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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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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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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6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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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02. 게임 오버

DUMMY

*


아르망디는 빈틈을 노리길 좋아한다. 결국 그녀의 전투 방법은 그래야 한다. 암살자가 정면 승부라, 압도적인 가능성으로 성공이 점쳐지는 때라면 그래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결국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입장에서 정면이 아니라면 측면이건 어디건 우회해서 들어갈 각오가 있어야 한다.

나름대로 쌓인 관록과 스펙으로 자신감이 붙었던 그녀였고, NPC도 아닌 비슷한 레벨 대의 플레이어라면 자신을 이길 수 있을리 없다는 생각으로 멍청한 짓을 했었다. 원래 이렇게 몰래 다가가, 뒷덜미를 노리는 것이 그녀의 방법이다.


그녀의 검이 마치 휘어지는 뱀처럼 구불거리는 궤적을 그리면서, 제냐의 뒷덜미를 노렸다. 제냐는, 거의 대부분의 기척도 기력술의 흔적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조용하게 다가와 공격을 하는 아르망디의 낌새를 아예 모를 수는 없었고, 그 칼날이 지근거리에 다다랐을 때는 싸한 감각이 그의 뒷목 근처를 감쌌다. 거기에, 결정적으로는 숀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를 죽일듯이 사납게 인상을 찡그리면서 달려들던 동안의 사내가, 무언가 특이한 것을 보기라도 했다는 듯 제냐의 뒤쪽으로 시선을 두면서 동공이 커지는 게 아닌가.


제냐는 지금 이 상황 속에서 그에게 특이한 놀라움을 줄 수 있는 요소에 대해 찰나에 생각해봤고, 아르망디밖에 없다는 결론은 자기의 뒷덜미가 싸한 것과 맞물렸다. 제냐는 머릿속 답에 다다르자마자, 전력으로 앞으로 뛰었다. 다이빙을 하듯, 뒤를 잴 것도 없이 던진 몸이었다. 낮게 날아서, 팔까지 뻗으면서 앞으로 날아간 제냐는 도약력이 아주 좋았고, 그가 자세를 웅크림과 동시에 아르망디의 숏소드가 빈 허공을 궤적으로 휘저었다. 그러나 숏소드는 두 자루였고, 그녀의 검술은 한 번의 공격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뱀처럼 휘어지는 사검蛇劍은 유연하게 방향을 틀면서 앞으로 도망치는 제냐의 등뒤를 쫓는다. 제냐는 몸을 웅크리면서 그대로 굴렀고, 아주 미약하게 소름돋는 차가운 감각이 자신의 후방에서 느껴지는 데 집중하면서 계속 도망쳤다. 그가 한 바퀴정도 굴러서 벌떡 일어나 달려오는 숀에게 달음박질 치며 질주한다.


제냐의 급격한 높이 변화에 따라서 아르망디의 두 자루 칼 끝이 위로 갔다가, 아래로 갔다가 다시 위로 뻗었으나 결국 닿지 못했다. 전력으로 움직인다면 제냐의 속도를 아르망디가 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르망디는 붉은 검기의 세 번째 단계를 실행했다. 그녀가 마음을 먹고 스킬을 운용하자마자 붉은 기력술의 흔적이 그녀의 몸 근처에서 터져나왔다. 희끄무레한 안개처럼 피어 오르던 기력술의 잔재가 조금 더 짙어지고 양이 많아졌다. 어디에서 연막이라도 터뜨리는 것처럼, 그녀의 몸에서 일렁거리는 붉은 기운이 맺혀 떠나지 않았다. 반투명한 것이었고, 그만큼 양이 많아도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숨을 쉴 때마다 호흡처럼 안개가 움직였다.


