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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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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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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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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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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1997년 11월 20일.


IMF 수석부총재가 방한했다.

이날 환율은 변동폭 상한선까지 폭등, 사실상 거래가 중단되었다.

다음날 대통령은 주요 대통령선거 후보들과 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IMF측에 공식적으로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11월 22일.


‘경제난국을 위한 특별담화’라는 형식으로 대통령의 IMF 구제금융을 신청 요청 발표가 생방송으로 나갔다.

사실상 대통령이 한국의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것을 국민에게 실토한 것이다.

동시에 국민의 힘을 모아줄 것을 당부했다.

그 날 오후에 대통령은 APEC참석을 위해 캐나다로 출국했다.


다음날.


IMF 실무협의단 1진이 김포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

급하게 전세기를 임대한 류지호와 류순호 형제가 비슷한 시각 비서진을 대동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형제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체어맨을 타고, 빠른 속도로 김포공항을 빠져나갔다.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강화도.

형제의 외가다.

류순호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보았지만.


“형, 혹시.....?”


차마 다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류지호는 동생의 물음에 반응하지 않았다.

강화도 외가에 도착할 때까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을 뿐.


끼익.


체어맨이 외가의 대문 앞에 멈췄다.

차문이 부서질세라 형제가 뛰쳐나왔다.

외가의 공기는 어쩐지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형제가 외가 안으로 들어서자, 큰외숙모가 제일 먼저 반겨주었다.


“아이구! 이게 누구야! 지호하고 순호 왔구나!”


전통적인 한국식 가옥 구조를 가진 기와집이다.

추운 날씨임에도 마루에는 어머니 심영숙의 친정 형제들이 모두 모여 있다.

마당에는 사위와 며느리 그리고 사촌형제들까지 모두 모여 있다.

형제는 어른들께 가볍게 목례를 하며, 사촌형제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지호야! 안방으로 와 봐라!”


방안에서 큰외삼촌의 소리가 들려왔다.

형제가 도착했다는 것이 안쪽에 알려진 모양이다.


“들어가자. 순호야.”


류순호가 얌전히 형의 뒤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외할아버지가 두툼한 이불을 덮고 누워 가는 숨을 쉬고 있다.

머리맡에는 외할머니가 그 앞에는 외삼촌들이 앉아있다.


“지호, 순호는 할아버지께 마지막으로 인사드려.”


방안의 공기, 회광반조 같은 얼굴색의 외할아버지를 보는 순간.

외할아버지와의 마지막임을 직감했다.

류지호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생을 슬쩍 잡아끌며 이불가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앉아 외할버지의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


“우리 장한 아가들...”

“예. 할아버지.”

“덕분에 말년에 좋은 세상 살다가는 구나.”

“......”

“지호야....”

“네, 할아버지.”

“고맙다. 잘 자라주어서.....”


류지호가 외할아버지의 손을 동생의 손 위에 포개주었다.


“하, 할아버지.....”

“내 새끼....”


허허.


외할아버지는 뭔가 더 말하려고 했다.

입만 달싹거릴 뿐.

류지호가 얼른 외할아버지의 손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섰다.

그런 후에 방을 빠져나왔다.

임종을 지켜보고 싶었다.

안타깝지만 방 안은 어른들만 있기에도 비좁았다.


그 날 저녁식사를 할 때가 가까워질 무렵.

안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아버지~”


류지호는 눈가가 뜨거워져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릴 때 강화도에 놀려오면 외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옛날이야기들.

수박서리 하는 법을 알려주시고, 개울에서 미꾸라지를 잡으며 두 형제가 징그러워할 때 껄껄 웃으시던 모습, 농사와 관련된 지혜들,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를 슬쩍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시던 모습, 매번 강화 터미널까지 경운기를 몰고 마중 나오시던 모습까지....

수많은 추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인간의 뇌라는 건 참 신비로웠다.

평소에는 떠올려보려고 해도 생각나지 않은 사소한 기억들이다.

외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봇물 터지듯이 마구 떠오르고 있다.


대한민국이 IMF 구제금융 체제로 들어가는 시점.


피난민으로 강화도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이름 모를 평범한 농사꾼이 영면에 들었다.

자식을 키우는 걸 농사라고 표현하곤 한다.

어떤 편법 없이 우직하게 농사를 지으며 2남 4녀를 키운 노인이다.

어떤 현학적인 말도 유식한 말도 섞어 가르치지 않았지만, 자식과 손자들에게 모든 지혜를 나누어 주시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다.

