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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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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5.2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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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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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98. 3대1(2)

DUMMY

*


허공에서 자세를 바꾸는 일은 깨나 압이 높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빠른 속도로 이미 날아가고 있는데, 그 관성과 공기 저항의 한복판에서 제 몸을 새롭게 가누는 일은 물리 엔진에 따른 저항이 만만찮은 일이었다.

롤러코스터를 사는 사람이 느끼는 것처럼 제냐는 맞부딪쳐 오는 바람과 고속 이동으로 생기는 압력을 가늠하며 검을 휘두른다.


알렌은 셋 중 가장 앞에 나와 있었다. 페이트는 가장 뒤로 빠져 있었고, 숀은 페이트의 왼쪽 옆에 있다. 제냐의 시각에서 바라봤을 때. 페이트의 시각에서는 오른쪽 옆이리라.


알렌, 검은 망토를 덮어 쓴 사내. 움직임이 편한 가죽류의 하드 아머를 입고 있었고, 관절부와 중요 부위 정도만을 가리고 있다.

그의 손에는 밸런스가 좋은 한손검이 들려 있다. 오른손을 쓰는 인간이다. 깔끔한 모양새의 검이었고, 재어보자면 제냐의 한 팔 전체 길이보다 조금 짧은 정도의 느낌이었다. 십자 형태의 일반적인 가드Guard와 한손검치곤 조금 긴 그립. 예리하게 날이 선 양날검이다. 빛에 반사되면 흰 색으로도 보이는 잘 닦인 검에 알렌의 기력이 서려있다. 불투명한 색으로 제 머리칼을 닮은 금빛을 희미하게 낸다.


금색의 기운이 일렁거리면서 제냐의 공격을 막아내려 했다. 쌍수검을 상대로 한손검의 궤적을 고민해야 했다, 알렌은. 제냐는 그대로 튀어나가면서 정면에 있는 알렌에게 X자 베기를 시도했다. 길이상, 비스트 슬레이어가 조금 먼저 또 깊이 닿고 대거의 날이 그 뒤를 쫓으리라.


쌍수로 든 대거와 비스트 슬레이어 양쪽에서 제냐의 기력이 어른거렸다. 대거에는 붉은 것이, 비스트 슬레이어는 그 칼의 색깔처럼 푸르스름한 것이 있다. 캉! 하고, 비스트 슬레이어가 먼저 곧추 세워 그를 막으려 드는 알렌의 검날을 때렸다.

완력은 제냐가 더 강했다. 그리고 날아들듯이 다가오는 관성도 큰 것이었고. 제냐의 후려치기에 그의 검이 버티지 못하고 꺾였고, 알렌의 품으로 파고들면서 왼손에 든 대거를 그 목줄기에 가져다 대었다.


알렌은, 그 순간에 자신의 온 기력을 두 곳으로 나누었다. 검에 흐르게 했던 금빛의 기운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한 번 칼에 맞닿아서 팔이 넘어갈 때 공격을 막지 못하리라 느꼈기에 반응이 빨랐다.

그는 대거가 노리고 있는 목덜미 부위에 자신의 모든 기력을 대부분 집중시켰고, 나머지는 관절 부위에 주어서 움직임을 빠르게 했다. 알렌은 그대로 바닥으로, 뒤로 누웠다. 허리가 확 꺾이듯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발을 박차서 뒤로 조금 뛰기까지 한다.


서 있던 자세에서 곧바로 백 다운을 하는 것이다. 흙바닥이라고 하지만 뒤통수가 위험한 짓거리였다. 그러나, 아무리 후두부에 올 충격이 조심스러워도 목덜미에 박힐 대거의 칼날보다야 위험하겠는가.


