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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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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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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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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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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The Destroyer.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LA에서 남쪽 방향에 위치한 해안마을.

LA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샌피드로 항이 있다.

샌피드로 항 인근의 바닷가에 있는 Angel's Gate 공원에는 태평양을 배경으로 한국 전통 기와지붕의 종각이 한 채 세워져 있다.

바로 우정의 종각(Korean Bell of Friendship)이다.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해 우리나라 정부가 선물한 종각이다.

매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8월 15일 대한민국의 광복절, 그리고 12월 31일 자정에 미국인과 한국인이 같이 타종식을 한다.

인적없이 적막한 종각 주변을 일단의 무리가 둘러보고 있다.

류지호와 <사라예보> 헤드 스태프들이다.

로케이션 매니저 험프리가 추천한 장소 가운데 한 곳이었다.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와 본 것은 처음이야.”


광활한 언덕에 종각만 덩그러니 하나 세워져 있다.

디렉터스 뷰파인더로 이리저리 궁리해 봐도 그림이 별로다.

촬영감독 레이먼드 쿤디 역시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레모와 치운이 이곳에서 무술 수련하는 장면을 몇 쇼트 찍어놓고 싶다는 거지?”

“대단한 건 아니고. 타이틀백에 쓰일 몇 쇼트 정도....”

“태평양 방향으로 깎아지른 절벽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레이먼드 쿤디는 헬기를 띄워 항공촬영을 궁리하는 것 같았다.

류지호는 그 정로도 장면에 힘을 줄 생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우정의 종각을 중심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찰칵찰칵.


레이먼드 쿤디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한편 프로덕션 디자이너 마이크 리바는 미니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조수가 따라다니며 마이크에게 컬러를 보여줬다.


절레절레.


마이크 리바는 조수가 제시하는 컬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험프리는 앨런 포스터와 주로 대화를 나눴다.


“해가 어느 방향으로 지는 거야?”

“오른쪽.”


석양 장면도 별로 아름다울 것 같지 않았다.

우정의 종각이 위치한 언덕이 남쪽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CG가 있잖아.”


영화 제목과 메인 크루가 소개되는 타이틀백 또한 영화의 오프닝시퀀스 못지않게 중요하다.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 대부분은 전문 업체(주로 광고업체)가 작업한다.


“촬영본 보고나서 돈을 바를 만하다 싶으면 결정하는 걸로.”

“알겠어.”


류지호는 미리 작업해 두었던 콘티북을 꺼냈다.

종각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떠오르는 아이디어들로 콘티북 여백을 채워 나갔다.

로케이션 헌팅 첫 날은 우정의 종각을 중심으로 샌패드로, 롱비치, 토런스 지역에서 험프리가 추천하는 장소들을 둘러봤다.

LA 지역을 확인한 후에는 오하이오주의 데이턴으로 이동했다.

보스니아 내전의 종전협정이 체결된 라이트 패터슨 공군기지를 둘러봤다.

실제 협정이 체결된 장소에서 촬영할 것은 아니다.

각종 자료화면 등을 구해서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모두 확인한 바 있다.


“요식행위는 아니지.”


앨런 포스터의 말에 류지호가 뒤를 돌아봤다.

다큐멘터리팀이 쫓아다니며 류지호와 관계자들의 모습을 화면에 담고 있다.

케이블채널에 팔아먹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면서 최종적으로 DVD 부록에 포함될 영상을 찍고 있다.

류지호가 미 서부에서 남부를 거쳐 동부 그리고 국경을 넘어 캐나다까지 둘러보는 행위는 로케이션 헌팅인 동시에 또 다른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이다.


❉ ❉ ❉


로케이션 헌팅의 최종 목적지는 오스트리아다.

북미에서는 직항노선이 없어 독일을 경유해서 비엔나로 날아왔다.

유럽데이터리서치(EDR)가 선정한 유럽에서 가장 깨끗한 공항답게 비엔나 공항의 시설은 나쁘지 않았다.

도심과도 18Km 정도 떨어져 있어 가까운 편이다.

관광할 만한 랜드마크가 타 유럽국가에 비해 부족한지라 국가 자체의 인지도나 관광객이 적은 나라다.

이 시기만 해도 아시안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어쨌든 JHO Company 오너가 처음으로 동유럽으로 출장을 왔다.

JHO 독일 지사장과 Pinkerton Corp. 유럽지부장이 비엔나까지 찾아와 류지호를 맞이했다.


"뭐하러 지사도 없는 곳까지 왔어요?"