두 자루, 검날에 맺힌 붉은 검기 역시 가일층 기세를 돋군다. 자세히 그 숏소드를 관찰하노라면, 가장 겉에 옅은 붉은 색 검기가 씌워져 있고, 안쪽에 조금 더 짙은 검력의 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안쪽, 곧 실제 철제 칼날과 닿는 곳에 한 층 더 짙은 검력의 테두리가 만들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숏소드를 두른 검력의 외형 역시 크기가 커졌고, 손가락 하나 분량 정도는 리치가 더 길어졌다. 폭 역시도.


조금 더 크고 강해졌으나 실제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아르망디가 한 차례 더 빨라진 움직임으로 제냐를 노리며 달려든다. 제냐는, 기력 감지술로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아르망디가 다가오는 정확한 움직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걸리지 않았지만, 아르망디가 붉은 검기의 3단계를 사용하면서 갑자기 감지술 범위 내에 선명하게 그녀의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제냐는 알지 못하지만, 아직까지 아르망디가 완벽하게 다루어낼 수 없는 수준의 기술이라 은신술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며 일어난 변화였다. 제냐로서는 아르망디가 조금 더 느리더라도 눈으로 일일이 확인을 해야 하는 경우가 더 번거로웠으나, 아르망디는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셈이었다.

실제로 당장 암살대상의 등판이 눈 앞에 보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으리라. 이 상태에서 장기전이 되면 결국 MP고갈까지 일어날 수 있었고, 한 번 극악한 수준까지 떨어진 MP는 포션을 아무리 들이켜도 잠시간 시간이 필요한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MP수치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일정 수치 이하까지 떨어지지 않도록 포션으로 인한 증가분과 소모량을 잘 계산하며 써야하는 게 스킬러Skiller들의 필수 덕목이었다.


제냐는 아직까지 그리 과중한 수준을 쓰지 않았다. 중간중간 숨으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MP포션을 홀짝이기도 했고. 물론 그것 역시 시간을 그리 많이 주지 않아서, 상대하고 있는 이들이 어지간히 잘 따라붙는 인간들이라 많이 마시지는 못했지만.

최태현은 지금쯤 평화로이 사르삿 거리의 대도를 거닐면서 오랜만에 들어온 게임 내 상황을 점검하고 있겠지. 그가 이동기를 쓰든 어느 짐승을 빌려 타고 오든, 어차피 접속을 하고 여기까지 오려면 깨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제냐는 지원군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숀과 아르망디에게 집중했다.


아르망디의 속도가 더 빨라진듯, 느껴지기는 했다. 갑자기 뒤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기척이 그의 등 뒤 바짝까지 따라붙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속도도 근력 수준도 대강은 아는 제냐였는데, 머릿속에 있는 데이터를 수정해야 될 정도로 급격한 변화였다. 아마 숨겨둔 비장의 기술 정도인 모양이다. 제냐는 망토 품 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짙은 갈색, 어둠숲에서 힐끗 보면 검은색으로 보이는 망토가 흩날리고 있었다. 숀까지의 거리가 아르망디와의 거리보다 조금 더 멀다.

제냐는 한발짝 더 앞으로 뛰면서, 품에 넣은 손을 빼들어 바로 뿌렸다. 숀은 핏발선 눈으로 제냐의 동작들을 노려보며 다가오고 있다가, 그가 팔을 던지자 무언가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망토 속에서 제냐가 꺼내든 건 블랙 리틀즈였다.

손바닥만한 길이의 검신을 가진 비검.


아름다운 외곽선으로 조형된 예술품처럼도 보이는 흑색의 그것은 아주 날카로운 예검이며 사나운 무기이기도 했다. 제냐는 여러 번 연습했던대로, 순식간에 망토 속에서 그것을 찾아 쥔 뒤에 뿌리기까지 했다. 아직 한 번에 여러 개를 잡아 흩뿌리는 일까진 조금 모자랐다. 시간이 1, 2초라도 더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숨 한 번도 쪼개어서 쉬어야 할만치 급격하게 적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라.