알렌의 몸이 순식간에 접히듯이 뒤로 넘어갔고, 땅바닥에 곧장 떨어졌다. 놀라운 반응 속도여서, 제냐의 칼이 허공을 베었다. 알렌과 제대로 부딪히지 못한 제냐는 그대로 조금 더 날아간다. 다리가 알렌의 몸에 걸려서 쏘아진 포탄처럼 날던 것이 약간 기세가 줄기는 했다.


그대로 있다가는 제대로 자세도 잡지 못하고 엉켜서 넘어질 꼴이라, 공중에서 제비를 돌며 바닥에 착지했다.


쿵, 알렌은 숲의 흙바닥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소리를 내며 뒤로 떨어졌다. 제냐는 알렌의 뒤켠에 몇 걸음 더 간 자리에서 간신히 멈추어 땅을 밟았고. 숀은 그런 제냐를 보고 있었다.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작자였다. 이런 숲에서의 싸움에 이골이 난 것 같기도 했다. 제냐가 말이다. 그들도 어딜 가서 싸움으로는 뒤질 역량들이 아니었는데, 각각 혼자서는 저 암살 대상에게 확실하게 밀리고 있었다.


검은 늑대 기사단을 놀이 대상처럼 생각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이미 왕국 최고위의 기사단 중 하나였고 결국 어느 나라를 가도 대접을 받을만한 실력자들이었으니까.

전쟁이 시작되면 그들과 같은 고위 기사들은 최중요 전력으로 따로 분류되며 특별히 다루어진다. 결국 현대에 전쟁이라는 건 초인들이 활개치기 좋은 곳이었고, 적재적소에 어떤 부류의 능력자를 정확히 가져다 두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게 마련이었으니까 말이다.


전략 자원 중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이들이었다.

그런 취급을 받을 베테랑 기사들을 상대로 저렇게 여유롭다니. 숀은 다소 자존심에 상처가 난다. 상대의 내력이 어떻게 되었고, 어떤 커리어를 가진 작자이던 검은 늑대 기사단을 얕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자존심은 아주 적은 수의 예외를 빼고는 대개 통할만한 것이기도 했다. 숀은 제냐가 그런 적은 수의 경우에 해당되는지, 확실하게 검증을 하고 싶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도끼가 들려 있었다. 조금 자루가 긴 한손 도끼가 두 개였다. 쌍수에 든 것이 모양이 조금 다르다. 왼 손에 든 것은 날이 조금 더 좁고 날렵했고, 오른쪽에 든 것은 두 개의 날이 마치 날개처럼 굴며 넓은 폭을 가지고 있었다. 어지간한 한손검이나 숏소드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길이감이었다. 숀은 두 자루의 도끼를 다룬다.


왼손의 것은 빠르게 움직이며 상대의 공격을 쳐내기도 하고, 기습을 하기도 한다. 오른쪽에 든 폭이 넓은 것은 확실한 틈이 났을 때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혹은 상대의 갑옷이나 방패를 깨부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몸집은 작았지만 숀은 녹록치 않은 사내였다. 근력 역시 그리 적은 수치가 아니다. NPC인 그가 자신의 스펙 인터페이스를 볼 일은 없겠지만, 기사단 내에서도 탄탄한 체격을 갖고 준수한 근력을 갖고 있다는 걸 스스로 분명히 알았다.


숀이 달렸다. 페이트는 상처가 났기에 움직임이 조금 둔하고 소극적이다. 덩치가 가장 크기도 하고, 장병을 다루니만큼 어쩔 수 없었다. 상대의 움직임이 멎었을 때 확실한 한 방만 날려주면 될 일이다. 그는 자리에 멈추어 선 제냐가 자세를 제대로 잡고 방비를 하기 이전에 치기 위해, 이미 달리고 있었고 제냐가 착지를 했을 때는 한 두 걸음 정도가 남은 상황이었다.


