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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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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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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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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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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페가수스는 계속해서 날아오를 겁니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어느새 11월로 접어들었다.

최종 스크립트가 넘어온 후로 류지호는 벨에어 집에 처박혀서 슈팅스크립트 작업을 했다.

의장실로 출근하지 않자 프로듀서 앨런 포스터와 잭 워든이 집으로 찾아왔다.


“기획팀은 빼고 우리만 왔어.”

“어서 와.”


류지호가 현관까지 나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앨런 포스터가 능청을 떨었다.


“빈손으로 왔다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업무차 왔는데, 무슨..... 들어가자.”


류지호가 두 사람을 거실로 안내했다.

거실에 앉자마자, 가사도우미 에이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실 거 뭐로 준비할까요?”

“따뜻한 차로 하지.”

“난 그냥 콕. 얼음 많이.”

“홍차, 레몬차, 녹차, 홍삼차가 있습니다.”


에이미가 한국어로 ‘홍삼차‘라고 발음하자 앨런 포스터가 물었다.


“홍삼차?”

“Red ginseng으로 만든 차에요.”

“아, ginseng!”

“홍삼이 면역력과 혈액순환 등에 효과가 있대요.”

“한 번 맛볼 수 있겠나?”

“마스터도 홍삼차로 하시겠어요?”

“고맙지만, 난 커피가 좋아요.”

“네.”


에이미가 마실 것을 준비하러 사라지고, 앨런이 가방에서 두툼한 서류뭉치를 꺼냈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종이 뭉치를 류지호 앞에 놓았다.

류지호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몽블랑 만년필을 꺼냈다.


“변호사 없이 사인해도 되겠어?”

“이미 계약사항 문구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검토했던 거잖아. 보너스 계약만 추가 됐을 뿐인데 뭘.”


이전 계약서에는 러닝개런티 조항이 없었다.

이번에 추가하기로 했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에서 먼저 계약을 건의했다.

류지호에게 돈을 더 챙겨주려는 배려가 아니다.

좀 더 막중한 책임감과 욕심을 갖길 바란다는 일종의 압력행사다.


“어차피 트라이-스텔라도 Jay의 것인데 무슨 상관이야?”

“그렇긴 하지.”


슥삭.


류지호는 깔끔하게 새롭게 만들어진 연출계약서에 서명했다.

톱스타 못지않은 유명세를 누리는 감독들도 상당히 많다.

바로 떠오르는 이름이 스티븐 아들러, 리드 스콧, 제이미 캐머론 등이다.

말이 필요 없는 A-list 감독들이다.

그들의 몸값은 톱배우 몸값의 기준인 1,000만 달러에 육박한다.

유명세로는 앞 서 언급한 감독들에 밀릴지는 몰라도 <아폴로13>의 빌 하워드 감독 역시 편당 1,000만 달러를 받는다.

A급 중에서도 A급 감독.

바로 스티븐 아들러다.

그는 연출료로 1,000만 달러를 받는데, 여기에 러닝개런티까지 더 받는다.

게다가 자신의 영화는 E.T Entertainment에서 제작까지 겸하고 있다.

자신의 영화를 찍을 때마다 ‘따따블‘로 수입을 거둬왔다.

사실 할리우드 A급 감독이라도 영화 규모에 따라서 연출료를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리드 스콧 감독은 7,000만 달러 이상 영화에서는 1,000만 달러 가까이 받는다.

5,000만 달러 미만 예산의 영화에서는 300만 달러로 만족하고 있다.

물론 리드 스콧은 기본적으로 대작만 작업한다.

그렇기에 300만 달러 연출료는 극히 드문 경우다.

감독에게 직전 연출작의 흥행성적은 당연히 연출료 계약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할리우드 영화감독의 연평균 수입은 50만 달러에 겨우 턱걸이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제작자나 배우보다 감독이 한 번에 집중할 수 있는 영화 작업 수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큰 액수는 아니다.

극단적인 부익부 빈익빈을 보여준다.

류지호의 <Remo : The Destroyer> 연출료는 100만 달러.

이번 달 환율로 12억 원이다.

이 당시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연출료를 받는 감독은 강은석, 양성규다.