류지호는 과거로 돌아와 처음으로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큰오빠....”


류아라가 눈물을 연신 훔치며 류지호의 품에 안겼다.

류지호는 눈물로 자신의 가슴팍을 적시는 류아라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한참 동안.


“......”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것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어른들의 울음이 이내 잠잠해졌다.

외삼촌들이 바쁘게 장례준비에 들어갔다.

예견된 죽음이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해둔 모양이다.

류지호가 슬쩍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장례는 어떻게 하신대요?”

“이곳에서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조문객들 받으려면 이곳에서는 힘들지 않을까요? 차라리 인천으로 모시는 게.....”

“시골에서 하는 방식대로 하기로 했어. 너도 주변 사람들 부담주지 말고, 친구들에게만 알리도록 해.”

“네.”


류지호는 심재우를 찾아갔다.


“외삼촌!”

“내가 경황이 없다. 용케 아버지 임종에 맞춰 왔네?”


급하게 전세기를 수소문해서 웃돈까지 얹어주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김포공항부터 강화도까지 위반한 교통법규만 수십 건이다.


“오느라 고생했어.”

“그나저나 회사에는 외삼촌이 알릴 거예요?”

“그래야지.”

“비서실에서 부고내도록 할게요.”

“아냐. 그냥 친한 회사 임원들하고 초창기 멤버들에게만 알릴 생각이다.“

“......?”

“너하고 매형이 좀 잘나 가냐? 조문객 받다가 심씨 집안 여자들 다 드러눕는다. 피난 나와서 친지도 얼마 없지만, 가까운 사람들만 부를 생각이야. 우리 형제들끼리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너도 그리 알아.”

“동네에 상여 맬 어른들은 좀 계세요?”

“내 친구들이 몇 놈 있는데.... 아무래도 젊은 애들이 있으면 좋겠지. 우찬이하고 재욱이가 와서 매주면 좋겠는데. 애들 요새 바쁘지?”

“한번 연락해 볼게요. 한 열 명 부르면 되겠죠?”

“그래 주면 고맙지.”

“알겠어요. 제가 뭐 도울 일은 없어요?”

“어른들이 알아서 하니까 넌 그냥 네 일 봐.”


류지호는 그 길로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 ❉ ❉


강화도 시골구석에 살던 노인의 죽음 덕에 한산하던 인근 지역이 한 순간에 번잡스럽고 활기찬 잔칫집(?)으로 변모했다.

서양의 장례는 검은색 정장의 한결같은 조문객들이 만들어내는 침묵과 경건의 공간이 특징이다.

반면의 우리의 장례는 마치 죽어 누워 있는 망자를 일으켜 세우기라도 하려는 듯 쉼 없이 떠들고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상갓집에서는 떠들고 노는 법이야. 괜찮으니 떠들고 놀아라!”


흔히 호상이라 불리는 장례식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사실 가족 외에 진심으로 애도를 하는 조문객이 몇이나 될까.

다들 제 입장과 관계에 따라서 문상의 표현을 나누고 애도의 흉내 낸다.

그 중에도 자신들의 삶을 이기적으로 챙길 뿐이고 제상 뒤에 누워 있는 망자의 시신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강화도 외가 상갓집으로 쉴 새 없이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류지호는 따로 부고를 내지 않았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정말 많은 사람이 강화도 촌구석까지 문상을 와 주었다.


“지금의 마당으로는 조문객을 다 받을 수 없겠어.”

“근처에 국민학교가 하나 있습니다.”

“주차장으로 쓰고 있지 않아?”

“교실에서 조문객을 받을 공간을 마련하겠습니다.”

“VVIP를 위해 마을 회관을 섭외해 봐.”


다행히 토요일과 일요일이 끼어있어서 학교에 양해를 구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조문객들을 위한 주차장이 마련됐다.

교실 대신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돗자리도 깔았다.

겨울이라 난방을 하느라 또 한 번 난리를 쳤다.

심씨 집안 여자들로는 일손이 부족했다.

읍내 식당 두 곳과 계약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물론 상주들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주)가온의 의장비서실, 나래안전 시스템 직원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강화군수는 또 왜요?”

“경찰인력을 배치해주겠답니다.”

“뭐 때문에....?”

“휴가철처럼 차량이 갑자기 밀려들고 있어서 질서유지 명분으로 협조를 해주겠답니다.”

“나래안전에서 지원 나왔다면서요?”