"컨벤션 이후 보스를 뵐 기회가 없지 않았습니까?"


JHO Company의 VVIP가 유럽에 나타나자 비상이 걸렸다.

동유럽에 흩어져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대원들이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집결했다.

Pinkerton Corp.의 동유럽 직원들이 모여들자, 오스트리아는 물론 독일 정부의 정보기관까지 연유를 알아보기 위해 본사로 급하게 연락을 취할 정도였다.

암튼 비엔나 공항에서 류지호 일행을 맞이한 JHO 관계자가 서른 명에 달했다.

류지호가 40대 후반의 건장한 남자에게 물었다.


“파벨이 대원들을 지휘하고 있습니까?”

“네, 보스! 제가 러시아를 제외한 동유럽 전체 지사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미국인 파벨 노보트니(Pavel Novotný)는 Pinkerton Corp. 동유럽을 총괄하는 책임자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일명 ‘폭풍작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군출신 직원이다.

참고로 미국은 발칸반도 내전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꼈다.

때문에 미 국무부는 크로아티아군에 민간군사기업(PMC)을 알선해 주었다.

그로 인해 크로아티아 군대의 훈련을 MPRI라는 업체가 맡게 되었다.

이 업체 구성원들 상당수가 미군의 전직 고위 장성 출신들이다.

그 때문에 미군 출신으로부터 훈련을 받은 크로아티아군은 NATO의 교리 체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때 파벨은 MPRI의 교관자격으로 크로아티아군을 훈련시킨 바 있다.

발칸반도 출신의 이민가정 자녀로 미육군에서 복무한 후, 민간군사기업에서 일하다가, Pinkerton Corp.에 스카우트되어 정착, 실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류지호는 대기하고 있던 경호의전차량을 타고 비엔나 시내로 향했다.


“동유럽에 파견 나와 있는 직원이 많습니까?”

“미국 국적의 직원은 많지 않고 주로 현지채용을 하고 있습니다.”


유럽에 파견 나와 있는 JHO 직원들은 주로 영화와 금융사업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Pinkerton Corp.은 파견 직원 및 가족과 현지 임원 경호를 담당하고 있다.


“유럽에는 공식적인 지사가 두 군데 뿐입니다. 그렇지만 주요 국가와 도시에서 Pinkerton Corp. 직원들이 활동 중입니다.”


무슨 비밀작전이나 산업스파이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현지에만 구할 수 있는 정보가 있습니다. 정보의 시의성을 고려해 예산이 허락하는 한 수집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본사와 연락 임무 역시 원활합니다.”


직장인은 세계 어디나 인종 불문하고 마찬가지다.

파벨은 자신들의 성실함과 충성심을 어지간히 어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Pinkerton Corp.의 유럽에서 활동은 JHO Company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고용한 미국 및 현지 기업에게도 도움이 되고 있다.

한때 미국 최고의 탐정업체였던 Pinkerton이다.

유럽에서도 대형로펌, 글로벌기업, 때로는 첩보역량이 떨어지는 국가 정부와 계약을 맺고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거나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팔고 있다.

물론 탐정영업이 불법인 나라는 제외다.


“정보가 곧 돈인 세상이니까....”

“간혹 분쟁지역으로 출장 의뢰가 들어옵니다만, 쓸 만한 대원을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전투경험자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들의 정신건강이다.

Pinkerton에서는 고객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하고 위험에 닥치게 된다면 보호해서 안전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첫 번째 임무다.

전투에 특화된 병사가 필요하진 않다.

따라서 민간군사조직과는 인원선발 기준이 달랐다.


“오늘 저녁에 다들 함께 식사나 합시다.”

“전 대원이 함께 할 순 없습니다.”

“식사 후에 우릴 안내할 직원 둘만 남기고 모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세요.”

“예?”

“티노 팀이 수행할 겁니다.”

“저 친구들은 이 곳 사정을 모를 텐데요?”

“그래서 직원 두 명을 남겨두라고 한 겁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티노 팀장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나머지는 티노와 파벨 두 사람이 알아서 조정할 일이다.

류지호가 머리를 시트에 기댔다.

파벨은 휴대폰 무음 표시와 무전기 리시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혹시나 실수로 큰소리가 나지 않도록.


✻ ✻ ✻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국이다.

그로인해 국제연합의 유럽 거점 도시(?)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많은 국제기구(UNO, OPEC, IAEA) 본부가 자리하고 있는 나라이자, 여러 중요한 회의 및 정상회담 주최국이기도 하다.