강은석 감독의 경우 2억 원의 연출료를 제의받기도 했는데, 이를 거절하고 무비서비스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터커는 얼마 받기로 했지?”

“15만 달러.”


충무로에서 제1조감독이 정말 많이 받으면 1,500만 원이다.

비교해 터커 레이튼이 받는 액수는 엄청난 수준이다.

터커 레이튼이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전문 조감독이긴 하지만.


“세컨 유닛 감독 계약규모는?”

“이번 영화에서는 23만 달러.”

“나쁘지 않네.”


당연한 말이지만, 대작 영화의 조감독이나 세컨 유닛 감독은 아무나 채용하지 않는다.

그런 돈을 받을 만큼 유능한 이들과 계약한다.


“차 다 마셨으면 갈까?”


류지호가 두 프로듀서를 지하의 영화감상실로 데리고 갔다.

아예 문까지 걸어 잠갔다.

방음시설이 잘 된 공간이라 보안을 요하는 대화를 나누기 안성맞춤이다.

한 시간 가량 그 곳에서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조율했다.

주로 주인공에 관한 조율이다.

최종고가 나오기 전까지 JHO Pictures 내부에서 입에 오른 배우들로는 브래들리 피츠, 케이아누 립스, 벤틀리 애플렉, 해리슨 노튼, 매트 데이만, 모리스 월버그 등이다.

류지호의 생각은 달랐다.

데이빗 더멜(모델), 윌리 워커(신인), 패트릭 커비즐, 클리프 오웬(신인) 등을 후보에 올렸다.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까지 덜 알려진 배우 위주로 골랐다.

물론 21세기에는 모두가 스타가 되는 배우들이다.


“케이아누와 매트는 일단 빼고.”

“왜? 두 사람도 역할에 썩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케이아누는 <매트릭스>와 겹치고, 매트는 아직 샌님 이미지가 있어.”

“...흠.”

“모리스 월버그도 빼고 싶어.”

“잠재력이 있는 배우야.”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소문이 있어. 말썽꾸러기라며?”

“소문일 뿐이야. 언제부터 그런 걸 믿었다고.”


잭 워든이 끼어들었다.


“걔 아버지도 한국전 참전용사일걸?”

“어릴 때 아버지와 헤어졌다며?”


그것까지는 알지 못하는 잭 워든이다.


“암튼, 모리스 월버그도 패스!”

“......!”

“해리슨은 브래들리와 함께 핀처의 다음 영화를 계약할 것 같아.”

“그렇게 다 빼면 남는 건 죄다 신인들이잖아.”

“애플렉이 있지.”

“밴틀리도 히어로 마스크가 썩 잘 어울릴 것 같네.”


그 때문에 <데어데블> 출연이 논의되고 있긴 했다.

서구권 미남 기준인 사각턱과 선굵은 하관이 히어로 마스크에 썩 잘 어울렸으니까.

잭 워든이 잔뜩 인상을 구겼다.


“5,000만 달러짜리 영화에 검증되지도 않은 신인을 기용하겠다는 거야?”


류지호는 감독이기도 하지만, 투자자이자 제작자다.

자기 돈으로 영화를 찍는 셈이다.

전액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니 토를 달기 쉽지 않다.


“두 사람은 당연히 브래들리 피츠나 벤틀리를 원하겠지?”

“케이아누까지 포함해서.”


데이빗 더멜은 현재 모델 활동을 하며 TV시리즈에 출연 중이다.

대학 때까지 미식축구 선수를 해서인지 피지컬이 매우 좋다.

류지호의 기억 속에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캡틴 역할을 했던 배우다.

패트릭 커비즐은 단역과 조연으로 활동 중이다.

곧 주연급으로 올라서게 된다.

참고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찍게 된다.

윌리 워커는 청춘 영화풍의 영화에서 조연으로 간간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브라이언 오코너가 류지호의 기억 속에 단단히 박혀 있다.


“혹시 에이전트와 접촉해 봤어?”

“밴틀리와 케이아누 에이전트에게는 운을 띄워봤지.”

“뭐래?”

“케이아누는 스크립트조차 받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 도대체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 짓도 안 했어.”


