이 윌리를 점찍었는지 알겠어.’


리치 슈왈츠버그는 할리우드 베테랑 상업영화 감독이다.

<수퍼맨>, <리셀웨폰> 등 다수의 흥행영화를 연출했다.


‘밴도 나쁘지 않고, 윌리 워커도 좋고, 패트릭도 괜찮고.’


류지호는 좀처럼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밴틀리와 출연료 협상을 다시 하더라도 그를 기용하는 것이 정답이야.”


투자·배급사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애플렉을 밀었다.


“윌리 워커를 믿어보세요. 그는 분명히 뜰 겁니다.”


캐스팅 디렉터 수잔 베일리가 강력히 추천했다.

실제 윌리 워커와 미팅을 해본 잭 워든과 앨런 포스터 역시 수잔 베일리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할리우드에서 캐스팅 디렉터는 촬영·편집과 맞먹는 주요 스태프다.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흥행이 크게 좌우되는 것이 영화다.

감독이나 제작자가 최종 결정권을 갖지만, 주연급의 에이전트와 제작자를 연결해 주는 것은 캐스팅 디렉터의 중요한 업무다.

게다가 주인공과 어울리는 주조연급 및 단역의 톤 앤 매너까지 맞추는 것은 오로지 캐스팅 디렉터의 역량이다.

일찍부터 캐스팅 디렉터들은 전문화, 기업화하여 미국캐스팅협회(CSA)를 중심으로 서로 경쟁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여러 스타들을 거느린 에이전트들과 캐스팅 디렉터들의 커넥션이 할리우드의 연예산업을 이끌어가는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팽창하던 1940년대 이후 '캐스팅 카우치' 라는 말이 등장했다.

스타지망생들이 제작자나 감독의 사무실 소파(카우치)에서 성(性)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배역을 따내는 것을 뜻한다.

현재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하비 웨인스타인 같은 작자가 버젓이 활보하는 것이다.

심지어 수잔 베일리까지 류지호에게 <Remo> 여자주인공 배역을 놓고 넌지시 '캐스팅 카우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디렉터 류, 그녀들도 원하는 거랍니다. 동의 없이 하는 섹스는 강간이고 폭력이지만, 그녀들이 원해서 하는 잠자리는 범죄가 아니에요.”

“배역이 걸려 있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디렉터 류는 많은 할리우드 여배우의 먹잇감이에요. 당신과 자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게 말이야 방귀야 하겠지만.

류지호가 처한 현실이다.

일단 부자다.

그것도 평범한 부자도 아닌 억만 장자다.

젊다.

키 작고 앞니 튀어나오고 치아가 고르지 않은 못난이 동양남자가 아니다.

오히려 훤칠한 신장에 꾸준한 운동으로 몸매까지 좋다.

옷걸이가 좋으니 스타일이 산다.

심지어 할리우드에서 권력도 가지고 있다.

업계 평판도 좋은 편이다.

주변에 여자가 꼬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그러니 ‘게이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이고.


“나는 여자 무지 좋아합니다.”

“호호호. 알아요. 디렉터 류가 게이가 아니란 걸.”

“암튼, 잠자리를 대가로 배역을 주지는 않을 겁니다.”


수잔 베일리도 진지하게 제안한 것은 아니다.

감독들과 일할 때마다 의례적으로 하는 루틴 같은 거다.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캐스팅 카우치‘를 입에 담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 하니까.

수잔 베일리 입장에서 더럽고 역겨워도 어쩌랴.

그 또한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한 부분인 걸.


“혹시 여자와 잠자리를 안 하는 이유가 디렉터 류가 수련하고 있는 무술과 관련이 있나요? 섹스를 하면 몸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간다던가.....”


류지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요? 하하하.”


수잔 베일리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마샬아츠에 포스라는 게 있다면서요?”

“수잔만 알고 있어요. 내가 수련하는 무술에는 37가지 방중술이 포함되어 있어요. 무려 37가지 방법이랍니다.”

“예? 거짓말!”

“사부로부터 어릴 때부터 특별히 전수를 받았죠. 그래서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거랍니다. 쾌락이 고통으로 변할 수도 있어서.”


개소리다.

37가지 방중술은 신안주의 달인 치운이 알고 있다.

제자인 레모 윌리엄스에게조차 전수하지 않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신안주 방중술.

사실 원작소설 어디에도 방중술이 묘사되어 있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에 새롭게 리뉴얼 된 시리즈에서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온다.

오리지널에서는 치운이 제자 레모를 괴롭히기 위해 마비시키는 용도로 점혈수법을 썼다면, 여성을 점혈수법으로 황홀경에 빠지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킥킥.


짓궂게 웃는 류지호를 보며, 그제야 수잔도 장난임을 깨달았다.


“정리해 볼까요? MI6 요원에 와츠양 혹은 마리아 두 명으로 좁혀진 거지요?”

“앨리나가 영국식 억양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지 오디션을 봐야겠죠.”

“제가 몇 명 추천해도 되겠어요?”

“물론.”

“두 명만 오디션 봐 줘요.”

“문제없어요.”


결국 류지호는 <Remo : The Destroyer> 캐스팅을 결정하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그리고 연초부터 한국으로부터 비보가 전해졌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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