쉬잉,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날아간 예검은 숀의 미간을 정확하게 노렸다. 그간 익혔던 투척술이 영 쓸모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숀은 순간 반응하며 자신의 손목을 들어 올리며 그것을 막았다. 챙, 그리고 콰득! 하는 소리가 연이어서 났다. 숀은 암기류의 공격이라고 생각해 오른 손목을 앞에 내세우면서 막았으나, 생각보다 공격력이 강했다. 숀의 손목 아래 칼날을 부수면서, 그대로 그 너머 손바닥까지 관통해 단검이 파고 들었다.


숀 역시 나름대로 기력술을 사용했기에 손바닥을 뚫고 그 너머까지 날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손목검이 부서진 것만 하더라도 놀라운 일이었다. 기력이 남아 도는 놈이거나, 생각보다 무기가 좋은 재료에 고급 장인이 벼려낸 아티팩트 류의 그것이거나. 혹은 둘 다일 수도 있겠고. “크으!” 숀은 잇새로 비명같은 신음을 내뱉으며 손바닥에 박힌 그것을 뽑아내려 쥐었다. 촤악, 하는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검날이 뽑혀 나왔다. 출혈이 있었지만, 그것을 신경 쓰다간 눈 앞의 사내에게 베여 죽기 직전의 상황이었으므로 움직임에 방해되는 것을 뽑지 않을 수도 없었다.


마침 빼낸 단검의 검병, 그 그립 맨 아랫단에 동그란 홈이 있었다. 손가락 따위를 걸어 빙글빙글 돌리면 딱 좋을 크기여서, 숀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오른손가락에 걸어 쥐었다. 바로 손바닥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고, 제냐의 시야로는 흰 빛이 뿌려지는 광경이었으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냐가 그러했듯, 숀도 기력술을 사용해 오른손에 집중했다. 피가 일시적으로 조금이나마 멎는다. 기력술사들은 육체를 강화하는 스페셜리스트들이었고, 전장에서 어지간해서는 죽지도 쓰러지지도 않는다.

페이트와 알렌은, 다소 지나친 충격을 지나치게 정확한 타이밍에 맞아 쓰러진 것 뿐이다. 페이트도 일반적인 검이 복부를 찌른 정도라면 일어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냐가 두 종 이상의 스킬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면서 찌른 공격이었고, 번개의 기운과 그 외에도 열량, 폭발성 따위를 가진 검력이 그 내부를 지져버렸기에 더욱 큰 충격을 순간적으로 받아 저러는 것이었다.

저 상태에서도, 아마 전투가 끝난 후 HP포션만 제대로 뿌려준다면 죽지 않을 것이다. 재활에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 결국 전장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었고. 기력술사들이란 그런 의미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곧 현실에는 없으나 콘란드 대륙에는 있는 이 MP를 다루는 자들이란 그런 의미이다.


숀은 멈추지 않는다.

아르망디는 속도를 더한다.


제냐는, 그대로 앞을 바라보고 질주하며 검은 비검을 한 자루 뿌리고는, 뒤를 돌았다.


검술, 그리고 무술 스킬이 그에게 다양한 동작 궤적들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이 순간에 어떻게 굴어야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컴퓨터 시스템의 해답을 보여주는 식이다.

제냐는 그런 감각들을 1차적으로는 무시했다. 스킬의 보정 시스템을 이용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1차적으로 보여주는 답안지에 매몰되어서 생각하는 힘이 사라지고 만다면 스킬을 쓰는 게 아니라, 그저 이용당하는 객체가 되어갈 뿐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게임도 이기고 싶다면 생각을 좀 하고 지혜를 짜내야 했다. 하물며 작은 게임조차 그러했다. 게임 바깥의 모든 일들 역시, 그러하다.


제냐의 의도와 계획에 따라서 시뮬레이트되어서 그에게 들어가는 컴퓨터의 예상값이 달라진다. 주행 동선이 바뀌었을 때 네비게이터가 다른 최적 동선을 안내해주듯이 말이다. 제냐는 손에 든 비스트 슬레이어를 위로 끌어올린다. 올려 베기다.