제냐는, 기력술을 사용하는 수준의 전사들이 당연히 그렇듯 감지술을 상시 켜놓은 상태였다. 전투 중에는 말이다. 눈의 사각이 있을 지언정 일정 범위 내에서는 적의 움직임이 파악 가능했다. 그가 파악하기 힘든, 감지술 이상의 은신술을 갖는 암살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말이다. 아르망디가 애를 쓰면 가능한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서 그녀로부터는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기동성 위주의 전투를 하려고 했다.


원거리에서 쏘아 날린 썬더 볼트가 생각보다 위력이 있었고, 예상 밖의 충격을 정통으로 받아버린 그녀는 상당한 데미지를 입고 잠시 멈추어 선 상태였다. 플레이어라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캐릭터의 신체는 충실하게 데미지를 표현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어질거리는 감각이 표현되면서, 신체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강력한 전류 계열의 공격들은 그것이 좋았다. 어쨌든 맞으면 데미지 이상의 기절, 혹은 감전 효과가 동반된다.


아르망디는 일단 타들어간 피부와 외상을 치유하기 위해 인벤토리에서 HP포션을 꺼내 들이붓고, 마시고, 또 외상약으로 응급 처치를 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숀과 제냐가 마주한다.


알렌은 바닥에 누웠다가, 쿵 하는 충격에 잠시 어질거렸지만 금세 다시 일어나려 하고 있었고.


숀이 먼저는 날렵하게 좌수에 든 가벼운 도끼를 휘두른다. 날이 좁고 자루는 비슷하게 길다. 그 양 날개의 아래 위 끝은 뾰족하게 솟아 있어서, 여차하면 날이 분리되어 있는 창처럼도 쓸 수 있었다.

한손용의 워 액스 두 자루 모두, 그 날은 날카롭게 갈려 있으나 중심부로 갈수록 묵직한 두께감이 있어서 직접 부딪혀보면 상당한 충격을 느끼게 된다.

그런 류의 무기를 자유자재로, 두 개나 다루는 숀의 도끼술과 근력은 상당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무겁고 작은 무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순발력의 필요 역시 커진다. 대근육 위주의 전체적인 근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말단 부위의 소근육들이 연약하다면 무기를 잘 다루지 못하고 쥐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손 끝의 악력과 감각이 빈약해서는 그런 종류를 능숙하게 다루기가 힘들었다. 숀은, 손가락으로 단단한 목재 판을 눌러 홈을 만들어내고 체내에 기력을 돌려 힘을 주면 그대로 뚫어낼 수도 있는 인간이었다.


가장 가벼운 차림의 갑옷을 입고 있는 게 숀이었다. 갈색 머리가 바람에 날려 흐트러진다. 언뜻 보면 자루가 짧은 창처럼도 보이는 무기가 제냐의 목덜미를 노렸다. 제냐의 시선에서는,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맞이하는 공격이다. 마치 뱀처럼 휘어져서 들어오는 궤적이 난감하다. 제냐는 그대로 뒷걸음질 치면서 몸을 반회전 시켰다.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좌수에 든 대거를 움직였다. 발톱 대거에 다시 불길이 치솟아오른다. 고도로 발달된 기력술의 일종을 ‘검기’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검, 창, 부, 권, 편 온갖 종류의 무기들에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니 그 도구의 이름 뒤에 ‘기’를 붙여 부를 것이다.


일반적인 기력술과 조금 다르게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일종의 완성이기 때문이었다. 고수와 아닌 이들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이전까지에 비해 압도적으로 안정적인 구조와 강도를 갖고 있는 에너지체였다, 검기는.

기력술의 일종이며 일정 수준 이상의 능숙도를 가진 이들이 발휘한다. 초기에는 MP를 많이 잡아먹지만 일단 안정적으로 발동하고 나면 소모율이 극도로 적으며 아무리 많은 것을 베고 때려도 잘 부서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다.