“민원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려면 아무래도 경찰을 끼고 설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화번호 줘봐요. 장례 치르고 사의를 표하게.”


(주)가온 의장비서실 의전팀과 나래안전 직원들이 동원되었음에도 혼란이 조금 있었다.

온갖 군데서 보낸 조화를 눈에 잘 뜨이는 곳에 두려고 신경전을 벌였고, 조의금을 받는 부스를 만들어 놓지 않았음에도 조의금을 찔러주는 조문객도 있었다.

밤새 벌어진 화투판에 화투를 대기 위해 김포와 인천까지 나가 화투를 사오기도 하고, 빈 막걸리와 소주·맥주박스가 산처럼 쌓여만 갔다.

방명록은 두 권을 준비했다.

첫날에 수많은 이름들로 채워졌다.

이쯤 되면, 죽음의 장소라고 할 수 있는 장례식장이 아니었다.

삶이 가장 약동하는 공간처럼 보였다.

살아 있는, 남아있는 사람들이 주관하는 장례라는 것은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 아니라 잊기 위한 예비단계 같았다.

그 사이, 살아 있는 이들은 제 욕심과 고민 속에서 망자들의 과거를 다시 반복할 뿐.

조문객들로 북적거리고, 여기저기서 아무 거리낌 없이 웃어재끼고, 마치 잔칫날처럼 상갓집에 향냄새와 함께 음식냄새가 진동하고.


“동생아.....!”

“불렀어?”

“혹시 네 할아버지가 악당이었냐?”


류지호가 매튜 그레이엄의 예의 없는 농담에 버럭 화를 냈다.


“뭔 개소리야!”

“근데 왜 조문 온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이건 마치... 파티 같잖아.”


매튜 그레이엄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한국의 장례문화는 죽은 자에 대한 추모와 엄숙함보다는 난장판에 가까워 보였다.

심지어 상주보다 더 크게 더 애절하게 통곡을 하는 사람도 있다.

류지호는 매튜, 도널드, 노아 시거 같은 외국인들을 위해 호상(好喪)을 설명해 줬다.

류민상이 곁에서 이해를 도왔다.


“여든하고도 다섯 해를 사시고도 사흘밖에 안 앓다 돌아가셨으니 호상이고 말고.”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외국인 직원들이다.

그들 뒤로 펼쳐진 떠들썩한 상갓집 풍경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사람의 죽음을 겪어내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사람 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삶이 확연해진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한국의 상갓집이야 말로 죽음, 슬픔, 연민 보다 삶을 극명하게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것으로 증명하고 있는 걸지도....’


외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은 몇 년 전 온 가족이 가온웨딩 주안점을 방문해 촬영한 사진을 썼다.

김준우의 작품인지 박상우의 작품인지는 알 순 없다.

무뚝뚝한 증명사진 같은 흑백사진이 아니다.

밝게 웃고 있는 컬러 사진이다.

원래라면 이미 돌아가셨어야 할 외할아버지다.

류지호의 개입으로 몇 년을 더 사셨다.

십 년 이상 삶을 연장할 순 없었다.

어쨌든 자손들이 큰 분란 없이 유복하게 살아가는 걸 보고 돌아가셨으니 그걸로 된 것은 아닐까.

화목하지 않은 집안의 경우 장례절차 또는 상속문제 등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기도 한다.

가족 간 갈등의 장이 펼쳐지기도 하는 곳이 장례식장이다.

죽은 자를 빌미로 하여 그간의 억눌린 감정을 풀어 헤치는 것.

망자에 대한 애도보다는 자기의 이익 챙기기에 바쁜 유족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행히 심씨 집안은 그런 것이 없었다.

단지 조문객들을 맞이하느라 엄청난 노동에 시달릴 뿐.

장례식 분위기가 너무 떠들썩하니, 매튜가 그 분위기에 편승해 은근히 류지호에게 자랑을 해 댔다.


“우리 이번에 환율시장에서 돈을 엄청 벌었어.”


IMF 이전까지만 해도 원-달러 환율은 800원 초중반대였다.

이 당시의 한국 경제규모에 비해선 고평가되었던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IMF 사태 이후로 걷잡을 수 없이 상승했다.

류지호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인 23일에는 1,962원까지 올랐다.

23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환율은 매매기준율인 1,685.3원보다 164.7원이나 높은 1,850원에 개장된 뒤 곧바로 1,995원까지 폭등했다.

달러 당 2,000원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하면서 환율은 다소 하락하며 1,965원에 마감됐다.