케이아누 립스는 <스피드2>와 <매트릭스> 두 편의 액션영화를 연달아 했다.

성격상 차기작은 완전히 다른 장르의 영화를 하려고 할 터.


“벤틀리는?”

“에이전트에게 스크립트를 줘보라고 하더군.”

“검토해 보겠대?”

“스크립트가 문제겠어? 계약금이 중요하지.”

“그와 계약하려면 <아마게돈> 끝나자마자 서명하게 만들어야 해.”

“그렇겠지. 최소 스턴트 준비에 3개월이 필요할 테니까.”

“밴틀리라.....”


애매했다.

밴틀리 애플렉은 브래들리 피츠나 케이아누 립스처럼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는 아직 아니다.

비슷한 연령대에서는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는 배우이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원톱으로 힘들다.

든든한 중견 배우가 받쳐줘야 한다.


“Moe가 브래들리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

“해보기 전에는 모르지.”

“굉장히 과격한 액션을 소화해야 하는데, 하고 싶어 할지 모르겠네.”

“네가 생각하는 수준을 소화할 배우는 할리우드 A-List에는 없어. B-List로 내려가게 되면 예산을 줄여야 하고.”

“웨스나 반담?”

“응.“

“두 사람은 한계가 명확해. 시리즈를 끌고 갈 수 없어.”

“웨스는 인종으로도 맞지 않지.”


앨런 포스터가 김칫국을 시원하게 들이키는 두 사람을 타박했다.


“박스오피스 폭탄을 터트릴지도 모르는데, 시리즈를 생각하는 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 류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브래들리가 하겠다고 해도 문제가 있어.”

“출연료?”

“아니. 스크립트를 고치자고 할 게 뻔 하잖아.”

“내가 알기로 그 친구는 신사야.”

“매너 문제가 아니라, 그가 내 영화의 마샬아츠 콘셉트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

“계약서에서 서명 하는 순간 끝날 문제야.”

“그렇긴 하지만.”

“일단 두 사람에게 스크립트를 전달해 볼게.“

“그럼 A-List는 그 둘로 하고, 그들이 협상의 여지조차 없다싶으면 남은 신인들 오디션 보는 걸로.”

“감독이 투자까지 하니까 의견조율이 간소하군.”


잭 워든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트라이-스텔라에서도 이렇게 해?”

“그럴 리가 없잖아.”


앨런 포스터가 웃으며 부연설명했다.


“GARAM과 G&P 영화펀드가 메인이긴 하지만, 다양한 자금들이 들어와서 기획 단계부터 서로 자기 주장하기 바빠.”


그렇다고 해도 최종 결정은 언제나 모리스 메타보이가 한다.

류지호의 영화선택권리 다섯 장에 대해서도 다른 투자자들이 간섭을 못하고.


“암튼 캐스팅이 B-List로 내려가면 3,000만 달러 규모로 하향 조정될 수도 있으니까, 그것도 염두에 둬.”


류지호가 돈을 다 대겠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스튜디오 시스템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세밀하게 분업화, 규격화 되어 있다.

저예산, 중저예산, 중예산, 고예산 각각 배급 및 마케팅이 연계가 되어 있다.

5,000만 달러 고예산 영화의 첫 주 스크린 숫자와 3,000만 달러의 중저예산 영화의 스크린 숫자는 최대 두 배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광고홍보 전략까지 달라진다.


“알겠어.”

“자, 다음은 여자주인공. 누구로 하고 싶어?”

“마리아도 괜찮고, 앨리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마리아 베리는 알겠는데 앨리나는 누구지?”

“디렉터 즈웍의 <Collapse>에 출연했던 친구야.”

“혹시 <옥수수밭의 아이들>에 출연한 호주 출신 여배우?”

“맞아.”


잭 워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납득한 것 같지 않지만, 딱히 토론을 이어가진 않았다.


“한국인 마스터는 순탁 오일 테고, CURE의 새로운 담당자는?”


C.U.R.E는 법으로 제재할 수 없는 악당을 처리하는 비밀기관이다.

원작소설에선 존 F. 케네디가 조직했으며, 오직 대통령만 그 존재를 안다.