절삭력 역시 올라가고 MP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다방면에 활용이 가능하다. 비물질적인 몸뚱이를 갖고 있는 기이한 괴물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런 녀석들을 사냥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굳이 검기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단순한 기력술이나 스킬들로도 유효한 타격이 가능하기는 했지만 MP의 물질화, 형상 고정이라는 부분에서 압도적인 능력이 필요한 경지인 검기는 더욱 효과적으로 때려잡을 수 있었다.

콘란드 대륙 내에서 ‘유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몬스터들을 말이다.


그렇잖아도 초상술사들이 기력술사들을 정면에서 상대하기 꺼려하는 이유가 그들이 가진 막강한 공격력과 그와 일체되는 방어력, 안정적인 MP활용 때문인데 검기는 그런 류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기술조차 콘란드 대륙 내에서 초인들이 다다르는 경지를 전부 논하자면 극의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충분히 최고의 경지였다.

그 이상은 구경이나 혹은 아는 것조차 어려운 부분이었고.


완숙하게 검기를 다루는 경지라면, 산슈카와 같은 소국이 아니라 어지간한 규모를 지닌 강국에서도 작위를 하사받고 국군의 핵심에 서게 되는 실력이었다.


그 이상의 경지를 갖고 있다고 하는 자들 간의 이야기는,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었으므로 논하기도 어렵다. 고수 이상의 고수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비밀스런 것이었다.


나름대로 검의 길을 걷는 숀, 페이트, 알렌 같은 자들이 대강 짐작을 하기로, 북부에 있는 제국이나 뭐 그런 곳들에 몇 명인가 있지 않을까, 생각만 할 뿐이다.


어쨌든 제냐는 대거에 상당히 고수준의 기력술로 칼날을 덧씌우고, 파이어 인챈트로 그 공격력을 대폭 늘렸다. 어느새 고수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는 그였고, 중첩해서 MP를 폭발시키는 그 기술의 위력은 검기라고 불리는 것을 조금 넘볼 지도 모른다. 공격력 면에서는 말이다.


캉!


하고, 제냐가 뒤로 물러서면서 대거로 날아드는 숀의 도끼창을 쳐냈다. 작은 무기로 리치reach가 길고 더 무거운 녀석을 상대하는게 어렵기는 하다.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추는 게 중요했다. 무게가 부족한 분만큼 힘을 더 주면 될 일이다. 마침 다행히 제냐가 이들보다는 힘이 더 좋았다.


숀은 그대로 몸을 돌리며 도끼를 쳐낸 반응에 당황했다. 생각보다 대응이 지독하게 빠르고 깔끔했다. 이미 날아간 공격을 물릴 수는 없다. 그는 그대로 밀고 들어가면서 우수에 들고 있는 조금 더 두껍고 큰 도끼를 휘둘렀다. 제냐가 물러나는 만큼 몇 걸음 더 다가가면서, 위에서 내려 베는 것이었다.


자루는 목재를 가다듬은 형태로 되어 있었다. 실제로는 철목을 가공한 것으로, 마치 금속과 같은 강도를 자랑한다. 어두운 나무의 색깔이었고, 철목 역시 기력을 둘러 사용할 수 있는 소재였으므로 어지간한 검사의 날붙이와 자루가 부딪혀도 잘 상하지 않는다.


도끼의 무게감을 살리면서, 그 머리가 날아가는 원심력의 방향대로 숀은 제냐의 정수리를 노렸다. 쪼개놓으리라, 는 각오로 던지는 일격이었다. 한 번의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자세가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달려가서 후속타를 시도하는 것이 숀의 실력을 말해준다. 자세 제어는 기력술을 사용하는 전사들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근처에서 거들듯, 무너지는 자세와 흐트러진 관성의 방향을 잡아주는 기력술의 효과는 전투를 훨씬 고차원적인 수준으로 이끈다. 사소한 부분에서조차 차이가 나기 시작하면서, 그 아래 단계에 있는 전사들과는 점차 비교하기 어려운 전투력을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숀은 바깥에서 구경한다면 이상하게 보일 정도의 동선으로, 그대로 밀고 들어가 도끼로 제냐의 머리를 노린다.