빙글 돌았지만 관성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한 순간, 더 뛰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르망디의 속력은 순식간에 제냐를 따라잡게 된다. 제냐는 자신의 속도를 줄이고 통제함으로써 아르망디의 타이밍을 읽었다. 둘이 함께 뛰고 있었고, 아르망디는 등속 운동을 하고 있었으니까 가능한 계산이다.

제냐가 빙글 돌아, 뛰어버린 허공에서 칼을 긁어 올린다. 비스트 슬레이어의 푸른 검신은 번개의 불빛으로 싸여 있다. 평범한 기력술과 썬더 인챈트로 이중 강화된 검날은 치명적인 무기였다. 동급의 레벨을 갖고 있는 적들조차 무력하게 썰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공격력을 부여한다. 제냐는 그 무기를 아낌없이 사용했고, 그대로 베어 올리는 단순한 올려베기에 아르망디의 오른쪽 팔이 걸렸다.


눕듯이 뒤로 날고 있는 제냐였고, 숏소드는 허공, 중단 즈음을 가로지르지만 닿기엔 거리가 조금 남았다. 제냐의 몸통을 노리며 아르망디가 한 발짝 더 들어가려 했으나, 이미 제냐의 팔이 올라오고 있다. 그 손에 들린 비스트 슬레이어가 아르망디의 오른쪽 팔, 팔꿈치 즈음에 걸렸다. 걸린 뒤, 멈추지 않고 그대로 움직였다.

서걱, 하는 아르망디의 귀에는 가장 끔찍한 소리가 들리면서 그녀의 팔에 흰 빛의 입자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팔꿈치의 아래로, 그대로 팔이 사라졌다. 언뜻보면 흰 빛이며, 각도를 달리하며 자세히 바라보면 빛깔이 변하는 무지개색의 입자들이다.

신체 부위의 절단은, 어지간한 초인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게임 내 캐릭터들이라 할지라도 일단 움직임이 멎게 되는 중상이다. 쇼크로 죽는다거나, 하는 일은 HP가 높아지면 없어지기는 하지만 최소한 일말의 경직 정도는 있다.


아르망디는 왼쪽의 숏소드로 제냐를 마저 노린다.


제냐는 오른팔은 비스트 슬레이어를 올려 베는 일에 써먹었고, 왼팔이 남았다. 그대로 뒤로 날던 자세에서 슬쩍 다리를 내려 땅을 딛는다. 아르망디가 다가왔다. 뒤에서는 숀이 바짝 붙었다. 일단은 아르망디다. 둘 중에서 상처가 큰 쪽이 그녀였으니까. 한 명을 먼저 끝내는 편이 낫다.

제냐는 왼팔을 들어올렸다. 파지직,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 움켜 쥔 왼손 주먹에 푸른 빛의 기운이 맴돌았다. 썬더 인챈트다. 번갯불의 기운이 나타났고, 그 줄기가 여기저기로 튀었다. 권격으로 아르망디를 잡으려 하는가. 아르망디의 눈빛은 살짝 멀었다가, 이내 초점을 잡았다. 캐릭터 너머, 조종하고 있는 플레이어 베샤민의 정신은 멀쩡하지만 캐릭터는 시야가 잠시 흔들렸다가 다시 돌아온다.

베샤민은 조급함을 느낀다. 제냐가 움직이는 걸 확인했다. 관성으로 쫓아가던 검격을 멈추지 않았다. 제냐의 심장을 노리며 사검이 짓쳐 들어갔다. 제냐는 그 찰나에 몸을 비틀어 공격점을 바꾸려했다.


푸욱,


하는,


제냐로서는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려오며 몸통의 한 부분에 아르망디의 숏소드가 꽂힌다.


“회수.”


제냐가 아주 빠르게 달싹였다. 스킬은 아주 몸에 익기 전에는 시동어나, 시동 제스쳐를 정해서 발동시키는 게 더 정확할 때가 있었다. 지금 역시 그러하다. 아직 몸에 익은 스킬의 발동이 아니었다.