당연히 공식 회계에 잡히지 않는 검은 예산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새로운 담당자는 전임자에게 구두로만 모든 사항을 전달받는다.

조직이 드러날 위기상황에 처하면 사고로 위장해 자살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여러모로 비밀 유지에 최선을 다한다는 설정이다.

레모 윌리엄스는 오로지 담당관하고만 접선한다.

때문에 조직의 규모나 정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언젠가 그 정체가 밝혀질 수도 있겠지만.


“샘 L 잭슨이 맡아줬으면 좋겠어.”

“<네고시에이터>를 계약했을 걸?”

“맞아. 리젠시에서 제작하지. 스케줄만 맞으면 계약할 거야.”


샘 L 잭슨은 다작 배우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영화를 선택하진 않지만.


“빌런은?”

“크리스 워컨에게 의사타진을 해봐.”


<디어 헌터>의 유명한 러시안 룰렛 장면의 주인공 크리스 워컨(Chris Walken) 역시 무지막지한 다작배우다.

샘 L 잭슨과 차이는 작품을 안 가린다는 점이다.

출연료와 스케줄만 맞으면 출연하는 편이다.


“워컨씨라면.... 좋을 것 같군.”

“그리고 프레디 워드씨에게 특별 출연을 해달라고 부탁해줘.”

“워드씨를? 그는 이제 레모를 하기에는 너무 늙었어.”

“영화 첫 장면에 등장했으면 좋겠어.”

“아, 프레디가 젊게 분장해서 영화 도입부에서 헬기와 추락하면서 새로운 인물로 외모가 바뀌지?”

“시리즈가 중단된 것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 속편이 만들어지길 학수고대했대.”

“차라리 네가 메타보이 회장과 함께 만나보는 것이 어때?”


앨런 포스터의 의견에 류지호가 적극 동감했다.


“듣고 보니 그게 좋겠네. 좋은 생각이야.”


모리스 메타보이가 오라이언 픽처스에 있을 때 개발했던 프로젝트다.

함께 식사하면서 추억팔이 좀 하다보면 의외로 쉽게 허락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주요 스태프는 앨런과 충분히 의논한 걸로?”

“응.”


촬영은 UCLA 출신 레이먼드 쿤디.

<The Killing Road>로 인연을 맺은 마이크 리바가 프로덕션 디자이너.

그는 현재 <하드 레인>을 작업하고 있다.

영화음악은 <타이타닉>의 음악감독 로이 호너(Roy Honer).

의상은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작업한 안나 로스(Anna Roth).

그 외에도 <The Killing Road>와 <Escape> 스태프 다수가 참여할 예정이다.

스턴트 코디네이터는 당연히 Vic & jay.

세컨 유닛 연출 감독은 스펜서 베어드가 합류하기로 했다.

그는 편집까지 동시에 맡게 된다.


“난 내일부터 콘티를 하기 위해서 Vic & Jay로 출근할 거야.”

“캐스팅도 안 되었는데, 벌써 일을 시작하려는 거야?”

“잘되겠지. 안 그래 앨런?”

“그래야지. 디지털 영화로는 우리 모두 굶어 죽어.”


앨런 포스터의 앓는 소리를 무시하고 류지호가 영화감상실 문을 열어젖혔다.

2시간 만이다.

지하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하자 샤니스가 냉큼 달려왔다.


“저녁 식사 준비되었습니다. 손님들께서는 손 씻고 다이닝룸으로 오세요.”


두 프로듀서는 푸짐한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다.

식사 내내 캐스팅과 관련된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할리우드에서 주인공 캐스팅은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까지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례.

보안이 극도로 요구되는 사안이다.

때문에 지하에서 숨어서(?) 캐스팅 회의를 한 것이기도 했고.


“마스터 치운의 분량을 줄인 건 잘한 거야.”


잭 워든의 칭찬에 류지호는 어깨를 잠시 으쓱할 뿐.

<Remo : The Destroyer>에서 한국인 캐릭터 치운의 분량이 오리지널에 비해 대폭 줄어들었다.