제냐는 오른쪽에 비스트 슬레이어를 들고 있었다. 왼손에 든 대거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손목을 돌려 비스트 슬레이어를 눕혀 들었다. 그대로 머리 위에 갖다 대며 날아오는 숀의 도끼를 막는다. 쾅! 하는 소음과 묵직한 타격감이 전달된다. 그립이 멀고 칼날이 길다. 제냐의 팔로 힘을 줄 수 있는 부분은 고작해야 손목 부위였고, 그게 꺾이면 비스트 슬레이어가 밀리게 되어 있었다.


칼날의 중심부를 자신의 도끼로 온 힘을 다해 후려치는 숀의 공격은 막강했다. 제냐는, 기력을 체내에 돌려 강력한 근력을 발휘한다. 숀 역시 근력이 약한 편은 아니었음에도 제냐의 방어를 온전히 뚫지 못했다. 분명하게 도끼의 내려치기가 멈추었고, 그 틈을 타서 제냐는 오른쪽으로 빙글 돌아 숀의 뒤를 노리려 한다.


숀의 입장에서는 왼쪽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왼손에는 도끼창이 있지만 쳐날려진 이후 아직도 뻗은 손을 회수하지 못했다. 자세가 엉성함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밀고 들어가 오른손으로 내려베기를 한 셈이다. 그것마저 제냐가 막아냈기에 숀의 처지가 애매하게 되었다. 거기다 순간적인 속도도 제냐가 더 빨랐다.


제냐로서도 기력을 폭발시키듯 사용해 얻을 수 있는 순간적인 속도다. 순식간에 숀의 사각을 차지한 제냐는 미끄러지듯 도끼날에 비스트 슬레이어의 날을 마찰시키며 들어간 참이다. 스릉, 하는 서늘한 소리가 두 냉병기 사이에서 나다가 멎었다. 다시 한 번, 왼손에 남아 있는 대거가 움직였다.


숀의 뒤를 점하면서 그의 옆구리를 찌른다. 빈틈을 파고들며 대거로 급소를 노리는 방식은 아까 페이트에게도 써먹은 공격법이었다. 그러나 똑같은 것을 사용해도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한 명 한 명을 놓고 본다면 전투력의 차이가 분명했다.

기사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두 명 이상이서 확실하게 진형을 만들고 제냐를 천천히 압박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 제냐는 계속 기동력을 살려 멀리 거리를 벌렸다가, 한 명씩 틈을 보아 공격하고 있는 중이었고.


그 즈음해서 알렌이 일어났고, 페이트도 옆으로 돌아오며 기회를 노렸다. 가장 멀리에 있는 아르망디도 포션을 퍼부어서 일단 혼란스럽던 정신을 추스른 참이다. 그녀가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쪽으로 달려오려 자세를 바꾼다.


숀의 옆구리, 갑옷의 틈새가 있었다. 복부는 하드 파츠로 가려져 있었지만 여러개의 가죽판이 연결되어 있어 그 이음새가 되는 부분이 있다. 제냐는 그 결대로 대거의 날을 찔러 넣었고, 그대로 불꽃의 날이 안쪽에 있는 숀의 내장을 긁었다.


숀은 제냐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그 옆으로 파고든다고 느끼자마자 기력을 돌렸다. 그가 한 순간에 사용할 수 있는 MP의 대부분을 기력술에 투자했다. 제냐가 다가오는 쪽의 몸체에 집중적으로 퍼부었고, 일시적으로 그의 상체 왼쪽에 희끄무레한 빛이 나타나 보일 정도였다. 아랑곳하지 않고 대거가 지나가며 제냐도 빠져 나왔다.