1989~1990년 철의 장막이 무너졌다.

5년 후이 흘러 오스트리아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더 이상 전쟁의 화마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끊임없이 유럽 각국에 러브콜을 보낸 끝에 유럽연합 회원국이 됐다.

국제기구가 많은 만큼 스위스 제네바와 함께 스파이가 많은 도시로 유명하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외국인 정보기관원의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다.

첩보영화의 배경으로 이런 도시도 별로 없다.


부우웅.


류지호를 태운 차량 행렬이 비엔나 역사 지구에 접어들었다.

제1 지구에 위치한 Steigenberger Hotel Wien 입구로 차량 행렬이 줄줄이 이어졌다.

구시가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독일계 호텔인데, 비엔나에서 손꼽히는 명소들이 인근에 퍼져 있다.


"명소라곤 해도 솔직히 말씀드려 별로 볼 건 없습니다."


200개의 객실, 10개의 스위트룸이 있었는데, JHO Company 의장비서실에서 스위트룸 모두를 예약해 두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마이크 리바가 피곤한 안색으로 류지호에게 말했다.


“난 그냥 내버려 둬.”

“많이 힘들어요?”

“시차 때문에 무척 피곤해.”

“충분히 쉬세요. 레이는요?”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만, 나도 좀 쉬어야겠어.”

“...음. 두 분 다 아직 노인이라 불리려면 한참 남았는데.... 9시간 시차가지고 힘들어 하시네요?”


마이크 리바가 피식 웃으며 받아쳤다.


“전용기를 타고 왔으면 멀쩡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류지호가 웃으면서 다시 맞받았다.


“퍼스트 클래스가 불편했어요? 돌아갈 때는 항공사를 바꿀까요?”

“됐네.”


함께 온 감독들이 각자 스위트룸으로 흩어졌다.

류지호 역시 자신에게 배정된 디럭스 스위트로 들어갔다.

파벨이 지휘하는 경호원들이 방안을 꼼꼼히 둘러보고 있다.


‘내가 무슨 국가원수도 아니고....’


류지호는 경호원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채광 좋은 야외 테라스로 나갔다.

야외 테라스 너머로 숨 막힐 듯 아름다운 도시 전경이 펼쳐졌다.

도시 전체가 마치 세트장 같았다.

한동안 테라스 난간에서 예술작품 같은 비엔나 전경을 만끽했다.


“보스. 점검 마쳤습니다.”


어느 틈에 파벨 노보트니가 곁으로 다가와 보고했다.


“내가 유사 스파이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우리가 첩보원이 될 필요는 없어요.”

“번거롭게 해서 죄송하지만, 기본 절차입니다.”


솔직히 믿기 어려웠다.


“혹시 체코와 슬로바키아에 가서도 이럴 예정이에요?”

“당연히.... 알겠습니다. 절차를 간소화 하도록 하겠습니다.”


과잉 경호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경호팀은 경호 매뉴얼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류지호는 적당히 타협하기로 했다.

파벨이 경호팀을 데리고 객실에서 나갔다.

하루 숙박료가 한국의 국민차 한 대 값이다.

신인감독에게는 과분한 서비스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류지호는 투자자이자 제작자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오스트리아 국빈으로 초대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세계적인 명사이기도 했고.

저녁식사 전까지 객실에서 휴식을 취한 후, 경호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직원들을 제외한 서른 명 남짓한 동유럽 직원들과 만찬을 즐겼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는 직원들에게 금일봉을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Steigenberger Hotel Wien에서 하루를 쉬고 본격적으로 비엔나를 탐방했다.

일정은 상당히 빡빡했다.

관광을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험프리가 짠 일정대로 로케이션 후보지들만 골라서 돌아다녔다.

미국 대사관이 호텔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미 대사관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미국 대사관은 자국민들에게 무한정 친절하냐고?”


앨런 포스터가 냉소를 지어보였다.


“No!"


할리우드 영화가 해외에서 촬영 될 때는 따로 협조요청을 하지 않아도 미국의 해외공관에서 협조를 하는 것이 관행이다.


“말은 그럴 듯 해. 자국민 보호. 일면에는 미국 외교의 힘을 보여주는 거야.“

“앨런은 미국인으로 자랑스럽지 않은가봐?”

“외교력에 낭비야.”

“난 편하기만 하구만.”


암튼 <사라예보>팀은 오스트리아에서 2주 머물렀다.

3주차에 체코로 이동했다.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이끈 벨벳 혁명을 계기로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 독립하기로 했다,

1993년 1월 1일에 평화롭게 분리 독립했다.