그런데 24일 매매기준율은 1,975.5원에 결정됐다.

지금까지 환율이 가장 높았던 때는 지난 12월 12일의 1,891.4원이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Moody Ratings, P&S가 신용등급을 크게 하락시킨 영향과 함께 연말을 앞두고 기업체들의 해외송금 수요, 차입상환수요 등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환율이 급등했지.“


그간 한국의 환율 시장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흐름을 매튜가 간략하게 설명했다.

듣는 둥 마는 둥.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 류지호로서는 돈을 벌고 못 벌고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어쨌든 미국에서 들여온 15억 달러와 류지호의 개인 보유 달러, (주)가온과 금융자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던 달러 일부를 12월 초부터 조금씩 시장에 내놓았다.

IMF 구제금융 신청을 전후로 해서 많은 달러를 원화로 바꿀 수 있다.


“수시로 환율 변동 상한선 초과가 벌어져서 거래중지가 발생했는데, 한국의 주거래은행인 국민은행이 딜을 걸어오고 한국정부가 산업은행을 통해 우리가 가진 달러를 확보하겠다고 하고.... 외환은행도 난리, 재벌들까지 아주 전화통에 불나는 줄 알았어. 하하.”


재벌들의 연락은 류지호가 받았어야 했다.

매튜 그레이엄과 노아 시거를 전면에 내세워 귀찮음을 피해갈 수 있었다.


“이 형이, 네가 기운을 차리라고 미리 알려주는 거야.”

“고생했네.”


류지호는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를 띠울 뿐 격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왜 하필 이 타이밍일까 하는 의문 따위는 없었다.

불행과 행복이 절묘하게 겹쳤다고 해서 운명의 장난이라고 믿지도 않았고.

우연의 일치도 아니다.

차라리 필연에 가까웠다.

이미 가을부터 외할아버지의 기력은 쇠할 대로 쇠해졌다.

임종을 몇 주 앞두고 병원에 입원하셨다.

죽음은 집에서 맞이하고 싶다고 해서 시골집으로 모신 것뿐.

어쩌면 멀리 미국에 가있는 류지호 형제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싶어, 외할아버지가 필사적인 의지로 하루 이틀 더 생을 붙잡고 있었다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어보였다.

류지호는 자신이 찍은 단편영화 <영정사진> 속 어린 손자가 아니다.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여리지도 않다.

슬프고, 가슴은 아리지만.

울지 않으려고 했고, 실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또르르.


홀로 외가를 빠져나와 동네길을 걷는데 저도 몰래 눈물이 흐르긴 했다.

슬퍼서도 안타까워서도 서러워서도 아닌 것 같다.

하늘나라로 떠난 외할아버지에 대한 예의라고 할까.


‘편히 쉬세요. 오래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류지호는 어릴 때 자주 놀았던 비석거리에 앉아서 뉴욕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곳에 피한방울 섞어진 않았지만, 또 한 명의 할아버지가 계신다.

윌리엄 파커의 위로를 듣자니 먹먹했던 가슴이 차분하게 안정되는 것 같았다.

류지호의 입에서 뽕짝 한 자락이 흘러나왔다.


“새까만 눈동자의 아가씨~ 겉으론 거만한 것 같아도~ 마음이 비단 같이 고와서~

정말로 나는 반했네~“


생전 외할아버지의 십팔번이다.

이 노래는 <Remo : The Destroyer>에도 사용될 예정이다.

치운의 십팔번으로 등장한다.

전편에서 ‘여자는 애를 잘 낳는 여자가 최고다’라는 말보다 조금 순화된(?) 방식으로 치운의 여성관을 드러내게 된다.

이때는 그저 외할아버지를 추억하는 의미에서 노래를 흥얼거렸을 뿐이지만.

어쨌든 외할아버지의 상은 삼일장으로 간소하게 치르려고 했다.

그 계획은 어디가고 오일장이 되어버렸다.

일부러 강화도 시골구석까지 조문 온 사람들을 야박하게 그대로 돌려보낼 수 없어, 하루를 더 조문객을 받았다.

마지막 날은 가족과 일가친척들만 남아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지는 마을의 한 산자락이다.

대광산업 주식 대박 때 외가 형제들이 돈을 모아 사두었던 산이다.

방향이 북녘을 향하고 있다.

비록 저 멀리 마니산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발인날 류지호의 친구들과 그나마 젊은 축에 드는 심재우의 친구들이 섞여 상여를 들었다.

시골마을 출신 중년 남자들이 솔선수범했다.