숀의 뒤에 서게 된 제냐는 손맛이 둔탁하다고 느꼈다. 불꽃의 날이 보이지 않는 막에 조금 밀리는 느낌이었고, 생각보다는 깊은 상처를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 장기에 닿을 정도의 공격이었고 복부에 난 상처는 결국 치명상이다. 제냐는 아래로 늘어뜨린 비스트 슬레이어로 숀의 뒷다리를 노렸다.


오른손을 그대로 끌어 올리면 그 외날도의 칼날이 숀의 허벅지 즈음에 닿는다. 바깥으로 훅 하고 빼내자 기력술로 푸른 빛이 도는 날이 갑옷마저 잘라내고 뒤쪽으로 긴 상처를 냈다.


감지술에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알렌과 페이트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동료가 쓰러지기까지 가만히 기다려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페이트가 조금 더 가까이 있었는지 빨랐다. 옆구리의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격한 기세로 거한이 달려들었다. 제냐에 비해 10cm정도는 더 큰 키에 떡 벌어진 체구를 하고 있었다.


그가 손에 쥔 장창검을 크게 휘두른다. 날아드는 그 칼날이 거대한 도끼가 다가오는 것 같은 위압감이었다. 실제로 어지간한 나무는 단숨에 두쪽이 나리라. 사람의 몸뚱이도 마찬가지고, 거대한 짐승 류의 목덜미도 마찬가지다. 제냐는 알렌과 페이트 중 페이트의 창날에 먼저 대응해야 했다.


X자로 팔을 치켜든다. 비스트 슬레이어를 높이 들었고 왼손에 든 대거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두쪽으로 쪼개려는 창날을 막는다.


쾅!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스트 슬레이어가 창날을 막았다. 오른팔 한 쪽만으로 막기에는 버거운 무게감이었으나, 대거가 창날의 상단부를 막아섰다. 쌍수에 든 두 개의 무기가 창날에 동시에 부딪혔다. 제냐 역시 기력을 상당히 끌어올려 사용하고 있었다.

느긋하게 상대했다가는, 하나하나는 몰라도 순식간에 포위가 당했을 때 위험할 가능성이 컸다. 지금처럼 한 명을 무력화 시켰다고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면 다른 녀석이 와서 지원 공격을 해댈 것이다. 빠르게 치고 빠지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제냐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으나 옆에서 알렌이 자세를 정비하고 달려드는 게 느껴졌다. ‘후.’ 제냐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점점 만만한 놈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심하게 들고 있었다. 어지간한 대상이라면 자신이 있었는데, 어지간한 놈들이 아니었다.

자신이 게임을 잘못 플레이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제냐에게도 대강의 감이라는 게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교류가 많지는 않지만, 아예 없지는 않았다. 또 세계관 내에서 풍기는 분위기라는 것도 있었고.


제냐 스스로가 레벨에 비해서 제법, 아주 강한 편이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맞을 정도로 이렇게 상대하기 까다로운 녀석들이 달려드는 판국이라니. 사용자의 실력에 맞추어서 난이도가 조절되는 게임이라는 것일까.


아직 아르망디도, 또 이 세 명의 사내들도 잡아서 족쳐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속내와 사정을 알지는 못했다, 제냐는.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페이트에게 달려들었다. 긴 창날을 머리 위에서 막고 있는 형국이었고, 그대로 칼날을 아래로 미끄러트리며 다가간다. 어설프게 거리를 벌릴 때 방향을 잘못 잡았다가는 몇 개의 방향에서 동시에 칼침을 맞을 수가 있었다. 차라리 상대가 여러 명이라면 간격을 잡지 못하도록 파고들어 난전을 유도하는 게 좋을 때가 있다.


창날과 대를 타고 들어오듯 다가오는 제냐의 모습에 페이트가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좋은 자세였다. 제냐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제냐의 대시에 제법 빠른 반응으로 몇 걸음인가 벗어나자, 곧바로 그는 생각을 달리했다.