레모 윌리엄스와 함께 버디를 이루지는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백인이 아닌 인종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둔 예가 거의 없다.

<베벌리힐스 캅>과 <나쁜 녀석들> 정도다.


“사실 <나쁜 녀석들> 시리즈의 성공은 상당히 이례적이야. 왜냐하면 주인공들이 모두 흑인이었으니까.”


잭 워든의 말을 앨런 포스터가 받았다.


“흑인 배우들을 기용해서 흑인 관객들을 겨냥해 만들어지는 블랙스플로네이션 영화라면 당연히 저예산으로 B급 영화를 만들어야 하겠지. 어쩌겠어, 그것이 현실인 것을. 북미와 유럽 관객의 대부분을 백인이 차지하고 있고 그들은 유색인종이 주인공인 영화를 외면하니까.”

“레온의 배짱은 알아줘야 돼. 경찰 버디 무비를 그것도 고예산 영화에서 주인공 둘을 흑인으로 짝을 지을 생각을 하고.”


일반적으로 버디 무비에서는 흑백을 섞어놓는 것이 흥행에 도움이 된다.


“그게 끝이 아니지, 주인공이 연애를 하는 여자까지 흑인으로 만들어 놓았잖아.”

“더구나 그들이 잡아야 할 악당, 마약상의 대부가 오히려 백인이야.”


잭 워든이 킥킥거렸다.

흑인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전통적인 할리우드 흥행법칙을 교묘하게 뒤집으면서 반란을 시도한 그 배포 때문이다. B-Movie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고예산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모험이었다.

동양인이 흑인의 자리를 꿰차는 건 성급했다.

애석해도 할 수 없다.

<나쁜 녀석들>의 기획과 연출을 류지호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었다.

짧게 끊어 치고 가는 감각적이고 속도감 있는 편집까지.

또 동양적 액션 연출을 서양인의 체격에 맞춰야 한다.

서양인들에게 익숙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코드를 잘 버무려야 한다.

류지호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액션영화 스타일을 꿰고 있다.

특유의 감각적 연출 스타일이 거대물량의 지원을 받아 마음껏 날개를 펼친다면, 신나는 오락 액션영화가 나올 확률이 높았다.

이런 오락 액션영화는 그냥 즐기면서 보면 된다.

관객들이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하품을 하며 시계를 자주 보거나,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날린다면 실패한 거다.

클라이맥스에서 도시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폭발음이 연신 터져야 하고, 화려한 자동차 추격신 등 볼만한 장면들을 도처에 박아 놓고, 지루하다고 투정거릴 틈이 없이 몰아붙이는 영화.

지적인 부분은 두 번째 문제다.


“부제목 그대로. 디스트로이어. 난폭하고 사정없이 파괴하고 때려 부수는 영화가 나오려나....?


주인공과 메인 스태프의 계약금이 예산의 절반에 달하면 불가능할지도.

할리우드라고 해서 제작비에 여유로울 순 없다.


❉ ❉ ❉


겨울로 접어들고 있지만, 캘리포니아는 여전히 가을 날씨처럼 선선했다.

11월 14일 저녁 7시.

할리우드 거리 초입에 위치한 차이니즈 극장.

<타이타닉>의 월드 프리미어가 성대하게 열렸다.

공동제작자(프로듀서)인 류지호가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리무진을 타고 극장 앞에 도착했다.


‘이 동네도 하도 자주 오다보니 이젠 별 감흥이 없네.’


류지호가 피식 웃으며 차이니즈 극장 앞 인도와 길 건너편에 운집한 팬들을 눈으로 훑었다.

스타의 거리.

일명 ‘명예의 거리‘는 차이니즈 극장을 시작으로 2Km에 이른다.

실제로 와보면 상상했던 것보다 소박하다.

인도 역시 그리 넓지 않다.

차이니즈 극장이 영화인뿐만 아니라 영화팬들에게 유명한 이유는 대략 두 가지.

첫째가 거의 모든 할리우드 영화가 이 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 행사를 연다는 것.

두 번째는 극장 앞바닥에 할리우드 스타의 핸드 프린팅이 있다는 것이다.