슬로바키아의 치안은 유럽에서도 보기 드물게 좋은 편이다.

특히, 살인율이 미국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종교는 가톨릭 신자가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웃나라 체코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슬로바키아인의 정체성이자,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서, 아이스하키 강국이기도 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시절부터 강팀으로 군림하고 있다.

아이스하키의 세계구 팀인 'Big Seven'의 일원이다.

체코의 코디네이터가 로케이션 헌팅 내내 체코 자랑을 늘어놨다.


'귀에서 피가 난다는 비유가 이런 생황에서 쓰는 건가.'


하도 수다가 심해서 든 생각이었다.

참고로 아스하키 'Big Seven'에는 스웨덴, 핀란드, 캐나다, 러시아, 체코, 미국 그리고 스위스와 슬로바키아 둘 중 한 나라가 포함된다.

마지막 로케이션 후보지인 슬로바키아로 넘어갔다.

바다가 없고 육지에 갇힌 슬로바키아는 서북쪽에는 체코, 서쪽에 오스트리아, 남쪽에 헝가리, 동쪽에 우크라이나, 북쪽~동북쪽에 폴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발칸반도는 미국, 유럽연합(EU)과 러시아, 중국 등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는 지역이다.

민간영역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결국 동쪽 국가들과 남쪽 헝가리는 로케이션에서 제외되었다.

최종 후보에 두 개 국가로 좁힐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와 슬로바키아다.

특히 슬로바키아는 러시아의 경제위기 여파로 경제사정이 썩 좋지 못한 상황이다.

만약 <사라예보> 영화팀이 자국에서 영화를 촬영하게 된다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슬로바키아는 육군 병력과 탱크, 장갑차 등을 지원할 뜻도 내비쳤다.


“생각을 말해봐.”


류지호의 물음에 앨런 포스터가 즉각 대답했다.


“나쁘지 않아.”


험프리가 슬로바키아 로케이션을 적극 추천했다.


“군대를 지원해준다는 건 대단한 메리트지.”

“우리가 현지 인력을 많이 고용해줬으면 하던데. 그게 가능할까?”

“단역부터 개퍼를 많이 고용해주면 돼.”


류지호로서는 스태프들의 실력에 대해 미심쩍은 것이 없지 않았다.

물론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그립은 그저 잡일꾼일뿐이지만.


“못 미더우면 독일이나 폴란드에서 데리고 와도 되고.”

“마을 폐허 오픈세트도 슬로바키아에 지어야 할까?”

“그러는 게 좋겠어.”

“촬영장비는?”

“가까운 독일에서 공수해 와야지. 메인 카메라와 중요한 FX장비들은 미국에서 가져오고, 나머지는 독일 업체에서 렌트해야 될 거야.”


독일은 경제 대국이다.

그럼에도 영화시장이 생각보다 작다.

에른스트 벤더스와 베르너 스티페티치, 파스빈더 등의 거장을 배출하고, 베를린국제영화제 같은 세계 4대 영화제를 개최하는 나라치고는 자국 영화 점유율이나 시장규모가 작은 편이다.

독일 영화 시장이 경제 규모대비 작은 이유는 단관극장 위주기 때문이다.

아예 낮 시간대 상영이 없는 극장도 상당수 존재했다.

그럼에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 영화계의 기술력 때문에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로케이션 및 제작협력을 제의하고 있다.


“우리 예산으로 유럽에서 몇 주를 찍을 수 있지?”

“6주.”

“그 외 스튜디오 7주, CG 소스 촬영 2주?”

“응.”

“헤드쿼터는?”

“비엔나에 세팅해야 하지 않을까.”

“슬로바키아 정부가 숙소 편의를 봐준다면?”

“수도에 마련할 수도 있고.”

“지금 독일의 필름 디지털 스캔이나 텔레씨네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봐줘.”

“그건 걱정하지 마. 독일이 유럽에서 가장 기술력이나 시설이 좋으니까.”


독일은 아날로그 영화 시스템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다.

디지털 영화 분야에서는 일본 가전업체에 밀리는 것이 현실이지만.

미국은 아예 딴 세상에 가 있고.


“내가 묵을 호텔 방에 Abid 편집기를 세팅 해줘.”

“뭐하게?”

“촬영 중간에 러프하게 쇼트 편집해보게.”

“네가 직접?”

“어시스턴트를 한 명 고용해도 좋고.”

“이번에도 풀스토리보드 하는 거 아니었어?”