제냐는 창대 근처로 쌍검의 날을 가져가며 다가가던 것을 확 멈췄고, 그대로 발을 박차서 뒤로 뛰었다. 자신 역시 거리를 벌리는 것이다. 페이트만 상대해도 좋다면 얼마든지 쫓아가서 요리를 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중에 빈틈이 생길 것이고, 그 정도의 시간이면 알렌이 제냐의 등에 칼로 다양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여유였다.


제냐는 다가오는 알렌을 의식하면서 뒤로 순식간에 벗어났다. 몇 번 탁, 탁, 하고 흙바닥을 박찼으나 순식간에 십 여 미터 이상은 훨씬 떨어진다. 순발력은 이런 식의 갑작스러운 방향 변화와 이동에 도움을 주는 스탯이다.


직선으로 그림을 그려 보자면, 제냐가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거기서 십 여 미터 앞에 알렌이 있다. 알렌의 뒤로 숀이, 그 뒤로 페이트가 있었고. 대각선 방향으로 떨어진 자리에서 아르망디가 달려온다.


“쯔.”


제냐는 혀를 찼다. 게임이 영 쉽지가 않았다. 쉽게 플레이한 적은 없었지만. 자기 스스로 자처해서 들어간 고난이 아니라, 게임 쪽에서 먼저 이런 난이도의 문제가 다가온 적은 처음이었다.

물론 로멜리아 가의 문제에 협력했을 때는 갑작스러운 퀘스트에 휘말린 셈이었지만, 적절한 순간에 조력자들이 있어서 제냐 스스로가 겪어야 했던 난감함은 그리 크지 않았는데.


그는 앞을 바라본다. 어둠숲. 낮이건 밤이건 언제나 조금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숲 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계는 뚜렷하다. 초인적인 수준의 안력이었고, 여러가지 스킬들이 어둠을 꿰뚫어보는 데다가 감지술도 켜 놓은 상태이니 시각 정보가 확장되어 들어와서 그렇다.


그의 앞, 네 명의 꼬라지가 있다. 알렌을 제외하고는 다들 부상이 있었고, 나름대로 데미지를 입혔다. 세 명의 남정네들은, 표정이 아주 심각하다. 플레이어가 롤 플레잉Role-playing에 심취한다고 하더라도 나오기 어려운 수준의 진지함이었다. 사람의 연기력은, 무슨 그가 전문적인 연기자라도 아닌 이상에야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갑자기 이 곳에 제냐 한 명을 속이기 위해서 뛰어난 명배우가 게임 속 저 위치에 있다는 것도 말이 안되었다.


아르망디는 어딘가 맹하게도 보이는 표정을 하고서 늘 제냐에게 공격을 해오는데, 그 표정이 현실에서도 저렇게 다닐 것을 생각해보면 영 성격이 이상한 게 아닌가 싶었다.


상대는 지쳤고, 제냐는 이렇다 할 타격은 없다. 계속 이렇게 우위를 점하면서 한 명씩 HP를 갉아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냐로서도 그리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다 사실.


적들도 나름대로 전투 클래스로서 여러가지 비장의 무기들을 감추고 있었을 수도 있었고. 누구 하나 완벽하게 제압해 둔 상태가 아니었기에, 여차하면 외통수에 걸려 게임 오버를 당할 위험이 계속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의미의 고민이 깊어지면서 혀를 찬 것이다. 아까 전에, 최태현에게 답신을 보냈던 것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때 동료가 있다면 아주 좋겠지만 이제 막 사르삿 시 내부에서 로그 인을 했을 그가 이곳까지 오는 걸 바라는 게 영 현실성이 없는 일이었다.

게임 속이기는 했지만. 여러가지 제약과 이 내부에서의 개연성, 현실성이 있는 탓에 말이다.

이제 와서 메세지 창을 켜고 죽을 위기이니 그의 근처로 텔레포트라도 해달라고 할까.