이 거리에 최초로 핸드프린팅을 남긴 동양인을 응위쌈으로 알고 있고, 배우로는 안중기, 허병인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 보다 훨씬 앞서 이 거리에 핸드 프린팅을 남긴 동양인 배우가 있다.

바로 필립 안이다.

안중기 배우가 자신의 아들 이름을 필립이라고 지을 정도로 무척 존경했던 한국인 출신 할리우드 배우.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이시다.

영어 이름이자 한자이름인 필립(必立)에는 ‘우리나라가 반드시 독립해서 일어서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필립 안은 1936년부터 70년대까지 할리우드 영화 170여 편에 출연했다.

1972년에는 ABC 방송 TV시리즈 <쿵후>에서 마스터 칸이라는 중국무술가 역을 맡아 크게 인기를 얻어서 TV부문 최고상인 에미상을 받기도 했다.

필립 안은 미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교포2세다.

한국계 시민권자 1호이기도 했다.


“핸드 프린팅의 유래를 아나?”


모리스 메타보이가 레드카펫에 발을 디디며 물었다.


“프리미어에 오던 여배우가 시멘트 양성중인 근처 공사장에 넘어져 손자국이 생긴 것에서 유래했다는 거요? 그걸 기념해서 보관하던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던데. 근데 그 여배우는 누구예요?”

“나도 몰라. 정식행사에서 손도장을 찍은 사람은 알고 있지만.”

“누군데요?”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시니어, 노마 태머지, 메리 피크포드.”

“모두 할리우드 초창기의 슈퍼스타들이네요?”

“그런 거지.”

“Moe는 이 거리에 이름을 새겼어요?”

“곧 새겨지겠지.”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레드카펫을 걷자.


찰칼찰칵.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이어서 <타이타닉>에 참여한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질서 없이 극장 쪽으로 걸어갔다.

레드카펫 안쪽은 포토라인이 처져 있다.

반대편은 차도다.


“지호!”

“여기 좀 봐줘요!”


길 건너편에 운집해 있는 팬들이 소리쳤다.


툭.


모리스 메타보이가 류지호의 어깨를 부딪쳤다.


“촌놈처럼 굴지 말고, 팬들을 위해 손 한 번 흔들어줘.”


류지호가 길 건너를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UCLA에 다닐 때는 파라라치 빼고는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졸업 후 공식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다 보니 제법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포토라인 안쪽에 방송사 ENG 카메라 수십 대가 뻗쳐 있다.

영화에 대한 관심만큼, 거의 모든 매체가 다 모인 것 같았다.

마이크들이 포토라인 너머 레드카펫으로 무수히 들어와 있다.

레드카펫을 지나는 배우나 샐럽들은 마음에 드는 질문이나, 평소 안면 있는 기자의 질문에 자유롭게 대답했다.

류지호와 모리스 메타보이 역시 트라이-스텔라에 우호적인 NBC의 숀 레밍스 기자가 내민 마이크 앞에 잠시 멈춰다.


- 미스터 류, <타이타닉>에 무려 1억 5천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고 들었는데,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습니까?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습니까?


실제 <타이타닉>의 최종 예산은 2억 7천만 달러다.

시작할 때 1억 8천만 달러로 예상했던 것을 아득히 뛰어넘어버렸다.

1996년 4월 촬영을 시작해서 우여곡절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올해 여름 시즌 개봉을 목표로 했었다.

컴퓨터 그래픽 완성도 때문에 겨울 시즌으로 개봉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도 없습니다.”

- 메타보이씨는 어땠습니까?

“난 디렉터 캐머론과 우리 배우들을 믿습니다.”

- 미스터 류, <Remo : The Destroyer>는 브래들리 피츠가 하게 됩니까?

“오늘밤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에요. <타이타닉>에 집중해 주세요.”

- 지난 달 도쿄에서 공개된 영화에 대한 반응이 그리 뜨겁지 않은데 어떻게 봅니까?


<타이타닉>은 미국에 앞 서 일본에서 먼저 공개됐다.


“나는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곧 놀라운 박스오피스 결과를 목격하게 될 겁니다.”