외할아버지의 생전 평판을 알게 해주는 모습이다.

고우찬과 김재욱이 양쪽 중앙에 자리 잡자 상여꾼들의 부담을 상당히 줄여주었다.

발인을 하기 전에 한 차례 제사를 지내는 동안, 상여꾼으로 참여하는 심재우의 친구들이 청년들과 손발을 맞추고 상엿소리를 연습했다.

상여의 맨 앞쪽에는 악귀를 물리친다는 방상씨 탈, 그 뒤로 명정, 만장, 공포 상여 등의 순서대로 줄을 서서 행진을 시작했다.

상여 뒤에는 상주들과 가족들 그리고 친인척들이 따랐다.

작년 국내 각종 영화 시상식을 휩쓸었던 <축제>를 떠올리게 하는 전통 장례의 하이라이트가 이어졌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종구쟁이(앞소리꾼)가 선창을 하면 상여꾼들이.


"어어야~이이제~"


류지호의 친구들을 포함한 17명의 상여꾼이 동원되었다.

보통 상여에는 13∼25명의 상두꾼이 동원되는데, 외할아버지의 상여는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였다.

발인 도중 평생 외할아버지가 일궈온 논에 잠시 멈춰서 '노제(路祭)'를 지냈다.

외할아버지가 잠든 관 위로 흙이 덮였다.

비록 남향이 아닌 북향이었지만, 선산에 봉분이 높게 올려졌다.


✻ ✻ ✻


류지호의 개인사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은 본격적인 IMF체제에 돌입했다.

매튜가 말했듯이 매일매일 변동되는 환율에 가온과 JHO 투자팀은 즐거운 비명을 터트렸다.

28일에는 환율이 2,067원까지 폭등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여파는 유학생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줬다.

급격하게 상승한 환율 때문에 유학생들은 한국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던 대학생들도 휴학을 하거나 군입대를 자원했다.

그런데 입대를 하려고 해도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금값은 환율만큼 폭등하진 않았네.”


4만 원대에서 6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봄이었지 아마... 금모으기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한 게.”

“뭐라고 하셨습니다.”


류지호가 한국말로 혼잣말을 해도 제니퍼 허드슨은 뭐든 놓치지 않으려고 꼭 물어본다.


“일제강점기 시절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어요. 아마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 벌어질 겁니다.”

“지금은 식민지 시대가 아닙니다만.”

“원래 그래요. 민족성이. 역사적으로 권력자가 싼 똥을 민중이 치우곤 했죠.

“의병 활동을 말씀하시는 군요?”


한국 역사까지 공부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비서로서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류지호가 사극 프로젝트를 궁리하면서 한국사를 틈틈이 뒤져보고 있었으니까.


“좋게 평가하면 단결력이고.... 삐딱하게 보면 선동에 취약한 부분이고.”


제니퍼 허드슨은 후자로 보는 것 같았다.

류지호는 굳이 바로잡아 주진 않았다.

‘금모으기 운동‘에는 약간의 선동도 분명 작용했으니까.

공중파에서 매일 생방송으로 이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중계방송하게 된다.

이기적인 사람까지도 왠지 양심이 찔려 동참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제니퍼, 국제 금거래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서 작성해서 줘요. 또 내년 1월부터 일 년 간 국제 금시세에 대해 비서실에서 모니터하라고 하세요.”


국민들의 돌반지와 결혼반지까지 모아 만든 금은 대략 227톤.

류지호가 기억하기로 40년 이래 금값 최저점에서 국제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해외에 매각한다.

이렇게 만든 외환은 대략 22억 달러.

거짓말처럼 2000년부터 금값은 매년 급등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2012년 최고치를 찍게 된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금모으기 운동으로 모은 227톤이라는 금을 국내에서 골드바로 만들어 한국은행에 보관한 후, 이를 담보로 외국은행에서 외환을 빌려온다면.

227톤이라는 금이 14년 후 약 130억 달러가 되어 국민들의 복지에 쓰이거나나 국방력강화에 사용될 수도 있다.

류지호는 정확한 데이터는 모른다.

다만 국가 부도의 날을 소재로 영화를 준비하던 영화사 관계자와의 술자리에서 그 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외환위기 이전의 GARAM Invest 보고서라면 정부가 거들떠보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젠 아니다.

류지호의 말이나 의견을 한국의 정부가 흘려들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대통령은 무시할 수도 있다.

헌데 관료들은 20억 달러를 가볍게 운용하는 거물 투자자의 조언을 무시하지 못한다.