“당연히 그럴 생각이야. 앨런이나 디렉터 쿤디도 주마다 촬영한 분량을 편집한 걸 확인하게 되면 다음 진행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앨런 포스터로서는 류지호의 촬영현장에 뭔가 새롭게 등장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영화 전체를 스토리보드로 만드는 것도 신선했는데, 이제는 촬영 중에 편집까지 하면서 점검을 해 본단다.

사실 할리우드 상업영화에서는 현장편집이 의미가 없다.

멀티카메라 시스템으로 현장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감독의 콘티(주로 블로킹)가 독창적이거나 신선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편집 소스가 모자란 경우는 거의 없다.

감독도 편집실에 못 들어간다.

편집이 편집감독의 고유 영역이기 때문에.


“역시 이래서 내가 디렉터 류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니까.”


충무로에는 이미 현장 편집이 등장했다.

WaW 픽처스가 현장 모니터에 이어서 발빠르게 도입했다.

2~3년 후부터는 현장편집이 충무로 영화 촬영현장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된다.

앨런 포스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도 보여주는 거야?”


현장 모니터도 감독과 제작자를 제외하고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 할리우드다.

심지어 주연 배우도 감독이 함께 보자고 했을 때나 볼 수 있다.

편집본은 말 할 것도 없다.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류지호는 현장편집이 매우 자연스럽지만, 이들에게는 아니다.

그렇기에 앨런 포스터는 조심할 수밖에 없다.


“별 도움도 안 되는 훈수만 두지 않는다면.”

“당연하지. 난 Jay의 연출을 믿어.”

“이 건은 앨런과 나만 아는 걸로 해.”

“당연하지! 촬영본이 외부에 유출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아무튼 JHO에서 직원을 파견해 줄 테니까, 현상소 쪽 하고, 지휘부가 들어설 오피스 보안은 걱정 마.”

“고마워.”

“고맙긴. 기본이지.”


만장일치였다.

연출, 촬영, 미술 세 파트 모두 유럽 로케이션지로 슬로바키아의 손을 들어주었다.

메인 촬영지가 정해지자, 험프리와 앨런 포스터가 움직였다.

류지호 일행이 출국을 준비하는데, 슬로바키아 정부 관료가 찾아왔다.


“저녁만찬이요?”

“예.”


그 날 저녁 슬로바키아 문화부장관이 주최하는 만찬에 초대되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다음 날에는 문화부 영화담당 공무원이 류지호 일행을 안내해 새로운 곳을 소개했다.

은근히 자연풍광이 수려한 곳으로 유도했다.

속셈이야 뻔했다.

류지호는 관광하는 셈 치며 적당히 맞장구 쳐주었다.

발칸반도의 국가들은 유고연방에서 독립했다.

역사적으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때문에 도시와 풍광이 비슷한 면이 많았다.

개활지에서 벌어지는 공중폭격, 자동차 추격, 군대 수준의 세르비아계 반군의 공격 등 영화 속 보스니아 배경을 모두 슬로바키아에서 촬영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정리하자면, JHO는 슬로바키아 육군으로부터 병력과 탱크, 장갑차 등을 제공받기로 했고, 슬로바키아는 로케이션 협조 크레디트 및 현지고용 500명 이상을 보장받았어.”

“500명을 다 엑스트라로 채울 순 없을 텐데....?”

“폐허 마을 야외 세트를 건설하기 위해서 현지 업체와 계약을 하게 되잖아. 케이터링, 각종 운송수단 운전수, 잡일 도와줄 사람들까지.... 고용조항은 충족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아.”


미국에서 촬영한다고 했을 때, 크랭크인부터 크랭크업까지 1,000여 명이 현장에 들어왔다 나가고, 일일촬영 평균 100~200여 명이 현장에 상주하며 일한다.

그 인건비는 실로 무시무시하다.

그에 비해 슬로바키아에서는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인력을 동원할 수가 있다.

할리우드에서 넘어오는 비싼 인건비의 인력들과 장비 및 국제운송료 등을 포함하면 크게 절약하는 것이 없긴 하지만.


❉ ❉ ❉


예정보다 슬로바키아에 3일을 더 머물렀다.

슬로바키아 정부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웨스트우드 JHO Pictures로 출근하기 시작하고 며칠 후 스펜서 베어드가 찾아왔다.

그와는 <The Killing Road>로 인연을 맺은 후로 <Escape>를 함께 했다.

할리우드에서 꽤나 알아주는 편집자다.

<파이널 디씨전>으로 감독 데뷔까지 했다.