- 2억 달러가 넘는 예산이 소요되었는데, 만약 영화가 실패한다면 미스터 류가 지금까지 성공한 모든 커리어를 잃을지도 모릅니다.

“페가수스는 아직 땅에 내려와 쉴 때가 아닙니다. 만약 숨고르기를 해야 한다면 록키산맥 정상에서 잠시 내려앉을 겁니다. 나의 페가수스는 아직 구름 너머를 구경도 못했습니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의 로고인 하얀 페가수스를 빗댄 말이다.


- 지금까지 얻은 결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만족이란 없습니다. 나의 페가수스는 계속해서 날아오를 겁니다.”


두 사람은 수많은 기자들의 마이크 사이에서 적당한 질문을 골라 인터뷰를 해주었다.

배우는 물론 관계자들 모두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계약서에 영화홍보 조항을 깐깐하게 삽입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배우들이 매우 열정적으로 미디어에 <타이타닉>을 어필했다.

워낙 대작이다 보니 관계자 모두 사활을 건 듯한 모습이다.


작가의말

90년대 신인감독에게 블록버스터를 맡길리도 없었겠지만, 주인공이 받게 된 연출료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게다가 공동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따로 또 계약금을 받습니다. 심지어 러닝개런티도 받게 됩니다. 흥행에 성공만 하면 주인공은 첫 블록버스터에서 평생 먹고살 돈을 벌게 되는 겁니다. 물론 주인공은 이미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수퍼리치였지만..... 암튼 예산 5천만 달러짜리 고예산 영화에 신인급들을 많이 기용하지만 그럼에도 인건비가 후덜덜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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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왕족만이 왕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10 22.12.12 4,249 147 27쪽
363 The Destroyer. (13) +7 22.12.10 4,149 145 26쪽
362 The Destroyer. (12) +9 22.12.10 3,783 127 26쪽
361 The Destroyer. (11) +9 22.12.09 3,925 146 28쪽
360 The Destroyer. (10) +9 22.12.09 3,758 124 27쪽
359 The Destroyer. (9) +9 22.12.08 3,932 143 28쪽
358 The Destroyer. (8) +14 22.12.08 3,769 132 26쪽
357 The Destroyer. (7) +9 22.12.07 3,945 144 25쪽
356 The Destroyer. (6) +10 22.12.07 3,830 131 25쪽
355 The Destroyer. (5) +9 22.12.06 4,094 141 26쪽
354 The Destroyer. (4) +8 22.12.06 3,904 132 27쪽
353 The Destroyer. (3) +8 22.12.05 4,006 142 21쪽
352 The Destroyer. (2) +7 22.12.05 4,025 121 25쪽
351 The Destroyer. (1) +12 22.12.03 4,349 146 26쪽
350 위험으로 내몰지도 않을 테니 걱정 마.... +8 22.12.02 4,311 137 26쪽
349 WaW는 아주 살판났네! +8 22.12.01 4,429 141 28쪽
348 나는 세계의 왕이다! (3) +8 22.11.30 4,230 145 22쪽
347 나는 세계의 왕이다! (2) +11 22.11.29 4,230 160 24쪽
346 나는 세계의 왕이다! (1) +13 22.11.28 4,323 153 24쪽
345 구차하지 맙시다. (3) +12 22.11.26 4,344 141 30쪽
344 구차하지 맙시다. (2) +10 22.11.25 4,274 132 26쪽
343 구차하지 맙시다. (1) +8 22.11.24 4,272 135 25쪽
342 아리랑 겨레. (3) +11 22.11.23 4,256 131 24쪽
341 아리랑 겨레. (2) +4 22.11.22 4,165 149 22쪽
340 아리랑 겨레. (1) +11 22.11.21 4,291 151 25쪽
339 일단 눈앞에 닥친 것부터..... +14 22.11.19 4,422 145 33쪽
338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6 22.11.18 4,271 147 26쪽
337 페가수스는 계속해서 날아오를 겁니다! (2) +6 22.11.17 4,258 147 28쪽
» 페가수스는 계속해서 날아오를 겁니다! (1) +13 22.11.16 4,332 150 24쪽
335 스파이영화의 전통을 망치지 않기를..... +11 22.11.15 4,338 152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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