류지호는 데본 테럴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혹시 한국에서 전국민 금모으기 캠페인이 벌어진다면 그 이면에 어떤 정치적 판단이 포함되는지 혹은 한국의 특정 기업과 뒷거래가 있는지 파악해 주세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금을 모은단 말입니까? 그것으로 IMF에게 진 빚을 갚는다는 겁니까? 왜 잘못된 정책과 실패의 책임을 국민이 수습합니까?”


데본 테럴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만히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선의가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정치꾼과 관료의 잘못된 판단 또 기업의 이기주의로 수백 만 명의 선의가 나쁜 결과로 나오질 않기 바래야죠. 혹시 한국에서 금을 대량으로 풀어서 국제시세가 내려가게 되면 저렴한 가격에 그 금을 우리가 사들일 수도 있고.”


류지호는 정부에 조언을 할 뿐이다.

금모으기로 형성된 엄청난 양의 금괴를 어떻게 처분하는지는 경제 관료들의 몫이다.

다만 원래 역사대로 한국정부가 멍청한 판단을 내리고 그로 인해 기업들이 어리석은 행동을 벌이게 된다면, 폭락한 금을 JHO Company에서 사들일 수도 있다.


‘금은 안전자산이니까.’


10년 주기로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 창궐하고, 툭하면 전쟁이 터져서 원자재 가격이 출렁이고, 주요 선진국의 정치 리스크 등 실물경제가 휘청거릴 때는.


‘머니머니 해도 머니는 금이지.’


류지호는 외할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1월 중순에 다시 한국에 들어와야 했다.

한국 영화사업의 주요 수뇌부들을 잔뜩 대동하고 서울 을지로 백병원 영안실을 찾았다.

백병원 장례식장 빈소에는 고인과 함께 영화 작업을 했던 수많은 감독들과 그를 거쳐 간 촬영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국영화사에 있어서 세 손가락에 드는 위대한 촬영감독.

바로 향년 63세의 유성길이다.

그가 1월 중순 뇌출혈로 별세했다.

1968년 촬영감독으로 데뷔한 이래 30년간 무수히 많은 감독들과 작업을 해오면서 한국적 리얼리즘 영상을 추구했다.

그만의 미학과 영화관으로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

또 1975년~1992년까지 미국CBS 서울지국의 카메라기자를 겸직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해 외국에 알리기도 했다.

문상을 마치고 나온 류지호를 영화인들이 반겼다.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의 허리를 잃었다며 안타까워했고, 척박한 시대에 감독이 원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한계에 도전했던 열정을 그리워했으며, 창작자의 혼이 담긴 촬영을 위해 늘 연구하던 치열한 장인정신을 칭찬했다.

고인보다 나이가 적은 감독들에게 아버지이자 형이었고 무엇보다 스승이었다.

물론 고인의 새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촬영부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를 거쳐 갔던 조수들은 정말이지 어느 날 갑자기 고아가 된 것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유성길, 이름 석 자가 한국영화에서 결코 잊히면 안 됩니다.”


김영복과 촬영기사들이 영안실을 찾은 기자들에게 절절히 호소했다.

비단 촬영기사들뿐만 아니라 감독이며, 제작자며, 기술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일반적 예우 차원이 아니었다.

가슴에서 우러나와 거의 울분에 가까운 목소리를 냈다.


‘어떤 영화인이 죽어 이 같은 안타까움의 대상이 될까?’


존경했던 선배 영화인의 죽음이 안타까운 한 편, 저들 모두가 고인이 세상에 남긴 유산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는 류지호다.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눈을 가진 분이었지.”


<초록물고기>의 이창석 감독의 말처럼, 유성길 촬영감독의 진실 된 영상은 차후 영화학도들의 훌륭한 교재로 남게 된다.

모 포크 가수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그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쓰게 된 시나리오 <8월의 크리스마스>가 유성길 감독의 유작이 된 것에 허영호 감독은 더욱 절절한 서러움을 느꼈다.


[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텅 빈 운동장에 남아있기를 좋아 했었다. 그 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중에서....


배창훈과 이명수 감독 역시 밤새 빈소를 지키며 고인을 추모하며 그와의 추억을 곱씹었다.

류지호 역시 아침까지 빈소를 지켰다.

촬영감독협회장으로 치러졌기에 장지까지는 따라가지 않았다.


“당신의 높은 이상과 열정은 후배들이 물려받겠습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작가의말

평안하고 안락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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