새롭게 익힌 것은 아니다. 단순히 얻었을 뿐. 블랙 리틀즈에 포함되어 있는 초상 스킬이었으므로, 제냐가 무언가를 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이나 손에 잘 익지 않는 스킬이기도 하다. 구태여 전투 중에 입술을 달싹인 건 그런 이유다.


제냐의 말에,


숀은 오른손의 비검을 역수로 들고 제냐의 뒷덜미를 노렸다. 자신을 바라보던 자가 아르망디를 노려 뒤통수를 노출하다니, 그로서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되는 순간이다. 제냐에게 당한 오른손. 피가 철철 나고 있지만 기력으로 억지로 그 몸을 붙잡아 움직이다시피 한다. 손가락에는 일반적으로는, 이미 힘이 들어가지 않을만한 상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력술은 그 손가락을 견고하게 움직이고, 고정시킨다. 꽉 쥔 그립으로, 숀은 그것이 도리어 더 기습에 어울린다는 듯 제냐에게 당한 상처를 품은 오른손으로 그 뒷목을 찔러 들어간다.


단숨에 말뚝을 박아 넣듯이, 검은 비검의 칼끝으로 쉬이익.


파공성과 함께 날아가던 검이다. 그 순간,


숀은 자신의 손이 허전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손에는 별다른 감각이 없었지만, 무게감 만큼은 정밀하게 느낄 수 있다. 그건 손과 연결된 팔로도 느끼는 것이었다. 숀이 몸을 다루는 기사이자 전문가라서 그렇다. 그가 휘두르고 있는 팔이 아주 미세하게 조금 빨라졌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의 흐릿한 시야에서 오른손에 움켜쥐고 있었던 검은 비검이 사라졌음을 알았다.

‘이, 게 뭔···.’


숀은 아찔한 심정으로 속으로 지껄였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그의 손은 그대로 휘둘러졌다. 멍청하게, 제냐의 목덜미 근처를 긁지도 못하고 거세게 던진 오른손은 그저 허공을 휘저었다. 역수로 쥐었던 그립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뚫린 구멍에서 그의 핏줄기만 흩어진다.


숀의 시야에서,


그의 오른손에서 사라졌던 검은 비검은 제냐의 왼손에 들려 있었다. 푸욱, 하고 아르망디가 찌른 검이 그의 복부를 마저 찔러 들어온다. 몸통을 비틀었기에, 그나마 가장 괜찮아 보이는 곳을 내어준 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한 이물감이 제냐에게 느껴졌다.

격통은 없다. 그저 이물감만. 실제 몸이 아니라, 캐릭터가 느끼는 것임에도 상당히 이질적이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런 순간에는 시스템 적으로 캐릭터와의 동화가 제어된다.

한 발짝 떨어져서 현상을 바라보는 관람객이 되는 것이다. 감각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러나 그가 하고 있는 공격만큼은 제대로 컨트롤을 해내야 한다.


제냐는 왼 손에 들려 있는, ‘회수’ 스킬로 그에게 돌아온 블랙 리틀즈를 꽉 쥐었다. 순식간의 일이었고, 보이지도 않는 순간에 숀의 손에서 제냐의 손으로 옮겨왔다. 검은 비검의 묵직한 흑색날이 날아든다.


아르망디는 표정을 구겼다. 촛점이 완벽하게 돌아왔고, 그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전부 선명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 그 위에 열상이 있고, 헝클어진 머리에 흙먼지나 낙엽 따위가 묻은 엉망인 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외형을 가진 그녀였고, 제냐는 망설임없이 파고 들어가 블랙 리틀즈로 그녀의 목덜미를 베어냈다.


촤악.


아르망디에게 있어 비극적인 소리가 들린다.


그게 아르망디 베샤민이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와, 본 장면의 일이었다.


*

sigmund-By-tZImt0Ms-unsplash.jpg


작가의말

께이무 오버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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