왕도에 있는 시설물을 사용하면 한 번에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테다. 그런데, 그 시설물을 사용하기 위해선 상당한 명예 점수와 돈이 필요했다. 자국에서도 쉽게 쓰지 않는 물건이었어서, 플레이어들은 아무래도 쉽게 쓰기가 어렵다.

게임적인 제약으로, 텔레포트 시설은 캐릭터의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비례해서 높은 돈을 요구한다. 고레벨이 되고 재산이 막대해지고, 명예 점수가 높아져서 일국의 왕과 대등하게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남발하지 못하게끔 만들어 둔 점이다.


텔레포트 기술은 고대 산슈카 국의 번영기 때 존재했던 시설물을 활용한 것으로, 이제와서 산슈카 국이 새롭게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초기 설치 비용이 어마어마한 물건이었으니까. 거기에 MP를 써서 초상 스킬을 발현시키는 기기였고, 여러가지 제약이 있어 전략적인 가치가 그리 높은 물건은 아니었다.


자국 내, 혹은 완벽한 점령지 따위의 공간에 쓰는 정도이다. 국경선 근처에는 텔레포트 따위의 기술에 대비하는 감지 계열의 아티팩트가 대개의 나라에 설치되어 있었고, 해당 기기에 감지되면 손쉽게 근처에서 방해가 가능했기에 성공하기 어려웠다.


거기다 거리의 제약 또한 상당한 편이었고. 사르삿 시 내부에 있는 시설물로는 도시 근처의 황야 한복판이나, 혹은 어둠숲 내부 정도까지가 그 거리의 한계였다.


정말로 게임 오버 직전의 순간인 데다가 최태현의 도움밖엔 수가 없다고 판단이 된다면 메세지라도 날려서, 재산 상의 출혈을 많이 감수하고서 이곳에 와달라고 부탁을 해보기는 하겠다만.

최태현이 애를 쓰는 것과 별개로 시설물 이용 자체가 허락이 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지간한 명예 점수로는 아무래도 이용하는 게 불가능한 오브젝트였으니.


만일 지금 당장 최태현이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루어서 텔레포트 시설과 동급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초상 스킬의 보유자가 된다거나, 비슷한 희귀도를 가진 전설급 스킬 페이지(페이지, 혹은 스크롤. 1회용의 스킬 사용을 가능케 해주는 아이템)를 얻는다거나 하는 건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였고.


두 손에 든 비스트 슬레이어와 대거가 왠지 무겁게 느껴졌다. 제냐는.


그건 일렬로 늘어서듯 진형을 갖추고 자신을 노려보기 시작하는 여러 명의 암살자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 보여서 괜스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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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10. 재료 수급 23.10.18 21 3 31쪽
110 109. 피츠 브래드 23.10.15 22 3 24쪽
109 108. 사내는 지난 시간을 등지고 돌아섰다. 23.10.12 20 3 18쪽
108 107. 아이젠 하우드 23.10.12 27 3 35쪽
107 106. 소란 23.10.10 23 3 16쪽
106 105. 귀족제 23.10.10 24 3 17쪽
105 104. 리액션 23.10.08 26 3 34쪽
104 103. 마무리, 재회 23.10.06 28 3 23쪽
103 102. 게임 오버 23.10.06 25 3 17쪽
102 101. 4대1 23.10.05 21 2 24쪽
101 100. 1대1 23.10.05 23 3 19쪽
100 99. 3대1(3) 23.10.04 26 3 24쪽
» 98. 3대1(2) 23.10.02 28 3 26쪽
98 97. 3대1 23.10.01 26 3 17쪽
97 96. 습격 23.09.28 31 3 15쪽
96 95. 이모저모 23.09.27 27 3 27쪽
95 94. 수습 23.09.27 24 3 17쪽
94 93. 연전連戰 23.09.26 27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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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1. 김세인 23.09.25 31 3 29쪽
91 90. 각자의 싸움 23.09.24 30 3 24쪽
90 89. 틈새 23.09.24 26 3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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