그래서 연출자로 나갈 줄 알았다.

작년에 연출한 <도망자2>의 저조한 흥행 성적으로 인해 또 다시 연출기회를 잡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제작기간 내내 스튜디오와 갈등을 빚기도 했고.

스태프 출신 감독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메이저 스튜디오 임원들은 겉으로 폼은 다 잡으면서 보신(保身)에 엄청 신경 쓴다.

의사결정에서 굉장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암튼 류지호는 낙담하고 있던 스펜서 베어드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 세컨 유닛 디렉터.”

“당연히 편집까지 스펜서가 하는 겁니다?”

“응.”


감독과 편집자 사이에서 갈등하던 스펜서 베어드는 장고 끝에 <Remo : The Destroyer>에 합류하기로 했다.

편집은 물론 세컨 유닛까지 책임지기로 했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상업영화인 <Remo : The Destroyer>는 감독의 연출보다 편집에 포커싱이 될 수밖에 없다.

편집의 묘미가 굉장히 중요한 영화라 볼 수 있다.

액션영화에서 특히 솜씨를 잘 발휘하는 스펜서 베어드다.


“괜찮겠어요?”

“감독까지 데뷔한 사람이 세컨 유닛 감독을 한 경우가 영 없는 것도 아니고. 괜찮아.”

“오늘 계약하고 바로 회의에 참여할 수 있겠어요?”

“문제없어.”


세컨 유닛 연출은 메인 감독과 전체 영화를 공유해야 한다.

따라서 콘셉트 회의에도 참석한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마이크 리바가 아트디렉터 빌 에빌과 함께 JHO Pictures를 찾아왔다.

레이먼드 쿤디까지 도착하고 나서 콘셉트 아트를 공개했다.

<Remo : The Destroyer>를 준비하며 처음으로 받아보는 콘셉트 아트다.


“혹시 <딕 트레이시> 봤나?”

“그럼요. 실버트씨가 트라이-스텔라의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 미술을 담당했었죠.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는데, 최근 소식은 잘 모르겠네요.”

“아직 왕성하게 활동 잘하고 있어.”

“아직 현역이시죠?”

“최근 소닉-콜롬비아스와 계약했다고 하더군.”

“좋은 소식이네요.”

“실버트씨가 <딕 트레이시>로 오스카를 탔어. 사실 그 영화가 1920~1930년대 유행했던 갱스터 영화와 1940년대 필름 느와르의 요소를 반영하고 있지만, 이야기가 참신하지는 않았지.”

“미술적 부분에서는 꽤나 신선했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이 중요해. 원작만화의 색채를 대형 스크린에 재현하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도입했어.”

“7가지 색만을 이용해서 영화 전체 색감을 표현했던가요?”

“잘 알고 있군. 빨강, 초록, 노랑, 파랑색이 기본색으로 주로 사용되었어. 당대 최고 촬영감독인 스토라로가 프로덕션 디자인의 구상을 멋지게 시각적으로 완성해 냈지.”

“터치스톤에서는 확신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실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감독과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꽤 고집을 부렸거든. 결국 스토라로의 촬영이 임원이란 작자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어버렸고.”


<딕 트레이시>를 규정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도, 감독의 연출도, 멋진 액션도 아닌 바로 만화를 영상으로 옮긴 비주얼이다.

<딕 트레이시>에서 시도한 것들은 21세기로 넘어가도 계승된다.

수많은 만화 원작 영화들이 참고하는 교과서가 된다.

대표적인 영화가 <신시티>와 <300>이라고 할 수 있다.


“편한 길을 놓아두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그 결과에 관계없이 언제나 격려 받고 존중되어야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노력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영화와 산업 전체의 발전에 기여를 하게 되니까요.”


레이먼드 쿤디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학교 후배의 생각이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 자신 역시 언제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주저하지 않고 있기에.


“처음 원작소설 몇 권과 션의 스크립트를 읽고 <딕 트레이시>를 떠올렸어.”


류지호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콘셉트를 잘 못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렉터가 마지막으로 보내 준 스크립트를 읽고 그 생각을 모조리 폐기해 버렸지.”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했다.


작가의말

다음주는 ’Remo : The Destroyer‘ 제작과정 에피소드 중심으로 매일 연참을 진행 할 예정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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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The Destroyer. (12) +9 22.12.10 3,783 127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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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The Destroyer. (2) +7 22.12.05 4,024 121 25쪽
» The Destroyer. (1) +12 22.12.03 4,349 146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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